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1. 17. 11:28

 

올해 딸기 가격이 예년 같지 않다는 소식이다. 작년 10월의 이상 고온으로 모종에 병충해가 생겼기 때문이라는데, 뉴스가 보여준 딸기밭은 대형 비닐하우스에 앉았다. 도톰한 고랑에 과육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기괴했다. 어릴 적 마당 구석에서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꼬맹이들의 아침 인사를 꼬박꼬박 받던 딸기는 열매를 길게 늘어뜨리지 않았다. 참 신묘한 품종개량 기술이 아닐 수 없다.

 

한겨울인데 딸기 제철이라니. 기술 덕분인가, 화석연료 덕분인가? 농부는 가을부터 화석연료를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전기 난방도 다르지 않다. 전기의 절반 이상을 석탄으로 생산하지 않던가. 하우스의 비닐은 석유화학제품이다. 고철이든 철광석이든, 파이프 뼈대는 화석연료 동원 없이 제작했을 리 없다. 비닐하우스에서 땅을 갈고 북돋고 비료를 살포한 농기계는 경유를 태웠고 꿀벌도 화석연료 덕분에 비닐하우스에 넣을 수 있었으리라.

 

요즘 딸기는 흙이 아닌 영양분 녹은 물에 뿌리를 내린다. 첨단 딸기 온실은 뿌리 축축하게 파묻힌 섬유나 스펀지를 담은 화분이 고랑을 대신한다. 한데 화분이 허공에 매달린다. 수많은 화분을 전기로 올리고 내리면서 농부는 잘 익은 딸기를 허리 높이에서 수확한다. 한술 더 뜬다. 체험학습을 위해 방문한 어린이도 손쉽게 딸기를 따는데, 그런 딸기 농사에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가 필요할까? 딸기? 딸기로 보이는 화석연료가 아닐까?

 

사진: 거대한 온실에서 수졍재배를 하는 스마트 농업으로 농민과 농촌을 배제하면서 대규모 에너지를 요구하는 자본집약 산업이다. 겉보기 깨끗해지만 약간의 오염도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투기 농업에 불과하다. 설비의 관리 운영, 경작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막대할 뿐 아니라 만일 미생물의 침입이 확인되는 순간 전량을 폐기해야 하는 극단적 단작일 따름이다. 영양분 섞인 물, 또는 그런 영양분이 한방울 씩 뿌리 내린 스펀지나 유리섬유에 떨어뜨리는 방식의 농업은 기후위기 시대에 오히려 위험을 키운다. 소비처와 가까운 곳에서 생산해 운송거리를 줄여도 환경에 피해를 준다. 폐기물로 인한 오염 문제가 커질 것이며 그 이익은 자본이 독점할 것이 틀림없다. (사진 출서는 인터넷)

 

딸기만이 아니다. 참외도 수박도 화석연료 덕분에 제철보다 빠르게 수확하는데, 비닐하우스 농작물은 과채소만이 아니다. 깻잎이나 상추 같은 엽채소는 물론이고 어린 나무에 열매가 다닥다닥 열리도록 육종한 과일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수확하는 과육의 칼로리보다 훨씬 많은 열량의 화석연료를 동원해야 소기의 소득을 올리는 상품이다.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뉴스는 수경재배와 대체육, 그리고 배양육을 연속 소개하며 기후위기 대응이라고 거들었다. 그럴까? 해충은 물론 어떤 미생물도 침투할 수 없는 첨단 시설에 흙을 배제한 농업은 흙에서 장화 신고 농사짓는 농부를 배제한다. 철저히 계산해 적량 적기 공급하는 물과 영양분으로 재배하거나 배양하는 최첨단 농업이므로 자격 있는 종업원을 고용할 텐데, 도시 인근 시설에서 재배한다면 농작물의 이동거리를 줄일 수 있으니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일까?

 

유기농산물보다 저렴하면서 기후위기 대안으로 주장하는 전문가도 뉴스 화면에 등장해 소비자를 유혹한다. 누가 소개한 전문가일까? 농부는 애초 취재 대상이 아니었다. 취재기자는 화석연료가 필수인 시설재배에 문제를 제기하는 농민단체는 물론이고 소비자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땅과 기후가 좌우하는 농사의 생태와 문화적 가치를 무시했다. 아예 몰랐을까? 의도적일지 모르지만. 최첨단 시설을 판매하는 기업의 보도자료를 요약한 기자는 화석연료 신기루에 취했다.

 

다채로운 생물이 안정적인 생태계에 가장 늦게 출현한 사람은 온화한 기온이 이어진 까닭에 생명을 연명할 수 있었다. 1만 년 전부터 농사를 배운 사람은 생태계를 파헤치기 시작했고, 경쟁으로 욕심을 키웠다. 농촌에서 농부가 수확한 농작물을 조리하며 이웃과 어울리던 삶은 탐욕으로 무너졌다. 화석연료 동원하는 개발로 생태계와 땅을 황폐하게 만들더니 변화하는 기후가 급기야 위기를 맞았다. 땅에서 멀어지며 재난을 자초했는데, 과오 돌이키길 거부하며 자기 꾀에 깊게 빠졌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며 땅마저 배제하려 든다.

