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4. 12. 16:44

 

몇 차례 봄비가 땅을 흥건하게 적시니 가로수마다 초록빛이 감돈다. 시청 앞 광장의 잔디도 제 모습을 갖춰간다. 잔디가 아직 활착되지 않았을까? 시청을 바라보며 확성기 소리를 키우는 시위대는 광장에 들어서지 않는다. 허가가 필요한 걸까? 시청 광장의 집회와 시위에 참여한 적 없어서 알지 못하는데, 잔디 주변 확성기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귀찮아할 듯한데,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시끄러워야 민주주의라고 일찍이 말했다.

 

시청을 향해 열변을 토하는 시민들은 영흥도에서 왔나 보다. ‘인천에코랜드라고 이름을 붙인 쓰레기 매립장을 반대하는 이유를 큰소리로 외치는데, 논리적이다. 귀담아듣는 이 드물지만 중단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반응이 보이지 않아도, 시청의 담당자는 듣고 있을 것이다. 대책을 세울지 모른다. 주변 사무실은 창문을 닫았던데, 아쉽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천에코랜드의 필요성과 적절한 위치를 사전에 충분히 논의했다면 광장이 시끄럽지 않았을지 모른다.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시민이라면 매립장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므로.

 

사진: 광화문 촛불집회의 모습. 

 

연수구에 트럭터미널 부지가 확정된 모양이다. 반대 목소리가 크더니 요즘 잠잠하다.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 논점과 합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트럭 출입으로 집 주변에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를 반길 리 없는데, 주민들은 왜 잠잠해졌을까? 불이익을 보상할 대책을 받아들였을까? 일이 바빠 반대 목소리를 계속 내놓지 못하는 걸까? 어렵게 정한 정책에 더는 반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까? 조용해진 건 다행인데, 충분한 논의로 트럭터미널을 추진하는 이의 의견을 이해한 것으로 믿고 싶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사패산 구간의 터널이 20057월에 완공되었다. 국립공원 구간을 관통하기에 환경단체와 불교계에서 반대해 2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이제까지 특별한 사고 없이 운영된다. 생태계 교란 문제가 뚜렷하게 대두되지 않아 다행인데, 2년 동안의 반대 집회와 논의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시끄럽지 않았다면 공사 당국은 사고 위험과 생태계 교란 가능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군사독재 시절처럼, 공익을 강조하며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면? 이후 계속 발생할 사회갈등을 피하지 못할뿐더러 본래의 공익도 손상되었을 게 틀림없다. 시끄러웠기에 그런 점을 공감했다.

 

이제 생각해보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구간이 뚫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편할까? 한데,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의 노선이 최선일까?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사전에 충분히 논의했다면 다른 노선도 가능했을 것이다. 터널 이외의 대안도 있었을지 모른다. 터널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사패산 봉우리를 고치처럼 관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생태계 교란의 범위를 더 줄였을지 모른다. 국립공원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KTX의 천성산 터널도 아쉬웠다. 환경단체와 불교계에서 반대하면 공사를 중단하고 대안을 먼저 찾아야 했지만 어떠했던가. 터널 구간 바로 코앞까지 나머지 구간의 공사를 서둘렀고, 대안이 없다고 강변하지 않았나.

 

사진: 분별없는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인터넷에서)

 

2외곽순환고속도로가 하필 람사르 습지보호지역을 관통하겠다고 한다. 세계 5대 갯벌인 서해안은 시방 위축될 만큼 위축되었다. 인천은 그 정도가 심해서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보다 좁게 남았지만, 그 자리에 수많은 철새와 나그네새들이 필사적으로 모여든다. 2외곽순환고속도로는 마지막 갯벌마저 반드시 교량으로 통과하며 생태계의 가녀린 숨결을 틀어막아야 할까? 교통과 비용을 따지면 교량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생태계를 생각하면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속가능하게 건강해야 할 후손을 생각하며 논의를 거듭한다면 비용을 더 감당하더라도 다른 방안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해안이 좁은 독일은 화력발전소를 도시를 관통하는 작은 하천 옆에 지었다. 애초 강력한 반대가 있었어도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주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긍정은 물론이고 부정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솔직하게 밝히고 다양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기에 합의안을 찾았을 것이다. 쉽지 않은 정책을 결정하려면 시끄러워야 한다. 시끄러운 논의를 충분하게 진행한 이후의 합의는 단단하다. 상대 의견을 존중하며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양보와 타협하며 결정하기 때문인데, 그런 시끄러움은 그 사회에 신뢰를 쌓게 한다. 신뢰는 막무가내 시끄러움을 회피하게 만든다.

