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21. 3. 9. 18:29

 

싱가포르 수상 리콴유는 에어컨을 20세기 최고 발명품으로 추켜세웠다는데, 미국 과학한림원은 양변기를 포함한 상하수도 시스템을 인류에 최고 혜택을 준 20세기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한다. 에어컨을 여태 몰랐다면 제주도의 3분의 1인 싱가포르는 느리게 살아가는 어부와 신출귀몰한 말레이 해협의 해적이 출몰하는 적도 지역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고질적 악취와 질병을 도시에서 몰아낸 수세식 양변기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30년 연장했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대소변이 눈앞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게 만드는 상하수도 시스템은 마술이었다. 머리 위에서 느닷없이 쏟아지는 배설물을 막는 얇은 코트와 발에 묻지 않도록 신던 굽 높은 구두가 수세식 양변기를 계기로 유행을 선도하는 장신구로 위상을 바꾸게 되었다. 역시 마술이었는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걷잡을 수 없는 수인성 전염병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 부유한 도시부터 도입했을 것이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도시를 뒤덮은 오물과 무관하지 않았다. 벼룩이 달라붙은 쥐들이 거리를 휩쓸 뿐 아니라 크고 작은 개천과 하천이 모두 불결해 옷도 음식이 깨끗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감염병뿐 아니라 피부질환도 흔했을 텐데, 침방울로 전파되는 페스트가 치명적으로 창궐했다. 세균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할 어떤 수단도 없던 당시는 죄가 깊은 탓이라 여겨 기도에 몰두했지만, 소용없었다, 죄를 사해주던 사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의사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십자군 전쟁과 페스트 악몽은 신에 의지하던 사회를 계몽시켜 인류는 드디어 르네상스 시대를 펼치게 되었다고 우리는 배운다. 학문과 기술이 함양되고 신보다 사람에게 합리적인 제도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종교 섭리의 족쇄가 풀리면서 자유로워진 연구와 논쟁 덕분에 과학도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오염된 물로 전파되는 병균의 존재는 현미경으로 세포를 1665년 관찰한 로버트 훅 시대에서 한참 지나야 파악할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1930년대에 알았다는데, 희생자가 터무니없이 이어지던 감염병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학이 실생활에 다가온 영향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새삼 확인한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1억 명이 넘는 세계 인구가 감염되고 그중 220만 넘게 희생되었지만, 서광이 보인다. 자본력을 갖춘 초국적 제약회사의 집중 연구로 효능과 안전성을 기대하는 백신이 속속 개발되고, 물량이 모자랄 정도로 접종 중이다. 이제까지 8만의 확진자와 1500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우리나라도 접종을 시작할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놀라운 과학이 감염병을 극복한 역사를 다시금 기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페스트는 왜 하필 14세기 유럽에 무섭게 창궐했을까? 세균 품은 쥐벼룩과 쥐가 도시와 농촌에 돌아다니는 건 14세기 이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비슷했는데, 역사학자는 당시 냉기가 몰아쳐 수확을 건지지 못한 농노들이 굶주리며 도시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배설물과 더불어 쥐와 벼룩이 골목에 널렸을 게 틀림없다. 농촌과 농노가 건강했다면 페스트는 막강한 교회를 무너뜨릴 정도로 창궐하지 못했을지 모르는데, 비슷한 일은 1918년에 반복되었다.

 

1차대전 참호의 젊은 병사 수백만을 희생시킨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는 애초 독성이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유전자가 변했다. 독성과 전파력이 치명적으로 강해지자 당시 세계 인구의 2% 이상 사망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산한다. 부패한 시신이 강에 떠다니자 소스라치게 놀란 인도 농민들은 도시의 슬럼으로 파고들었고, 슬럼에 독감이 번지자 헐벗은 난민 천만 이상이 한꺼번에 사망했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 요즘 아무리 위험한 독감이 창궐해도 1918년 같은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사진: 초등학교의 단체 예방주사의 한 장면. (인터넷 자료)

 

