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8. 2. 22:46

 

선거철이 다가와 그런가? “기본소득이 새삼 주목된다.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는 어떤 이의 공약이기 때문일 텐데, 그이가 생각하는 기본소득이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 없어도 정치인 사이의 논란은 뜨겁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려는 선심성 공약이라는 주장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주장까지 논란의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정작 유권자인 시민들은 혼란스럽다. 선거와 관련 없이,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택시에 기본요금이 있듯, 딱히 규정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든 기본은 있다. 기본을 넘어야 면허를 받을 수 있고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음식과 안식처가 필요한 동물과 달리 인간은 옷을 더 요구한다고 일찍이 헨리 소로우는 지적했는데, 인간의 삶에 기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생명을 이어갈 하루 세끼의 식사와 의식주? 그 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삶의 방식에 따라 다를 텐데, 삶의 방식은 지역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다르다.

 

화려한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생활은 기본이 아니지만, 비바람 겨우 피하는 집에서 굶주림을 면하는 수준도 아니어야 한다. 가족과 함께 안락한 집에서 깨끗이 세탁하는 옷을 사시사철 모자라지 않게 갈아입고, 맛과 영양이 보장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기본이라 할 수 있겠지. 이웃과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교육을 받고 자존심을 이어갈 정도의 교양과 문화 활동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깨끗한 공기와 물도 돈이 없으면 보장되지 않은 요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려면 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할까?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을 텐데,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을 기본소득이라 하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가와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 누구에게나 기본소득을 무조건 제공한다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생각지 않던 돈이 어김없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나태해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의견도 있지만, 오히려 정의로워질 거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기본소득 논의가 무르익기 전에 유럽의 한 연구자가 시민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조사에 응한 한 중산층 시민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기본소득을 추가로 받는 개인은 술이나 허송세월로 나태해질 거로 짐작했다는데, 조사자가 추가로 물었다고 한다. “당신도 술 마시며 나태해질 생각인가요?” 정색한 그는 아니요! 나는 내 일을 계속할 겁니다. 다만 부당한 야근은 거절하겠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기득권이 주입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경구가 뇌리에 깊게 자리하는 우리에게 기본소득은 노예가 아닌, 인간다운 삶을 안내한다.

 

더 생각해보자. 기본소득이 제공되었다면 청년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의 석탄 이동장치에서 처참하게 희생되었을 리 없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청운의 꿈을 가진 젊은이가 터무니없이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를 선택할 리 없으니 화력발전소는 석탄 가루 날리는 작업환경을 일절 만들지 않을 게 틀림없다. 어렵고 고된 일일수록 엄정한 규정을 두어 설비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며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하겠지. 발전소는 전기요금을 지금처럼 낮게 책정하지 않겠지만, 소비자들은 어떻게든 대안을 찾을 것이다. 자신의 집과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을 살피고 낭비를 줄이려 노력할 게 틀림없다.

 

사진: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작은 정당의 홍보물. (출처는 인터넷)

 

평소 에어컨이 불필요하던 캐나다에 얼마 전 섭씨 50도에 가까운 폭염이 엄습했다. 폭염을 계기로 모인 기후학자들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는데, 심화되는 위기 앞에서 우리의 대책은 무엇이어야 할까? 체온을 크게 넘는 기온을 감내하며 일상을 잇는 사람은 물론 가축도 없다. 열기를 토하게 만드는 기상이변이 북미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에어컨을 모르던 유럽에서 20037만 명을 희생시킨 더위가 시베리아도 예외로 여기지 않는데, 에어컨 빵빵한 한국은 언제까지 안전할까?