 

인천시청 앞 푸른 광장은 시끄러운 잔디마당이어야 한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물러난 이후 잔디광장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광장은 민주주의에서 훨씬 빛나지 않던가. (인천in, 2021.4.12.)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4. 6. 18:38

자연스러움이라는 영성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나이 차가 큰 연인과 진전된 내일을 약속하려 할 때, 시샘이나 걱정을 섞어 참견하려는 친구가 꼭 있다. 그 친구에게 건네는 대답이 대개 그렇겠지만, 생각해보자.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할까? 새내기 학자의 참신한 생각이 노련한 선배의 권위로 번번이 무산될 때 비슷하게 내뱉고 싶어도, 사실 경륜은 무시할 수 없다. 한데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강고하다. 인생의 성패를 나이로 단정하려는 시선은 여전하다.

 

구내식당은 대개 12시에 문을 연다. 누구나 그 시간에 배고픈 건 아니지만 정한 시간에 일하고 쉬는 직장이니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누구나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제 나이가 있는 건 아니다. 취직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대학교 입학을 위해 어려서부터 국··수에 골머리 아파야 하는 건 아닌데, 의당 그렇게 한다. 그 터널을 어렵사리 통과하고 중견 기업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일로 혹사당하는 젊은이들은 시시각각 내가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면서 시계만 본다.

 

시간에 매듭이 없건만 많은 사람은 정초 막히는 길을 뚫고 동해안을 향한다. 어떤 다짐이 필요했는지 모르는데, 11일 해 뜰 녘이어야 하나? 21세기 맞아 세계가 시끄러울 즈음, 시계 밖의 시간의 저자는 땅, , , 바람, 얼음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7년 뒤 , , ,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에서 그는 땅의 세상 원주민이 권한 아야와스카 경험을 썼다. 선교사보다 무한히 친절한 원주민의 우울증 치료제였다. 원주민을 개종시킨 선교사는 약초로 만든 아야와스카를 사탄의 약이라며 저주했지만, 시계 없는 세상이 낯설어 어지러웠던 여행자는 심한 구토 뒤 말끔히 나았다. 아야와스카는 그들의 문화, 송라인이었다.

 

세상마다 다른 송라인에 우열은 없다. 반면 시계 안의 시간은 정확해야 한다. 당연히 우열이 엄격하다. 얼음 세상의 송라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교사는 70가지 넘는 눈의 이름을 스노우(snow)로 통일시켰다. 그러자 눈의 특징과 방향을 잃은 이누이트는 사냥터에서 맥없이 죽었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송라인을 잃은 것인데, 우리도 잊었다. 몇 가지는 민요라며 새삼스레 기념하지만, 시계 안의 규칙대로 살아가면서 몸이 기억하던 노래와 춤사위를 잊었다. 백신이 할머니 약손을 대신하자 세상은 온기를 잃었다.

 

전쟁에 전진과 퇴각만 있는 건 아니라 그랬을까? 군사독재 정권이 구상한 강원도 일원의 군사종합훈련장은 십자 지형이고, 면적이 1억 평이라 했다. 전폭기는 물론, 함대까지 참여할 훈련이므로 면적이 커야 하고, 감당할 지역은 강원도뿐이라 했다. 지역 송라인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저항했다. 그들의 초청으로 찾아간 점봉산. 식물을 전공한 선배는 목소리를 낮췄다. 귀엣말로 자신도 처음 만나는 극상림이라고 경외했다. 아름드리나무가 신전의 기둥처럼 드문드문 선 산록에 다채로운 풀숲이 내뿜는 신비. 선배는 자신을 낮췄다.

