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6. 28. 11:11

 

201680세 나이의 거장 켄 로치는 , 다니엘 브레이크로 칸영화제에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심장병 악화로 일을 계속할 수 없어 실업급여를 청구하려던 성실한 목수의 이야기다. 복잡한 절차에 번번이 좌절하다 겨우 성공해 숨돌리려는 순간, 심장 발작으로 사망하고 만다는 내용으로 주목받은 거장은 기자회견에서 가난은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회의 잔인함을 비판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러면, 우리 복지정책은 영국보다 인간적일까?

 

우리나라 60대 이상은 대개 병원보다 집에서 태어나 이웃의 보살핌으로 자랐다. 병원이 상식인 요즘은 다르다. 산모와 신생아는 물론, 아빠까지 산후조리원에 2주 머물고 유아원과 유치원을 다니며 성장한다. 비용이 천차만별인 산후조리원은 국민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다. 집에서 아이 낳던 시절에 많던 사고는 크게 줄었는데, 산후조리원의 국민건강보험 대상은 시기상조일까? ‘공공산후조리원을 공약한 지방선거 후보가 있었는데, 실현되려면 논의할 사항이 복잡하겠다. 산후조리원은 보편적 복지 영역으로 등극할 수 있을까?

 

도시 곳곳에 늘어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복지기관인가? 여태 관심 기울이지 않았는데, 사회복지 전공한 후배에게 물으니 장애 등급에 따라 다를 거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복지기관이든 아니든, 비용이 천차만별이든 아니든, 핵가족이 대세인 사회에서 기력 잃어가는 부모를 보살피는 일을 대신하는 요양시설은 고마운 존재일지 모른다. 그런데 성격이 다른 두 시설은 보살핌의 온도가 다르다. 산후조리원과 달리 요양시설은 보호자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지 않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보호자는 의지와 무관하게 접근이 차단되었다.

 

우리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지 못하는데,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 다니엘 브레이크가 문제 삼았듯, 구직행위가 필수라고 들었다. 의지와 달리 일자리를 잃어야 일정 기간의 실업수당 대상자가 되므로 젊은 직장인은 서류상 강제 퇴직을 원한다고 한다. 그럴 때의 실업수당은 복지정책인가? 퇴직당한 젊은이는 일정 기간 이후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능히 구할까? 나이 들어 강의를 잃는 시간강사는 알량한 국민연금에 의존하는데, 기운 잃은 농민이나 자영업자는 어떤 복지정책에 의지해야 할까? 화석연료 소비로 이끌어갈 반도체산업과 자동화로 일자리의 다양성과 만족도는 위축될 텐데, 위기로 치달아가는 기후변화 시대에 미래세대는 어떤 삶을 꾸려가야 할까?

 

그림: 현실사회와 기술적인 평등, 그리고 이상적인 공평.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장벽이 없는 자유로움이라는 걸 그림은 보여준다. 인터넷에서 받은 그림.

 

인천시장으로 당선된 이는 기자회견에서 세계 초일류 인천을 약속했다. 구도심부터 신도시 이상 발전시킬 모양인데, 발전하면 시민이 행복해지는 걸까? 낙후된 구도심과 흔히 비교되는 신도시를 보자. 화석연료 뒷받침 없으면 찬란함을 잠시도 유지하기 어려운데, 세계 초일류 도시는 어느 정도의 화석연료를 요구할까? 기후위기가 더욱 심각해지는 시점에서 기름값이 치솟아 서민 살아가기 벅차다는 뉴스가 빗발친다. 송도나 청라에 사는 시민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데, 세계 초일류 인천시민이므로 행복할 리 없다. 요즘은 일부만 누릴 행복보다 보편적 시민의 안정된 생존 보장이 시급한 시절이다.

 

얼마 전에, 낙후된 지역이라는 자탄이 맴도는 구도심의 한 식당에서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저녁 나눌 기회가 있었다. 번듯한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도 있지만, 재개발 소식이 들릴 때마다 세입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라 했다. 다행인지, 재개발 수익이 분명치 않다는데, 장사가 잘되는 아니든, 세입자인 주민 대부분은 영업장을 옮길 여력이 없다. 처지를 서로 이해하는 주민은 크고 작은 대소사를 의논한다고 한다. 갈등과 의기투합이 교차하더라도 걱정과 어려움을 나누는 까닭에 그 지역은 낙후되었다기보다 따뜻한 마을이었다. 산후조리원과 요양시설이 불필요해 보였다.

