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4. 8. 18:33

 

책 읽고 글 쓰는 처지에 짜증스러운 일이 생겼다. 눈이 침침해지더니 돋보기를 써도 컴퓨터 모니터가 흐릿해지는 게 아닌가. 백내장인가? 경험한 친구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고, 수술을 결정했다. 10여 분 참으면 환한 세상을 맞을 거라는 기대에 앞서, 코로나19 간이 검사가 의무였다.

 

운이 좋아 용케 피했건만, 불가항력이었다. 뉴스가 보여주는 물건을 들고 검사실로 들어온 간호사가 따끔합니다.” 예고하더니 콧속 깊숙이 넣은 플라스틱 솔로 비강을 훑었다. 시약병에 플라스틱 솔을 흔들고, 시약을 작은 플라스틱 장치에 부은 뒤 잠시 긴장하자 간호사는 음성을 확인해주었다. 송창식 노래 7곡이 지나갈 즈음 수술은 끝났는데, 불편한 순간에 플라스틱을 생각했다. 플라스틱 없던 시절에도 백내장 수술을 했을 텐데, 그때 코로나19가 창궐했다면 어떨 뻔했을까?

 

플라스틱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비강을 긁어낼까? 살균한 면봉은 효과가 떨어질 것이다. 시약은 작은 유리병에 담고 소독한 코르크로 닫을까? 음성 여부는 종이필터에 표시할까? 비용이 적지 않을 테고, 검사는 오래 걸릴 듯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도 방역당국은 막아낼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발달한 과학과 빠른 운송 수단 이외에 믿는 구석은 더 있을 터! 플라스틱 주사기가 아닐까? 예전처럼 유리 주사기를 사용한다면 광범위한 접종은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1960년대 엄마 심부름으로 두부 사러 가면 가게 주인은 신문지에 싸주었고, 꼬맹이는 조심스레 들어야 했지만, 마트는 깨끗한 플라스틱 박스에 밀봉해서 판다. 플라스틱 아니라면 두부는 물론, 새벽 밀키트를 택배로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참에 라떼한 잔 마셔보자. 어렸을 때 이야기다. 비싼 장식품이 아니라면, 바가지는 필수 가재도구였다. 1960년대, 크고 작은 박이 초가지붕에 주렁주렁 늘어졌던 풍경화는 아련하지만, 잘 익은 박을 반으로 자른 바가지는 요긴했다. 부엌 바가지가 깨지면 어머니는 듬성듬성 무명실로 꿰매 등목 사워기로 썼다. 꿰맨 틈으로 쏟아지는 물줄기는 무척 시원했다.

 

나무를 깎거나 풀을 엮어 만든 물건은 요즘 플라스틱이 대신한다. 신분 상승한 공예품과 달리 플라스틱 물건이 펼치는 생활은 편리할 뿐 아니라 다채롭다. 어머니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나오자마자 깨지지 않은 바가지까지 손절했는데, 석유 덕분이다. 겨울철 북풍한설을 막아주는 창틀은 플라스틱이기에 가능하다. 옷도 집도 자동차도 플라스틱 없으면 만들 수 없다. 종량제 봉투는 비닐인데,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한도 끝도 없이 유용한 플라스틱은 화석연료다. 화석연료의 경이로운 변신술이 어느새 우리 삶을 지배한다.

 

생활을 지배하는 플라스틱

 

오래 쓴 물건은 예외 없이 망가진다. 새 물건이 나오는 순간 싫증이 나는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은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지구촌 곳곳의 쓰레기장에 플라스틱이 넘친다. 내버리는 플라스틱이 이토록 넘칠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는데, 사람 손에서 마당을 지나 강과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은 오대양마다 한반도 넓이의 위용을 드러낸다.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옳을까? 태우는 게 속 편한데, 온실가스뿐 아니라 해로운 가스가 나온다니 해결책에서 제외된다.

 

다행히 플라스틱은 재활용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구석마다 더미로 쌓인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어딘가로 실려가는 게 그 증거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얼마나 될까? 자료를 들여다보지 않아 모르는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오대양 이외에 바닷가로 밀려온 고래 사체에 많다. 여간해서 끊어지지 않은 플라스틱 그물을 펼치는 어선이 물고기를 싹 잡아들이자 고래는 먹을 게 부족해졌다. 커다란 강 하구에 흔전만전했던 물고기는 댐과 대형 보가 강물을 가로막자 자취를 감췄다. 대신 도시와 공장의 오·폐수와 뒤엉킨 폐비닐이 바다로 쏟아지면서 고래는 배고파졌다. 해파리라도 먹어야 한다.