 

금수강산의 거대한 나무를 대부분 베어낸 일제는 경사 급한 점봉산은 접근하지 못했는데, 그 후손은 합동훈련이라는 미명으로 우리 숲에 함포를 퍼붓는다는 것인가? 몸을 떨었던 주민과 환경단체의 노력이 효과를 보였을까? 함포가 제외되면서 훈련장 면적이 대폭 축소되더니 군사정권이 물러났다. 훈련장 계획도 흐지부지 사라졌는데, 강원도는 송라인을 보전하는가? 고속도로, KTX, 골프장과 스키장, 케이블카 계획으로 여전히 위협을 받는다. 피 말리는 속도와 경쟁을 요구하는 시계는 송라인을 외면한다.

 

사진: 수쳔년을 살았을 나무를 만나면 깊은 경외심에 사로잡힌다. 

 

어제를 향해 걷다의 저자는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서 조몬삼나무를 뵙고 만난 제비꽃 한 송이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7200년 살아온 조몬삼나무는 야쿠섬의 할아버지이자 송라인이다. 조몬삼나무가 계시니 여기에서 어제를 향해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시계를 버리는 삶인데, 미국 동부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여인은 자신의 경험을 나무 위의 여자에 썼다. 비명을 외면할 수 없어 무작정 서쪽을 찾은 그는 벌목 위기에 몰린 삼나무에 올라 2년을 맨발로 버텼다. 그제야 클린턴 행정부가 송리인의 비명을 들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삼나무 숲에서 내려온 저자는 용기를 심어준 나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며칠 전, 공영방송이 편성한 자연다큐를 보았다. 시베리아 아무르강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이어지는 장엄한 송라인을 소개했지만, 아쉬웠다. 큰고니, 마도요, 엽낭게들이 펼치는 서사시는 감동적이지만, 사실 아슬아슬하다. 굽이굽이 흐르는 아무르강이 온전하기에 번식할 수 있는 겨울철새들은 비좁아지고 오염된 을숙도에서 위기에 몰린 지 오래다. 아시아 최대 삼각주였지만 쓰레기매립장과 아파트단지로 버림받지 않았나. 대형 보와 댐으로 거듭 틀어막혀 백두대간의 모래와 영양분이 을숙도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귀띔하지 않았다.

 

자연이 만든 리아스식 해안은 태곳적부터 안전하다. 수많은 생물이 터를 잡아 번성했는데, 시계를 찬 인간은 그 자리를 메워 공항, 공단, 아파트단지, 핵발전소를 커다랗게 지었다. 10년 전 후쿠시마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피하지 못했는데, 악몽이 최근 되살아났다. 1년 연기한 32회 도쿄올림픽은 가능할까? 태곳적 파묻힌 화석연료를 한꺼번에 탕진하려는 탐욕은 대기권에 온실가스를 쏟아냈고, 그린란드 빙하는 히말라야 빙하와 더불어 맹렬하게 녹는다. 200명을 집어삼킨 인도 북부 계곡의 얼마 전 쓰나미는 파괴되는 송라인의 경고다. 그린란드가 녹으면 해수면은 7상승한다. 인구 2600만의 상하이는 대책이 없을 텐데, 인천공항과 새만금은 견딜까?

 

제주도 제2공항을 대다수 주민이 반대하는데, 강행하려나? 김해공항이 비좁으면 탑승객을 줄이면 된다. 가덕도 바닷가에 공항을 다시 만들어야 할까? 한 시간 안에 서울로 가기 위해 백령도와 울릉도와 흑산도에 공항이 필요하단다. 면적 대비 세계 최장인 고속도로는 백두대간과 13개 정맥을 이리저리 끊었는데 KTX도 한몫한다. 2천만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은 GTX로 사통오달해야 인천을 비롯해 제1, 2, 3, 어쩌면 제4 신도시의 고층아파트가 잘 팔리겠지. 온실가스가 쏟아질 일만 남았다.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는 북극권 제트기류를 풀었고 냉기가 미국 46개 주를 눈보라에 파묻었는데, 거기에서 그칠까?

