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2. 22. 10:18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2026년 동계올림픽은 알프스 가까운 이탈리아 밀라노와 근처 몇 도시에서 개최한다는데, 4년 뒤에 말과 탈이 줄어들까? 코로나19 상황에 치른 올림픽에서 중국은 기대했던 성과를 올리지 못했을 것 같은데,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언론의 부정적 반응과 달리, 시진핑 3기로 이어질 분위기가 무르익는다는 게 아닌가.

 

베이징올림픽을 평창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두 대회 모두 참여한 해외 선수의 소감을 예로 든 우리 유튜버의 해석인데, 자화자찬이 가미되었으리라. 우리 선수단의 파벌과 불화 소식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개최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에 사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 작심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우리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도 넘은 편파 판정에 화가 치밀었다. 우리나라의 이번 성과는 어떤가? 평창보다 양해할 만한가?

 

금메달 수가 예정보다 대폭 줄어든 작년 도쿄올림픽 이후 우리나라 분위기가 달라졌다. 메달의 색깔이나 숫자보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모습에 감동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완연한 거다. 이번 대회도 비슷해 보이므로 베이징올림픽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방송과 광고는 메달을 걸고 온 인물을 잠깐 주목하겠지만, 시민은 최선을 다한 선수, 나은 성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선수의 자세에 박수를 보낼 것 같다.

 

사고도 있었다. 쇼트트랙 도중 넘어진 우리 선수가 뒤에서 달리던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우리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사고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를 겨루는 얼음판과 설상 경기는 워낙 빨라 위험해 보였다. 낯선 이름의 썰매 경기는 시속 100km 넘나드는 속도로 굴곡진 얼음판을 내려간다. 현기증이 돌 거 같았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면 엄두 낼 수 없는 종목에서 공정한 경쟁에 목숨을 거는 듯했다. 막을 내렸다. 평창이 그랬듯, 베이징도 일반인은 엄두 낼 수 없는 경기장들을 없애거나 놀릴까?

 

그림) 기후위기가 몰고온 재앙의 시대에서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경쟁은 파멸을 앞당길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미래세대의 생존을 생각하는 상생의 약속보다 공정을 앞세우는 경제성장 논리가 난무한다. 에너지위기, 자원위기, 생태위기 시대에 우리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그림은 인터넷에서)

 

올림픽 창시에 공헌한 쿠베르탱 남작은 1894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올림픽 정신을 내놓았다. 그는 최선 다하자고 격려한 것일 텐데, 요즘은 경쟁이 보통 치열한 게 아니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 사이의 경쟁이 격해지면서 선수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승리했다는 선수의 자부심은 초라해지면서 부작용이 속출한다. 부와 명예를 노리는 선수는 물론 국가까지 노골적으로 경쟁에 가담하면서 승리를 위한 격렬함은 무자비해졌다. 모든 종목과 선수가 같은 상황은 아니었을지라도 이번 올림픽은 그 정도가 심했다.

 

김연아 선수가 3바퀴 돌았을 때 감탄했는데, 이번에 우리 선수가 3바퀴 반을 돌아 탄복해야 했다. 한데 이번에 러시아에서 온 선수는 4바퀴를 돌았다. 은메달을 땄는데, 그 선수는 울음을 터뜨렸다. 압도적 기량으로 금메달을 기대한 선수는 금지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고, 긴장이 풀렸는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승리 압박이 얼마나 심했으면 금지약물을 끌어들였을까? 어린 선수의 의지가 아니길 바라지만, 그렇게 승리하면 뿌듯할까? 실패하면 인생을 포기해야 하기라도 하는 걸까?

 

메달 색깔에 따라 포상에 차이가 있는 올림픽만이 아니다. 거액의 돈이 오가는 스포츠가 대개 그렇지만, 스포츠만이 아니다. 승리하면 포상이 두둑한 분야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공연 분야가 그렇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정을 내세우는 경쟁 대부분이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시가 특히 그렇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분명한 보상이 따르지 않는가! 죄를 밝혀내 명성을 얻고 죄가 없애줘 부를 창출한다는 검사만이 아니다. 사기꾼은 변호사법 위반으로 입건된다니, 변호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걸까?

