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22. 5. 21. 00:11

 

늦은 가을이면 넓은 잎사귀를 떨어뜨리며 늦은 시간 귀가하는 중년의 마음을 쓸쓸하게 맞아주던 양버즘나무가 이맘때 전혀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이번 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모르는데, 벌써 답답해진다. 초여름이면 가지마다 잎사귀를 무성하게 펼치며 여름철의 햇볕을 차단해주던 도시의 오랜 가로수였는데, 줄기에 곰팡이를 달면서 맥을 추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년 이맘때 닭발처럼 잔혹하게 가지를 잘라낸 강전정때문일까? 이러다 도로를 가로지르며 맥없이 쓰러지는 건 아닐까?

 

연수구청 근처, 자동차 소음 심하던 아파트에 살다 2년 전 앵고개 넘어 조용한 소암마을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코로나19 이후 시내버스 배차간격이 늘어도 지하철역까지 흔쾌히 걸었다. 하루 만보걷기를 실천하려고 승용차를 없앴기에 대중교통이 불편하더라도 감당했던 것인데, 작년 여름은 고됐다. 무참하게 가지를 잃은 가로수가 잎사귀를 전혀 펼치지 못해 뙤약볕을 피하지 못한 건데, 계속되는 강전정은 끔찍했나 보다. 가지 잃고 곰팡이까지 않은 나무의 드문드문 잎사귀는 애처롭다.

 

갯벌에서 조개 캐던 주민 터전을 밀어낸 소암마을의 아파트 단지에 만개하던 이팝나무는 흐드러졌던 꽃잎을 요즘 속절없이 떨어뜨린다. 흰쌀밥을 잎사귀 위에 엎은 듯 꽃잎이 소담하던 이팝나무는 미화원의 수고 덕분에 이면도로를 수놓지만, 그늘을 거의 만들지 못한다. 뙤약볕 아래 걸으며 그늘이 필요한 시민은 땀을 흘려야 한다. 플라타너스라 부르기도 하는 양버즘나무라면 그늘 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끌어들일 텐데.

 

지방자치단체의 일상적 행정을 짐작하지 못하는데, 가로수 전정은 누가 결정하는 걸까? 닭발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처럼 볼썽사나운 양버즘나무는 연수구만 늘어놓은 건 아니다. 인천 곳곳, 아니 전국 지자체가 관리하는 가로수마다 처참한가 보다. 참다못한 환경단체가 가로수시민연대’를 결성해 민원을 제기하며 인터넷의 SNS 공간을 달군다. 어제오늘의 행동이 아닌데, 자치단체장은 왜 강전정을 방치했을까? 몰랐을까? 매연가스를 불편해하는 구민에게 많은 자치단체장은 바람길조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양버즘나무와 더불어 바람골은 사망했다.

 

환경단체의 민원과 행동이 얼마나 거셌는지, 최근 환경부는 삭발식 가로수 가지치기를 제한할 지침을 올해 안에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가로수가 생물다양성 증진에 중요 역할을 하므로 그에 맞는 지침을 지자체에 전할 모양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다행인데, 가로수 전정이 불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표준협회는 25% 미만의 전정을 권장한다는데, 우리가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관행으로 전정을 사업자에 맡겼고, 지자체는 항의 목소리를 외면했거나 듣지 못했겠지.

 

사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강전정으로 가로수의 기능을 잃어가는 도시의 양버즘나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작은 도시 비스바덴은 양버즘나무 가로수 터널로 유명하다. 넓은 보행자도로를 이중으로 감싸는 양버즘나무를 시에서 체계적으로 전정하자 터널 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주말이면 시민들의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 된다. 비스바덴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서울 대학로의 방송대학 앞 보행자도로는 건강하게 자라오른 양버즘나무 가로수가 시민들을 불러들인다. 양버즘나무는 인천이 유명하다. 자유공원의 양버즘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곧 공원으로 단장될 캠프마켓 부지의 양버즘나무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한동안 두툼한 빙하에 뒤집혔던 유럽은 수종이 다양하지 않다. 빙하에 덮인 적 없는 우리와 달리 주변에 생물이 다채로운 산록이 거의 없다. 그렇더라도 시 여기저기 공간에 다양한 나무로 숲을 조성하고 숲 사이를 가로수를 건강하게 심어 녹지를 연결한다. 동물은 물론 식물이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조성한 이른바 녹지축이다. “자연생태계의 건강성은 생물다양성 증진에 따라 좌우된다.”라고 강조한 환경부 자연생태정책과장은 생물다양성이 증진될 수 있도록 가로수를 작은 생태공간으로 가꾸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지자체가 얼마나 호응할까?

