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10. 30. 11:59

 

이사하며 슬며시 사라졌지만, 집에 고무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잎이 넓고 두툼해 열대식물이라 짐작했지만, 아름드리로 자라는지 멕시코에서 실체를 보기 전에 몰랐다. 고무 수액이 나오는지 확인하지 않은 고무나무는 거실과 베란다로 옮길 때마다 힘을 쓰게 만들었는데,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에 간신히 살아갈지 모른다. 잎이나 가지를 물에 담그면 뿌리가 내려 여러 그루로 쉽게 늘릴 수 있지만,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고만고만하다. 기후와 토양이 멕시코와 다른 탓이리라.

 

서너 해 전인가? 제주도 선흘곶자왈에 기린과 하마가 거닐 사파리를 조성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계획이 아직 유효한지 확인하지 못했는데, 10월에도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강릉 경포해변을 가면 야자수 50그루가 이색 풍경을 선사한다고 언론이 보도한다. 해송과 어우러지던 해변에 야자수를 심으면 관광객이 탄성을 지르며 몰려들까? 쌀쌀해지면 따뜻한 공간으로 이식할 예정이라고 담당자는 밝혔다는데, 큰 비용이 들어간 실험 조경이 성공할까? 관광객 반응을 살펴보겠다고 밝힌 담당자가 야자수 도입을 경정했을까? 설마. 시장의 독특한 지시가 있었겠지.

 

사진: 경포대 해변을 장식한 야자수. 계절이 바뀌면 온실에 옮겨야 한다. 출처는 인터넷(https://blog.naver.com/hongpal544/222546158012)

 

작년 7, 1500여 논문을 분석한 환경부와 기상청은 사과나무는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고 감귤은 제주도를 떠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평균 기온이 0.85도 오를 때 1.8도가 오른 우리나라는 2100년이면 4.7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 연구진은 이미 충청도까지 재배지를 넓힌 감귤을 강원도 해안에서 만날 거로 추정했다. 사과와 감귤만이 아니다. 주식인 벼와 감자도 4분의 1 이상 감소한다고 전망하니 우리 음식문화는 장차 자취를 감추는 걸까?

 

위도가 높을수록 온난화가 심하다는데, 한반도 주변의 수온이 세계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한다. 온배수 많은 발전소가 밀집된 영향일지 모른다. 수온 1도 상승하면 태풍 규모가 2배 이상 커지고 횟수도 늘어난다는데, 201092일 새벽, 7호 태풍 곤파스가 강화를 지나 인천을 휩쓸었다. 이례적이었다. 서해안을 관통해 연수구 베란다의 통유리를 산산조각 낸 곤파스는 놀이터에 그늘을 드리워주던 플라타너스를 뿌리째 뽑았다. 그해 5월 새벽, 긴꼬리딱새가 잠시 앉은 나무였다.

 

제 몸의 2배 이상 긴 파란 꼬리를 나풀거리는 긴꼬리딱새는 안경을 쓴 듯, 검은 머리의 하늘색 떼가 선명해 눈길을 끄는 제주도의 여름철새다. 몸이 작고 꼬리가 거추장스러워도 울창한 숲 그늘에서 곤충을 날렵하게 낚아채는 긴꼬리딱새는 꼬리가 짧은 암컷과 붙어 다니는데, 근린공원을 두리번거렸나 보다. 왜 나무가 우거진 곶자왈을 마다했을까? 골프장과 생수 공장이 난립하는 곶자왈은 사람이 번잡하게 드나든다. 한층 온화해진 날씨는 긴꼬리딱새를 경기 북부의 숲으로 안내하는데, 도중에 연수구를 들렸고 낯선 시선에 놀라 달아났을지 모른다.

 

울창한 숲의 나뭇가지 틈에 둥지를 치는 긴꼬리딱새가 나타나면 카메라가 추접스럽게 몰려든다. 조용히 촬영하길 거부하는 자칭 생태작가들은 천적의 시선을 차단하는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 숲을 휑하게 만든다. 알을 품거나 새끼에 먹이 건네는 긴꼬리딱새 부모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생태적인데, 긴꼬리딱새처럼 하얀 눈 테두리가 선명한 동박새도 사정이 비슷하다. 곶자왈과 지리산 남쪽의 숲에서 동백꽃의 꿀을 찾는 연한 녹색의 동박새도 긴꼬리딱새를 따라 경기도 숲에 둥지를 틀자, 카메라가 몰려든다.

