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5. 12. 11. 16:19
 

늦은 가을,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며 서쪽 하늘의 구름을 붉게 물들일 때, 저 멀리 브이 자를 그리는 기러기들이 넓은 해변에 파도 밀려오듯 끼룩끼룩 머리 위 하늘을 가르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아간다. 강화도 동막해안을 한눈으로 내려다보는 분오리돈대의 차가운 바람은 뺨을 매섭게 스치지만 노을에 반사된 얼굴이 상기된 듯 붉은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낼 뿐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붉은 해가 바다 아래로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그 순간 분오리돈대를 찾은 사람들은 그 경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과 강화를 다시 찾는다면 동막의 너른 갯벌과 서쪽 하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분오리돈대를 오르자고 권할 것이다. 그렇다면,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인천에 찾아오면 어디로 가야할까. 타는 듯 붉게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볼만한 돈대는 물론, 넓은 하늘 가득 노을을 바라볼만한 곳도 이젠 없다. 낙섬을 매립한 뒤, 모두 개발돼 사라졌다. 인천을 방문한 외국인이 일주일 후 떠나며 하는 말, “그런데 인천은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다던가.


요즘 서울에서 인천으로 통학하는 대학생에게 물으면, 공기가 탁하고 답답해지는 곳부터 인천을 느낀다고 한다. 삼십년 전, 그러니까 지금부터 한 세대 전, 서울에 다녀오고 코를 풀면 시커먼 먼지가 섞여 나왔는데 요즘은 인천이 그렇단다. 미세먼지가 유난히 많아 일 년에 만 명 정도가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서울, 그 서울보다 먼지가 많은 곳이 인천이다. 소나기 같은 비가 하루 종일 퍼붓고 하루 지나면 드러나는 파란 하늘은 예전에 보았던 파란색보다 짙지 않다. 그리고는 금방 오염물질에 덮여 하늘은 이내 탈색되고 만다.


멀리 살던 친구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왔을 때, 그가 사무치게 찾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그의 뇌리에 각인된 인천의 상징은 무엇일까. 옐로하우스라면 터무니없고, 외국 장수가 굽어보는 자유공원도 어림없을 것이다. 인천의 문인들이 “인천에는 바다가 없다”고 한탄했지만, 인천의 상징은 역시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 드넓은 갯벌과 그 갯벌에서 얻은 어패류가 인천의 오랜 상징이었다. 그런데, 매립된 갯벌이라면 모를까, 지금 인천에서 바다를 느끼지 못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인천은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지척에서 볼 수 있었던 인천의 주산 문학산 정상에는 미사일이 배치되고, 올라가도 한 뙈기의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오염된 대기에서 볼 수 있는 바다는 거의 매립되고 말았다. 송도신도시 쪽으로 차를 몰면 오염된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볼 수 있지만, 그것도 잠시, 앉아 쉴만한 편의시설도 없는 매립지는 추억을 선사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제까지 그랬듯이, 최전방을 선언하는 철조망이 다시 시민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말지 모른다. 인천에서 바다를 느끼려면 월미도 횟집에 돈 내고 들어가 창가에 앉거나 저녁 무렵 새로 지은 갯벌센터에 경비 눈치 보며 올라 창밖을 내다보아야 한다. 인천을 그대로 간직하는 바다도, 그 바다를 자연스럽게 바라볼 공간도, 시민에게 배려하지 못한다.


인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동생은 인천을 고향으로 여기는 눈치가 아니다. 명절 때 찾아왔다 술집에서 친구들이나 만나곤 맥없이 돌아간다. 사무치게 그리운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어떨까. 어디에나 볼 수 있는 아파트, 쇼핑센터, 극장, 관공서, 학교, 공장, 공사장으로 둘러싸인 인천에서 언제까지 인천을 제 고향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인천다움이 배어있는 자연에서 시민들은 고향을 각인할 것인데,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점철된 개발에서 어떻게 인천다음을 찾을 수 있나. 사무치는 향수를 구할 것인가. 마지막 숨결이 신도시 개발 앞에서 숨죽이는 가녀린 갯벌일까. 그래도 아직 바다는 있다. 갯벌도 남았고 항만도 그대로다. 다만 시민들의 시선과 발길에서 멀 뿐이다. 이제라도 인천은 자연스러운 바다를 시민에게 내주어야 한다. 갯벌 매립을 자제하고, 해변을 막은 긴 철조망을 시민과 자전거에 내주고, 산뜻하게 정리한 항만을 개방한다면 인천다음을 회복할 수 있다. 새삼 2006년을 기대해본다.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 2005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