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4. 6. 18:38

자연스러움이라는 영성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나이 차가 큰 연인과 진전된 내일을 약속하려 할 때, 시샘이나 걱정을 섞어 참견하려는 친구가 꼭 있다. 그 친구에게 건네는 대답이 대개 그렇겠지만, 생각해보자.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할까? 새내기 학자의 참신한 생각이 노련한 선배의 권위로 번번이 무산될 때 비슷하게 내뱉고 싶어도, 사실 경륜은 무시할 수 없다. 한데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강고하다. 인생의 성패를 나이로 단정하려는 시선은 여전하다.

 

구내식당은 대개 12시에 문을 연다. 누구나 그 시간에 배고픈 건 아니지만 정한 시간에 일하고 쉬는 직장이니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누구나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제 나이가 있는 건 아니다. 취직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대학교 입학을 위해 어려서부터 국··수에 골머리 아파야 하는 건 아닌데, 의당 그렇게 한다. 그 터널을 어렵사리 통과하고 중견 기업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일로 혹사당하는 젊은이들은 시시각각 내가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면서 시계만 본다.

 

시간에 매듭이 없건만 많은 사람은 정초 막히는 길을 뚫고 동해안을 향한다. 어떤 다짐이 필요했는지 모르는데, 11일 해 뜰 녘이어야 하나? 21세기 맞아 세계가 시끄러울 즈음, 시계 밖의 시간의 저자는 땅, , , 바람, 얼음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7년 뒤 , , ,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에서 그는 땅의 세상 원주민이 권한 아야와스카 경험을 썼다. 선교사보다 무한히 친절한 원주민의 우울증 치료제였다. 원주민을 개종시킨 선교사는 약초로 만든 아야와스카를 사탄의 약이라며 저주했지만, 시계 없는 세상이 낯설어 어지러웠던 여행자는 심한 구토 뒤 말끔히 나았다. 아야와스카는 그들의 문화, 송라인이었다.

 

세상마다 다른 송라인에 우열은 없다. 반면 시계 안의 시간은 정확해야 한다. 당연히 우열이 엄격하다. 얼음 세상의 송라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교사는 70가지 넘는 눈의 이름을 스노우(snow)로 통일시켰다. 그러자 눈의 특징과 방향을 잃은 이누이트는 사냥터에서 맥없이 죽었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송라인을 잃은 것인데, 우리도 잊었다. 몇 가지는 민요라며 새삼스레 기념하지만, 시계 안의 규칙대로 살아가면서 몸이 기억하던 노래와 춤사위를 잊었다. 백신이 할머니 약손을 대신하자 세상은 온기를 잃었다.

 

전쟁에 전진과 퇴각만 있는 건 아니라 그랬을까? 군사독재 정권이 구상한 강원도 일원의 군사종합훈련장은 십자 지형이고, 면적이 1억 평이라 했다. 전폭기는 물론, 함대까지 참여할 훈련이므로 면적이 커야 하고, 감당할 지역은 강원도뿐이라 했다. 지역 송라인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저항했다. 그들의 초청으로 찾아간 점봉산. 식물을 전공한 선배는 목소리를 낮췄다. 귀엣말로 자신도 처음 만나는 극상림이라고 경외했다. 아름드리나무가 신전의 기둥처럼 드문드문 선 산록에 다채로운 풀숲이 내뿜는 신비. 선배는 자신을 낮췄다.

 

금수강산의 거대한 나무를 대부분 베어낸 일제는 경사 급한 점봉산은 접근하지 못했는데, 그 후손은 합동훈련이라는 미명으로 우리 숲에 함포를 퍼붓는다는 것인가? 몸을 떨었던 주민과 환경단체의 노력이 효과를 보였을까? 함포가 제외되면서 훈련장 면적이 대폭 축소되더니 군사정권이 물러났다. 훈련장 계획도 흐지부지 사라졌는데, 강원도는 송라인을 보전하는가? 고속도로, KTX, 골프장과 스키장, 케이블카 계획으로 여전히 위협을 받는다. 피 말리는 속도와 경쟁을 요구하는 시계는 송라인을 외면한다.

 

사진: 수쳔년을 살았을 나무를 만나면 깊은 경외심에 사로잡힌다. 

 

어제를 향해 걷다의 저자는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서 조몬삼나무를 뵙고 만난 제비꽃 한 송이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7200년 살아온 조몬삼나무는 야쿠섬의 할아버지이자 송라인이다. 조몬삼나무가 계시니 여기에서 어제를 향해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시계를 버리는 삶인데, 미국 동부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여인은 자신의 경험을 나무 위의 여자에 썼다. 비명을 외면할 수 없어 무작정 서쪽을 찾은 그는 벌목 위기에 몰린 삼나무에 올라 2년을 맨발로 버텼다. 그제야 클린턴 행정부가 송리인의 비명을 들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삼나무 숲에서 내려온 저자는 용기를 심어준 나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며칠 전, 공영방송이 편성한 자연다큐를 보았다. 시베리아 아무르강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이어지는 장엄한 송라인을 소개했지만, 아쉬웠다. 큰고니, 마도요, 엽낭게들이 펼치는 서사시는 감동적이지만, 사실 아슬아슬하다. 굽이굽이 흐르는 아무르강이 온전하기에 번식할 수 있는 겨울철새들은 비좁아지고 오염된 을숙도에서 위기에 몰린 지 오래다. 아시아 최대 삼각주였지만 쓰레기매립장과 아파트단지로 버림받지 않았나. 대형 보와 댐으로 거듭 틀어막혀 백두대간의 모래와 영양분이 을숙도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귀띔하지 않았다.