 

새삼 거론할 필요 없이, 화력발전은 기후를 매우 위태롭게 만드는 주범이다. 가장 심각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막대하게 배출하므로 화력발전소를 줄이려 노력하는 유럽은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용을 서둘러 억제하는 정책을 서두른다. 긴장감이 높은 유럽의 환경운동가들은 한국을 기후 악당국가로 지목한다. 자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까지 가서 화력발전소를 세우지 않던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확립하겠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한 한국은 수소와 전기자동차를 앞세우는데,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를 30년 이내에 같아질까?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와 비행기는 물론이고 발전소까지 모조리 없애도 2000만 대가 넘는 전기차와 수소차가 지금처럼 아스팔트를 메우며 초고층 건물 사이를 돌아다닌다면 탄소중립은 가능할 리 없는데, 대권을 꿈꾸는 후보들은 성장을 되뇐다. 온실가스 배출 없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근거는 물론 제시하지 못한다. 일찍이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경제성장이 계속되리라 믿는 자는 미치광이이거나 경제학자라고 지적했는데, 성장을 약속하는 정치인은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고, GNP 4만 달러를 넘길 거라 자신한다. 기후위기를 무릅쓰는 경제성장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리라 기대하는 걸까?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1973년에 이스털린 역설을 제창했다. 소득이 높아지면 행복이 커지지만 계속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증명했다. 소득이 기준 이상 늘어나면 행복은 정체된다는 건데, 환경운동을 지원하는 우리의 어떤 경제학자는 그 기준을 GNP 1만 달러로 추정했다. 1만 달러에 이를 때까지 커지던 행복이 이후 정체되더니 4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소득이 늘어나면 남과 비교하면서 불행이 커진다고 풀이했는데, 질투가 쓸데없는 소비를 촉발하면서 불행을 키운다는 이론도 있다.

 

화석연료 태워 만든 전기를 과소비하는 에어컨은 실내의 좁은 공간을 잠시 시원하게 만들지만, 실외기는 바깥을 그만큼 더 데운다. 에어컨이 빵빵한 집과 자동차와 직장과 쇼핑센터를 요령 있게 찾아다니는 삶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를 외면하며 행복한 삶을 아이와 이웃과 나누고, 미래세대에 생존을 이어줄 수 없다. 이웃과 미래세대에게 불행을 안기고 싶지 않은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화석연료를 에너지를 낭비하며 환경을 더럽히는 일자리는 외면하고 싶지 않을까? 자손만대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안길 핵발전도 마찬가지일 테지.

 

기본소득이 제공된다면 옆집과 엄친딸 엄친아와 비교하면서 더 화려한 의식주를 탐하는 개인은 자리를 잃을 것이다. 자동차 기업의 광고에 현혹되지 않는 개인은 수소차와 전기차가 진정 친환경인지 살피지 않을까? 자동차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을 삶을 궁리하지 않을까?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생활을 넘어 에너지 자립 마을에서 음식을 나누면서 이웃과 서로 돌보는 사회를 만드는 정책을 정치인에게 촉구하는 시민이 늘어날 게 틀림없다.

 

기본소득은 당장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자리를 강요하는 기득권을 무시할 자신감을 배양해 줄 것이다. 공정하든 공정하지 않든, 경쟁에서 승리해 특권을 독선적으로 행사하는 직종은 힘을 잃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다정한 이웃의 개성을 배려하며 함께 생존하는 삶을 존중할 것이다. 공존을 지향하는 기본소득은 미래세대가 누릴 생태계를 헤아리게 우리를 안내할 텐데,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세금으로 가능할까? 당장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면 혼란이 생길 수 있으니 공감대를 확장하며 제도를 마련해 액수와 범위를 차분하게 확장한다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이참에 주권화폐를 제안하는 책을 소개한다. 경제 위기와 긴축정책으로 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은행권 대신 이자가 없는 화폐, 국가에서 발행하는 주권화폐를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하자고 기본소득과 주권화폐저자는 제안한다. 후손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성장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경제에 대한 약간의 상식으로 희망을 공유할 수 있으니, 기후위기 이후의 생존을 염려하는 시민과 정치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선거에 얽매지 않는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길 기대하면서. (작은책, 202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