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22. 9. 23. 17:10

젖은 낙엽이 떠올리는 책

 

이른 아침.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낙엽 쌓인 길을 걷는다. 완연한 가을이다. 어젯밤 비바람에 나뒹굴던 낙엽은 젖어 추레하다. 발길 피하는데, 주차된 고급 승용차에 덕지덕지 붙었다. 유난스레 비가 많던 올여름은 지나갔다. 짧은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겠지. 올겨울 거리에 눈이 며칠이나 쌓일지 궁금한데, 고맙게 우리는 4계절을 잃지 않았다.

 

부지런한 미화원의 빗자루로 커다란 자루에 담긴 낙엽은 저녁이면 한쪽에 쌓일 것이다. 어디로 갈까? 시립 양묘장에서 퇴비로 활용한다면 다행인데 소각장으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젖은 낙엽은 민원을 부르니 미화원들은 서두르고 싶을 텐데, 문득 낙엽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고 싶다.

 

<인간 없는 세상> 표지.

 

미화원은 물론, 어느 날 모든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낙엽에 가려진 도로와 골목, 그리고 도시는 장차 어떻게 변할까? 비와 눈을 맞으며 쌓인 낙엽 사이로 새 풀이 돋겠지? 보도블록 사이로 작은 풀이 비집고 나온 이 길은 어떻게 변할까? 그런 점을 눈여겨본 과학저술가가 있다.

 

앨런 와이즈먼.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그는 인간 없는 세상에서 사람이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변할지 상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했던 곳이 50년 만에 야생동물의 훌륭한 피난처로 변한 모습에 경탄했다. 내전으로 황폐해진 니카라과 해안이 10년 만에 되살아났으니 50년이면 충분하다는 걸 되새기면서 걱정한다. 지뢰가 사람 접근을 봉쇄하는 폭 4킬로미터에 241킬로미터 길이의 비무장지대는 스스로 복원되었다. 귀룽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두루미와 물까치가 넘나들며 고라니와 산양이 누비는 생태계가 되었는데, 언제까지 보존될 수 있을까? 개발 삽날이 여전하다,

 

두루미가 날아든 비무장지대가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자연생태계로 거듭나기를 희망한 앨런 와이즈먼은 묵시록부터 펼친다. 자동차 충돌로 거리가 온통 엉망일 텐데, 이틀 지나면 뉴욕 지하철에 물이 가득해지고 일주일 지나면 핵발전소의 냉각수 순환 모터가 정지되리라 추정한다. 자연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한다. 1년 후 고압전선에 부딪혀 희생되던 10억 마리의 새들이 자유를 구가하며, 100년 후 상아 잃을 일 없는 코끼리가 20배 이상 늘어난다는 건데, 의외로 너구리와 여우는 야생화된 고양이에 의해 밀려날 것으로 짐작한다.

 

정유 시설과 화학공장들은 어떻게 될까? 비상 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는 순간 통제장치는 기능을 잃고, 석유가스와 수소탱크가 새며 폭발해 시멘트 구조물들이 박살될 것이다. 탈황장치가 멈출 테니 산성비가 한동안 대지를 적실 것이다. 멕시코만이나 쿠웨이트의 가스매장 지대는 무척 오래, 어쩌면 영원히 불타겠지만, 공장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미생물이 석유화학 찌꺼기를 제거하면 나무가 자라오르고, 시내가 흐르면서 방울뱀과 비버도 돌아올 것이다. 우리나라 석유화학단지는 대개 갯벌 매립한 자리를 차지했다. 갯지렁이와 조개들이 들어오겠지.

 

3만 개 넘는 핵폭탄은 임계질량 넘지 않아 무사하겠지만 핵발전소는 다르다. 핵폐기물이 모인 수조의 물이 끓어넘치며 어마어마한 방사능을 함유하는 증기가 거대한 버섯구름처럼 폭발하고 오염된 수많은 동식물이 돌연히 변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체르노빌을 보라. 이간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세월이 더 필요하더라도 푸틴이 일으킨 전쟁 와중에도 겉보기 평온하다. 사람이 비키자마자 나무와 풀이 무성해졌다.