 

어떤 젊은 정치인은 공정한 경쟁을 기치로 내세웠다. 섬뜩했다. 그는 공정한 경쟁에서 거푸 승리했기에 그 자리에 앉은 걸까? 경쟁이 과연 공정할 수 있는가? 보장되는 부와 명예가 클수록 경쟁은 공정하지 않다. 경쟁 이후는 물론이고 이전에도 거의 공정하지 않다. 도핑검사가 없으면 운동선수의 금지약물은 들키지 않는데,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분야, 심지어 과학도, 들키지 않는 불공정은 진정 없을까? 공정을 가장하지만, 진입장벽은 얼마나 많고 높은가. 사실, ‘공정한 경쟁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에 가깝다.

 

대통령 선거운동으로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모순된 약속을 서슴없이 내세우는 후보도 있는데, 어떤 후보의 선거운동원인지 모르는데 번잡한 교차로를 점거했다. 공정한 경쟁이 벌어지는 현장인가? 되새기기 싫은 경험이 갑자기 소환된다. 후보와 측근이 은밀하고 근사한 보상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지금보다 훨씬 위험해질 내일을 미래세대에 떠넘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미면서 진정성 소음은 일단 피하고 싶다. 눈을 감아도 소용없으니 쌀쌀한 날씨에 길을 돌아선다. (지금여기, 2022.2.21.)

 
 
 

도시·인천

디딤돌 2022. 2. 18. 21:10

 

뉴욕 맨해튼의 오랜 랜드마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02층이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았지만, 송도신도시의 랜드마크로 103층 빌딩이 68공구에 예정돼 있다. 1929년 시공해 2년 만에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환갑 진갑을 넘어 100년 역사도 넘길 텐데, 여전히 뉴욕 마천루에서 가장 유명하다. 2001911일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1970년대 초 완공된 뒤 50년 동안 최고 높이를 양보했지만, 회복했어도 예전 명성은 퇴색했다.

 

경제 공황으로 공간이 꽤 비었고, “엠티스테이트 빌딩이라는 세간의 비아냥도 받았지만, 해마다 400만을 넘나드는 관광객으로 부도를 면한 맨해튼 랜드마크는 미국 패권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00층 넘는 건물은 미국보다 아시아에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고 패권이 아시아로 넘어간 건 아니다. 2007뉴욕타임스는 당시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중동 국가에서 세우려는 100층 이상의 건물 경쟁을 선진국 진입에 대한 열광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분석이기보다 조롱에 가까웠다.

 

인천시와 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68공구의 103층 빌딩 이름을 어떻게 정할까? 사라진 송도 갯벌에 얽힌 문화와 역사가 반영될지 알 수 없는데, 정작 151층 쌍둥이 빌딩을 한사코 요구하는 송도신도시의 일부 주민들은 가시화되는 103층 빌딩을 결국 받아들일까? 알 수 없는데, 유럽에 초고층빌딩은 매우 드물다. 시민들은 경관을 오만하게 독점하는 건물을 꺼린다. 숲과 낮은 건물로 편안한 지평선을 볼썽사납게 거스르는 높이에 대한 불쾌감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지 않던가.

 

그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 제시한 68공구 103빌딩 구상도. 기후위기 시대의 신기루에 가깝다. (그림은 인터넷에서)

 

고층일수록 건물은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부를 과시하는 산유국들은 앞다투어 500m 넘는 건물을 세웠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km 높이의 건물을 과시할 태세다. 하지만 그런 건물은 막대한 에너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건설과 유지가 어렵다. 무한정으로 낭비하던 석유는 어느새 고갈이 드러났다. 2005년을 정점을 지난 석유와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 낭비는 미래세대를 위협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초고층 건물은 이제 자랑이 아니다. 탄소중립을 서둘러야만 할 시기에 부끄러움의 상징으로 손가락질받을 것이다.

 

영겁의 세월 흘러내린 백두대간의 유기물이 갯벌로 쌓이고 쌓인 서해안은 리아스식이다. 바다에서 닥치는 풍상을 견딘 리아스식 해안이기에 재난에 무척 안전하다. 수많은 어패물의 산란장이요 터전인 갯벌은 우리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천혜의 어장이었다. 어패류가 지천인 인천 갯벌은 지구온난화를 효과적으로 예방하지만, 매립되었다. 이제 재난 예방은 옛일이 되었다.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 더미인 송도신도시는 지구온난화 원인을 제공했으면서 위기를 가중한다. 온실가스가 배출 없이 유지할 수 없는 데에도 103층 건물을 필두로 초고층 건물을 여럿 추가하려 들지 않던가.