 

복지제도가 완벽할수록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북유럽이 그렇다는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1위로 등극한 지 오래다. 복지제도가 완벽해 그럴까? 켄 로치가 강조했듯, 가난한 사람을 향한 복지정책이 잔인해서 그런 건 아닐까? 사회복지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는 평등하면 건강하다.” 하고 주장한다. 부촌이라도 따돌림당하는 사람에게 병치레가 잦다는데, 우리 복지정책은 어떤가? 구도심에 세계 초일류를 지향할 인천은 어떨 것인가? 기후위기가 몰고 오는 기상이변은 미래세대의 앞날을 두렵게 만드는데, 해수면 상승을 앞둔 인천에서 급한 복지는 무엇일까? (인천in, 2022.6.28.)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6. 20. 17:08

십여 년 전, 남미 원주민이 유럽에 보상을 요구했다. 앞서가는 듯 보이는 유럽의 문명은 누구 희생으로 꽃피운 것인가? 수탈된 대지에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주목한 15세기 포토시는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고지에 번쩍거리는 은광이 있었고 당시 원주민은 섬광이 두려워 접근하지 않았지만, 지금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유럽인이 휘두른 채찍으로 족쇄와 쇠사슬에 묶인 원주민들이 희생되지 않았다면 현재 유럽은 가능할 수 없었다. 원주민 후손은 유럽에 원금이 아니라 이자를 요구했다는데, 응한다면 유럽 경제는 즉시 무너지리라.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 나우르공화국은 화려한 축제의 찰나를 보냈지만, 지천이라 생각한 인광석이 동이 난 지금은 몹시 우울한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영겁의 세월 남태평양의 바닷새들이 배설해 쌓이고 쌓여 돌처럼 굳은 인광석은 식민지 쟁탈에 혈안인 유럽의 식량 증산에 기여했다. 열강의 수탈로 절반 이하로 남은 인광석을 국유화한 나우르공화국도 잠깐 횡재를 구가했지만, 바닥을 드러내자 비참해진 상황은 인광석에 국한하지 않는다. 검은 황금인 석유는 아니 그럴까? 석유보다 많이 남은 석탄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612, 헌법재판소 앞은 일요일에도 모여든 인파로 분주했다. ‘아기기후소송이 제기된 현장이었다. 2030년까지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2018년 기준으로 40% 줄인다면 현재 아이들의 생존은 보장할 수 없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제정 이후 줄어들까? 오히려 늘어나기만 하는데, 2030년은 8년 남았다. 어떤 조상도 자기 아이의 내일을 위험하게 물려준 적이 없건만, 8년 후 청소년이 될 우리 아기의 생명은 풍전등화다. 그래서 아기 기후소송단이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야 했다. 아기의 생명을 위협하는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의 시행령은 위헌이기 때문이다.

 

마침 햇살이 뜨거운 일요일 오전, 헌법재판소 정문에 아기를 안고 모인 엄마와 아빠, 그리고 화석연료 탐욕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섰던 60세 이상의 노년이 목소리를 높였다. 6세 아기와 참석한 산모는 이 세상에 탄소 1그램도 배출하지 않은 아기의 내일을 위해 참여한다.”라고 선언했고 초등학교 4학년 아이는 고통스럽게 살아갈 어린이들이 불쌍하다.” 지나치는 어른을 향해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내일의 권리를 요구하며. “당장 탄소배출을 줄여달라!” 호소했다. 그리고 ‘60+기후행동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기들의 안전한 내일을 위해 맑은 공기, 파란 하늘, 푸른 숲, 물고기 가득 뛰노는 강과 바다를 우리 아기들에게 물려달라!” 간절하게 요구했다.

사진: 지난 6월 12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 아기와 부모가 모였다. 2018년 기분으로 40%의 이산화탄소를 2030년까지 줄이면 아이들의 생존이 보장될 수 없다는 기후 전문가의 주장을 근거로, 미래세대 생존권을 지키려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는 행동이었다. 한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 부자나라들은 이산화탄소 줄이겠다는 느슨한 약속조차 외면하고 있다.(사진은 경향신문에서)

 

