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2. 7. 1. 10:48

 

522, ‘세계 생물종다양성 보존의 날을 기념해 60세 이상의 노인이 지리산 노고단으로 어슬렁어슬렁 올라갔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에서 활동하는 지리산 사람들의 안내받으며 오르면서 구상나무의 경고음을 경청했고, 노고단에서 고유문(告由文)을 올렸다. 천지신명에게 용서를 빌 마음이었다.

 

천지자연이시여, 이 땅의 인간들을 결코 용서치 마옵소서. 스스로 그러하게 무량억겁 조화와 질서를 품어온 당신의 몸 아닌 것이 없는 것을 마구 파헤치고 자르고 태워서 한라산 구상나무들을 죽이고 다시 지리산 구상나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오만과 아둔함을 결코 용서치 마옵소서. 하지만 도와주소서.” 빌었다. “지리산 구상나무 애처로운 어린 싹들, 무사히 자라나 다시 깊은 숲을 이루고 반달가슴곰이 찾아와 등을 비비고 멀리 간 표범 늑대 여우 호랑이도 돌아와 표범과 만나면 표범과 놀고 여우를 만나면 여우와 노는 오래된 지리산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67일 환경부는 구례군이 추진하는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반려했다. 환경부는 산동면 온천관광단지에서 3.1km 이어지는 케이블카로 반달가슴곰 서식처가 교란될 가능성을 주목했는데, 어린이를 대동한 지리산 사람들은 눈에 띄는 현실을 직시했다. 구상나무만이 아니었다. 온난화 불길을 당장 끄지 못하면 미래세대의 생존이 위험하지 않은가. 기후위기가 계속된다면 지구 생태계는 30년 이내에 생물종 4분의 1 이상 잃을 것이다. 인류 역시 구상나무의 다를 바 없는 운명이 될 수밖에 없는데, 케이블카의 위협이 걱정의 전부일 수 없다. 환경부가 개발 압력을 용케 견뎌낸다 해도 불안은 커진다. 기후변화가 이끌 생태계 위기는 환경부가 반려할 수 없지 않은가.

 

케이블카 요구가 집요한 곳은 지리산만이 아니다. 민족 설화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몸을 의탁하는 설악산은 풍전등화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마다 케이블카 설치를 약속하지 않았나. 고작 수백 마리 남은 산양은 투표권이 없다. 산양 서식처를 보전하려 몸을 아끼지 않는 활동가의 목소리는 사람보다 산양이 중요하단 말이요!” 외치는 상인보다 간절하지만, 정치권에 살갑게 전달되지 않는다. 해마다 수백만 쏟아져 들어가는 사람들의 소음과 냄새를 요리조리 피하며 가파른 절벽에 숨어든 산양은 숨이 막힌다. 바위를 쪼개며 정상으로 치달을 케이블카에 생존이 위협받지만, 돈과 표에 눈이 먼 인간은 산양에 관심이 없다. 환경부는 이번에도 반려할까?

 

기승이던 코로나19가 막대한 자금과 에너지를 퍼붓는 인류의 과학기술 앞에 위축된다. 하루 다르게 확진자가 줄어들자, 거리와 상가, 공연장과 나이트클럽에 모여드는 사람은 거리에서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가? 따사로운 거리를 활보하는 화사한 여인은 향긋하다. 화장품 덕분일지 모르는데, 복수초와 산수유가 꽃망울 터뜨리자, 우리 강의 하구마다 실뱀장어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봄이 찾아왔는데, 어부는 불안해진다.

 

대형 댐과 보로 강물이 막히거나 도시 하수로 오염돼도 여전했던 실뱀장어가 해가 지날수록 드물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모기장처럼 촘촘한 그물에 올라오던 실뱀장어를 가로막는 건 상승한 수온일까? 불안해하는 어부를 대신해 해양학자가 그물을 들여다보았더니, 이런! 빼곡한 끈벌레들은 진한 화장품 냄새를 풍겼다. 코를 자극하는 화장품 냄새가 진할수록 실뱀장어 대신 끈벌레가 우글거렸다.

 

사진: 황소개구리를 잡아먹는 왜가리. 귀화생물에 천적이 생기면서 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현상은 생물다양성이 어느 정도 보전었기에 가능한 일이다.(사진은 인터넷에서)

 

머스크(musk). 사향노루 복부에서 채취하는 사향이다. 어혈을 풀고 항균 작용하는 매력에서 그치지 않는단다. 치명적 효능은 이성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향기에 있다고 호사가는 귀띔하는데, 자연에서 구하기 대단히 어려우니 화장품에 포함된 머스크는 대부분 화합물이다. 젊은 윤동주는 <새로운 길>에서 아가씨가 지날 때 바람이 인다고 상큼하게 노래했는데, 그 향기가 머스크와 비슷했을지 모른다. 실뱀장어는 물론 끈벌레 먹던 물고기마저 가로막은 냄새는 합성 머스크였다.