 

그림: 바다로 나간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그림. (출처는 인터넷)

 

리아스식 해안의 천혜 산란터마저 워터프론트로 휘황찬란하게 바뀌면서 남은 물고기들이 떠났다. 워터프론트의 회식당과 거래하는 양식장이 들어서니 없던 해파리가 나타났다. 양식장에 오물이 넘칠 뿐 아니라 수온이 오르지 않던가. 평소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해파리마저 놓치면 허기진 몸 달랠 길 없는데, 저 고래가 분홍 해파리에 호기심을 보인다. 먼저 헤엄쳐 낚아챘는데, 이런! 라면 봉투다. 배가 더 고파진다. 정신이 혼미한데, 저기 하얀 해파리가 다가온다. 덩치가 괜찮아 서둘러 삼켰는데, 파도에 흐느적거리는 비닐봉지였다.

 

바다에 나풀대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햇볕에 가루로 부서진다. 그런다고 썩는 건 아니다. 심해로 우유처럼 쏟아져 내려가는 플라스틱 가루는 나중에 퇴적암처럼 단단해질까? 알 수 없는데, 그래서 문제다. 30억 년 넘게 이어온 생태계 순환이 차단된다.

 

4억 년 전? 바다에 살던 생물이 육지로 오를 때, 공기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없을 게 틀림없다. 먼지가 세포막을 통과하는 환경에서 생물이 살아갈 수 없으니 바다에 남았겠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4억 년 동안 없었던 플라스틱이 먹이에 섞이니 피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알을 깨고 나온 치어는 해양 생태계의 기반이다. 커다란 물고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시작인데, 치어는 플랑크톤을 먹으며 자란다. 그중 동물성이 있다. 동물성플랑크톤은 세포막을 부풀려 몸속에 식물성플랑크톤을 끌어들이며 먹는데, 플라스틱도 들어온다. 플랑크톤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마이크로플라스틱이 늘어나면서 치어의 몸에 쌓인다. 치어를 먹는 물고기에 들어간 마이크로플라스틱은 큰 물고기로 들어가고, 큰 물고기를 먹는 사람의 몸에 어김없이 들어간다.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닌다.

 

화석연료가 만드는 아주 작은 먼지는 마이크로플라스틱만이 아니다. 자동차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부딪혀 갈리며 퍼뜨리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거리를 더럽힌다. 머리카락 두께의 5분의 1 이하인 미세먼지는 눈에 띄지 않는데 미세먼지의 5분의 1에 불과한 초미세먼지는 세포막을 통과한다. 낡은 트럭이나 승용차가 경유 태우면서 쏟아내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한술 더 뜬다. 보행자의 코 높이에서 호흡기를 위협한다.

 

문제는 화력발전이다. 발전소 굴뚝으로 내뿜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실로 막대하다. 화력발전소는 석탄을 가루로 부수어 태우니 재가 밀가루처럼 나오는데, 대부분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한다. 굴뚝으로 나오는 초미세먼지가 통제할 수 없는 걱정거리다. 배출가스가 나오며 차가운 공기의 작은 물질과 결합하므로 걸러낼 방법이 없다. 깨끗하다고 믿는 천연가스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석탄 못지않은 초미세먼지를 내뿜는데, 온몸을 돌아다닐 자격을 가졌다.

 

석탄으로 난방할 때의 미세먼지는 걷잡을 수 없다. 서민의 석탄 난방을 막지 못하는 중국에서 편서풍 타고 넘어오는 먼지는 속수무책이다. 중국이 천연가스나 전기 난방으로 바꾸면 줄어들까?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한다면 효과가 낮을 것이다. 우리나라 겨울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대부분 중국발일까? 조사하니 아니란다.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먼지가 더 많다고 연구 결과가 밝혔다. 일주일에 플라스틱을 신용카드 한 장만큼 먹는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는데, 생태계는 어쩌나? 생태계마저 무너지면 사람은 버틸 재간이 없는데.

 

이산화탄소를 고정한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썩지 않아서 탈이라고 말한다. 서해안 섬을 해안으로 걸어보라. 육지에서 떠내려온 온갖 플라스틱은 물론이고 양식장에서 나온 스티로폼이 아무렇게 뒹군다. 양식장 오물이 찌들어 거무튀튀하거나 파도에 부서진 채 바위틈에 틀어박혔다. 섬을 지키는 노인 지원하는 자금으로 주기적으로 치우지만, 감당하기 버겁다. 아주 머나먼 미래, 플라스틱이 두텁게 매립된 지층에 새로운 생물이 나타나 말끔히 분해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어떤 생물도 분해하지 않는다.

