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11. 29. 18:54

 

2년 전 이사했을 때 드문드문 비었던 책장이 어느새 가득하다. 이중으로 꽂기 시작하니 아내의 눈총이 뜨거워지는데, 사놓고 읽지 못한 책도 수두룩하다. 공부할 자신 없는 분야의 책들을 여기저기 분양했어도, 공간의 유효기간은 짧았다. 자주 찾는 서점에서 보내는 도서 정보에 무력해진 탓이다.

 

책 한두 권만 구매해도 독자 성향을 대뜸 파악하는 대형서점은 판촉에 돌입하는데, 다른 분야는 말해 무엇하랴. 컴퓨터는 물론이고 전화기로 손쉽게 물건을 주문하는 시대에 소비자의 취향을 파고드는 상품 광고는 차고 넘친다. 비례해 쓰레기가 넘치는데, 포장 쓰레기만이 아니다. 진부화 기간을 단축하는 새 상품이 현란한 광고를 등에 업고 출시되자마자 멀쩡한 물건은 졸지에 쓰레기로 전락한다. 배달노동자가 쉴 틈 없는 만큼 공기는 탁해지며 지구 평균기온은 내려갈 수단을 잃어간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10월 말, 호기 있게 전자발찌 끊은 62세 전과자가 3일 만에 체포되었다. 전자발찌를 끊고 살인을 저지른 50대 전과자의 어설픈 행동을 참고했을까? 빌린 차를 버리고 야산을 넘어 도주한 뒤 대중교통으로 지방을 전전했지만, 좁혀오는 포위망을 피할 수 없었다. 거리의 촘촘한 감시망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탐색했고 60대 전과자는 전과를 추가했다. 성폭행범만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게 아니고 전자발찌 끊은 자가 반드시 폭력을 저지르는 건 아니라지만, 체포되었으니 다행이다. 비슷한 범죄가 반복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 텐데, 마냥 개운한 건 아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공연장에 관중이 모여든다. 방역수칙을 지키는 조건이라는데, 5만 관중이 운집한 힙합 공연장에서 8명의 관중이 압사하는 비극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단계적으로 완화할 우리나라에 비슷한 사고는 피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하는데, 코로나19 감염자가 확연히 줄은 중국이 미국처럼 완화한다면 공연장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까? 그럴지 모른다. 수억의 인상착의를 즉각 파악하는 감시체계는 난동자를 색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므로. 수만 관중에 뒤섞인 수배자를 골라내는 기술력이 아닌가. 그 기술은 중국이 독보적일 것 같지 않다.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목소리를 재현했다. 루이 14세 드라마를 준비하는 방송사의 의뢰로 구들은 인공지능기술을 동원했다. 태어나 사망할 때까지 300년 이상 보관된 신체와 의료기록을 기반으로 재현한 목소리는 믿을만하다고 구글은 확신하는데, 활동 중인 미국 가수의 건강검진 기록으로 재현한 목소리가 실제와 같았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긴 인공지능 딥러닝(deep learning)의 성과로 강조한 구글은 한술 더 뜬다.

 

소녀팬을 거느리던 박보검은 현재 해병대 복무 중이다. 제대하자마자 인기를 만회할 텐데, 구글은 일찌감치 목소리를 확보했다고 한 강연장에서 귀띔했다. 몇 시간의 잡담으로 확보한 목소리는 고객의 다양한 문의에 친절하게 응대하며 대기업의 수익 창출에 이바지할지 모른다. 다국적기업의 상술은 박보검에서 그칠까? 씀씀이 큰 중장년의 관심을 끌어들일 목소리도 선점했을 텐데, 목소리에서 그칠 리 없다. 인공지능이 만든 디지털 모델셀럽이 점유하는 광고시장을 머지않아 허물어뜨릴 것이다. 화려한 몸동작을 선보이는 신한은행의 로지’(Rozy)는 광고주에 한없이 너그럽다. 사생활 논란은 물론, 광고료와 혹사에 불만이 없다.

 

30여 년 전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어머니의 목소리로 제거 대상자를 유인한다. 30년 전의 상상은 현실에서 멀지 않다. 진작 확보했지만, 제도가 허용하지 않을지 모른다. 현실이 된다면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핸드폰 액정이 깨져서 친구 폰으로 연락한다는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은 실제 목소리와 분간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아이 얼굴까지 생생하다면 부모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핸드폰과 연동하는 스마트워치는 고객이 게으름 피울 틈을 주지 않는다고 광고한다. 다이어트를 계획하는 젊은이를 그렇게 유혹하지만, 약 먹을 시간을 놓치는 노인에게 유용할 수 있다. 바쁜 자녀는 연로한 부모의 방에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해 긴급상황에 대비한다. 병원이나 경찰에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데, 노인 건강을 살피는 주택이 등장했다. 바쁜 자녀를 건너뛰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하니, 노인에게 혜택일까? 혹 자녀에게 혜택이라고 광고하는 건 아닐까?

