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12. 15. 21:18

 

책 읽고 글 쓰는 처지에 짜증스러운 일이 생겼다. 나이 들며 눈이 침침해지더니 돋보기를 써도 컴퓨터 모니터가 흐릿해지는 게 아닌가. 백내장인가? 경험한 친구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고, 수술을 결정했다. 10여 분 참으면 환한 세상을 맞을 거라는 기대에 앞서, 코로나19 간이 검사가 의무였다.

 

운이 좋아 이제껏 피했건만, 뉴스가 보여준 도구를 간호사가 들고 검사실로 들어왔다. 플라스틱으로 코팅한 종이상자를 여니 플라스틱 상자가 나왔고, 그 상자에 가느다란 플라스틱 솔이 하나, 작은 플라스틱 시약병이 하나, 그리고 시약을 넣으면 음성 여부를 보여줄 작은 플라스틱 장치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사진: 코로나19 간이 검사 키트로 거의 플라스틱에 의존한다. 

 

따끔합니다.” 예고하면서 부드러워도 기다란 플라스틱 솔을 콧속 깊게 넣고 비강을 훑은 간호사는 작은 시약병에 솔을 넣고 흔들었고 시약을 작은 플라스틱 장치에 붓더니 기다렸다. 이윽고 음성이라며 수술실로 안내했다. 송창식 노래 7곡이 지나갈 즈음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불편한 순간을 참으면서 플라스틱을 생각했다. 플라스틱 없던 시절이라도 백내장 수술은 가능했을 텐데, 그때 코로나19가 창궐했다면? 검사가 참 어려웠을 거 같았다.

 

수술 뒤 침침했던 오른 눈이 환해졌다. 1주일 뒤 왼쪽도 환해지길 기대하는데, 코로나19 검사가 다시 필요할까? 플라스틱이 없는 상황이라면 무엇으로 비강 조직을 긁어낼까? 살균한 솜? 시약은 작은 유리병에 담을까? 음성 여부는 종이필터로 알릴까? 그 모든 장치를 냉장고에 보관해야 할까? 그 비용을 얼마나 들고 결과는 얼마나 기다려야 나올까? 플라스틱이 없다면 코로나19 검사에 큰 비용이 필요했을 텐데, 다행이다 싶다.

 

플라스틱은 석유화학제품이다. 석유와 플라스틱은 어느새 인간의 삶, 의식주에 필수가 되었다. 플라스틱 없으면 두부를 한 모 단위로 담는 봉투는 물론이고 코로나19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뿐인가? 온갖 검사와 안약을 동반하며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며 수술하는 고가의 장비를 오차 없이 가동하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한데 다시 생각해보자. 석유화학제품이 지금처럼 우리 삶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코로나19는 팬데믹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화석연료 소비가 지금과 같지 않을 테니. 아스팔트, 비행장, 고층빌딩, 은행, 대학교, 대형교회가 많지 않겠지. 사람의 이동이 작을 게 틀림없겠다. 기득권의 탐욕, 경쟁과 질투, 전쟁과 후회도 적겠지. 대신 눈 시원하게 하는 숲이 넓었을 것이다.

 

나이 들어 단백질이 켜켜이 묻으면 수정체가 탁해진다. 조상은 침침한 눈으로 살았다. 글씨가 커지고 동작이 느렸지만, 젊은 식구와 이웃의 도움으로 노인은 실수를 만회했는데, 마을이 핵가족으로 흩어진 요즘, 플라스틱 같은 석유화학제품은 사람에게 느릴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나마 플라스틱 덕분에 노인은 투명인간 같은 소외를 면한다. (갯벌과물떼새, 202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