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7. 21. 15:55

 

덥다. 열이 많은 몸이라 되도록 뜨거운 낮시간을 피하는데 대지를 식힌 소나기 덕분에 무사히 콘크리트 숲에서 만보를 채웠다. 먼지가 없기에 창문을 열고, 마감 다가오는 원고 쓰려고 책상에 앉았더니 거실에서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밤중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연실 토하는 소리는 굿샷!”이다. 골프에 관심 있는 식구가 없는데 이상하다. 아무도 없는 거실, 야심한 시간이니 텔레비전을 껐다.

 

독일은 커다란 피자를 굽는 프라이팬 위의 달걀부침과 비슷한 데가 있다. 노른자가 도시라면 터진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는 농촌이다. 농촌과 도시는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달걀부침을 넓게 둘러싸는 검은 프라이팬은 숲이다.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가 가득하다. 목재로 유용한 침엽수 가문비나무만 심었더니 병충해를 견디지 못하기에 활엽수 너도밤나무를 고루 섞었다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었다. 그런 독일과 주위의 서유럽에 홍수가 발생했고 200명 가깝게 희생되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독일의 이번 이변은 예견되지 않았다. 2003년 프랑스에 폭염을 부른 기상이변도 예견되지 않았다. 섭씨 50도 가까운 불볕더위로 3만 명이 넘는 프랑스인을 비롯해 7만이 넘는 유럽인이 희생되었다. 주로 낡은 집에 거주하거나 번듯한 직업을 찾지 못한 이민자였지만, 관공서를 중심으로 피난처를 준비한 요즘이라면 비슷한 재난으로 7만 명까지 희생되지 않을지 모른다. 얼마 전, 폭염에 데인 캐나다 서부 지역은 2021년에도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잣집이라도 평소 에어컨이 불필요했으므로

 

올 장마는 길 것으로 기상청이 예견했건만 체감한 시간은 하루에 불과한 듯하다. 그때 뿌린 빗물은 많았는데, 이후 도시는 바싹 말랐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칠갑이 된 도시는 비 내리자마자 흥건하지만 그치면 사막인데, 벌써 며칠째 뜨겁다. 어떤 기상학자는 우리나라의 요즘 더위를 작은 규모의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의심한다. 캐나다보다 미약해도 2018년 폭염보다 심할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도 있다. 형벌 같았던 2018년보다 더하다면 체열 높은 시민은 견딜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말란다. 에어컨 보급이 거의 완벽하단다.

 

사진: 회색 대도시의 여름 실내공간을 시원하게 만드는 에어컨은 실외를 그만큼 뜨겁게 데운다. 그때 필요한 에너지는 지구를 덥힌다. 그 중가가 되는 뒷골목의 에어컨 실외기.(사진은 서울신문 자료실)

 

우리 집과 동네 피난처를 시원하게 하는 에어컨은 지구를 데운다. 적도 지역의 싱가포르를 세계 으뜸의 근면한 국가로 만든 에어컨은 화력발전소가 화석연료를 펑펑 태우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만간 유럽은 수입하는 상품에 탄소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과 중계무역으로 수입을 올리는 싱가포르와 달리 중화학공업 생산물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이 시급할까? 지구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뜨거워지는 이때, 탄소세는 시급한 대책의 시작에 불과하다. 한데 우리는 에어컨을 믿는 걸까? 시시각각 대가오는 가혹한 기상이변의 경고에 도무지 귀를 열지 않는다.

 

체온보다 높은 기온에서 사람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체험하지 않아 모르겠는데, 사육하는 목장마다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목장만이 아니다. 이상적인 기후에 최적화된 작물만 재배하는 논밭과 과수원도 속수무책일 텐데, 에어컨 없이 체온 이상 솟구칠 기상이변을 견딜 가축은 없다. 에어컨이 완벽해도 오래 견딜 수 없다. 실외기가 거리를, 온실가스가 지구를 데우기 때문만이 아니다. 먹을 게 대폭 줄어든다. 화학농업과 기계화에 최적화된 농작물을 거대한 선박이나 항공기로 수출입하는 농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과 같은 지역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이고 국토의 65%가 경사가 심한 산지인 우리나라는 비가 여름 한 철에 집중된다. 숱한 경험과 어느 정도의 대비로 걷잡지 못하는 재난은 피하리라 기대하면서, 불안하다. 이번 서유럽과 캐나다의 폭염은 예외적인 불행에서 그칠까? 생존을 위해 더욱 강력한 재난을 대비하자는 전문가의 목소리는 유럽에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다급한 대책은 식량이다. 갯벌과 논밭을 메워 화석연료 펑펑 태우는 도시를 휘황찬란하게 세운 대한민국에서 미래세대는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정부와 전문가는 물론이고 언론도 소름 끼치게 걱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니다. 방송국에서 리얼리티 골프 프로그램을 편성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우리의 리얼리티는 머지않아 생존이다. 산록 생태계를 파괴한 자리에 서양 잔디를 평탄하게 깔아놓는 골프장은 재난을 부추긴다. 골프장을 고유 생태계로 환원하거나 석유가 태부족해도 자급이 가능할 농토로 바꾸는 연구가 시급하다. 그런 연구를 소개하며 경각심을 보태는 리얼리티 방송을 보고 싶은데, 꿈인가? 체열 높은 몽상가의 여름밤 목소리는 오늘도 미약하다. 정치와 올림픽 열풍에 비몽사몽 타버리겠지. (지금여기, 202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