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12. 31. 15:22

 

사회 일각의 치킨 논란이 뜨겁다. 유명한 음식 평론가가 우리 치킨은 작고 맛이 없다고 비판하자 양계업자들이 울분을 토했는데,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논란에 슬며시 끼어든 형국이다. 외국인들이 다시 먹고 싶은 우리 음식의 1위가 치킨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대부분 3kg인 외국과 달리 1.5kg에 불과한 우리 육계는 해외 종자일 뿐 아니라 수입 사료에 의존하고 튀김용 기름은 물론, 요리 주재료도 수입한다고 평론가는 덧붙였는데, 해마다 10억 마리 가까이 튀기는 우리 치킨은 고유 음식이 아닐까?

 

어릴 적 아버지가 어쩌다 통닭 한 마리 들고 오면 꼬맹이들은 잔치 기분으로 들떴는데, 요즘 통닭은 없다. 치킨이란다. 고유 음식이라면 이름이 외래어일 리 없다. 양념이 다채로운 우리 치킨은 독특한 풍미를 내세우는데, 무엇보다 육질이 부드럽다고 자랑한다. 그도 그럴게, 1.5kg에 맞춰 고작 4주 살리지 않았나. 부드럽다기보다 물렁물렁한데, 마당을 헤집으며 벌레 잡은 적 없으니 절대 쫄깃할 수 없다. 가마솥으로 고아낸 백숙과 달리 병아리가 빼곡한 양계장에서 사료만 축낸 치킨은 뼈마저 부드럽다.

 

두루미와 겨울철새가 내려앉는 요즘, 서해안 일원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여지없이 검출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갯벌 지역을 찾은 철새는 먼 거리를 쉼 없이 날아 기진맥진이다. 서둘러 체력을 회복해야 하는데, 주변에 먹이는 물론이고 쉴 자리가 태부족하다. 논밭에서 탈곡 뒤 떨어진 알곡을 찾을 때가 있었지만, 대규모 양계장과 축사가 그 기회마저 차단했다. 둘둘 만 볏짚 사이에 젖산균을 넣고 비닐로 뒤집어씌운 건포 사일리지가 들판에 쌓였어도 철새 몫이 아니다. 주변의 축사로 향할 것이다.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철새의 분변에 바이러스가 늘었다.

 

독감에 걸리더라도 며칠 푹 쉬며 잘 먹으면 사람도 철새도 쉽게 회복되지만, 요즘은 다르다. 분변 씻어내던 갯벌이 논밭으로 바뀌더니 커다란 양계장과 축사가 거듭 들어섰다. 양계장 환기구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철새 분변을 빨아들인다. 철새 분변에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더라도 살처분으로 이어지는데, 병아리가 바글대는 양계장은 오죽하겠는가? 고병원성이라면 반경 3km 이내의 닭과 오리, 메추리도 모조리 죽인다. 양계장 간격을 3km 이상 띄었다면 죽일 가금을 줄이고 살처분 인부의 과로사도 피하겠지만, 해마다 10억 마리의 치킨을 감당하려면 대안이 없다며, 정부 관계자는 단호하다.

 

갯벌과 모래, 크고 작은 섬들이 파고를 막아주는 우리 서해안은 리아스식이다. 예로부터 리아스식 해안은 재난에 안전할 뿐 아니라 수많은 생물의 터전이 되어 풍요로웠지만, 이제 옛이야기다. 논습지마저 사라지면서 생물상은 지극히 단조로워졌다. 사람과 가축 이외에 눈에 띄는 생물은 드물다. 고속도로가 가로지르며 도시가 확장되자 생태계는 단절되었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는 늘어났으며 재해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2000년 이전에 금시초문이던 조류독감이 창궐하더니 비행기로 2019년 착륙한 코로나19가 고속도로를 타고 무섭게 번져나갔다.

 

세계 지질학자가 층서위원회로 모여서 지층의 명칭을 규정하거나 수정한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위기를 맞은 지층을 걱정하던 중, 묵묵히 듣던 네덜란드 출신의 파울 크뤼천이 지금은 홀로세(Holocene)’가 아니다. ‘인류세(Anthropocene)’로 수정하자.” 퉁명스럽게 제안했다고 회의 참여자가 전한다. 기후위기를 경고해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회(IPCC)’20218‘6차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사람의 행위가 원인이라고 공식화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서둘러 억제해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일 텐데, 어쩌면 20211, 오존층 연구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은 이미 파악했을지 모른다. 돌이키기 어렵다고 확신했을까?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빙하가 물러난 이후 1만 년 동안 온화하던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류가 현재 딛고 있는 지층이 파국을 앞두었다는 뜻이란다. 현 지층 다음에 인류는 없다고 지질학자들은 확신한다. 한국의 산업화를 연구한 호주 사회학자 클라이브 해밀턴의 지적처럼, 징후가 점점 뚜렷해졌어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기 거부하는 인류가 인류세를 자초한 셈이다. 생태학자는 현존 포유류에서 그 증거를 찾는다. 모든 포유류에서 사람의 무게가 30%를 점하고 67%는 가축, 고래에서 들쥐를 망라한 나머지 포유류는 고작 3%에 불과하다는 게 아닌가. 매우 불안정한 생태학적 역피라미드다.