코로나19도 독감처럼 유전자가 쉽게 변하는 RNA 바이러스다. 방역당국은 3, 다시 말해 밀집, 밀폐, 밀접을 피하라고 당부하고 시민들을 대부분 응한다. 정부 지침에 맞게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진정 기미를 보이는데, 감기와 독감 환자가 크게 줄었다. 다른 호흡기 질환도 줄었을 텐데, 사람은 본디 거리를 두고 살지 못한다. 그렇게 진화되지 않았다. 백신이 나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도 접종받을 코로나19 백신의 효능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독감은 6개월 정도라는데, 코로나19는 그 이상일까? 집단면역이 생기려면 얼마나 많은 인구가 얼마나 자주 주사 맞아야 할까?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으면 집단면역은 유지될까? 가능하다면, 꼭 그래야 할까?

 

무증상 감염이 생소해서 그랬는지, 많은 국가에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증상이 없는 젊은이가 면역이 약한 노약자에 전파해 목숨을 잃게 했는데, 이번 백신을 계기로 코로나19가 사그라지길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잦은 변화로 감염성과 독성이 강화될 수 있으니 마음 놓을 수 없다. 백신과 치료제도 개선되어 2019년 중국 우한에서 퍼진 코로나19는 결국 사라질 거라 기대해보자. 하지만 감염병은 계속될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무슨 감염병이 발생할지 누구도 점칠 수 없지만,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한, 걷잡기 어렵게 나타날 가능성은 무척 크다. 과학이 언제나 대처해줄 것인가? 그때마다 사람들은 철저한 거리두기에 동의할까?

 

거대해진 과학은 막대한 자본이 이끈다. 제약회사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신속하게 지원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신기술을 개발하지 않을 텐데, 자본은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1930년대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치명적이지 않아 그랬는지 과학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거대 기술과 결합한 요사이 과학은 석유의 지원이 없으면 결과를 내지 못한다. 플라스틱 없이 진단과 처방이 불가능한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사람은 물론, 가축과 농작물에 대한 감염병 백신과 치료제 대부분이 그렇다. 한데 석유는 한계를 보인다. 고갈된다면 더욱 무서워질 감염병에 우리는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에 직면한 우리는 과학에 모든 걸 맡길 수 없다.

 

6번 교향곡 초연에서 혹평받은 차이콥스키는 화를 달래려 벌컥벌컥 마신 냉수로 콜레라에 감염돼 사망했다는데, 유럽에 페스트와 콜레라가 만연할 때 희생자가 거의 없는 지역이 있었다고 한다. 화강암 모래가 강물을 정화하는 곳이었다는데, 우리나라의 하천은 대부분 화강암 모래가 물을 정화하며 흐른다. 그래서 그런지, 페스트도 콜레라도 몰랐다. 대형 댐과 보에 흐름이 막힌 요즘은 아니다. 예로부터 그냥 마셨던 크고 작은 강이 더러워졌다. 오염된 강물을 과학으로 정화하지만, 미덥지 못한지 끓여서 마신다.

 

기후변화가 심할수록 우리는 과학을 생각한다. 하지만 성장과 번영을 앞세우는 과학은 기대를 외면한다. 자본에 의존하는 과학은 지속 가능한 내일을 제시하지 못한다. 어떤 과학이어야 할까? 적도의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에어컨일까? 일찍이 장자는 기계에 의존하려는 마음, 다시 말해 기심(機心)을 경계했다. 기계에 의존할수록 순수성을 잃고 탐욕스럽게 변한다고 지적했다. 일찍이 무지를 극복하도록 이끈 과학은 재앙을 예방하게 했다. 지속 가능한 길을 제시했을 텐데, 그런 과학에 생태적 사유는 물론,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맥락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개발, 발전, 선진국을 추동하는 근대문명은 화석연료 과소비에 이은 기후위기를 심화시켰다. 콘크리트로 고층빌딩을 돋아 올릴수록, 고속도로와 공항이 늘어날수록 물과 공기는 더러워지고 자연은 위축되었다. 생물다양성을 잃고 완충력이 파괴된 생태계는 인간사회에 코로나19를 불러들였다. 찬란한 과학을 거듭 동원하더라도 생태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기상이변과 감염병은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파국을 만난 생태계에서 후손의 삶이 멈추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코로나19가 던지는 묵직한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생존 가능한 내일을 어떻게 열어야 하나? 탐욕이 견인하는 과학은 그 답을 모른다. 21세기의 인류는 제2 코로나와 제2 페스트를 부를 정도로 치명적으로 번영했다. 치명적 무지를 극복하게 할 과학이 다급하다. (작은책, 20213월호)