인광석의 존재를 모르던 나우르공화국이 불행한 나날을 보냈을 리 없다. 풍요로운 남태평양에서 안락한 삶을 지속했겠지만, 강렬한 쾌락을 안겨주자마자 사라진 인광석은 마약 같았다. 고장이 나면 수선하기 귀찮아 한 대 더 샀던 최고급 승용차들이 마당마다 폐차로 버려진 작은 섬이지만, 예전의 행복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까? 마음먹고 행동하기 따라 불가능하지 않지만, 현실은 장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해수면이 올라가지 않나? 인광석과 다름없이 마구 퍼올리며 펑펑 소비하는 화석연료는 일부 지역을 돈방석에 올려놓았지만, 한계가 드러난다. 무한해 보이던 원유와 석탄뿐 아니라 시베리아의 메탄도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텐데, 기후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미래세대는 어떤 파국과 만날까?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탄소중립을 2050년보다 10년 이상 빠르게 달성하라고 종용하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탄소 발생의 주요 책임 국가들의 실천 행동은 더디기만 하다. 화석연료 소비가 견인하는 경제성장이 조금만 쳐져도 대책을 서두르지만, 기후위기로 파국을 만날 게 점점 분명해지는 미래세대의 내일에 대해 지나치게 둔감하다. 남의 일 보듯 무심하지만, 위기는 가혹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만나는 기후위기는 미래세대가 나중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아이들이 직접 나서야 했다!”라고 격정을 토한 젊은 아빠는 칭얼대는 세 아이를 대신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00년 미래세대의 자산인 새만금 갯벌을 보전해달라던 어린이의 환경소송을 우리 법원이 기각했다. 시대착오적 판단이었다. ‘법인이라 해서, 기업에 인격을 부여하는 세상이다. 생명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도 소송이 가능한 세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 미래세대의 생존은 누가 지켜야 하나? 사람의 분별없는 개발로 터전을 잃는 동식물을 대리하는 소송을 받아들이는 현실은 우리 법원에 언제까지 예외이어야 할까? 걸음마를 배워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우리 아기의 작지만 애절한 목소리는 엄마와 아빠가 대신한다, 우리 법원은 마땅히 귀를 열어야 한다. 미래세대의 가녀린 목소리를 경청해야 옳다. (지금여기, 2022.6.20.)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6. 11. 10:36

- 손상된 생태계가 초대한 코로나19의 바통

 

사라지지 않는 바이러스

 

1960년대 초, 학교 들어가기 전. 우리 집의 3남매는 차례로 홍역을 앓았다. 위험할 수 있어도 나을 거라 믿은 홍역은 예방주사가 보급된 요즘, 문학적 수사가 되었다. 고통스럽더라도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에 비유하는 홍역인데, 앓는 아이는 요즘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건 아니다. 신생아가 맞는 백신 덕분일 것이다.

 

홍역은 한 차례 접종으로 안심해도 되지만, 독감은 해마다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보건당국은 권한다. 바이러스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데, 독감 바이러스는 닭에서 기원했고 홍역은 소를 감염시키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되었다고 전문가는 주장한다. 소와 닭을 가축으로 사육하지 않았다면 홍역과 독감을 앓는 사람은 없을까? 적어도 요즘처럼 창궐하지 않을지 모르는데, 사람과 달리 개는 90% 이상 죽는다며 동물병원은 개홍역 백신을 광고한다. 그렇다면, 개홍역은 사람이 원인일까?

 

백신이 없어도 홍역이나 독감을 걱정하지 않던 1960년대, 인천 변두리의 우리 집은 참죽나무에 둘러싸였고, 아침저녁으로 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스름 저녁이면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모를 새들이 모여들어 새벽녘에 잠을 깨웠는데, 삐뚤빼뚤하던 주변의 논밭과 농가들이 신시가지로 직각으로 변하다 사라지면서 참죽나무가 일제히 베어지고 새들은 동네를 떠났다. 중학생이 된 우리는 입시지옥에 파묻혔다.

 

2000년대 초, 중국 광동성에서 출현한 사스(SARS)가 우리와 세계를 긴장시키더니 2015년 중동의 메르스(MERS)가 전파되어 우리나라에서 180여 명, 세계적으로 천명 가까운 인명을 희생시켰다. 모두 코로나 형태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급성 호흡기 질환이었는데, 백신을 개발할 틈을 주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독감 원인인 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같이 RNA라는데, 진정 사라진 걸까? 전문가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뿐, 바이러스는 어딘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다시 창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진: 최근 우리나라로 전파돼 창궐한 RNA 바이러스 3가지, 그리고 간단한 구조와 전파 경로를 간단히 제시하는 그림. (인터넷에서 구한 코로나19 초기 그림)

 

 

파괴된 생태계의 손님

 

따뜻해지면 포도 과수원은 꽃매미 등쌀을 걱정한다. 중국 남쪽과 동남아시아가 원산인 꽃매미는 편서풍을 타고 이따금 날아왔어도 별문제가 없었는데, 과수원에 피해를 주면서 관심이 커졌다. 나방 같아도 매미 체형을 가진 꽃매미는 포도나무 가지에 겹겹이 앉아 수액을 빨아댄다. 기후변화로 태풍이 거세지면서 늘어난 걸까? 그럴지 모르는데, 따뜻해진 겨울이 짧아지면서 꽃매미의 알이 얼지 않은 탓에 늘어난 건 아닐까?

