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5. 7. 23. 17:22
 

 덥다. 에어컨 시원한 은행이나 관공서에 앉아 쉬고 싶지만 앉아있을 때만 시원하지 밖으로 나오면 더 덥다. 이럴 때 펄펄 끓는 삼계탕으로 온몸에 흠뻑 땀을 내면 보신도 보신이지만 무더위가 시원해진다. 이열치열이다. 텔레비전을 보니 어떤 삼계탕 식당은 가마솥에 백 마리가 넘는 닭을 넣고, 작은 닭들은 모두 같은 크기의 뚝배기로 들어가 손님상에 나온다. 닭에 뚝배기를 맞추는 게 아니다. 뚝배기 크기에 닭을 맞췄다.


과학축산은 용도별로 닭을 획일화시켰다. 평당 몇 마리를 계사에 넣고 온도를 어떻게 맞춰 어떤 사료를 어느 정도 주면 며칠 만에 같은 크기로 출하할 수 있는 삼계탕 병아리를 품종개량해서 축산농가에 판다. 그런 병아리는 돌림병은 물론 축사 비닐이 바람에 찢겨 비바람이 들이치는 사고로도 몰살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생육을 위해 닭의 유전적 다양성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어디 닭뿐이랴. 농산이든 축산이든 과학농업은 첨단으로 갈수록 유전적 다양성과 거리가 멀다.


‘탄저병 걸리지 않는 고추’가 나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탄저병이 동네에 돌면 넓은 고추밭의 모든 고추들이 거의 한꺼번에 망치는 까닭에 농가는 그 특별한 고추 종자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전엔 그 정도가 아니었는데, 탄저병이 돌면 왜 고추들이 모조리 망가질까. 종자회사에서 판매하는 종자는 조건만 맞으면 소출이 높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없다. 그러니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산비탈 가득 심는 감자도 마찬가지다. ‘냉해 안 걸리는 감자’에 고랭지 밭주인들은 귀가 솔깃하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없는 한 환경변화에 취약할 것이다.


냉해 안 걸리는 감자나 탄저병에 걸리지 않는 고추는 생명공학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이른바 ‘최첨단’ 종자다. 냉해나 탄저병에 강할지 몰라도 다른 식의 환경변화엔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경험보다 종자회사가 요구하는 경작법에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잘 못 되었을 경우, 나중에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소비자들이 아주 싫어한다. 유전자조작 콩으로 만든 두부만 외면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종자회사는 최첨단 종자가 어떻게 제조되었는지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 첨단을 강조하지만, 첨단일수록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탄저병이 돈다고 모든 고추가 다 죽지 않는다. 살아남은 고추끼리 가루수분하면 탄저병에 이길 종자를 농부들도 찾아낼 수 있다. 조류독감이 돌 때 죽어 널브러진 사체 더미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텔레비전 뉴스 카메라를 피해 돌아다니는 병아리를 이용하면 조류독감에 이길 병아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자나 병아리를 기업체에 의존하는 한 농가는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문가를 동원하는 종자회사는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으면서 경작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피해보상이 어렵다는 주장만 내세울 것이다.


종자든 병아리나 송아지든, 생명체는 제 땅과 오랫동안 어울린 것이어야 건강하다. 유전적 다양성이 많아 환경변화에 강하다. 농업도 축산업도 마찬가지고 농부도 그렇다. 종자회사에서 첨단을 강조할수록 위태롭다. 농업은 땅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땅을 죽이는 최첨단 농작물에 익숙한 생산자와 소비자들에게 질병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흙살림, 2005년 8월호)

재밌네요...닭에 뚝배기를 맞추는 게 아니다. 뚝배기 크기에 닭을 맞췄다. 이 한마디 외에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네요, 현재 과학 기술의 지향점을 표현하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