 

 
 
 

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9. 2. 18. 17:28


규제샌드박스. 우리 정권의 고위층에서 작명했다니 어처구니없다. 명확하고 예쁜 우리말을 찾지 못하겠다면 한자말을 쓰던가. 세종대왕께 송구스럽게 영어에서 명칭을 동원하다니. 고관대작답지 않게 가볍지만, 명칭이 아니라 내용이 큰 문제다. 촛불 덕분에 탄생한 정권의 정신줄이 점점 이상해진다. 무슨 까닭이 있는지, 애초 약속한 궤도를 크게 이탈하고 있다. 그것도 거침없이.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지 않은 생명공학 분야까지.


1998리메이킹 에덴이란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프린스턴대학교 생명과학자인 저자 리 실버는 머지않아 맞춤형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 책에서 확신했고, 교수직을 그만둔 뒤 생명공학 회사를 차렸다는 후문이 들렸다. 자궁 착산 전 초기 배아의 유전자를 검사해 태어날 아기의 직업을 권하는 건 물론, 질병을 파악해 양호한 유전자로 교환할 시대가 열릴 거라 예측한 리 실버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했다. 아이의 유전자를 바꿔주려는 부모의 마음을 법으로 차단할 수 없을 거라 점치면서, 세대가 바뀔 때마다 우수한 유전자를 받은 계층은 돈이 없어 교환하지 못한 계층과 구별되고 세월이 지나면 인간은 두 종으로 구별돼 서로 결혼을 외면하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못할 거라는데, 가슴이 벅차오는가?


실제 미국을 중심으로 인간 염색체 안의 유전자 염기서열(유전체)을 파악하는 게놈프로젝트가 시행돼 2003년 완성되었고, 생명공학은 염색체마다 나열된 유전자의 지도를 그리는데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견문이 부족해 그 지도를 현재 어느 정도 정확하게 그렸는지 모른다. 게놈프로젝트 이후 사람의 유전자가 과학자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는 사실은 기억하는데, 작년 11월 드디어 염려하던 사건이 터졌다. 중국의 남방과기대학교의 허젠쿠이 교수가 유전자가위 기술로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는 아기를 태어나게 했다는 보도가 나온 게 아닌가.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의 감염과 관계된 유전자를 제거했다는데, 그를 위해 허젠쿠이 교수는 인간 초기 배아의 유전자를 건드리고 말았다.


지난 달 22일 규제샌드박스 운운한 산자부는 유전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를 허용하고 말았다. 어떤 생명공학 기업이 갈구해왔던 사항이라던데, “개인의 유전체를 분석해 질환의 발병 확률을 통계적 방법을 통해 예측하는 기술을 확보한다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장관은 장담했다. 다행인지 아직 모든 유전체가 대상은 아니다. 심혈관과 파킨슨병, 그리고 암을 포함한 13가지로 대부분 노인성질환이다. 무료로 분석하려 하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은데, 분석을 의뢰한 사람이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나타난다고 하자. 13가지 질환 유전자 중 어떤 하나가 검출되었다는 소견을 들으면 그 사람은 기분이 어떨까? 의사에 매달리고 싶지 않을까? 물론 상상을 뛰어넘는 돈을 준비해야겠지만.