 

지금까지 무심했더라도, 새로 출범하는 지자체는 바싹 신경 쓸까? 기후위기로 해마다 더위는 심각해진다. 인천도 예외가 아닌데, 지쳐가는 시민에게 바람골이라도 선사하길 바란다. (기호일보, 2022.5.20.)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5. 16. 16:18

치킨과 건축자재 가격은 왜 올랐을까?

 

 

1년에 10억 마리 가까운 닭, 아니 치킨을 먹어서 그런가? 가격 인상에 민감해하는 가게가 눈에 띈다. 프랜차이즈는 아닌데, 어쩔 수 없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인상을 선도한 프렌차이즈는 물론이고, 동네 치킨집의 가격 상승의 원인은 무엇일까? 공장 같은 양계장에서 5주 정도 키우는 병아리나 식용유일지 모른다.

 

우크라이나 국기는 맑은 하늘 아래 해바라기꽃이 만개한 들판을 닮았다. 실제 해바라기 주요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푸틴 침략전쟁은 세계의 식용유 대란을 일으켰다고 외신은 전한다. 우리는 콩이나 옥수수를 수입해 식용유를 추출하는데, 무슨 이유로 양판점은 1인당 식용유 1병만 판다는 걸까? 국내 또는 국제 재고가 부족한 걸까?

 

사진: 우크라이나 국기는 파란 하늘 아래 자국의 해바라기 밭의 모습과 비슷하다.(출처는 인터넷)

 

현물 인도 전에 거래하는 식량이나 에너지 같은 선물시장은 소문이 자금 흐름을 좌우하면서 투기가 끼어든다. 전쟁을 빌미로 해바라기와 무관한 식용유 시장에 공급 혼란이 생기는 건 투기 때문인지 파악할 능력은 없지만,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전쟁이나 선물 거래서 식용유 가격 상승 원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콩과 옥수수는 석유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대규모 경작은 불가능하다. 파종에서 수확, 운송에서 보관에 이르기까지 곡물로 얻는 칼로리의 10배 가까운 석유 열량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국제 석유 가격이 상승하면 전쟁과 관계없이 식용유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을 텐데, 식용유만이 아니다. 수입 옥수수와 콩으로 가공한 사료로 얻는 닭고기, 달걀,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우유 가격도 들먹일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결혼식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친지 자녀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실내장식 업자는 일감이 늘어나 다행이라면서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자재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한다. 전쟁이 빚은 일시적인 현상이길 바라는데, 그가 거론한 상승 폭은 식용유보다 컸다. 전쟁보다 석유 가격의 상승이 원인일지 모른다. 원유 고갈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석유 가격 상승은 일시적일 수 없지 않은가. 에너지 위기가 다가온 셈이다. 파국을 면하려면 에너지 덜 소비하는 방식으로 삶을 바꿔야 할 텐데,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에 나서고 있나?

 

결혼 앞둔 자식에 살던 집을 양도하는 부모는 젊은이 취향의 실내장식을 위해 적지 않은 퇴직금을 내놓아야 했다. 앞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작은 집으로 거처 옮기려는 부모에게 자식이 실내장식 비용 줄이며 함께 살자고 제안하면 어떨까? 해외의 화려한 자재보다 국내 자재로 소박하게 꾸미는 실내장식 업자는 위기를 견디며 살아남을지 모른다. 다소 과장일지라도, 고급 자재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석유 소비가 줄어들며 기후변화가 완화되는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사회가 차분해지면 화려했던 건축계 종사자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할 텐데, 무엇이 좋을까? 위기가 현실이 되면 식량과 에너지 분야의 가격은 지금보다 무섭게 춤을 추며 상승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업은 반드시 전환해야 한다. 국가도 건축과 행정의 획기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멀지 않은 조상처럼 제 땅, 적어도 마을에서 농작물을 생산해 자급하는 일상이다. 신기루 같은 경제성장과 선진국 망령에서 벗어나는 정책이다.

