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 14:15
 


《레이첼 카슨 평전》, 린다 리어 지음, 김홍옥 옮김, 샨티 2004년



신념대로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달플까. 천성산과 도롱뇽으로 상징하는 이 땅의 가녀린 자연을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지율스님의 단식을 보면, 굴종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타협 없는 소신이 얼마나 어렵고 기가 막히는지, 얼마나 고귀한지 절절히 깨닫는다.

 

최근 출판가에 민중의 환경을 위해 살다 간 인물에 대한 평전이 출간되고 있다. 귀감이 되었던 인물의 삶을 단순히 미화시키는 무책임이 아니다. 삶의 궤적에 새겨진 상처나 고뇌까지 당시 사회상에 비추며 냉정 또는 열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고단한 민중에게 삶의 지표로 기능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는 섬뜩한 현장을 독자에게 안내하며 농약의 위험성을 일깨운 미국의 과학자다. ‘레이첼’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여성이다. 당시 여성에게 과학 문턱은 높았지만 실력과 신념으로 극복한 그는 자연에 대한 감수성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인식 변화의 금자탑을 민중의 사회에 굳건히 세웠다. 그래서 미국은 그를 ‘미국을 움직인 20명의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일찍이 《침묵의 봄》을 출간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봄을 침묵으로 맞았을지 모른다고 미국 언론들은 요즘 레이첼 카슨을 기린다. 하지만 《침묵의 봄》 출간 당시 레이첼 카슨을 맹비난했던 미국의 농약회사들은 망하지 않았다. 다국적 농약회사로 변신, 50만 배 이상 성장한 매출고를 자랑한다. 덕분에 개구리와 새 소리는 물론 아기 울음소리까지 멎은 우리나라 농촌은 철저한 침묵을 맞았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 저자로만 기억될 수는 없다. 오랫동안 해양생물학자로 근무했던 그는 바쁜 업무 속에서 몇 권의 책과 많은 자연 에세이를 인기리에 출간했을 정도로 수려한 문체를 자랑하는 문필가였다. 생태계 보전에 관심 깊은 생태주의자였다. 이성에 눈 돌릴 틈 없이 연구하고 집필하면서 부모와 조카, 심지어 조카의 아이까지 떠맡아 키우다 《침묵의 봄》을 집필하면서 재발한 유방암으로 56세 나이에 오염된 세상을 떠난 그이의 삶은 한 송이 국화와 같았다.

 

10년 넘게 모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레이첼 카슨의 생애를 섬세하고 친절하게 평가하는 《레이첼 카슨 평전》의 저자 린다 리어는 레이첼을 ‘자연을 위한 목격자’라고 말한다. 책장을 덮는 독자는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라는 부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 그이에게 왜 유방암이 오고, 일찍 세상을 떠나야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성이라는 편견을 넘고 많은 이들과 우정을 쌓으며 자신의 신념을 펼칠 마당이 겨우 마련되었는데, 자연을 파괴하며 이익을 챙기는 자본은 여전히 교활한데, 그렇게 떠나다니,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레이첼 카슨은 민중을 위해 글을 쓰고 행동했다. 농약 없다면 제3세계가 굶주릴 수밖에 없다며 거룩한 표정을 관리하는 기득권에 맞서 암으로 스러져가는 몸을 지탱하며 치열한 공개논쟁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말재주가 아니었다. 진정성이었다. 비록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험한 세상에 죽비가 되려는 이에게 《레이첼 카슨 평전》을 추천한다. (발간 예정 서평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