 

미국의 거대한 산업농은 막대한 석유로 경작하는 화학농업이다.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인데, 수경재배와 대체육과 배양육이 대안인가?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를 넘어 수직으로 높이 세운 건물에 태양광과 LED 조명을 비추는 농업은 땅과 농민을 베제한다.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는 기업에 충성할 따름이다. 인공지능의 딥러닝으로 재배하는 최첨단 시설농업은 화석연료가 필수다. 땅과 흙이 필요 없으므로 생태계와 다채로운 생물을 배제한다. 자본을 위한 농사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거라 믿는 걸까?

 

흙은 생명이고 땅은 현실이다.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는 1만 년 동안 화석연료를 몰랐다. 시설농업이나 화학농업과 달랐는데, 화석연료에 길든 미디어마저 흙에서 멀지면서 신기루에 취했다. 기후위기는 현실이고 기후재난은 머지않은 미래다. 정부는 탄소중립 시기를 2050년으로 잡았지만,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그 시한을 2040년보다 앞당길 것을 권했다. 20년도 남지 않았는데, 신기루에 취한 언론은 참 느긋하다.

 

땅에서 멀어진 농업에 농민도 농촌도 없다. 소비자도 미래세대의 생명도 없다. 신기루에 취한 언론은 어떤 내일을 안내하려는 걸까? 땅에서 쫓겨날 미래세대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선거를 앞둔 오늘, 파멸을 부채질하는 우리 미디어의 무의식에서 마음 착잡해진다. (지금여기, 2021.1.17.)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2. 1. 14. 17:11

 

고급이든 보급형이든, 요즘 아파트는 50층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진다. 좁은 땅에 많은 집을 지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불필요하게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주택이다. 창문을 마음껏 열 수 없다. 세상에 어떤 동물도 자기 새끼들이 위험한 높이에 집을 짓지 않은데, 에너지를 마음껏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까지 예외일까? 시멘트를 사용하게 된 이후의 사건이다.

 

시멘트는 고운 석회석 가루와 흙을 섞어 섭씨 2천 도의 온도로 구워서 만든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를 섞는 경우가 있는데, 석탄재는 화석연료의 부산물이다. 시멘트는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자기 가마처럼, ‘소성로라고 하는 장치에 시멘트 재료를 넣고 연료를 함께 넣어 구워야 하는데, 시멘트 무게와 거의 비슷한 정도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므로 지구온난화의 큰 원인으로 기후학자는 주목한다.

 

예전 도공은 도자기를 구울 때 소나무 장작을 사용했다. 소성로에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만, 요즘은 재활용 구실로 폐타이어와 버린 비닐들을 보조 연료로 넣는다. 그런 쓰레기에 중금속이 섞일 수 있고 그렇게 만든 시멘트는 당연히 해롭다. 보조 연료에 철저한 사전 검사가 필수인데, 실수를 빙자한 방임이 생긴다. 심지어 핵발전소가 폭발한 일본 후쿠시마의 타이어를 수입해 태운 적 있다. 건물에서 방사능 검출되었다.

 

사진: 시멘트 공장에 보조연료. 폐타이어가 상당량 앃여 있는데, 한때 핵발전소 폭발 이후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폐타이어까지 태워, 당시 건축물에 방사능이 배출되기도 했다.(사진은 최병성 목사 글에서)

 

시멘트에 자갈을 섞으면 콘크리트가 되어 더욱 단단해지고 철근을 넣으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콘크리트로 고속도로도 만드는데, 문제는 생태계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이다. 콘크리트에 생물이 살 수 없다. 나무가 울창한 생태계와 조개와 물고기의 터전인 갯벌에 막대한 콘크리트로 공항과 도시와 공장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콘크리트로 만든 시설은 온실가스가 마구 배출한다.

 

요즘 중국은 세계에서 사용하는 시멘트의 절반을 생산한다. 중국에서 1년 사용하는 콘크리트를 영국에 붓는다면 국토가 운동장처럼 편평해질 거라 영국 언론이 지적할 정도다. 그래서 그럴까? 중국 대도시에서 나타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순식간 세계로 퍼졌다. 코로나19는 박쥐에서 전파되었다지만, 예전에도 먹은 박쥐가 요즘 문제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콘크리트가 생태계를 지나치게 파괴했기 때문이리라.