 

46억 년 전 태양에서 분리된 지구는 여전히 뜨겁다. 펄펄 끓는 용암이 살짝 굳은 지각 아래에서 이따금 분출돼 지형을 바꾼다. 23.5도 기운 축으로 하루 한 번 자전하며 1년에 한 차례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는 표면의 70%는 깊고 얕은 바다, 30%는 높낮이가 들쭉날쭉한 육지로 구성돼 있다. 수억 년 동안 무수한 생물이 바다와 육지에서 생을 이어가면서 다채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지구에 인류는 가장 늦게 동참했다. 공전과 자전하는 지구 표면의 모든 강은 1년에 한 차례 범람하고 한 번 바싹 마른다. 계절에 따르는 무역풍은 태풍과 파도 에너지를 해안에 꾸준히 전달했고 덕분에 인류도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생태계의 역피라미드 먹이사슬은 결국 붕괴한다. 안정된 생태계에서 먹는 생물은 먹히는 생물의 10%를 넘지 않는데, 무슨 연유로 여태 붕괴하지 않을까? 순환 시간이 긴 생태계 변화는 사람 시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6500만 년 전, 지름 10km의 운석이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지각을 강타했을 때, 당시 생태계를 구성하던 생물종의 70%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불과 1만 년 사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이른바 5 대멸종이다.

 

사진: 지층에 새겨진 5차례 대멸종의 역사. 현재 진행되는 현재 인류의 탐욕으로 진행되는 멸종은 5차례 순간보다 훨씬 빠르다. 제6의 멸종으로 학자들은 진단한다. (출처는 인터넷)

 

인류는 1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으며 생태계를 조금씩 교란하기 시작하더니 불과 100여 년 전 화석연료와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질식시킨다. 우주 형성 과정에서 완성된 금속의 핵을 파괴하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를 토해내게 만드는 인류는 생물 진화의 핵심인 세포핵의 유전자를 조작해 생태계 순환과 진화를 멋대로 교란한다. 1만 년 전 서서히 사라지던 생물이 요즘 급속하게 자취를 감추는 이유는 무엇인가? 6500만 년 전과 비교할 수 없게 사라지는 생물은 생태계를 수수깡처럼 허약하게 만들었다. 생태계 역피라미드는 무언가 받쳐주지 않으면 당장 무너진다. 인류가 무지막지하게 동원하는 에너지로 붕괴를 모면하지만, 언제까지 버틸까?

 

5 대멸종은 4차례의 대멸종이 먼저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생존하던 생물종의 60% 이상 사라지게 만든 대멸종의 주요 원인은 기후변화였다. 산업화를 이끈 화석연료 덕분에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자동차는 거리를 뒤덮는다. 끝모르는 에너지 과소비로 휘황찬란한 축제를 광란으로 이어가지만, 화석연료는 고갈이 머지않았다. 핵연료가 대신할 수 있을까? 파괴되는 핵은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폐기물을 수백만 년 남긴다. 기후위기로 다양성을 잃은 생태계는 유전자가 조작된 생물로 메울 수 없다. 방사능이 누적되는 생태계는 한순간 파국을 만날 수 있다. 1만 년 전 자신의 생태계를 스스로 교란한 인류도 안전할 수 없다.

 

코로나19 변이와 전파에 풍선효과가 있는 걸까? 백신 불균형 탓에 남부 아프리카에서 변이된 오미크론이 걷잡을 수 없게 번져나간다. 긴급 연구해 부자나라부터 보급할 백신과 치료제는 오미크론 변이를 진정시킬지 알 수 없는데, 인류가 일으킨 기후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경고를 마무리할 리 없다. 문제는 인류의 의료 혁신도 화석연료 없이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파국을 늦추려면 온실가스를 코앞에서 내뿜는 내연기관 해결이 급하지만, 자동차와 화력발전소만이 대상일 수 없다. 비행기와 우주선도 마찬가지인데, 갯벌에 거대한 비행장을 만든 우리는 새만금과 가덕도 비행장을 서두르면서 나로호 성공을 염원한다. 요소수 대란이 극복되었으니 안심해도 좋을까? 파국 부르는 대란이 한둘 아닌데, 뚜렷해지는 인류세 증상은 어떤 파국을 예고하나? 번영보다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2022년이 밝았다. 선거를 앞둔 새해 벽두, 우리는 어떤 내일을 선택해야 할까? (작은책, 2022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