 

500년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맨해튼의 마천루 자리에 해양성 나무와 풀이 들어와 안정될 것으로 짐작하는 앤런 와이즈먼은 1000년 뒤 돌담마저 무너지면 인간이 세운 거대한 구조물은 영불 해저터널이 유일할 것으로 예상한다. 35천 년이 지나면 굴뚝산업의 오염물질이 토양에서 자취를 감추고 10만 년이 지나면 온실가스가 인류 이전 상태로 줄어들며 25만 년이 지나면 방사능이 자연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수백만 년 후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진화할 것이며 30억 년 후 상상 불가능한 갖가지 생물체가 번성할 지구는 50억 년 후 태양과 더불어 불타버릴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도 인간이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는 영원히 외계를 떠돌아다닐 것이라는데, 인간은 그 장면을 볼 수 없다. 먼 훗날보다 눈앞의 변화가 궁금한데, 낙엽에 덮일 거리는 누가 차지할까? 톡톡이와 거미를 찾아 도롱뇽과 두더지가 돌아다니고 뱀 노리는 올빼미와 족제비가 삵과 경쟁하는 동식물의 터전으로 회복하려나.

 

수억 년, 아니 수천 년도 생소한 인간은 수십 년 앞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자연을 훼손하며 하루를 불사른다. 내일을 위한다면서 미래세대의 안전을 해친다. 돈과 기술과 에너지를 들여 관리해야 유지되는 시설을 늘어놓고 뿌듯해하면서 수익을 위해 아이 세대의 생존마저 위협한다. ‘4대강 사업같은 토목건축이 그렇지만 생명공학과 핵산업도 마찬가지다. 갯벌 매립에 이은 초고층빌딩이 그렇다. 명단은 길게 이어질 것이다.

 

50년 만에 자연을 거의 회복한 비무장지대처럼 독일 베를린의 화물터미널도 50년 방치하자 자연스러워졌다. 그 부지는 공원으로 개방했는데, 비무장지대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우리 새 정부는 보전할 의지가 있을까? 휴식년제가 등산로 통행을 3년 막자 꼬리치레도롱뇽이 마등령 계곡을 되찾았지만 개방하자마자 사라졌다. 온갖 생물이 떠난 강, , 바다, 갯벌은 회복할 기회를 찾지 못하지만, 석유와 기술과 자본은 한계가 분명하다. 자연은 결국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석유는 고갈이 눈앞이다. 관리하지 못하면 콘크리트도 아스팔트도 삭는다.

 

다채로운 생물로 안정된 생태계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면서 오만해졌다.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화석연료 과소비로 자연을 지배한다고 착각하지만, 기상이변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비행기와 선박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지만, 코로나19 된서리를 맞았다. 온실가스 증가로 영구동토가 녹으면 어떤 감염병이 치명적으로 창궐할지 전전긍긍한다. 화석연료 없이 무용지물인 최첨단 기술과 도구는 생태계가 안정돼 있을 때 유용할 따름이거늘, 오늘도 순환을 거부하는 플라스틱이 지층에 쌓인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 다음 날, 도시를 스친 바람은 건물 사이에서 베르누이 정리를 증명했다. 간선도로에 드문드문한 낙엽이 골목에 쌓여 빗물에 젖었다. 그대로 두면 봄부터 톡톡이가 뜯어낸 낙엽을 미생물이 분해하겠지. 어딘가에서 도마뱀이 찾아오고 도마뱀 노리는 족제비가 두리번거리겠지. 풀이 돋으면 초식동물이 돌아오겠고, 초식동물을 노리는 육식동물도 찾을 텐데, 공장식 축사의 소와 돼지들은 다 어디로 갈까? 개와 고양이는 사람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가축을 먹어치우다 늑대와 삵으로 돌아갈까?

 

웬걸! 낙엽은 구역 미화원이 말끔히 치워낼 것이다. 앨런 와이즈먼은 왜 인간 없는 세상썼을까?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리 없으니 소용없는 상상이라는 걸 잘 알면서. 더욱 거대해지는 기계가 없다면 신기루 같은 삶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경고하는 거겠지. 그때가 언제일까? 당장 내일은 아니다. 기상이변이 해마다 심각해지지만, 내년도 아닐 것이다. 현재 환경을 30년 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한 세대 뒤의 환경을 누가 점치려나?