 

사진: 운전자 없는 이른바 '자율 자동차'의 개념도. 차는 물론이고 도로와 주변 건축물에 온갖 센서와 관리 장치가 겹겹이 자리를 차지하고 전파를 주고받아야 가능한 시설이지만, 빅브라더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더러 불순한 의도의 교란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거대한 중앙집중 에너지 체계에 의존하므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개인 식별이 가능한 DNA칩은 벌써 개발되었다. 첩보영화처럼 피부 아래에 DNA칩을 이식해 스마트폰과 연동한다면 온갖 편의를 상상할 수 있겠다. 대중교통 승하차할 때 신용카드 꺼내는 수고는 사라질 것이다. 학생과 선생은 출석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관중은 예약석 찾느라 분주하지 않을 것이다. ‘내 기기 찾기앱을 열지 않아도 분실한 핸드폰을 쉽게 찾고, 좀도둑에게 별 이익이 없을 것이다. 감시망이 더욱 매서워질 것이므로. 개인정보는 빅브라더의 중앙컴퓨터에 머물기만 할까? 법과 제도로 생명보험회사로 전달되는 건강 정보를 정의롭게 차단할 거라 믿자. 코로나19보다 위험한 감염병이 창궐한다면 백신 개발과 치료에 동원하지 않을까? 다분히 선의로.

 

고객의 취향을 파악해 신상품을 소개하는 기업의 광고는 눈을 질끈 감으면 외면할 수 있다. 스마트워치에서 주치의에 전달되는 의료정보를 딥러닝하는 인공지능의 진단은 외면할 수 있을까? 다국적기업의 중앙컴퓨터가 제공하는 의도적 선의는 퇴행성질환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녀에 치료비를 기대는 노인보다 흠결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젊은이가 여는 지갑이 훨씬 무겁지 않던가. 젊은이 유혹하는 헬스케어가 퇴행성질환 치료를 압도한다면, 어떤 광고가 고객의 판단을 어지럽힐까?

 

거리를 휘감을 전자장치는 운전자 없는 세상을 그린다. 대부분 전기로 구동할 텐데, 온난화와 방사능 걱정은 일단 접고, 교통사고는 사라질까? 보급된 2700만 자동차가 운전대 없이 도로에 몰려나온다면 차간거리를 지키며 속도감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애교다.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갈 전자통신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누군가 억하심으로 해킹을 감행한다면 세상은 한동안 혼란에 휩싸일 게 틀림없다.

 

인터넷 공간에서 성업 중인 산업은 단연 포르노다. 엄포를 선언하며 이따금 검거해도 성 착취물은 발본색원이 어렵다. 차라리 일부 국가처럼 포르노를 표현물로 양해해 엄격한 제도로 통제하더라도 뿅망치 게임의 두더지처럼 출몰할 텐데, ‘딥페이크표적이 되는 셀럽보다 정계와 산업계의 걱정이 클 것이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동영상까지 창조할 인공지능은 경쟁자 파멸시킬 딥페이크를 마다할 리 없지 않겠나. 알리바이를 날조하는 세상에서 정적에게 자유로운 안전한 정치인은 드물 것이다.

 

지난 1025KT의 인터넷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40분 동안 자영업자의 결제가 정지되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정지로 원격수업이 불가능했다. 어느새 인터넷은 공기나 물처럼 생존기반이 되었다. 빅브라더에 인터넷 정보가 장악되면 세상은 위험해질 수 있다. 수동적 편의에 제한된 개인은 빅브라더의 의지에 따라 분류, 감시되고, 때때로 소외될 수 있다. 선의와 관계없이, 거대하고 정교할수록 뜻하지 않은 장애는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 위기로 치달아가는 세상에 선의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버거운 문제가 되었다.

 

역사가 깊은 중국인데 왜 오징어 게임같은 작품이 불가능할까? 국가의 감시를 지목하는 분석이 많다. 건전가요를 음반에 넣던 독재정권 시절, 우리도 표현이 자유롭지 않았다. 감시자의 서슬이 시퍼런 세상에서 사이와 BTS 노래가 세계 음원 순위를 석권할 수 없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 창작될 리 없다. 빅브라더의 눈치를 보는 세상에서 창작은 언감생심이다. 빅브라더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편의는 신기루일 따름이다.

 

인터넷이 끊기면 온갖 편의가 마비되는 세상에서 개인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상상이 빈곤해지는데, 전기 없는 컴퓨터와 인터넷은 없다. 기후변화를 초대한 편의에 순응하다 이런! 워드프로세서 없이 원고작성이 곤란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편의에 지배된 처지가 가련하기 짝이 없다. (작은책, 202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