 

미국에서 수입하는 목재에 붙어 들어와 2009년 처음 발견된 선녀벌레도 과일나무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데, 의도하지 않았다. 북미 원산인 황소개구리는 1970년대 의도적으로 수입했다. 고기용으로 양식했지만 찾는 이 드물어 방치하자 전국으로 펴졌는데, 생태계 보전을 위해 퇴치하자는 캠페인이 전처럼 잦지 않다. 충분히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덩치 큰 성체는 물론이고 토종보다 월등히 커다란 올챙이도 수달과 백로의 든든한 먹이가 된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태계 일원으로 등극한 것이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커다란 설치류 뉴트리아는 모피를 위해 우포늪에서 양식했지만, 관리 소홀로 퍼져나갔다. 우리뿐 아니라 겨울이 혹독한 국가에서 양식에 실패한 원인은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 땅속에 굴을 파고 추위를 견디는 습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꼬리 포함한 길이가 1m에 무게가 8킬로그램에 달하는 뉴트리아를 잡아먹는 포식동물이 없는 탓이다. 가끔 총 든 사람이 천적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생각이 짧은 사람은 생태계를 더욱 교란할 농약을 선호한다. 꽃매미와 선녀벌레가 특히 그렇다.

 

날아올 때 주홍색이 눈에 띄어 한동안 주홍날개꽃매미라 했던 꽃매미는 건강한 생태계가 줄어든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생태학자는 참죽나무 사라진 우리나라에 중국에서 씨앗이 넘어와 늘어나는 가죽나무를 주목한다. 잎사귀 새순을 나물로 삶아 먹기도 하는 참중나무는 많은 새를 끌어들여 논밭에 다가오는 곤충을 쫓아내는 효과가 있었지만, 요즘 보기 어렵다. 대신 도시 근린공원까지 가죽나무가 뿌리내린다.

 

중국에서 꽃매미는 가죽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한데 우리 과수원의 규모가 예전과 달라졌다. 한두 그루로 가족과 이웃이 과일 나누는 풍습이 사라진 농촌에 규모를 키운 과수원이 바투 붙어서 같은 품종의 과일나무를 빼곡하게 심었다. 그러자 꽃매미가 퍼진다. 가죽나무에서 수액이 달콤한 과일나무로 이동한 모양인데 희소식이 들린다. 주홍색이 섬뜩해 피하던 새들이 잡아먹기 시작했다는 게 아닌가. 농약 사용을 자제한다면 장차 생태계의 일원이 될지 모르는데, 선녀벌레도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코로나19를 안내한 시멘트

 

코로나19는 왜 중국 우한시에서 세계로 삽시간에 펴졌을까? RNA 바이러스는 DNA보다 100만 배 이상 변이가 심하다고 한다. 알파에서 오미크론을 넘어 그리스 문자가 모자랄 지경으로 변화무쌍하더니 창궐 30개월이 지나가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무슨 일일까? 하루 확진자가 천 명 넘을 때, 마스크로 입과 코를 막아도 안심하지 못했는데 50만에서 3만 명으로 줄면서 긴장이 풀린다. 실내가 아니면 마스크 착용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나왔는데,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던 감염병 전문의사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독감은 닭, 사스는 사향고양이, 메르스는 낙타가 매개했다는데, 코로나19는 박쥐가 확실할까? 아직 모르는데, 비둘기에 견줄 만큼 커다란 박쥐를 식용으로 사고파는 일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런데, 2019년에 문제를 일으킨 걸까? 박쥐를 먹거나 잡는 사람이 갑자기 늘었기보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박쥐가 사는 생태계까지 뚫으며 거듭 확장된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영국 가디언은 시멘트를 심층 취재했다. 시멘트는 온실가스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다. 제조 과정에서 비슷한 무게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시멘트를 주목해보자. 포장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공항에 뜨고 내리는 여객기와 전투기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가? 하늘을 찌르는 건물마다 쏟아내는 온실가스는 얼마나 막대할까? 미국이 이제까지 생산한 시멘트 총량을 최근 중국에서 3년이면 뚝딱 만들어낸다고 보도한 가디언은 중국 1년 생산량을 영국에 붓는다면 전국이 베란다처럼 편평해질 거라 덧붙였다. 초고층빌딩 수만큼 도로와 자동차가 불어난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했고, 비행기와 자동차로 인간이 밀집한 곳곳으로 퍼졌다는 해석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간은 코로나19를 박멸할 수 있을까? 거대 의료자본이 과감하게 투자해 보급한 백신을 널리 거듭 접종하자 힘을 잃어가지만, 전문가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지역에 남아 들쭉날쭉 창궐할 가능성을 점친다. 1918년 당시 세계인구의 2% 이상 사망케 한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요즘은 개별국가에서 해마다 갱신하는 백신으로 억제하듯, 코로나19도 눈부신 과학기술로 지역에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멸과 거리가 멀어도 자본과 의료진의 헌신으로 극복한다지만,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을 것인가?