 

분명한 건, 환경은 과거보다 빠르게 변하고 에너지와 기술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지구촌 기상이변은 사회적 약자부터 고통을 안기건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집안은 그저 평온하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도 청소년들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뿐, 자연에 관심이 없다. 산후조리원과 요양원이 고독한 세대를 돌볼 따름이다. 그러므로 비에 젖은 낙엽이 떠올린 인간 없는 세상은 내일을 위해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중국에서 석탄을 자제해 그런지, 요사이 파란 하늘이 자주 나타난다. 중국으로 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도 화석연료다. 즐거울 수 없는 행운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파란 하늘 아래, 가을비에 젖은 거리를 지하철까지 걸으며 아침부터 생각이 많았다. 서둘러 내려가야 한다. 약속에 늦을라. (프레시안, 2022.9.23, 웹진 나비, 2022년 9월?)

 

 
 
 

도시·인천

디딤돌 2022. 9. 23. 17:03

 

“K-택소노미가 불쑥 나타났다. ‘K-드라마‘K-컬처’, 그리고 ‘K-방역을 잇는 무엇인가? K를 앞세우는 걸 보니, 한국이 선도하는 택소노미인 모양인데, 택소노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 대통령 선거 방송토론회에서 비슷한 말이 나왔다. “EU-택소노미라 했다. 에너지 관련 의미를 담았는데, 전문가 용어인 만큼 보통 사람은 일부러 기억할 필요가 없는데, 갑자기 떠들썩하다. “K-택소노미를 열심히 소환하던 언론이 친절한 설명을 이어주긴 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란다. 여전히 아리송하다.

 

택소노미(taxonomy)는 진화생물학 전공자들이 자주 사용한다. 생물종을 늘어놓듯 단순히 분류하는 게 아니라 진화체계에 맞게 순서와 범위를 정리하는 학문이다. 생물학에 한정하는 용어가 아니므로 유럽연합(EU)에서 사용했을 텐데,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범위와 관계를 분류한 체계라고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K-택소노미도 엇비슷하겠지? 아니란다. 분류가 여럿 다르지만, 환경단체는 핵발전을 분류하는 관점의 차이를 문제 삼는다. 유럽은 핵발전에 핵폐기물의 안전 관리와 보관을 명백히 확보할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두루뭉술하다는 거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핵심을 언급하지 않거나 기한을 미룬다고 지적한다.

 

생물학에서 계통분류학을 전공했지만, 이 자리에서 시민이 몰라도 되는 전문용어를 짚어볼 생각은 없다. 다만, K-택소노미든 EU-택소노미든, 녹색에너지 분류체계를 논의하는 과정과 결론을 살피고 싶다. 시민 생명이 달린 공공정책은 시민 눈높이에서 합리적이고 투명해야 마땅하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K-택소노미는 합리성과 투명성을 갖추지 못했다. 시민사회는 K-택소노미를 승인할 수 없다. 어떤 불쾌한 정권과 하수인이 ‘4대강 사업을 아무리 친환경 사업으로 위장해도 소용없는 이치와 같다.

 

과거 독재정권처럼, 택소노미를 밀어붙이고 후속 조처, 예를 들어서 핵발전소 확충이나 수명연장을 추진한다면 상상 이상의 사회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기득권이 개입하지 않은 EU-택소노미도 순탄하지 않았고, 앞으로 순탄하게 전개될 리 없다. 각국 정부와 기업의 미적거리는 대처로 기후위기가 무서워진 상황과 푸틴이 일으킨 전쟁으로 천연가스 수급이 어려워진 현실을 무리하게 반영해 유럽연합의 전문가들이 서두른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에서 거론하는 EU-택소노미에 시민사회는커녕 국가 사이의 합의마저 반영되지 않았다. 갈등이 커지면서 재검토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택소노미 타령을 늘어놓지 않겠다. 다만 환경단체가 생각하는 녹색에너지와 정부가 거론하는 신재생에너지가 다른 이유를 살피고 싶다. 햇볕이나 바람처럼, 언제든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환경단체는 녹색으로 정리한다. 빗물 댐을 계속 채울 수 있어도, 대형 댐을 기반으로 하는 수력발전은 녹색일 수 없다. 막대한 철근콘크리트로 하천의 흐름을 차단하며 주변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하지 않던가. 화석이나 핵연료를 전환하는 수소에너지와 전기에너지도 녹색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대안은커녕 위기를 부추긴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생략한 정부의 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인천시 영흥도의 영흥화력본부의 1, 2호기, 그리고 굴뚝이 두꺼운 3호와 4호기, 5호기와 6호기는 위치기 떨어져 한 화면에 담을 수 없는데, 화력에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용량인 풍력을 주위에 여럿 부설했다.