할리우드의 유명한 액션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2013년 경 이른바 졸리 효과를 미국에 일으켰다. 분석을 의뢰한 졸리는 유방암과 난소암 환자에 많이 나타나는 두 개의 유전자 중 하나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유전자가 있으면 70세까지 유방암이 70% 난소암이 25% 정도 생긴다는 통계를 의사에게 들은 졸리는 유방과 난소를 암 발생 전에 제거했고 다행히 지금도 건강하다. 그런 행동은 비슷한 수술이 여성 사이에 파급되는 효과로 이어졌는데, 건강하게 나이 드는 여성에 그 유전자는 없는 걸까? 유방암이나 난소암이 반드시 유전자가 원인일까? 유전자의 발현은 환경과 매우 밀접한데, 다른 요인이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 음식이나 스트레스는 무시해도 될까? 관련 연구가 진행되면서 문제의 유전자가 유방암이나 난소암 이외의 암에 원인이 된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유전체를 분석하는 규제샌드박스 덕분에 13가지 노인성질환 파악 우리 기업의 기술이 세계를 선도하기에 이르렀고, 외화가 모여든다면, 특허를 가진 기업은 13가지 질환의 분석에서 만족하려 할까? 산자부를 집요하게 찾아가 분석 범위의 확대를 요구하지 않을까? 한데 생각해보자. 노인성질환은 생각보다 돈벌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의 질병에 비해 치료가 어렵지만 치료비가 클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절박한 마음은 약해질 것이다. 큰돈을 확보한 노인이 아니라면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만, 은퇴해 물려준 자산이 없다면? 동서고금의 경험을 미루어, 그 노인의 자식은 흔쾌하지 않겠지.


아이의 질병을 태어나기 전에 파악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게 틀림없다. 리 실버가 예상한 세상이 비로소 실현될 텐데, 다만 그를 위해 법과 제도가 바꿔야 한다. 우리의 법은 유럽처럼 초기 배아의 유전체 분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벌써부터 배아의 분석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리 생명공학자 사회의 일각에서 거세다. 국회의원까지 흔들 기세다. 배아 유전체 분석을 요구하는 과학자가 내세우는 당위성은 그다지 거룩하지 않다. 황우석 전 교수와 비슷하다. 기술을 먼저 확보한 국가에 권리를 빼앗긴다는 거다. 무슨 권리일까? 치료? 유전자 교환? 어쩌면 부가가치? 다른 나라보다 먼저 기술을 확보하면 대한민국은 부자가 될까? 그렇더라도, 꼭 그래야 하나?


생명윤리학자들은 미끄러운 경사길 이론을 걱정한다. 규제샌드박스 덕분에 13가지 노인성질환에 대한 유전체분석 기술이 소기의 목표대로 확보된다면 과학자의 욕구는 그 단계에서 멈추지 않을 게 틀림없다. 분석 범위는 필시 늘어날 게고, 질병 치료 또는 예방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는 요구가 드세질 것이다. 합법적으로 배아를 분석한 의사가 당신 아기는 야구선구로 키우는 게 좋겠지만 투수보다 유격수가 어울리겠다.”고 조언하거나 이런! 담배를 피우면 40세 이전에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80%가 넘는다.”하고 경고한다면?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겠지. “스카이캐슬에 입학하려면 최첨단 유전자로 바꾸라고 은근히 권하는 상술이 득세할지 모른다. 리 실버가 예견한 리메이킹 에덴이다. 20여 년 전 제레미 리프킨은 바이오테크 시대에서 2의 창세기라며 우울해했다.


산자부의 규제샌드박스 발표를 듣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서를 즉각 발표했다. 유전체분석 영리 건강증진서비스 사업 허용은 건강관리부분 전체를 영리화한 것으로 예견하면서 의학적인 명확한 근거도 없이 공포 마케팅으로 국민들에게 장난하는 행위를 강력히 비판했다. 촛불정권이 애초 선언한 의료정책에 역행하지 않던가. 개발 소용돌이로 몰고 갈 예비타당성 면제에 이어 2하느님을 창조할 규제샌드박스는 어떤 내일을 예고할까? 초미세먼지와 마이크로플라스틱이 하늘과 땅을 오염시키는 요즘, 다가올 묵시록이 두렵다. (지금여기, 2019.2.18.)