 

코로나19 극복에 투자한 자본의 크기는 그 과정에서 소비한 화석연료에 비례할 게 틀림없다. 쓰고 버리는 마스크뿐 아니라 검사재료와 주사기도 플라스틱이다. 역학조사로 확진자를 찾아내 치료하고 예방하는데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내놓아야 했을까? 새로운 바이러스가 무섭게 다시 창궐할 때 우리는 경험을 토대로 위기에 거뜬히 대비할까? 경각심이 벌써 무뎌가는데, 봉쇄 이상의 거리두기에 진저리치는 건 아닐까?

 

 

다양성 잃은 오늘과 내일의 위기

 

요즘 우리나라에 꿀벌이 대거 사라진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음식의 3분의 1 이상 포기해야 한다고 양봉업자는 강조하는데, 20여 년 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비슷한 현상이 있었고, 많은 연구를 남겼다. 남보다 많은 벌꿀을 빨리 모으려는 욕심이 화근이었다.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꿀벌의 유전자를 극도로 단순화한 결과였다. 이미 50여 질병에 휩싸인 꿀벌에 응애가 기생하자 새로운 농약을 처방했는데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발생한 거였다. 꿀이 가득한 벌통에 애벌레가 무럭무럭 자라는데, 일벌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뿌리를 나누어 재배하는 바나나도 사정이 비슷하다. ‘캐번디시품종으로 획일화한 바나나 농장에 곰팡이가 휩쓸자 멸종을 염려할 지경이 되었다. 크고 풍미가 빼어났던 그로 미셸품종은 같은 곰팡이로 이미 사라졌다. 곰팡이가 발생하면 재배 중인 농장의 모든 바나나를 불태운다. 폭력으로 전파를 막아도 역부족이라는데, 그런 현상은 바나나뿐이 아니다. 해마다 10여 차례 농약을 안개처럼 분무해도 병충해에 시달리는 사과와 배가 그렇다. 잊을 만하면 살처분과 생매장으로 이어지는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은 아니 그런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타고난 유전자를 획일화하자 온갖 질병에 맥없이 걸리지만, 본성을 살려 사육하면 많은 가축은 이겨낸다. 효율화 고집하는 자본이 문제다.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로 영구 동토가 녹자 인간이 진화하기 이전의 동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동물 몸에 얼어붙었던 바이러스 유전자도 온난화된 생태계로 스멀스멀 나와 퍼질 수 있다. 다채로운 동식물이 어우러지는 생태계는 여간해서 새로운 생물에게 터전을 내주지 않지만, 불안하다. 시멘트 칠갑이 된 지구에 건강한 생태계는 드물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할 조건은 완비된 셈이 아닌가.

 

얼마 전 6차 보고서를 채택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각국 정부에 회복 탄력성을 요구했다. 생태계가 회복될 탄력을 남겨야 한다는 당부였는데,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나? 고속도로 밀도가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 곳곳의 비행장이 텅텅 비는데, 또 짓겠다고 아우성친다. 2050년 탄소중립은 가능할까?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보행자를 우대하는 프랑스가 자동차로 2시간 반 거리의 비행장을 없애기로 한 상황에서 사이디아라비아 속담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낙타를 탔는데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아들은 제트비행기를 탄다네.” 속담은 이어진다.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타야 할 걸세하고 마무리하는데, 그때 낙타가 남아 있을까? (작은것이아름답다, 2022년 여름, 2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