 

우리 정부는 유럽보다 재생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화석연료나 방사능을 내뿜는 핵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섣불리 판단하고 신재생에너지로 분류한다. 해양생태계를 교란하는 조력발전도 신재생에너지라고 고집해 갈등을 빚은 적 있는데, 이런! 현 정권은 한술 더 뜬다. 핵까지 신재생에너지 범주에 넣겠다는 게 아닌가! 핵연료의 치명적 문제를 누차 거론해왔으니 되풀이하지 않겠다. 다만 인천시는 어떤 자세인지, 묻고 싶다. 최근 인천시가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다행인데, 그 구체적 계획이 궁금하다.

 

인천시도 인식하는데, 영흥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 시설이 밀집된 상황을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끌어올릴 신통한 방법은 인천에 없다. 300만 가까운 시민이 거주하고 공업단지가 유난히 많은 인천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는 막대하고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어마어마하다. 그 중 거의 절반을 영흥화력발전소가 차지한다. 그런 상황의 개선이 없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은 말 잔치일 뿐이다. 인천 어딘가에 핵발전소를 도입하겠다는 주장은 아닐 테고, 요즘 맹렬하게 추진하는 해상풍력으로 보급률을 높이겠다는 걸까? 흔쾌하지 않다. 해산물 생산량이 곤두박질하면 녹색일 수 없는데, 비교해보자. 해상풍력을 모두 모아도 영흥화력발전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영흥화력발전소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인천시는 수소연료전지도 거론하는데, 천연가스를 가열해 에너지를 얻는 기존 방식이라면 소용없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 인천시는 미세먼지를 마구 내뿜는 1호기와 2호기의 폐쇄를 고려한다고 말하지만, 이제 집행해야 한다. 1, 2호기를 폐쇄한다면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지만, 거기에서 머물 수 없다. 세계를 휘감는 기상이변의 범위에서 우리나라가 결코 예외가 아니므로 화석연료 발전소 폐쇄를 서둘러야 옳다. 인천시와 정부의 정책이 가시적일 때 시민은 신뢰할 것이다.

 

추가할 정책이 있다. 정부에서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인상을 언급하는 마당에서 중요하고 시급한데, 인천은 영흥도의 화력발전소 6기 전량 폐쇄와 더불어 시민과 녹색에너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기업 이익에 초점이 모이는 해상풍력이나 수소연료전지가 아니다. 시민이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 최대로 자급할 방법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일찌감치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 펼쳐온 햇빛발전이 그것이다.

 

동네와 관공서의 크고 작은 지붕, 간선도로 방음터널의 천장, 그리고 아파트의 베란다까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예상보다 많다.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가능한 장소를 십분 활용한다면 핵발전은 물론, 화력발전을 모두 중단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주장한다. 화력발전과 핵발전 이권보다 미래세대의 생명이 중요하다면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인천시도 예외일 수 없다. (인천in, 2022.9.23)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2. 9. 19. 16:08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니, 불볕더위는 물러갔을까? 장마에 이은 국지성 가을장마로 무더위가 식었고, 태풍 힌남로가 휩쓸고 지나간 뒤라 폭염을 피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다행이라 생각할 수 없다. 태풍 피해를 입은 분이 있고 몰려든 빗물을 피하지 못한 반지하 시민도 있지 않은가. 여름철 뙤약볕이 모자라면 과일이 충분히 영글지 못한다니 불볕더위를 덜 받아 행운이라 말할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체열이 높아 여름이면 냉국수를 찾았다는데, 성년 되면서 냉면 찾는 재미에 빠졌다. 하지만 지금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40년 전 3월에 냉면을 찾아 시장 골목을 헤맨 뒤 메밀 알레르기가 생긴 이후의 일이다. 막국수는 물론이고 메밀 반죽을 썬 도마에 밀가루 반죽을 썰어 끓인 칼국수도 위험했다. 기관지가 부어올라 기침을 쏟아내야 했다.

 

40년 전 3월 어렵게 냉면을 먹은 청년은 3명이었다. 2명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혼자 퉁퉁 부어오른 몸으로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항히스타민 주사를 맞았다. 남긴 메밀이 상했던 건지 모르는데, 왜 한 사람만 민감했을까? 알 수 없는데, 복숭아 알레르기가 심한 친구는 과일 상가를 멀찍이 피한다. 주변에서 메밀 알레르기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내 메밀 허용기준치는 얼마나 될까?