 
 
 

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8. 4. 3. 13:12

 

질병이란 무엇인가?”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부정이 드러나기 이전, 의과대학생들에게 줄기세포의 한계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질의 시간에 손을 든 학생은 자신들은 인간 질병의 95퍼센트 이상을 치료할 거라는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리 배웠겠지만, 2004년 황우석 전 교수와 사이언스 투고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문신용 서울대학교 의학대학 교수는 달랐다. 연구부정이 발각되기 이전, 당시 과학기술부 주관의 응용세포연구단의 단장이었던 문 교수는 윤리위원에게 고백을 했다. 자신 있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환자에게 친절하기로 했다고.


파문 직전까지, 아니 스스로 신부직을 던진 이후에도 사제의 자세를 잊지 않은 이반 일리치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 천명했다. 사람의 평균 수명 연장은 의료수준이 아니라 영양상태 그리고 개인위생의 증진과 밀접하고 최근 걷잡을 수 없게 늘어나는 의료비의 대부분은 효과가 의심스런 진단과 치료행위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다국적 제약회사는 환자보다 다수의 정상인에게 판매하는 약으로 더 많은 이윤을 거둬들인다. 불안을 팔아서 돈을 버는 기업이라는 세간의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원하는 질병은 무엇일까?


큰 키와 멋진 외모를 자랑하는 젊은이를 소개하면서 개그맨들은 한때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추켜세우던 적이 있다. 최근 일본의 유전학회는 우성 또는 열성이라는 표현을 자제하기로 결정했다는데, 우월하다니! 크가 크고 잘 생기면 우월하다는 겐가?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흐뭇한데,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친구보다 우월한 걸까? 학업 성적이 높으면 공부를 잘하는 걸까? 성적이 낮으면 키가 작은가? 키가 크니 잘 생기고, 돈 잘 벌고, 성격 좋은 사람은 드라마 주인공에 국한되지 않던가?


2003년 마무리한 인간 유전체 연구는 유전자의 수가 생각보다 적은 것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이 유전자에 의한 현상으로 파악한 경우보다 훨씬 적었기에 잠시 혼란이 있었지만,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단백질을 형성한다는 기존 가설을 수정해야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면역에 관계하는 단백질은 매우 많다. 유전자보다 훨씬 많으려면 면역 현상에 따라 여러 유전자가 다양하게 이합집산하며 발현한다는 새로운 가설이 필요했다. 혈액형처럼 하나의 유전자가 발현에 관계하는 경우가 있지만 키와 몸무게처럼 다양한 유전자가 관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지능이나 외모는 몇 개의 유전자가 관여할까? 그걸 모두 파악한다면 의학은 인간의 질병을 확장한 후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리메이킹 에덴에서 저자 리 실버는 유전자를 세대마다 보강한 인간 계층을 상정한 뒤, 여건이 어려워 보강하지 못한 계층과 장차 종이 나누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또한 그런 현상을 아무도 통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가더라도 태어날 아이의 유전자를 향상시키려는 부모의 의지를 누가 감희 반대할 것인가? 하지만 농작물이나 원예작물, 그리고 몇 가축을 제외하고, 그 책이 발간된 지 20년 지나도록 인간의 유전자를 개선 또는 향상시키려는 시도는 아직까지 없었다. 사람의 유전자들이 어떤 염색체에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과학자들이 열심히 지도를 그리며 밝혀내고 있지만 아직 분명치 않고 유용하지도 않다.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교환하는 과정이 정교하지 않으니 과정에서 숱한 실패가 발생할 게 분명한 까닭이다.


2011크리스퍼 유전자가위기술이 출현하면서 사정이 바꿨다. 합성생물학의 역사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이후 유전자가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관련 과학자들이 평가할 정도로 정확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 수 만 번을 실험해 단 한 차례 성공하더라도, 성공한 사례를 선발해 양산하는 GMO 기술은 다국적 농화학기업이 주로 농작물에 적용해 상업화했다. 그 과정에서 실패한 사례는 폐기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실험 방법의 부정확성 탓에 사실 성공했다 믿는 농작물에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런데 유전자가위는 달랐다. 성공 확률이 눈에 띄게 행상되었을 뿐 아니라 비용도 다른 연구보다 대폭 줄일 수 있다.