 

건물이 높을수록 그늘은 깊다. 그늘진 뒷골목의 음습한 분위기만이 아니다, 고 노회찬 의원이 거론한 6411, 강북에서 강남을 잇는 시내버스의 첫 승객들처럼 송도신도시의 휘황찬란한 건물은 수많은 노동자의 고단한 노동을 동원해야 유지할 수 있다. 건물을 출입하는 자동차는 교통사고와 혼잡을 키우고 주변 공기는 지저분해진다. 문제는 기후위기에 직면한 미래세대다. 온실가스를 이례적으로 내뿜을 송도신도시 103층 건물은 미래세대에게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는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오르면 색다른 그림이 있는 티셔츠와 엽서를 기념품으로 판다. 건설 노동자 10여 명이 H빔에 나란히 앉아 점심 먹는 장면인데, 랜드마크에 방점을 두는 송도신도시의 103층 건물도 전망대를 마련하겠지. 어떤 랜드마크를 기념품으로 팔까? 드넓던 갯벌은 아니겠지.

 

뉴욕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빈 사무실이 늘어난다고 한다. 테러가 두렵기 때문이라는데, 송도신도시의 103층 빌딩은 테러에 충분히 대비할 거라 믿자. 탄소중립이 긴박한 기후위기 시기에 재해에 안전할까? 미래세대의 원망에 변명은 준비하고 있을까? (기호일보, 2022.2.18.)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2. 18. 06:58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스마트 농업을 주목하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10층 높이 이상 유리온실로 지은 농장에서 재배하면 1년에 8번 수확할 수 있고, 도시와 가깝다면 운송 거리가 짧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고 홍보한다.

 

최근 한 텔레비전 뉴스는 스마트 농업과 인공육을 보도했다. 화학농약과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업보다 친환경이고 유기농산물보다 저렴하다는데, 보급이 느린 현실이 안타까웠을까? 그 뉴스는 스마트 농업 관련 전문가의 인터뷰를 두루 내보냈지만, 농촌의 농부와 문제 제기하는 전문가를 철저히 배제했다. “스마트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기업의 자료를 정성껏 보도할 뿐, 문제점을 한사코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콩을 사용하는 대체육에 이어 생명공학 기술로 배양하는 줄기세포 배양육을 소개한 언론은 온실가스인 메탄의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므로 기후위기 극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연구로 맛과 풍미, 그리고 식감이 개선된 인공육의 가격이 저렴해질 2030년이면 기존 육류 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예견한 미디어도 등장했다.

 

사진: 흙과 생태계가 필요 없는 스마트 농업. 농민과 농촌은 제외시키는 농업은 과도한 에너지 투입 없이 기능할 수 없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흙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 농장은 해충은 물론이고 어떤 미생물도 침투하지 못하므로 청정하다고 자부한다. 켜켜이 쌓은 스펀지나 유리섬유 모판에 씨앗을 심어 정시 적량의 영양분을 공급하므로 사시사철 안전한 농작물을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데, 친환경일까? 난방과 LED 조명, 그리고 최첨단 설비를 운영하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주변의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하듯, 피하지 못한 감염 사고는 걷잡지 못할 비용과 에너지를 요구할 것이다.

 

콩으로 제조하는 대체육은 이미 보편적인데, 맛과 식감을 위해 들어가는 화학물질이 과연 친환경일까? 미국에서 막대하게 수입하는 콩은 화학농업으로 생산한다. 콩 칼로리의 10배 가까운 열량의 석유를 소비해야 대체육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갈 수 있는데, 친환경인가? 배양육은 무모하다. 소 태반에서 추출하는 배양액은 공짜가 아니다. 공장식 축산보다 막대한 비용과 화석연료를 정부가 보조해야 가공육의 가격이 내려갈 것이다. 메탄가스가 덜 나오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은 무시할 수 없는데, 맛과 향을 약품으로 보완하면 안전해질까? 스마트 농업 이상으로 감염에 치명적일 텐데.

 

재난을 거듭 초대하는 요사이 기후위기는 인류의 획기적인 삶의 변화를 긴박하게 촉구한다. 화학농업과 공장식 축산보다 다소 친환경이더라도, 스마트 농업과 인공육은 기후위기 대응으로 지나치게 한가하다. 기후학자는 현 지층을 파국 앞의 인류세로 규정한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류가 던진 부메랑인데, 대응이 더 큰 부메랑이어야 할까? 위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기업을 위해 미래세대마저 희생시킬 셈인가? (갯벌과물떼새, 2022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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