 

플라스틱을 태우면 석유 못지않은 열을 내놓는다. 장차 어떤 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하며 그 열을 칼로리로 활용할지 모르지만, 이렇다 할 생물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원유를 분해하는 미생물 이외에 없는데, 아닌가? 최근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찾았다는 과학자의 보고가 잇따른다. 2016년 일본 쓰레기 매립장에서 6주에 페트병 하나를 완전히 분해하는 미생물을 확인했다는데, 관련 유전자를 조작해 분해 속도를 개선한 미생물을 만들어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먹구름 속의 한 줄기 빛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썩는다는 건 생태계에서 미생물이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한다는 의미다. 플라스틱을 음식쓰레기처럼 분해할 수 있으면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다. 그 과정에 어떤 냄새를 풍길지 모르지만, 식물이 흡수해 생태계 순환에 이바지한다면 반길만한데, 얼마나 가능할까? 우유나 곡물을 발효시켜 치즈나 알코올을 추출하듯 부산물을 남길지 모르는데, 해롭지 않을까? 획기적인 연구로 연간 4억 톤 가까운 플라스틱을 유용하게 처리할까?

 

괜스레 반갑지 않다. 기후위기가 만만하지 않다. 평균온도가 섭씨 1.5도 이상 상승하는 걸 막으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기후 과학자들이 최근 탄소중립 시기를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다. 현재가 아니라 1990년이 기준인데, 기준보다 이미 1.1도가 상승했다. 20년 이내에 0.4도 이상의 상승을 막아야만 한다.

 

환경운동가는 마음이 급하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와 화력발전소를 당장 모두 정지해야 희망이 보인다며 화석연료 사용 자제를 절박하게 호소한다. 플라스틱도 화석연료다. 해마다 3억 톤의 플라스틱을 생명공학으로 효율화 극대화한 미생물이 완전히 분해하면 장차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탄소중립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은 기후 과학자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을 게 틀림없다.

 

플라스틱 없어 행복한 내일

 

플라스틱이 유용하든 쓰레기로 넘치든, 이산화탄소를 붙잡은 상태다. 탄소중립이 긴박한 이때 플라스틱 생산을 억제하지 않으며 분해에 열광하는 건 위험하다. 재활용은 의미가 있지만,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은 필수다. 최소화해야 한다. 재활용보다 재사용이 중요하고, 플라스틱 생산을 자제해야 옳은데, 무엇보다 삶 깊숙이 들어온 플라스틱에서 멀어지는 생활방식을 찾아야 한다.

 

에어컨과 보일러에 익숙한 처지라도 찾아보자. 나무와 풀로 만든 물건은 잘 부서지지만, 누구나 고친다. 벌어진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차갑게 들어와도 솜 누빈 옷으로 조상은 견뎠다. 덩치 커진 우리가 못할까? 화석연료는 2005년 고갈을 이미 예고했다. 그렇더라도 유용하기 짝이 없는 플라스틱을 모조리 포기할 수 없다. 엄선한 물건으로 한정해야 할 텐데, 그 전에 우리는 일상을 바꿔야 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기 전에 생활을 바꾸지 못하면 생태계는 붕괴를 면할 수 없다.

 

화석연료와 플라스틱이 사라지면 핸드폰마저 사라질 테니 불행해질까?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속절없이 희생될까? 다시 생각해보자. 플라스틱이 일상에 없었다면 화석연료 소비가 지금 같지 않을 테니, 코로나19는 팬데믹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에서 치유했을 것이다. 자급자족하는 마을에서 이웃이 살가워지면 승용차 이동이 크게 줄어들고 핸드폰은 없어도 그만이겠지. 잠시 불편해지겠지만, 건강한 생태계가 드넓어질 것이다. 눈이 침침해지면? 책을 놓고 다정한 이웃과 편안한 여생을 누리지 않을까?

 

플라스틱을 줄이려면 화석연료 소비와 더불어 경제성장을 포기해야 한다. 행복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경제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미치광이이거나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가진 돈이 많아야 행복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무엇을 할까? 선물을 전하면 어떨까? 선물은 받을 때 행복하다. 하지만 받을 때보다 전할 때 훨씬 행복하다. 다정한 친구와 이웃이 곁에 있을 때 행복하다. 생존이 위험해지는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행복할까? 흔쾌히 불편해지는 삶, 플라스틱 없는 삶은 어떨까? (Thinker, 유네스코제주, 2021년 2월호, 8-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