 

자연이 만든 리아스식 해안은 태곳적부터 안전하다. 수많은 생물이 터를 잡아 번성했는데, 시계를 찬 인간은 그 자리를 메워 공항, 공단, 아파트단지, 핵발전소를 커다랗게 지었다. 10년 전 후쿠시마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피하지 못했는데, 악몽이 최근 되살아났다. 1년 연기한 32회 도쿄올림픽은 가능할까? 태곳적 파묻힌 화석연료를 한꺼번에 탕진하려는 탐욕은 대기권에 온실가스를 쏟아냈고, 그린란드 빙하는 히말라야 빙하와 더불어 맹렬하게 녹는다. 200명을 집어삼킨 인도 북부 계곡의 얼마 전 쓰나미는 파괴되는 송라인의 경고다. 그린란드가 녹으면 해수면은 7상승한다. 인구 2600만의 상하이는 대책이 없을 텐데, 인천공항과 새만금은 견딜까?

 

제주도 제2공항을 대다수 주민이 반대하는데, 강행하려나? 김해공항이 비좁으면 탑승객을 줄이면 된다. 가덕도 바닷가에 공항을 다시 만들어야 할까? 한 시간 안에 서울로 가기 위해 백령도와 울릉도와 흑산도에 공항이 필요하단다. 면적 대비 세계 최장인 고속도로는 백두대간과 13개 정맥을 이리저리 끊었는데 KTX도 한몫한다. 2천만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은 GTX로 사통오달해야 인천을 비롯해 제1, 2, 3, 어쩌면 제4 신도시의 고층아파트가 잘 팔리겠지. 온실가스가 쏟아질 일만 남았다.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는 북극권 제트기류를 풀었고 냉기가 미국 46개 주를 눈보라에 파묻었는데, 거기에서 그칠까?

 

에드워드 제너가 백신을 최초로 찾아낸 1796년 이후 천연두는 200년 만에 사라졌다.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백신을 맞은 뒤 소아마비는 자취를 감췄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1년 만에 1억 명의 세계인을 감염시켰다. 천연두 이전의 페스트, 코로나19 이전의 독감도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감염병들은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도록 이끌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오만해진 인류를 더 큰 위기로 몰았겠지. 자연은 아량이 넓었다. 자연의 경고를 한사코 외면한 인류는 위기를 증폭시켰다. 시계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지만, 자연은 아량을 잃었다.

 

최초 경작이 문제였을지 모르는데, 저장 식량으로 거침없이 늘린 인구가 도시에 밀집하자 감염병이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굽이치는 강과 리아스식 해안을 콘크리트로 매워 빌딩을 밀접시키자 그 안에 밀폐된 사람들이 쉽게 감염되고, 감염병은 비행장과 고속도로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농토마저 콘크리트로 칠갑하더니 모자라는 식량을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으로 해결하겠다며 화석연료를 펑펑 태운다. 송라인 잃은 자연은 재난을 부르지만, 화석연료와 과학기술을 난폭하게 동원하는 인류는 오만불손하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가 녹으며 한대림이 불길에 휩싸인다. 메탄가스가 분출하기 때문인데 얼어붙었던 척추동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머드만이 아니다. 티베트고원이 드러내는 동물도 이미 죽었지만, 동물을 감염시킨 바이러스는 살았다. 동토를 빠져나가 슬금슬금 퍼질 바이러스가 사람도 감염시킬 가능성을 학자들은 배제하지 못한다. 송라인 잃은 자연에서 우리는 영성을 느끼지 못한다. 백신이라는 시계가 콘크리트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에 영성은 깃들지 못한다. 영성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조몬삼나무와 극상림에서 겸손해지는 인간은 송라인을 간직한 흙, , 사막과 얼음 세상에서 영성을 얻는다. 송도신도시가 없을 때, 아암도 갯바위에 걸터앉은 인천사람은 가없는 갯벌에서 영성을 느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축복 속에 먼 길 떠나는 노인을 배웅하면서 영성을 얻는다. 요양원이 아니다. 침 튀기며 할렐루야! 외치는 밀폐공간보다 텅 빈 예배당에서 영성을 찾는 신자들이여, 내 탓이라 외치며 남 살피지 말고, 시계를 내버리고 힘껏 끌어안자. (가톨릭일꾼, 202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