 

앙증맞으면서 수려한 남도의 신비롭던 새들이 가까이 다가와 반갑지만, 기쁘지 않다. 숲이 그만큼 위축되고 평균 기온이 올랐다는 의미가 아닌가! 충청도에서 감귤을 재배한다는 사실도 서글프다. 제주도보다 겨울이 쌀쌀해 별도의 보온이 필요할 텐데, 열매는 충분히 매달리는지 궁금하다. 서귀포의 한 비닐하우스는 망고를 재배한다. 인근 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배수를 활용하더라도 난방장치를 추가해야 한다던데, 제주도 이외 지역도 열대과일 재배 면적을 늘린다. 적지 않은 난방 에너지를 감당해도 수익이 나오는 모양이지만, 그런 농사는 기후변화를 부추긴다. 경제성을 따지기 전에 위기로 치닫는 기후부터 살펴야 옳지 않을까?

 

석탄이 모자라 인도와 중국에 전력난이 발생했다고 외신이 보도하는 가운데 천연가스가 풍부한 러시아가 은근히 미소 짓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과 발맞춰 견제하는 호주의 행보에 발끈한 중국이 석탄 수입을 금지하자 전력난이 발생했다는데, 최근 수입을 재개했다는 후문이 돈다. 전력이 원활치 않자 호주에 대한 인민의 분노가 가라앉았는지 모르는데, 인도는 공장 증가로 인한 전력 수요 폭발이 석탄 수급을 초과했고, 전력난이 발생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왜 웃음을 참지 못할까?

 

기후변화는 겨울에 내리던 눈을 비로 바꿨고 빙하가 줄어들면서 북유럽의 담수량이 줄었다. 수력에 의존하던 국가에 전력난을 초래하더니 바람이 약해지면서 서유럽의 풍력발전이 주춤했는데, 이런! 기다렸다는 듯 천연가스의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올 초보다 5배나 상승할 정도라는데,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겠다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을 서두른 유럽이 자초한 혼란이라며 비웃은 모양이다. 석유 운반 트럭의 운전자가 부족하다는 소문으로 영국은 주유소마다 차량이 장사진이었다는데, 생활 습관 개선 없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소문을 소란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잠깐이다. 위기로 다가가는 기후에 대한 유럽의 정책 변화는 확고하다.

 

수출입 선박의 배기가스 규제에 돌입한 국제사회에 호응하는 유럽연합은 2023년부터 철강을 비롯해 화석연료 소비가 과다한 특정 화물에 적지 않은 탄소국경세를 집행하겠다고 선포했다. 준비 없는 상태에서 탄소국경세가 부과되면 우리 철강 수출 기업들은 당장 곤란해지겠지만, 머지않아 대상 목록은 늘어날 것이다. 미국도 동참을 선언한 탄소국경세는 세계 각국으로 퍼질 텐데, 우리는 현재 어떤 대책에 나서나? 2023년은 코앞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시급하게, 그것도 획기적으로 줄일 궁리에 골몰할까?

 

지난 831일 국회는 녹색성장꼬리표를 떼지 못한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켰다. 통과에 앞서 법안 검토에 참여한 학자는 3가지 탄소중립 방안을 제시했지만, 환경단체는 시큰둥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미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얼마 전, 6차 보고서를 발표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탄소중립의 시한을 10년 이상 앞당기라고 각국 정부에 당부했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검토하는 IPCC는 마음이 급한데, 우리 기업은 한가하다. 아니 무모하다. 법안의 탄소중립 목표가 과도하다는 게 아닌가.

 

100여 기업의 의견을 모은 경제인연합회는 경제적 부담과 기술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법안에 산업계 의견수렴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럴까? 탄소중립은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는 멀지 않은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한다. 편의를 배려한 정부가 산업계의 전기요금을 생산가 이하로 책정했더니 우리 기업은 타성에 젖었다. 유럽과 달리 에너지 효율화 연구를 등한시했고 보조금 타령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정부 탓하는 기업보다 자영업자부터 철퇴를 맞는다. 수입 농작물의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닌가.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은 얼마 전, 2020년 이후 태어난 세대의 생존을 걱정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탄소 배출량 감소 약속을 세계 각국이 철석같이 지키더라도 심각한 사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1960년대 출생자보다 7배의 폭염에 노출되고 2배의 산불과 가뭄, 3배의 홍수와 흉작에 시달린다고 예측한 것이다. 탄소를 과소비하며 흥청거린 지 두 세대 만에 위기에 몰린 미래세대는 고통에 휩싸일 텐데, 우리 기업은 이익 추구에 매몰된 셈이다. 이런 와중에 치킨집은 식용유 가격 상승으로 닭을 튀기지 못해 걱정이 태산이다.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고 닭을 사육하는데 필요한 석유의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리라.

 

곧 겨울이니 경포대 야자수를 온실로 옮기겠지? 이제 내년 여름을 기다려야 하나? 더운 여름이 아무리 길어도 겨울이 아직 추우니 뿌리내리지 못하겠지만, 기린이 거닐 선흘곶자왈처럼 경포대의 야자수는 아름다울 수 없다. 철모르고 반길 2020년생 이후의 아기와 그 부모를 차마 마주하지 못할 거 같다. (작은책, 20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