 

에드워드 제너가 백신을 최초로 찾아낸 1796년 이후 천연두는 200년 만에 사라졌다.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백신을 맞은 뒤 소아마비는 자취를 감췄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1년 만에 1억 명의 세계인을 감염시켰다. 천연두 이전의 페스트, 코로나19 이전의 독감도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감염병들은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도록 이끌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오만해진 인류를 더 큰 위기로 몰았겠지. 자연은 아량이 넓었다. 자연의 경고를 한사코 외면한 인류는 위기를 증폭시켰다. 시계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지만, 자연은 아량을 잃었다.

 

최초 경작이 문제였을지 모르는데, 저장 식량으로 거침없이 늘린 인구가 도시에 밀집하자 감염병이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굽이치는 강과 리아스식 해안을 콘크리트로 매워 빌딩을 밀접시키자 그 안에 밀폐된 사람들이 쉽게 감염되고, 감염병은 비행장과 고속도로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농토마저 콘크리트로 칠갑하더니 모자라는 식량을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으로 해결하겠다며 화석연료를 펑펑 태운다. 송라인 잃은 자연은 재난을 부르지만, 화석연료와 과학기술을 난폭하게 동원하는 인류는 오만불손하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가 녹으며 한대림이 불길에 휩싸인다. 메탄가스가 분출하기 때문인데 얼어붙었던 척추동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머드만이 아니다. 티베트고원이 드러내는 동물도 이미 죽었지만, 동물을 감염시킨 바이러스는 살았다. 동토를 빠져나가 슬금슬금 퍼질 바이러스가 사람도 감염시킬 가능성을 학자들은 배제하지 못한다. 송라인 잃은 자연에서 우리는 영성을 느끼지 못한다. 백신이라는 시계가 콘크리트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에 영성은 깃들지 못한다. 영성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조몬삼나무와 극상림에서 겸손해지는 인간은 송라인을 간직한 흙, , 사막과 얼음 세상에서 영성을 얻는다. 송도신도시가 없을 때, 아암도 갯바위에 걸터앉은 인천사람은 가없는 갯벌에서 영성을 느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축복 속에 먼 길 떠나는 노인을 배웅하면서 영성을 얻는다. 요양원이 아니다. 침 튀기며 할렐루야! 외치는 밀폐공간보다 텅 빈 예배당에서 영성을 찾는 신자들이여, 내 탓이라 외치며 남 살피지 말고, 시계를 내버리고 힘껏 끌어안자. (가톨릭일꾼, 2021년 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3. 31. 07:01

 

요양원과 요양병원 종사자부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집단면역이 형성될까? 접종 방법과 효능, 그리고 면역 유지 기간이 제각각인 백신들로 전 국민의 70% 이상에 면역이 형성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전문가들은 여러 여건상 올해 안에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추정한다. 백신을 불신하는 일부를 제외하고, 90% 이상의 국민이 접종해야 70%의 집단면역을 기대할 수 있다는데, 바이러스가 순순히 물러날지.

 

내부 유전자가 RNA인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 정도 빠르게 변화한다는데, 코로나바이러스도 RNA. 영국과 브라질,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기존 백신의 효능을 의심스럽게 만든 변이체가 출현하자 우리 정부는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감염되지 않았다는 증명을 요구했는데, 우리뿐 아니겠지.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달라질까? 백신 접종 증명을 요구하려나? 그를 기대하며 항공기를 예약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해외 소식이 들린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지만, 다국적 제약회사가 인류애를 발휘해 가난한 나라에 최신 백신을 원가 이하로 적량 적시에 공급한다면, 코로나19에 대한 온갖 음모론은 힘을 잃을지 모른다. 이 자리에서 음모론은 잊기로 하자. 의료 역량에 여유가 있는 국가들이 일제히 접종한 후, 여유 없는 국가를 전폭 지원해 차례로 집중적 접종한다면, 지구촌의 집단면역도 가능할까? 몽상일지 모르는데, 그때 지구촌 모든 공항의 출입이 자유로워질까? 현재 문 닫았거나 찻집으로 바꾼 여행사무소는 다시 바빠지고 국제공항은 북적이게 될까?