 

예방 백신을 4번이나 접종해서 그럴까? 여태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 고맙게 감염된 식구도 없다. 우리 식구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높을까? 걸렸어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알 수 없다. 한데, 백신 처방 뒤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고 감염 부작용도 제각각이다. 민감 정도가 다른 건지, 허용기준치가 다른 건지, 역시 알 수 없다.

 

최근 환경부는 녹조가 심각해 보이는 낙동강 물이 안전하므로 마셔도 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자료를 제시했는데, 다른 과학적 자료를 제시하는 환경단체와 언론의 반박이 거세다. 어느 자료가 맞을까? 한 언론은 정량한계를 억지로 높인 뒤 조사한 환경부가 독소 검출을 부정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음식의 방사능과 수돗물의 불소 함량을 놓고 안전과 위험이 대립하는 사례와 비슷한데, 이번 정권에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게 아닐까?

 

사진: 4대강 사업으로 녹조가 덕지덕지 끼인 강물. 낙동강의 녹조 중에 독성 검출 논란으로 환경단체와 환경부의 논란이 뜨겁다. 환경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환경단체의 검사를 왜국한다. 개선된 방법으로 검출되면 독성을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옳다. 과학의 기본 자세를 무시하는 환경부는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했다. (출처는 인터넷)

 

조사 방법을 바꾸면 검출되지 않았던 물질이 나타나는 경우는 다반사다. 고의든 실수든, 오염이 의심되지 않는다면 검출된 방법에 문제 있다고 고압적으로 고집할 수 없다. 비과학적이다. 모종의 의도가 있지 않다면 자신은 바보라고 고백하는 꼴이다. 방법을 개선하면 검출되지 않은 물질이 나타나는 건 과학의 상식이 아닌가.

 

환경부는 왜 한사코 불검출을 주장하는 걸까? 현 정부 들어 거세질 거라 짐작한 어떤 압력에 사전에 굴복한 걸까? 그런 의심이 생긴다. 핵발전으로 기후변화에 대비하겠다는 정부의 고압적 태도가 나오자 느닷없이 신바람 난 핵과학자들의 준동은 무엇을 웅변하는가?

 

개선된 방법으로 조사하니 검출되어도 허용기준치 이하이므로 괜찮을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례는 과학자 사회의 갈등 연구에서 차고 넘친다. 누가 기득권과 주도권을 가졌는가에 따라 판이하게 나오는 평가는 신뢰할 수 없다. 나중에 평가 결과가 바뀌는 사례는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과 구소련에서 핵무기 경쟁을 벌일 때를 상기해보라. 핵실험을 한 사막에서 서부영화 촬영을 감행한 이유는 정부가 안전을 보장했기 때문이었는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예는 수두룩하다.

 

일일이 거명하기 귀찮으니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히로세 다카시 지음, 1991년 푸른산 발행)을 찾아보라. 절판되었다면 2021년 푸른역사에서 펴낸 사학자 케이트 브라운의 플루토피아을 읽어보라. 철저한 임상검사로 허용기준치를 확정한 의약품을 보라. 50년 지나도 허용기준치가 유지되는 경우는 5%를 넘지 못한다는데, 핵은 적나라했다. 수돗물의 불소도 마찬가지인데, 낙동강 녹조에서 검출된 남세균의 독소는 아니 그럴까? 정권 바뀐 뒤 환경부는 죄를 씻을 수 있을까?

 

미국 댐은 대부분 개인 소유인데, <뉴스타파>는 캘리포니아 아이언케이트 댐을 취재하며 우리 정부의 몰상식에 당혹해했다. 낙동강보다 녹조 오염이 낮아도 식수는커녕 농업용으로 공급하지 못했고, 결국 철거를 결정했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떤가? 장마와 국지성 호우로 녹조가 흘러든 경작지의 농작물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되었다. 녹조가 빠져나간 바다에 독성이 나타날 정도라는데, 환경부는 안전을 되뇐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온갖 유기물질과 휘발성물질, 중금속, 농약 성분으로 오염된 마당이므로 책임회피 할 수 있다 믿을까?

 

다대포해수욕장과 양산에서 채취한 낙동강을 분석한 환경단체는 알츠하이머와 루게릭병 같은 뇌 질환을 염려한다. 민감도가 낮은 방법으로 조사한 환경부와 산하 직원은 낙동강 물을 절대 마시지 않길 바란다. 물론 그들도 피하고 싶을 텐데, 마시자마자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는 직원의 수가 허용기준치보다 적다고 주장할지 모르므로. (지금여기, 2022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