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22. 3. 21. 16:38

 

울진 산불은 완전히 꺼졌을까? 바싹 마른 산록에서 번지는 불은 꺼진 듯해도 확신할 수 없다. 달구어진 흙에 묻힌 불씨가 바람 타고 날아가 쌓인 낙엽을 태운다. 그렇더라 울진 산불은 재발하지 않겠지. 며칠 전 전국을 적신 봄비가 산간에 눈으로 적지 않게 쌓였다. 낙엽이 척척해졌을 것이다. 숨은 불씨까지 샅샅이 찾아내던 소방관의 노고가 컸는데, 상당한 나무와 낙엽을 잃은 울진보다 양양에서 간성으로 이어지는 산록은 조심해야 하리라. ‘양간지풍은 산불을 몰고 오지 않던가.

 

미국 LA를 포함하는 캘리포니아 숲은 걸핏하면 산불에 휩싸인다. 규모도 커서 서울 면적을 뛰어넘는다는 뉴스가 일상일 정도다. 거듭되는 산불에도 숲이 남았다니 캘리포니아가 넓긴 넓은가 본데, 산불이 계속되는 지역이라면 초원이어야 정상이다. 태평양에서 고온다습해진 공기가 로키산맥을 넘으며 건조해져 캘리포니아에 산불을 번지게 한다고 전문가는 분석하는데, 주 당국은 산불을 크자마자 나무를 거듭 심는 걸까? 산불이 끊이지 않는다. 산록이 건조해지는 겨울철 양양에서 고성 사이로 번지는 산불의 원인도 캘리포니아와 비슷하다는데, 예전에도 요즘 같은 산불이 빈번했을까?

 

유럽인이 정차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는 아름드리나무로 울울창창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10여 명이 편안하게 마주 앉아 회의나 만찬을 가질 크기의 목재는 지금도 미국 서부의 숲에서 가져온다는데, 캘리포니아 일원은 태고 이래로 수천 년 수령을 가진 나무로 가득했다고 전한다. 건조한 계절풍이 일상이더라도 산불이 없었다는 뜻일 텐데, 양양과 고성 사이의 산록도 비슷했다고 산림 전문가는 귀띔한다. 일제가 목재로 쓸 커다란 나무를 모조리 베어간 이후 헐벗은 양양과 간성에 산불이 잦아졌다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 양양과 간성 사이의 숲은 울창했고 강수량이 적은 겨울에도 산불이 드물 정도로 습기가 충분했을지 모른다.

 

사진: 2019년 양양에서 간성 방향으로 발생한 산불의 상흔. 출처는 news 1.

 

울진에서 잔불 정리하는 소방관들은 비탈진 산록에서 타다 남은 낙엽을 일일이 긁어내느라 비지땀을 흘렸고 짊어진 물을 낙엽 사이에 흥건히 뿌렸다. 얼마나 고됐을까? 노동 강도에 비해 수당이 작다고 언론은 애잔하게 보도했는데, 낙엽 잃은 산록은 건강하게 살아날까? 맨흙이 드러난 산록에 뿌린 물은 흙을 얼마나 적실까? 흙 속에 풀씨는 봄비를 맞으면 싹을 틔우고 때를 기다리던 여러 씨앗이 차례로 움을 틔울 텐데, 언제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되려나? 낙엽이 남고 그 위에 봄비가 내리거나 쌓인 눈이 봄볕에 녹으면 회복이 빠를 텐데, 상처를 깊게 남긴 이번 산불은 깊은 걱정을 남겼다.

 

빗물을 연구하는 학자는 울진 산불을 보며 산록이 건조해진 현상을 주목했다. 산기슭 곳곳에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자연스럽게 흩어져 있다면 산불이 이번처럼 확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고 아쉬워했다. 산불이 진화된 이후 회복된 숲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빗물이 잠시라도 고이다 흙으로 흡수될 수 있어야 한다고 빗물 연구자는 여러 매체에 소신을 밝혔지만, 산림청이나 산불 전문가는 이구동성으로 산불 진화용 헬기의 추가 도입과 소방차 진입을 위한 임도를 언급했다. 캘리포니아나 울진, 양양과 간성 역시 과거보다 임도가 촘촘하다. 산불의 규모와 횟수가 증가했고 산불 진압 헬기도 전에 없이 늘었다.

 

울진은 송이버섯 주산지라고 한다. 우리나라 채취량의 30%에 달한다는데, 산불이 무시무시하게 번진 산록은 대개 소나무로 채워 놓았다. 대부분 인공림이다. 송이버섯 채취를 위한 조림인지 알지 못하지만, 양간지풍으로 산불이 드세지는 지역 역시 소나무가 압도적으로 조림돼 있다. 소나무 낙엽이 켜켜이 쌓이는 산록에 송이버섯이 많겠지만, 기후변화로 예년보다 현저하게 건조해진 상황에 획일적으로 심은 드넓은 소나무는 산불을 부른다. 그것도 거대하게. 흙 속에서 움트길 기다리는 수많은 풀과 나무의 씨앗이 올라와 다채로운 식물이 가득한 생태계를 자연스레 회복한다면 산불은 무척 줄어들고 규모도 위축될 수 있다고 관련 학자는 아쉬워한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지는 산록에 넘어진 나무와 동물 발자국이 남긴 작은 물웅덩이가 흩어져 있다면 양양이나 간성,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거듭되던 산불도 크게 줄어들지 모른다. 건강한 생태계가 긴 세월 보존된다면 아름드리나무들이 그 자리를 차치할 텐데, 돈벌이가 신통한 목재와 버섯을 원하는 사람은 긴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임업으로 경제성 있는 나무를 심고 가꾸며 산불 진화용 헬기를 준비했지만, 위기를 부르는 기후변화로 비 내리는 시기가 혼란스럽고 강수량이 들쭉날쭉한 상황이 빈발하면서 산불이 거대해지고 무시무시해졌다. 목제와 송이버섯, 헬기와 임도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나. 기후위기 시대에 산불은 생각과 삶의 전환을 요구하는데. (지금여기, 2022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