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21. 12. 27. 21:04

 

북성포구는 사라졌다. 십자수로의 절반 가까이 매립되었으니 분명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시민의 기억에 아스라이 남은 포구는 아니다. 인천을 상징하던 포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만석부두와 화수부두를 복원한다고 하니 기대할 수 있을까? 발전을 상징하는 송도신도시는 인천의 기억이 아니다. 게다가 기후위기는 해수면을 위험하게 끌어올릴 텐데, 대처하지 않으면 가라앉을 수 있지 않은가.

 

아련한 기억을 뒤로하고 만석과 화수부두를 걸으면 북쪽으로 청라신도시가 보인다. “청라에 사시나요?” 물었더니, “아니요! 청라국제도시에 산다고요!”하고 날이 선 대답이 돌아온 그곳에 외국인이 얼마나 사는지 모른다. 날씨가 흐려 그랬는지, 어딘가 을씨년스럽다. “국제를 강조한 그분이 들으면 기분 상해할 소리지만, 숨 헐떡이는 맹수가 날카로운 이빨을 하늘을 행해 맥없이 으르렁대는 모습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인천을 전혀 상징하지 못한다.

 

송도신도시도 국제도시인가? 외국인이 드물지 않은데, 송도신도시의 일부 주민은 새로운 랜드마크를 요구한다. 랜드마크라.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한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는 상징을 말할 텐데, 초고층빌딩이 즐비한 송도신도시에서 151층 쌍둥이 빌딩이어야 할까? 다행인지, 151층을 강조하던 목소리가 차분해진 모양이다. 더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순간 빛을 잃는 높이보다 국제도시의 위상과 가치를 위한 시그니쳐 타운이 추세라는 설득이 주효했을지 모르는데, 시그니쳐 타운? 아리송하다.

 

송도신도시에 랜드마크는 이미 여럿이다. 동춘동의 집 베란다에 도드라지게 보이는 동북아무역센터는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최고 높이였다. 미세먼지가 지독하게 뿌옇지 않다면 송도신도시 어디에서 볼 수 있는 랜드마크임에 틀림없다. 최첨단을 자랑하는 송도콘벤시아도 있는데, 높이가 낮아 자격 미달일까? 호주 시드니는 해변의 수려한 오페라하우스를,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과 개선문을 상징으로 내세운다. 높이와 관계없이,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기에 여행자는 꼭 찾아가는 랜드마크다.

 

사진: 송도신도시의 동북아무역센터 빌딩. 잠실 롯데월드타워 완공 전까지 최고의 높이였다.(사진은 인천in에서)

 

1995년 갯벌 매립으로 시작한 송도신도시는 자체로 우리나라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최신 자동차 광고의 메카일 뿐 아니라 재벌가 집안싸움이 주제인 드라마의 지리적 배경이 될 정도로 휘황찬란하지 않던가. 신도시를 꿈꾸는 지역마다 송도신도시를 전범으로 여기는데, 사실 기후위기 시대에 해안의 개발은 신중해야 한다. 태평양의 작은 도서국만 해수면 상승에 피해 지역일 수 없다. 충청도까지 아열대화한 바다는 머지않아 인천의 해수면을 끌어올릴 텐데, 송도신도시는 시방 어떤 대비를 하고 있나?

 

송도신도시가 차지한 갯벌은 인천의 소중한 랜드마크였다. 영겁 세월이 만든 리아스식 해안에 드넓게 펼쳐진 갯벌은 바다에서 다가오는 재난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수많은 먹을거리의 기반이었다. 송도에서 고잔으로 이어진 어촌계에서 잡아들이던 어패물은 인천의 오랜 문화였지만 지금 없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도의 식물성플랑크톤과 탄산칼슘으로 구성된 조개껍데기는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며 지구온난화를 예방해주던가? 콘크리트 더미인 송도신도시는 온실가스를 지독하게 내뿜는다.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목전에 두고 송도신도시의 랜드마크 타령은 철없는 투정보다 나을 게 없다.

 

송도신도시 인근에 아시아 최대의 가스저장탱크가 비죽비죽 위용을 자랑하는데, 해수면 상승에 견딜까? 해수가 치고 들어와도 작동이 원활할지 궁금한데, 온난화로 높아질 해수면은 욕조에 따뜻한 물 채우듯 얌전하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우리 해역은 세계 평균보다 수온 상승이 크다. 수온 1도가 상승하면 태풍이 2배 이상 거세진다고 전문학자는 예측하는데, 연약지반 위의 랜드마크는 송도신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견인할 정도로 든든할 수 있을까?

 

모래땅의 신기루인 두바이 부르즈할리파는 800m를 상회하지만 머지않아 1km의 높이를 내세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킹덤타워에 가려질 텐데, 역시 기후위기 앞에서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걷잡지 못할 에너지 낭비를 수반해야 유지될 높이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상징으로 손가락질받을 것인가? 이미 찬란한 송도신도시는 랜드마크 운운하며 신기루를 추가할 노릇일 수 없다. 갯벌로 돌이킬 수 없다면, 차라리 해수면 상승의 무서운 파고를 다소 완충할 인공 다도해를 랜드마크로 궁리를 하면 어떨까? (인천in, 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