 

보궐선거 시국을 맞아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가덕도 신공항이 순항하려나? 순조롭다면 2029년 완공될 것으로 점치는 정부는 2관문일 가덕도 국제공항으로 부산과 경상권이 국가 균형발전의 초석이 될 거로 소문을 낸다. 예비타당성을 조사도 없이 수도권과 경쟁하며 세계적 물류 거점이 된단다. 부산시장에 출마하려는 후보들도 정당 구별 없이 합창했는데, 정작 가덕도 주민 상당수는 시큰둥하다. 가덕도 표는 중요하지 않겠지.

 

2006년부터 정부와 영남권은 균형발전을 앞세우면서 신공항을 거론해왔다. 2025년이면 김해공항이 포화한다는데 호남권은 조용하다. 목포와 무안의 공항 덕분에 균형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2002년 돛대산의 민항기 사고를 거론한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1993년 목포공항의 민항기 사고는 언급하지 않았다. 목포의 사고는 기장의 실수였고 김해공항 사고는 지형의 한계였을까? 장관 교체 이전에 국토교통부가 제기한 문제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조목조목 제시한 사항은 쉽게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경험 많은 항공기 기장은 가덕도가 안전하다는 데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림: 가덕도 신공항의 조감도. 공항에 착륙하려는 비행기에 무엇이 사람과 동승할까?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서산시장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공항 없는 충남을 대표해 누군가는 찍소리라도 내야 할 거 같다며 살신성인을 자처한 그는 관광과 레저 인구의 급증으로 충남 서해안이 경제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내세우면서 가덕도 신공항의 0.68% 비용이면 건설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치력이 부족한 충청남도라 무시했다는 투였는데, 당시 정치력이 막강해 공항이 생긴 무안과 양양은 이 순간 균형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있을까?

 

가덕도처럼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새만금의 공항에 120억 원에 달하는 정부 예산이 반영되었다. 그 공항은 전북 발전의 초석이 될까? 1억 평이 넘는 매립지는 현재 허허벌판이다. 무엇으로 채워야 찾는 사람이 늘어날까? 거듭 바뀌는 청사진은 인천의 송도신도시보다 훨씬 휘황찬란하지만, 신기루 같은 희망사항이다. 요사이 거론되는 계획은 핵발전소 서너 배 규모의 태양광발전소와 스마트 농업이 전부다. 찾는 이가 늘어날 리 없는데, 더 생각해보자. 주변에 막대한 매립토가 없는 새만금 간척지는 해수면보다 낮을 거로 예상한다. 해수면 상승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20189월 태풍 제비가 휩쓸자 일본 간사이공항은 25년 만에 폐쇄되었다. 육지에서 5km 떨어진 바다의 연약지반을 깊게 매립해 만든 공항은 지반 침하를 대비했다지만, 예상보다 빠른 침하가 그치지 않더니 태풍에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 해수면보다 15m 높게 시공했지만, 6년 만에 11m 이상 가라앉았고,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을 감당했어도 수면에서 2m를 남길 따름이었다. 태풍이 휘몰아치자 폭우와 넘치는 바닷물에 50cm 이상 잠겼는데, 가덕도가 김해보다 태풍에 강할 거라 믿을 근거는 없다.

