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6. 6. 27. 14:11
 

한 농민은 뜻밖의 경험에 놀란다. 멧돼지가 내려와 주문이 약속된 유기농 복숭아만 따먹은 것이다. 사납게 짖어댄 백구가 아니었다면 한 해 농사를 망칠 뻔 했다. 게다가 겨우 설득해 유기농으로 전환한 이웃의 복숭아까지 지분거린 것인데, 수입 밀가루에 바구미가 붙지 않는 것처럼 멧돼지는 관행 복숭아는 건드리지 않았다. 자연 감각을 잃은 사람만 농약이 묻은 과일을 따 먹을 따름이다. 더구나 성장호르몬까지 바른 것을.

 

재래 화장실에 수입밀가루를 뿌리면 구더기는 발생하지 않는다는데, 사람은 그런 밀가루로 음식을 해먹는다. 향료, 색소, 감미료에 기계에 들어붙지 않도록 숱한 첨가물을 넣는다. 그런 빵에 파리와 곰팡이가 기피하지만 청소년은 즐긴다. 아기 때부터 익숙해졌다. 그래서 초등학생의 절반이 아토피와 천식을 앓는다. 자연에 없는 방향제, 방수제, 접착제, 발색제가 뒤덮인 아파트와 교실도 말초적 자극에 충실한 음식과 음료수도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은 더는 견디지 못한다.

 

전기로 인한 전장과 자장은 신체의 리듬과 균형을 깨어, 질병을 유발한다. 백혈병과 뇌종양이 그렇다. 시계에 따라 책상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신체는 고달프다. 작업장 사고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교통사고는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쇳덩어리와 부딪히기 때문이다. 자연에 없는 교통수단에는 고도의 시설과 규칙을 동반한다. 잠시라도 소홀히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한다. 최첨단 전쟁과 무역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27일자 인천신문은 존경하는 동국대학교 이철기 교수의 칼럼이 실렸다. ‘북한은 되고 일본은 안 되나’라는 제목의 논평은 가슴 한 부석의 의구심마저 시원하게 몰아냈다. 명백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그의 주장은 지식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많은 독자들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속셈을 눈치 챘으리라. 한데, ‘인간이 중심이다’로 제목의 6월 13일자 인천신문 이 교수의 칼럼은 좀 아쉽다. 천성산에 관한 전후사정을 전공처럼 고민할 수 없어 그랬을까.

 

자연에서 대략 100만년전 세상에 진화된 인간은 1만년전 경작을 시작하기 전까지 자연과 합일했다. 이후 제어할 수 없는 화석연료와 파멸적 핵에너지로 자연을 마음대로 재단하면서 제왕으로 군림했지만, 그리 된지 500년도 되지 않는다. 99.9퍼센트의 세월동안 자연에 동화한 것인데, 자연을 착취하면서 편견과 계층을 낳고 낭비를 일삼던 인간은 이제 자연을 거의 잃었다.

 

자연을 잃고 기계에 삶을 의탁하면서 나약해진 인간은 에너지의 고갈을 눈앞에 두고, 기계 속도에 맞춘 신체는 피로와 스트레스, 불치병과 난치병, 미세먼지와 아토피에 시달리건만 자본과 이윤은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며 남은 자연을 남김없이 파괴한다. 필요하면 가장 짧고 안전한 터널을 선택해야 하건만 20분 빨리 가려는 고속전철은 천성산을 종축으로 뚫겠다고 한다. 그래서 산에 물이 마르면 도롱뇽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연파괴로 기상이변이 속출하면 기계에 의존하는 사람도 안전할 수 없다.

 

감나무가 북한에 없듯, 사람은 히말라야나 사막에서 생존하지 못한다. 탬즈 강가의 ‘런던 아이’는 눈요기가 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경관도 오래가지 못한다. 히말라야까지 케이블카를 놓으면 알프스처럼 망가질 것이다. 이윤을 노리는 자연파괴는 조화와 다르다. 멧돼지가 사는 곳에 과수원을 만드는 것도 철새가 깃드는 곳을 매립하는 것처럼, 조화와 거리가 멀다. 인간의 눈으로 자연보전을 외칠 수 없다. 자연이 인간을 보호하지 않는가.

 

전에 없던 기상이변과 질병이 난무하는 현재, 인간은 각성해야 한다. 인공을 모두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더라도, 후손의 건강한 생명을 위해 이제와 같은 삶을 반성하고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인간 사이의 평화도 자연에 대한 존경심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아토피는 그 마지막 경고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인간의 반성 없이 불가능하다는 절박함을 이철기 교수와 나누고 싶다.(인천신문, 2006년 6월 29일)

퍼다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