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5. 30. 18:07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력이 드디어 둔화하려나? 주말 지나며 다소 들쭉날쭉해도 30개월 만에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자취를 감추려나? 전문가는 독감처럼 계절적으로 지역에서 유행할 가능성을 예견한다. 1918년 세계인구의 2에서 5%를 희생시킨 독감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를 긴장시킨 사스 바이러스는 더는 나타나지 않지만, 메르스 바이러스는 중동에서 여전하다. 사스는 사라졌을까? 전문가는 어딘가에서 기회를 엿볼 거로 점친다.

 

고령자의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을 권고하는 방역당국은 초고령층의 치명률이 높다는 걸 강조하는데, 최근 북한이 심상치 않다. 보도를 보니, 하루 확진자가 50만을 돌파할 기세인데, 치명률은 낮다. 백신 접종이 없어도 사망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면역력이 높거나 초고령층의 비율이 낮을까? 알 수 없는데, 이탈리아와 미국은 부유층의 초고령층 치명률이 높았다. 요양원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공적연금은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제상이 시작했다. 당시 노동자 평균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으니, 65세부터 지급된 연금은 소수만 받았겠지.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달래려는 의도였다고 짐작하는 시각도 있는데, 요즘 인류의 평균수명은 65세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래서 그런가? 연금기금 고갈을 걱정한다.

 

비스마르크 때보다 늘어난 인류의 평균수명은 소득 증가보다 개선된 개인위생과 관계가 큰데, 우리나라는 80세를 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허수는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더라도, 낙태로 희생되는 태아는 계산하지 않았다. 자연에 비슷한 덩치의 동물보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서너 배 이상 긴 이유는 의료기술 덕분이리라. 예방주사가 없다면 평균수명은 얼마나 줄어들까? 골절과 출혈, 맹장과 늑막염, 그리고 고혈압과 당뇨가 와도 환자 개인에 최적화한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대개 평균수명을 누린다. 적지 않은 암도 이제 두렵지 않다.

 

사진: 기후위기 앞에 속수무책인 인류. 탐욕스런 화석연료 낭비로 생태계가 파괴된 마당에 늘어난 인구는  편의를 독점했지만 파국을 눈앞에 두었다는 걸 암시하는 최병수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사진은 인터넷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인류가 비약적으로 긴 수명을 누리는 이유의 근본은 개인위생이나 의료기술일까? 사실 에너지다. 아니, 에너지를 넉넉히 소비하는 소득이다. 에너지를 체계적으로 소비하는 국가가 정착된 이후의 일이다. 의료기술은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소비하게 된 이후 눈부시게 비약했다.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포함되었다. 에너지를 계속 지금처럼 소비한다면 평균수명은 줄지 않으리라. 그런데 코로나19가 왔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진다.

 

생태계의 수많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미생물과 나누던 에너지를 독점하면서 평균수명이 늘어난 인류에게 치명적 감염병이 창궐한다. 다양한 생물이 뿌리내리고 숨 쉴 공간을 치명적으로 더럽히자 생긴 일인데, 어느새 인류의 생존까지 버거워졌다. 게다가 에너지 고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에너지 없으면 의료기술은 그림의 떡이다. 개인위생도 사라진다. 인류의 평균수명은 급전직하할 것이다. 인류가 사라지면 생태계는 파국을 면할까? 그러기에 늦었다. 대멸종에 예외는 없다고 한다.

 

생태계에 거의 마지막으로 동참한 인류는 생태계를 무너뜨린 거인이 되었지만, 막바지에 몰렸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의 평균수명이 지나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찾을 수 있을 텐데, 찾고 싶다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경제정의와 사회정의를 넘어 생태정의를 모색해야 한다. 뭇 생명과 생태계에서 평등해야 비로소 인류 미래세대의 생존이 가능해질 것인데, 남은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웹진 갯벌과물떼새, 2022년 5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