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5. 10. 11. 00:42
 

들꽃이야기, 박연 지음, 허스비 2005


50이 넘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철학교수와 50 이전에 농부가 되려고 단단한 직장을 그만둔 전도유망한 간부사원의 이야기를 듣고 참 부러웠다. 그리곤 불안하기도 했다. 젊은이가 없는 농촌에서 힘들다던데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안과 걱정은 사실 그들이 아닌 내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초로의 철학교수가 농사를 택한 까닭은 땅 이외의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철근시멘트콘크리트 공간에서 더는 삭막해질 수 없던 회사원은 자식 앞에서 당당하고 싶어서, 회색도시에서 숨 막혀 더는 살 수 없어 농촌을 택했을 것이다. 그이들은 아직 농촌을 떠나지 않고 있다. 떠나긴, 정겹게 뿌리내린 모습에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들꽃이야기』에서 저자가 즐겁게 귀띔한다. 가족과 이웃은 물론 사람과 생태계의 관계까지 따뜻하고 긍정적이라면, 재미와 보람을 이웃과 함께 추수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우리에게 희망으로 안내한다. 농촌을 희생시켜 누리는 도시의 온갖 편의는 겉보기 친절해도 대가를 차갑게 요구한다. 아직 농촌은 우정으로 만난다. 『들꽃이야기』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도 재미있게. 그래서 고맙다.


도시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농촌에서 무릉도원은 누구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와 병원과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시설에서 자유롭지 못한 농촌에서 우정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살충제나 제초제를 피한다 해도, 돈이 있어야 땅도 갈고 씨앗도 뿌릴 수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사실 무릉도원은 없다.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들꽃이야기』 속의 중학교 교사인 가장과 들꽃을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귀여운 5살 박이 딸 단비는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 그렇다면 『들꽃이야기』는 망설이는 도시인들에게 귀농을 긍정적으로 안내하는 책은 아니다. 농촌과 자연을 잊은 도시인들에게 땅을 사랑하는 법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실용서적에 가깝다. 농촌과 자연은 우리에게 농작물이나 경치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걸 『들꽃이야기』는 깨닫게 한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들꽃이야기』는 회색도시에 지처 살아가는 우리의 메말라진 정서를 치유한다. 잠시 아련한 기억 속에 남은 고향으로 데리고 간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할 때 비로소 인간은 겸손해지고, 겸손할 때 우정어린 마음으로 이웃과 자연을 바라보게 되는가보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들꽃이야기』는 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서문, 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