 

수온이 오를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태풍은 다가오는 횟수까지 늘었다. 그뿐인가. 바닷물의 부피가 커져 해수면이 오르는데, 힘겹게 복구한 간사이공항은 언제까지 마음 놓을 수 있겠나? 간사이공항만이 아니다. 바닷가에 지은 중국 상하이의 푸둥공항과 싱가포르의 창이공항도 사정은 비슷한데, 코로나19 이후 이용객이 대폭 줄어든 인천공항도 예외일 수 없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코로나19를 제압해도 소용없다.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다면 바닷가 공항은 규모와 관계없이 기능을 잃을 것이다.

 

지난 2월 인도 북부 산악지대의 200여 주민이 산사태로 희생되었다. 폭우로 붕괴한 히말라야 빙하가 강을 휩쓸어 발생했는데, 전문가는 지구온난화를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빙하가 녹으면 인더스강은 바싹 마를 것이다. 인도는 어떻게 될까? 인도만이 아니다. 히말라야 빙하에 생존을 맡기는 지역은 상당히 넓다. 히말라야를 방문한 아이슬란드 소설가는 자신의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에서 빙하를 녹이는 기후위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이웃 그린란드의 빙하가 맹렬하게 녹지 않던가.

 

그린란드 빙하가 사라지면 해수면은 7m 상승한다. 크레바스가 갈라지며 녹는 속도는 예상을 초월한다. 금세기 이내에 흔적마저 잃을지 모르는데, 남극 빙하도 예상을 앞당길 태세다. 지난달 27일 서울 면적의 2배에 달하는 빙하에 금이 생겼다. 머지않아 떨어져 나갈 모양이다. 해수면은 그만큼 더 상승할 것인데, 사람들은 여전히 태평하다. 고래 먹이인 크릴새우를 탕진하기 혈안일 따름이다. 북극 얼음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빙하가 줄어든 만큼 햇빛 흡수량이 늘어나는 북극해는 더욱 따뜻해졌다. 냉기를 가두던 제트기류가 느슨해지자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가 차례를 바꾸며 혹한에 시달리는데, 기회인가? 북극항로가 열렸다며 반기는 사람들은 원유시추 장소를 탐색한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의지를 정부에 주문한 대통령은 2030년 이전의 완공을 요구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와 생태계의 멸종을 염려하는 유럽은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와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2030년까지 멈추려는데, 2050년 탄소중립을 선포한 우리 대통령은 균형발전을 위해 비행장을 서두르라고 다그친다. 비행기는 어떤 내연기관보다 온실가스를 강력하게 내뿜는데, 온실가스 배출 세계 10위 권인 한국에서, 해수면은 언제까지 안녕할까?

 

막대한 철근콘크리트가 필요한 공항은 토목건설 자본에 눈물겨운 이익을 안기겠지만, 기후위기는 그만큼 증폭된다. 콘크리트는 무게의 90%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파국을 만날 생태계는 감염병은 완충하지 못한다. 비행기와 고속도로를 타고 퍼지는 코로나19로 그칠 리 없다. 지금도 녹는 영구동토의 포유류 사체에서 깨어날 인수공통질병 병원균은 더욱 빠르게 창궐할 게 틀림없다.

 

공항은 다음세대를 위협한다. “2050 탄소중립의 적이 되지 않으려면텅 빈 공항에 고추를 말리자고 한 의원이 제안했더니 여당의 한 의원은 걱정을 말라고 응수했다. 2035년이면 전기와 수소 항공기가 취항할 거로 상상했는데, 교활하거나 멍청했다. 연료가 바뀌면 탄소중립이 보장되는가? 온실가스 배출이 필수인 경제성장으로 지역 균형이 이루어지는가? 시대착오적 발상이거늘, 탄소중립이라니. 어설픈 속임수를 넘어, 다음세대에 대한 위협이었다.

 

코로나19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류에게 반성을 요구한다. 생존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면 파국적인 탐욕을 당장 버리라고 촉구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경제성장은 가당치 않다. 있는 공항과 고속도로를 없애거나 대규모로 줄여 느리게 사는 균형이 생존을 위한 마지막 대안이다. (작은책, 2021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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