미생물학 교과서는 두 손을 모아 떠올린 바닷물에 지금까지 존재한 인류의 모든 수보다 많은 박테리오파지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를 말하고 박테리아는 일반적으로 세균을 뜻한다. 지구상의 박테리오파지는 존재하는 박테리아의 3분의2를 매일 죽일 정도라는데, 왜 우리는 세균 감염을 허구헛날 걱정하는가? 박테리아는 자신을 감염시킨 박테리오파지의 특정 DNA 염기서열을 파악해 RNA에 기록해 놓고 다시 들어오는 같은 종류의 박테리오파지를 즉각 공격해 그 DNA를 파괴한다고 한다.


2011년 미국의 한 과학자는 덴마크의 낙농업자가 파악한 현상을 응용해 유전자가위 기술을 개발했고 그 기술은 상업화되었다. 세균이든 농작물이든 심지어 사람의 유전자든, 21개 염기서열로 구성된 특정 DNA를 파악해 그 서열이 기록된 RNA를 실험실로 주문해 구입할 정도다. 유전자 가위 기술 개발 5년 만의 일이다. 이제 세균이든 농작물이든 원예작물이든 가축이든, DNA 염기서열을 실수 없이 찾아가 파괴해 유전자의 기능을 파괴하는 그치는 게 아니다. 파괴한 부분에 새로운 DNA서열을 삽입해 유전자를 교체하는 기술을 적용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의 핵심 유전자를 파괴해 불임을 유도한다면 해마다 수백만 명의 희생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말라리아 뿐 아니라 댕기열병과 같이 모기가 전달하는 여러 질병에서 인류가 해방될 수 있겠다. 하지만 모기는 박멸대상일까? 수천 종에 달하는 모기 중 일부만 없애므로 생물권에 이상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지만 그럴까? 얽히고설킨 생태계의 그물, 그 그물의 변화무쌍함을 우리가 거의 모르는데, 까짓 나쁜 한두 종 정도는 없애도 무방한 걸까? 나쁘다 좋다는 판단을 편의를 앞세우는 인간이 독점해도 좋을까? 유전자가위 기술로 특정 모기가 결국 사라진다면 인간이 합리화하며 발본색원하려는 질병과 곤충은 과연 말라리아와 댕기열병, 그리고 모기에서 그칠까?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전 세계가 한 그루나 다름없다.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다. 뿌리로 퍼뜨리는 다년생 풀이다. 다년생 바나나 작물을 바싹 자르면 다수의 뿌리가 드러나는데, 그 뿌리를 하나하나 뜯어내 심어 재배하면 다시 싱싱한 바나나가 매달리지만, 그 작물들은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전 세계의 바나나가 그렇다. ‘캐번디시품종인데,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된 탓에 곰팡이에 매우 약하다. 1960년대까지 비교적 흔했던 그로미셸품종은 곰팡이 감염으로 작물계에서 사라졌는데 캐번디시 품종도 현재 위기에 놓였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곰팡이를 물리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로 연구하는 과학자가 있지만, 바나나에 곰팡이가 급속히 퍼지는 건 곰팡이에 약한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건 단견이다. 지나친 단작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진데 근본 원인이 있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새로운 품종을 아무리 개발해도 단작을 거듭한다면 곰팡이는 오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심장이나 콩팥과 같은 장기를 기다리는 환자가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27천명에 달하지만 기증자는 그 10분의1도 못되는 게 현실이다. 기다리다 희생되는 환자도 상당할 텐데 그들을 위해 돼지와 같은 다른 종의 장기를 대신 이식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많은 연구를 거듭했지만 면역거부로 실패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유전자가위 기술은 해결해줄까? 우리 연구자들이 면역거부에 관계하는 유전자 2가지 밝혔다지만 면역에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관여하는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아니다. 다른 종의 장기를 사용하려면 면역 관련 유전자의 기능을 파괴하는 데에서 그치면 안 된다.


