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22. 4. 26. 10:19

 

흉악범은 대개 흉기를 휘두른다. 흉기를 파는 곳은 따로 없다. 범죄자가 만들지 않았다면, 대개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과도는 구했을 텐데, 흉기로 돌변했다. 과도가 범죄 목적에 적합할 리 없다.

 

폭력배가 휘두른 과도의 장인을 생각해보자. 공범이 아니므로 입건되지 않지만, 장인은 마음이 아플 것이다. 가끔 흉기로 전용되는 망치와 야구 배트는 억울하겠다. 집안의 필수 도구이거나 운동선수의 필수 장비가 아닌가. 망치와 야구 배트 제작자는 외치고 싶다. “흉기로 사용한 자가 문제지 만든 사람에 무슨 죄가 있는가!” 도구와 장인은 가치중립이라는 거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냉매, ‘프레온이라는 상품명을 달고 세상에 나온 그 화학물질은 한동안 절찬을 받았다. 위험한 암모니아를 안전하게 대체하지 않던가. 오존층을 파괴해 지표면에 자외선이 늘어나게 만드는 물질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밝혀졌다. 생태계 교란과 피부암 발생의 원인이므로 이제 프레온가스는 아무도 생산하지 않지만, 애초 예견할 수 없었다. 오존층도 몰랐던 시절이 아닌가. 여전히 생산한다면 지탄받을 것이다.

 

사진: 현재 전쟁 참화에 당장 안전이 염려되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을 막고자 거대한 철관을 뒤집어 씌웠지만 100년 이상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오만한 과학이 빚은 참상으로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습기 살균제는 어떤가? 살균제가 물때를 예방한다지만 생명체인 물속 곰팡이를 독으로 죽인다는 의미다, 과학자가 모를 리 없는데, 적량 사용하면 안전하다 믿었을까?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주로 뿌리는 농약, ‘라운드업의 주요 물질, ‘글리포세이트는 맹독성이다. 기준치 이하로 사용하면 안전하다 홍보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과학자를 고용한 회사는 위험성을 숨겼고, 드러나자, 소송에 휘말렸다.

 

과학은 가치중립일까? 당시 수준으로 안전을 확신해도 위험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책임을 물을 수 없나? 일찍이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은 4가지 규범, 공유주의, 보편주의, 사적 이익배제, 그리고 조직된 회의주의를 과학자에 요구했다. 신성불가침이 아닌 과학지식은 공동체에 보편적으로 공유되어야 하며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제언인데, 잘 지켜질까?

 

새 정권은 과학기술 진흥을 앞세운다. 가슴이 뛰어야 할까? 불안해하면 불온한 걸까? 과학과 과학기술은 다르다. 사실을 밝혀내던 과학과 손재주 영역이던 기술이 만났다. 자본과 권력의 공개 또는 은밀한 후원으로 거대해진 과학기술은 이익을 후원자에게 몰아주는 대신 드러나는 위험과 불이익을 시민과 소비자, 그리고 미래세대에 전가하곤 한다. 부작용 전에 없이 커졌다. 공적 자금으로 수행된 과학기술은 아니 그럴까?

 

거대하고 복잡할수록 부작용이 심각한 과학기술의 정책 결정은 과학자가 전담할 몫이 아니다. 정책 결정과전에 시민사회의 검증과 통제, 그리고 결과에 대한 평가가 필수다. 바로 시민참여인데, 차기 정권은 받아들일 용의가 있을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았듯, 시민참여 없는 거대과학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불렀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판 갯벌과물떼새, 2022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