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21. 11. 10. 22:06

 

가을이 깊어진다. 기러기가 끼룩끼룩북녘 하늘을 가르며 파도치듯 날아온다. 이맘때 김포에서 강화의 들판은 기러기로 뒤덮었는데, 지금 김포평야는 없다. 아파트단지로 철저히 사라졌으니 기러기는 갯벌이던 강화 들판에 드문드문 내려앉는다. 방해를 덜 받아 그럴까? 철원은 여전하다는데, 무리 사이에 새하얀 기러기 몇 마리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쏘가리 무리에 드물게 나타나는 황쏘가리처럼, 멜라닌 색소가 결핍돼 백화현상이 발현된 개체다.

 

영어로 알비노(albino)라 말하는 백화현상은 열성 유전자의 조합이다. 까치도 사람도 드물게 있다. 10만 개체 중 하나 정도라는데, 실험용 쥐는 모두 희다. 열성 유전자를 가진 개체끼리 짝을 지었기 때문이다. 철원의 흰 기러기는 10만 마리 중 하나보다 비율이 높다. 황궁에 흰 비둘기만 살도록 허용하는 일본의 의도라고 한다. 우연히 발견된 하얀 암수를 강제로 교배해 잔뜩 태어난 흰기러기를 날려 보냈는데, 철원으로 온다는 것이다. 기러기는 외양으로 서로 구별과 차별하지 않는데, 아무래도 희면 천적 눈에 잘 띌 것 같다.

 

그림: 유전자 검사의 이미지. 유전자를 교환해 표현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은 환경을 고려할 때 타당하지 않다. 유전자의 발현은 환경에 따르기 때문이다. 

 

설원의 북극곰이 검다면 멀리서 본 물개는 잽싸게 도망가니 굶주릴 경우가 많겠다. 희므로 살그머니 다가가도 들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북극여우도 하프알파물범도 희다. 북극곰의 눈을 속일 수 있는데, 새하얀 모피에 혈안인 밀렵꾼을 조심해야 한다. 천지가 하얀색인 환경에서 흰 모피를 가진 개체는 적응력이 높지만, 숲이라면 다를 것이다. 만일 곰에 희게 발현하는 유전자가 없다면 북극권에 살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듯, 유전자는 적응력이 환경에 따라 다르다. 하얀색 유전자는 우월할까? 그런 거 없다. 세상에 좋고 나쁜 유전자는 없다.

 

키가 크면 좋은가? 초록색 눈동자는? 우수한 두뇌 유전자? 그런 것 없다. 유방암 발생 유전자? 있다고 과학자가 밝혔단다. 그 유전자가 있어서 앤젤리나 졸리는 제거했고 인공유방으로 교체했다는데, 제거하지 않았다면 유방암에 걸렸을까? 아니다. 유방암이 발현될 환경을 피한다면 거의 별일 없다. 유방암 유전자가 있는 여성의 90% 이상 건강하게 생존한다고 전문가는 주장한다. 유방암 유전자 없으면 무작정 괜찮은가? 확인된 바 없다. 노화된 몸에 나타나는 관절염도 치매도 비슷하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유전자를 좋게 바꾸는 세상을 그리는 과학자가 있다. 그런 식으로 10세대 이상 지나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부유층과 열등한 계층은 다른 인종으로 나누어질 것으로 점친 과학자도 있다. 터무니없다. 새로운 우생학을 부추기는 과학자는 인문적 사고가 협소하다. 사이코패스 기질을 의심하게 하는데, 유전자가위 기술은 사람보다 농축산업에 주로 적용한다. 괜찮을까?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는 걷잡을 수 없는 환경변화를 일으키는데, 유전다양성을 잃은 농축산물은 적응력이 매우 약하다. 한순간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갯벌과물떼새, 2021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