 

개발 공약이 난무하던 대통령 선거의 후유증이 남은 상태에서 며칠 지나면 전국은 지방선거 회오리에 빠질 것이다. 전국 광역지자체와 기초자치단체의 단체장과 의원 후보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어도 공약은 분명치 않은데, 분명한 것은 여전히 개발이 대세다. 공항, 철도, 간선도로에서 사업자의 몫인 관광산업까지, 막대한 석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약속이 대부분인데, 기후위기는 물론이고 석유위기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

 

치킨과 건축자재의 가격 인상은 일시적일 수 없다. 무섭게 치솟는 가격은 새롭게 출범하는 중앙과 지방정부에 새로운 일상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데, 후보들의 관심 밖이다. 코로나19가 주춤하자 시민의 경각심도 무뎌졌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는 코로나19와 차원이 다른 경고를 보낼 텐데, 파국을 외면하는 분위기에서 에너지 낭비에 익숙한 일상과 헤어지는 삶을 상상한다. 늘 그랬듯 허튼일이지만, 미래세대의 생존을 생각하니 중단하기 어렵다. (지금여기, 2022516)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5. 7. 21:45

 

대선 앞두고 한 방송사에서 조선 초기의 사극을 편성했다. 다분히 시청률을 의식했겠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다. 다만, 경제성장을 위해 환경을 노골적으로 탄압할 가능성이 큰 정권으로 넘어갈 즈음이므로 그 사극에 나왔을지 모를 두 인물의 시조를 생각해본다. 역사의 교훈과 전혀 관계없다.

 

고려를 지키려는 정몽주와 조선으로 넘어가려는 이방원 사이에 오고 간 시조에 두 종류의 새가 등장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싯구에 대해 겉 희고 속 검은 이 너(백로)뿐인가 하나라하며 충돌한다.

 

역사의 결말은 잘 알 테고, 백로 속이 검은지 모르지만, 요즘 속은 물론 겉까지 검은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녹색 분칠을 한다. 이른바 그린와싱이다. 과육은 붉은데 껍질이 푸른 수박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바와 관계없이, 덕지덕지 녹색 분칠하는 기업은 어디인가? 화력과 핵발전소에 설비를 납품하는 두산이 그렇고 자동차 내연기관을 가장 많이 만드는 현대가 그렇지만 으뜸은 포스코.

 

그림: 포스코에서 제시하는 수소환원제철의 회로. 하지만 합리적 근거 없이 선언에 그칠 뿐이다. 언제 어느 용량의 수소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다.(그림은 인터넷에서)

 

기후악당국가의 악명을 지우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은 단연 포항제철의 다른 이름인 포스코다. 국내 이산화탄소의 13%를 배출하면서 포스코 뒷자리가 녹색으로 변하는 광고로 의식 있는 시청자를 조롱한다. 문제 삼으면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 텐데, 그 기업은 철 제조 과정에서 감당 못할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해 반드시 중단해야 할 화력발전소를 이 시간에 짓고 있다.

 

탄소를 퍼부으면 철이 깨끗해지지만 엄청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현재 포스코의 일이 그렇다. 탄소 대신 수소를 퍼붓는다면?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물이 나올 것이다. 포스코는 2030년부터 수소 사용을 시작할 것처럼 약속을 남발하지만, 그때는 늦다. 게다가 쉽지 않을 텐데, 광고는 녹색 분칠이다. 과연 젊은이들이 속을까?

 

녹색분칠 행사장의 연단에 의식 있는 젊은이가 들이닥쳐 단말마를 토했다. 산업자원부 장관이 실상을 파악하리라 기대한 건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앞날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걸 표현했는데, 이런! 현 정부는 의로운 젊은이에게 벌금 수백만 원을 안겼다.

 

작업장에서 해마다 여럿 사망케 하는 포스코는 장차 얼마나 많은 수소가 필요하고, 순수한 수소를 모으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허비되며 온실가스를 내뿜는지 밝히지 않는다. 비윤리적인 그 기업은 세대정의를 무시한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의 숨결을 옥죄려 드는 걸까?

 

지구의 날며칠 뒤 서울 강남의 포스코센터앞에 모인 젊은이는 굴지 대기업의 그린와싱에 분노했다. 기득권 이익을 반영하는 근대문명보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염려하는 녹색문명을 요구했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시민들은 그린와싱을 이해했겠지? (갯벌과물떼새, 2022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