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22. 2. 5. 13:11

 

4차 대유행으로 창궐한 코로나19로 힘겨웠던 2021년이 지나갔다. 시간에 매듭은 없어도 새로운 기운을 기대하며 새해를 맞았건만, 해외에서 들리는 연말연시 소식은 우울하기만 하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무섭게 번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겨울 더위가 만든 토네이도가 미국 중부지대를 한순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기후위기가 빚은 자연재해라는데, 다음 재해는 어디를 향할까? 다행히 우리나라 기후는 예년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계절이 여전히 뚜렷하고 코로나19 양상은 유럽이나 미주보다 차분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안하다. 심각해지는 자연재해는 지역을 가리지 않으므로.

 

1월 벽두 대통령은 선도국가시대를 선언했다. 따라가는 나라에서 앞장서는 국가가 되겠다는 신년사는 듣는 이에게 자부심을 불어넣기 충분했는데, 내용은 아리송했다. 거대한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서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하지만, 누리호 발사는 우리가 선도할 분야와 거리가 멀었다. 실체가 모호한 ‘K-전략보다 힘차게 추진할 수소 선도국가 전략으로 미래의 운명을 좌우할 탄소중립 시대를 주도적으로 개척하겠다.” 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탄소중립의 시간은 30년도 남지 않았는데, 무슨 신기루 같은 약속인가? 여전히 번영에 방점이 찍힌다. 관성인가? 생존에 대비할 시간이 긴박한데, 위기의식을 가진 보좌진이 그렇게 없는 걸까?

 

수소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허구를 여전히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료를 수소로 바꾼다고 기후위기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과학자의 의견을 한사코 외면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수소차를 선도적으로 생산하려는 특정 자동차회사의 로비 때문일까? 세계적으로 우수한 자동차회사는 많다. 수소에 사운을 걸 만큼 광고에 열을 올리는 자동차회사가 우리나라 그 회사 이외에 더 있을까? 탄소중립이 긴급하므로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와 발전소를 억제하려는 국가는 분명히 늘어나는데, 대통령까지 수소에 심취한 국가가 우리 이외에 어디에 있을까?

 

요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수소차 광고는 가관이다. 기후위기의 주범 중의 하나인 제철회사도 거들고 나서는데, 수소자동차가 지나가면 길 주변이 순식간에 녹색 별천지로 바뀐다. 어이없어 따지고 싶은데, 표현일 뿐이므로 광고를 규제할 수 없다는 답이 나오겠지? 문제는 그런 광고에 소비자들이 무작정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소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각인할 수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환경운동가 제리 맨더가 텔레비전을 버리자고 제안했고 작고 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가 텔레비전에 진저리쳤을까?

 

수소가 기후위기 대응의 국가 우선 정책으로 등극해서 그런지,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는 위세가 비등하다. 대한민국의 탄소중립을 선도하려는 자세가 역력한데, 행동은 턱없이 초라하다. 수소 전기만큼 석탄화력발전소 전기를 즉시 줄이던가 멈추라고 요구해야 마땅하지만,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런가? 인천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화력발전소는 꿈쩍하지 않는다. 수소 전기는 광고처럼 이산화탄소를 줄이는가? 석탄화력발전보다 배출이 적은가? 아니다. 생산 전력량 대비 오히려 많이 배출한다. 그런 주제에 무슨 친환경 타령인가?

 

화석연료를 태우면 당연히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수소를 산소와 결합하게 해서 전기를 생산하면 배기관으로 물이 나온다. 관 끝만 보면 분명히 그렇다. 광고는 물론이고, 광고를 만든 자본, 그리고 자본에 영합하는 과학자는 관 끝을 내세우며 친환경 포장에 열을 올린다. 광고는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강조한다. 조금만 깊게 살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을 가린다. 영상으로 현혹하는 텔레비전이 특히 심하다.

 

현실은 어떤가? 상상 초월하는 기상이변이 거듭 경고하는 기후위기는 얄팍한 광고에 속을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멀지 않은 미래세대의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소비로 기후위기를 조금이라도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 시민이라면 상품광고가 무엇을 숨기는지 살펴야 한다.