 

공항과 고속도로를 타고 더욱 지독한 감염병도 곳곳으로 퍼질 날이 다가온다. 생태계가 무너진 결과인데, 화석연료 소비를 부추기는 시멘트는 기후위기와 기상이변으로 이어진다. 높은 건물이 즐비한 도시는 그늘도 많다. 사이코패스 같은 범죄가 전에 없이 늘어난다. 시멘트의 부작용이 아닐까? 대선에 기후위기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선 뒤 이어질 지방선거는 어떨지 궁금해지는데, 환경단체가 나서야겠다. (갯벌과물떼새, 20221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1. 14. 10:38

 

2022년 현재, 지구 가장자리 지층은 안전한가? 2021년은 홀로세라는 지층의 이름을 인류세(anthropocene)’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던 네덜란드 화학자, 1995년 오존층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이 세상을 떠난 해다. 2000년 세계층서위원회에 모여 홀로세 지층의 위기를 걱정하던 중, 무뚝뚝하게 인류세로 변경하자고 제안한 그는 20년이 지나도 회복될 기미가 없자, 자신의 삶을 홀연히 마감했다.

 

대유행의 규모를 4차례 키운 2021년 코로나19 파고를 이어받은 2022년은 감염병 파고에서 벗어나려나? 세계를 휩쓰는 오미크론 변이가 우리나라에 와서 아직 잠잠하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경각심을 내려놓는 순간 여지없이 규모를 키우는 감염병이 아닌가. 강화한 거리두기와 백신 효과로 델타변이는 숨죽이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 바통을 받으면 달라지리라 전문가는 전망한다. 하루 1만 명 이상 확진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언제 일상을 되찾을까?

 

방역을 선도한다고 자부하는 우리뿐 아니라 의학 수준이 눈부신 해외 국가마다 코로나19 퇴치에 막대한 예산, 인력, 에너지를 동원하지만, 분명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전문가는 막중한 노력으로 어떻게든 억누를 코로나19보다 그 이후를 걱정한다. 기후변화로 녹는 동토층을 뚫고 창궐할 감염병이 한둘 아니라는 거다. 병증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코로나19 상흔이 얼룩진 지층에 만연한다면 어떤 재앙으로 이어질까?

 

사진: 농작물이든 산림이든, 뿌리가 땅 속 깊이 퍼져 건강할 때 대기의 온실가스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줄어든다는 의미. 유기농업이라도 땅 위에서 비료를 살포한다면 땅속 생태계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 대기의 탄소가 땅속에 들어가 고정될 때 기후위기는 가장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학자들은 확신한다. (사진은 인터넛에서)

 

온난했던 홀로세 지층에 다채로운 생물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는 생태계가 안정적이었다. 홀로세에 농사를 시작한 인류는 땅과 흙에서 번성해왔지만, 지나친 탐욕으로 파탄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래서 인류세다. 콘크리트로 연결이 차단된 인류세 생태계는 생물다양성이 단순해지면서 재해에 대한 완충력을 잃었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기상이변은 인류세 지층에 어떤 감염병을 퍼뜨릴지 모른다. 생태계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빗발칠 감염병은 코로나19보다 위험할 텐데, 대책은 디지털이다. 땅과 흙을 망각하며 허공을 헤맨다.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사스와 메르스도 박쥐가 매개했다. 비둘기만큼 커다란 박쥐는 감염병 이전에도 먹어왔는데, 요즘 사람 사이로 퍼진 이유가 무엇일까? 인류세를 맞은 땅과 흙이 황폐해진 까닭이다. 파괴된 생태계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사람으로 급속히 번졌다. 결국 화석연료의 과소비가 부른 부메랑인데, 디지털로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하겠다고 나선다. 디지털은 신기루다. 겉보기에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화석연료 없으면 작동이 아예 불가능하다.

 

최근 한 텔레비전 뉴스는 기후위기 대응으로 디지털 농업을 연속 소개했다. 거대한 온실에서 인공지능으로 8배 이상 수확할 뿐 아니라 운송 거리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다고 소개했다. 그럴까? 1만 년 전부터 생태계와 기온이 안정된 홀로세의 땅에서 다채롭게 농사지어온 구태를 내팽개치는 걸까? 생명공학 기술이 창안한 배양육 보도 역시 비슷한 논조였는데, 신기루다. 기술과 장비를 보급하려는 기업의 자료를 편집했지만, , , 생태계와 문화, 그리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숱한 생물을 철저히 배제했다.

 

인간은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말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인데, 생태적 동물이다. 생태계에 뒤늦게 동참한 사람은 땅과 흙을 떠나면 생존할 수 없다. 가혹한 재난을 부르는 기후위기는 탐욕스런 화석연료 소비가 땅과 하늘과 바다의 생태계를 파국으로 내몰았기 때문인데, 생태계를 배제하는 교만한 대응으로 기후위기가 극복될까? 디지털로 규격화한 농작물과 식품으로 모든 인류가 행복에 겨울 수 있을까?

 

땅을 물질로 파악하는 디지털은 기후위기 대응일 수 없다. 미래세대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다. 코로나19를 초대한 화학농업과 공장식 축산을 예찬하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달라야 한다. 땅과 흙이 살아난 마을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웃에 생태계는 물론, 선조와 미래세대의 삶과 문화가 포함되어야 인류세는 파국을 면할 수 있다. (기호일보, 202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