 

화장품과 향수는 물론, 비누와 세제에 두루 첨가하는 합성 머스크는 우리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처리하지 않는다. 동물 번식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합성 머스크를 처리하려면 특별한 장비를 추가해야 할지 모른다. 수려한 고층 건물과 수변공원으로 명성이 세계적으로 자자한 한강은 오랜 세월 강물을 정화하던 모래와 생태계를 송두리째 잃었다. 서울과 경기도 시민이 사용하는 화장품은 얼마나 될까? 풍천장어를 위해 화장을 포기하자고 호소하면 얼마나 호응할까? 허용기준치로 합성 머스크 농도를 규제하는 국가가 있다는데, 우리도 규제한다면 화장품 업체가 수긍할까?

 

조릿대로 조리를 만들지 않는 세상이 되어 그런가? 햇살 비치는 국립공원 산록마다 조릿대가 빼곡하다. 잘 씻은 쌀이 담긴 물그릇을 휘저으며 자잘한 돌을 골라내던 조리는 요즘 생소하다. 밥에 돌이 섞이지 않는데, 눈 속에 비죽 드러나는 조릿대를 겨우내 뜯었던 토끼와 산양이 사라진 산록은 생태계가 단조롭다. 빼곡한 조릿대가 씨앗을 가로막으며 짙은 그늘을 남기는 탓이지만, 등산로에 사람이 가득한 이유도 크다. 조릿대가 빼곡할수록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먹이가 줄어들지만, 산록에 밭을 일구는 사람의 불만이 커진다. 그러자 인터넷 공간에 묘방이 떴다, 조릿대 성장기에 무슨 무슨 약재를 보름 간격으로 평소의 서너 배 뿌리면, 싹 사라진단다. 농약으로 조릿대마저 죽여버리면 생태계는 더욱 황폐될 텐데.

 

가축에 위험하다는 이유로 커다란 육식동물을 퇴치한 산하에 담비와 족제비가 모습을 이따금 드러낸다. 고라니도 잡아먹는다는 담비가 들쥐의 수를 조절하지만, 우리는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에서 자주 볼 따름이다. 자동차 바퀴에 치명상을 입은 모습으로. 물가를 떠나지 않는 수달은 반가워하니 다행인데, 밤낮없이 산기슭을 파고드는 자동차는 어떤가? 역겨운 빛과 소음과 냄새를 피해 짝이 기다리는 저쪽 산록으로 피하고 싶지만 소용없다. 번개처럼 달려오는 시커먼 존재에 속수무책으로 짓밟히는 건 조릿대 뜯던 초식동물도 마찬가지다.

 

박쥐의 몸이 비둘기만큼 크다면 먹는 사람이 더러 있겠다. 비둘기를 먹는 문화권은 사육도 한다는데, 사육이 어려운 박쥐는 어렵게 한두 마리를 잡았겠지. 하늘과 땅을 누비는 박쥐에 유난히 많은 바이러스가 사람에 전파되는 사례는 드물었을 텐데, 요즘은 아닌가 보다. 아스팔트와 시멘트에 반듯하게 도륙된 숲은 사람과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에 점령되어 회복탄력성을 잃었다.

 

조릿대가 늘어난 산록에 육식동물은 자취를 감췄다. 산양과 반달가슴곰은 사람이 돌보아야 비로소 가족을 늘릴 수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박쥐가 품은 온갖 바이러스는 사람 몸에 들어가더라도 퍼질 기회가 드물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넓은 자연에 공존하는 다채로운 생물이 바이러스의 이동을 차단한 까닭인데, 생태계가 단조로워진 요즘은 아니다. 전문가가 바이러스 질병으로 정정한 괴질이 전에 없이 퍼진다. 아스팔트를 타고 대도시 전통시장에 잠시 머물다 빠져나간 바이러스가 비행기를 탄 이후의 일이다.

 

오산천에 수달이 나타나자 시민들이 보호하자고 모인다. 모이는 시민을 표로 인식하는 어떤 인사가 오산천 오락시설을 구상한다는데, 성사되면 수달이 반길까? 시화호의 수달 가족은 사람이 방해하지 않는 호수에 먹이가 늘자 터를 잡았다. 물고기는 깨끗한 바닷물이 시화호 안으로 드나들자 늘었는데, 밤섬을 염탐하는 수달도 한강의 회복탄력성이 커지면 터를 잡을 것이다. 그런데, 설악산 산양과 한강 하구의 실뱀장어는 어떡하나?

 

풍천장어라고 믿고 싶지만, 봄철 그물에 걸린 실뱀장어를 양식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지 않는다. 한데, 알에서 실뱀장어까지 복잡한 신체의 변화를 거치며 필리핀 심해를 회유하는 뱀장어는 실뱀장어가 아니라면 양식하지 못한다. 실뱀장어는 하구의 회복탄력성을 반영한다.

 

화장하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아름답다. 분명한 것은 실뱀장어가 찾지 못하는 생태계에서 사람도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회복탄력성에 생존이 달렸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일까? (작은책, 2022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