 

수소는 저절로 생기거나 무궁무진한데 방치된 에너지원도 아니다. 자연에 수소가 아무리 많아도 화학적으로 결합한 상태이므로 에너지원이 아니다. 자동차와 전력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면 수소를 반드시 정제해야 한다. 순수한 수소가 우주와 바다에 많다지만 소용없다. 추출해 저장하는 비용이 상당할 뿐 아니라 과정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른 원소와 결합한 수소를 억지로 떼어내 저장하는 방법이 있지만, 수소에서 얻는 에너지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화합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방법에 따라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리고 그린수소, 그렇게 3가지 이름을 붙인다. 분리 방법과 과정에서 배출되는 물질의 양과 질이 다를 뿐, 수소의 청결에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그림: 분리하는 방법으로 구별하는 3가지 수소를 설명하는 그림. 현실적으로 환경에 부담을 준다. 출처는 인터넷.

 

우리나라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는 대부분 액화천연가스에서 분리한다. 그레이수소에 해당한다. 석유화학 물질이나 정유 공정의 부산물에서 분리하므로 회색인 그레이수소는 수소의 1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므로 회색이라는 건데, 블루수소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공기 배출을 차단하면 파랗다는 블루 이미지를 붙인다. 친환경 칭호를 하사받았지만, 인정하기 어렵다. 붙잡아 놓은 이산화탄소를 안전하게 영구적으로 보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개발될 가능성도 없다. 이산화탄소를 활용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거리가 멀다. 열역학 1법칙, ‘에너지 보전의 법칙을 보라. 그 기술이 요구하는 에너지로 인해 새롭게 배출될 이산화탄소의 양은 붙잡은 이산화탄소보다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을 전기로 분해하는 수소는 최상의 그린수소일까?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기를 활용한다면 그 순간 녹색 이미지는 퇴색한다. 수십만 년 맹독성 핵폐기물을 미레세대에 떠넘기는 핵발전소의 전기라면 터무니없으니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라야 할 텐데, 그렇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그린은 아니다. 모든 에너지는 전환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 비중이 열악한 우리나라가 에너지 손실을 감내하면서 수소를 분해해야 할까? 재생 가능한 전기는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며 전환 없이 사용해야 의미가 있다. 호주 사막의 태양광 전기로 분리한 수소를 수입한다면? 수소를 석탄이나 원유처럼 대량으로 운송할 기술이 확보되지 않은 현재, 다분히 김칫국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물질이다. 그런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탱크는 탄소섬유로 제작하는데, 대량으로 안전하게 저장해 운송할 탱크는 기술적으로 아직 완벽하지 않다. 어렵사리 확보하더라도 당분간 수소를 선적과 하역하는 비용은 버거울 것으로 전문가는 예상한다.

 

편하게 이야기하는 수소자동차는 사실 전기로 움직인다. 공기 중의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며 만드는 전기를 이용한다. 수소든 배터리든,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보다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지만, 수소와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의 오염은 늘어난다. 정의롭지 않다. 배터리도 차체도 폐기하면 오염물질이다. 전기차가 많은 제주도에 처리되지 않은 폐배터리가 쌓여가는데, 자동차의 반도체, 다양한 플라스틱, 시트의 소재도 재활용이 어렵다. 철강은 재활용하지만,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는 한가로운 대응으로 풀리지 않는다. 연료보다 규모가 문제의 근본이다. 승용차는 물론, 자동차 사용이 불필요한 사회를 실현하는 정책을 절박하게 구상해야 옳지 않나? 일본의 경제사상가 우치하시 가츠토는 “FEC 자급권을 제창했다. 마을에서 음식(Food)과 에너지(Energy), 보살핌(Care)까지 자급한다면 개인 교통수단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중교통과 자전거 활용은 자급이 가능한 마을 공동체에서 요긴할 수 있겠는데,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는 FEC 자급권이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대응에 가깝다.

 

2022년 대통령이 내세운 ‘K-전략은 번영이 아니라 생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탄소중립 시한은 2050년이다. 마음이 급한데, 미래세대의 생존을 선도할 새 정부는 어떤 정책에 무게를 둘까? 유권자의 선택이 그래서 중요하다. (작은책, 2022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