돼지의 장기에는 돼지 몸에 언제 들어와 공생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있다. 그런 공생 현상은 돼지 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진화 과정에 들어왔을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는 대략 돼지 전체 유전자의 5%에서 10%가 될 것으로 학자들은 예상한다. 그 바이러스 중 어느 하나라도 인체에 들어와 돌이킬 수 없는 문제 - 과학자는 돼지 바이러스가 치명적 질병이 되어 인류 사회에 창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무리 정교할지라도 유전자가위 기술이 그 바이러스들을 모두 파괴할 수 없다. 사람에게 유해한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를 꼼꼼하게 찾아내 선택적으로 파괴한다면 사용 가능할까? 그 일련의 연구가 빚을 필연적 어려움과 비용을 차치하고, 안전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끔찍한 부작용 13세기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페스트 창궐과 같은 악몽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20178월 우리나라의 한 연구자가 유전자가위 기술을 태아에 접목해서 비대성 심근경색증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우리 언론이 일제히 반색을 했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시대착오적 생명윤리 관련법 때문에 치료 기술을 확보해도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는 걸 한탄했다. 연구 결과를 얻어 특허를 출원하는 국가에 특허권이 독점 부여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기술로 치료할 불치병과 난치병 분야는 다양한데 생명윤리가 발목을 잡으면 우리 의료기술은 한없이 뒤쳐지고 국가 부가가치도 그만큼 기회를 잃을 것인가? 과거에 많이 듣던 말이다.


우리 연구자의 업적을 계기로 일부 국회의원은 생명윤리 관련법의 개정을 요구했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를 대신하는 듯,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화답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비대성 심근경색증 관련 연구를 투고해 주목된 기초과학연구원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프레스센터에서 유전자 교정 기술 도입 및 활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향을 주제로 열린 과학기술한림원 원탁토론회에서 기회가 있으면 생명윤리학자를 찾아가 밤을 새서라도 토론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유전자 결함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사람의 질병을 유전자가위 기술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는데 과연 그럴까? 그는 유전체교정연구단을 주도한다. 막대한 국가 연구비를 사용하는 그 연구단체는 유전자를 교정한다고 주장하는데, 교정이라니? 유전자가 무슨 큰 죄라도 졌나?


인체 내에서 체세포를 치료하려면 유전자가위를 특정 위치로 정확하게 접근시켜야 한다. 사람 몸을 구성하는 100조 가까운 세포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다. DNA 염기서열도 같다. 비대성 심근경색증에 관계하는 유전자가 심장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몸으로 들어간 유전자가위는 심장에 있는 문제의 DNA 염기서열만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심장의 정확한 세포의 DNA 부위로 보내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앞으로 열심히 연구하면 가능할 것이라 주장하겠지만, 그렇다면 불치병 난치병 치료가 멀지 않았다는 호언장담은 지나치다. 황우석 사태는 무모한 호언이 부정의 규모를 마구 키웠다. 그 호언은 환자와 정치인과 언론을 현혹했고, 우리 과학은 돌이키기 어려운 망신을 자초했다.


체세포의 질병은 많은 경우 노화에 의한다. 노화가 과연 질병일까? 노화를 유전자가위 기술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하면 노화가 진정될까? 감염에 의한 체세포 치료는 유전자가위와 관련성이 작을 텐데. 선천적 유전병은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문제다. 유럽 최초로 승인된 치료제 글리베라는 일인당 1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승인한 암세포 치료제는 47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정하는데, 유전자가위로 치료를 기대하는 질병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아직까지 유전자가위로 분명하게 치료할 질병은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기존 치료법으로 충분하다고 생명윤리학자는 주장한다.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건 물론 아니다.


DNA혁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저자인 식물생리 전공의 생명윤리학자 전방욱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체세포 치료를 목적으로 체내로 투입한 유전자가 회복돼 생존하는 기간 동안 환자의 생식세포로 전이된다면 정자나 난자와 같은 생식세포의 유전자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럴 경우 다음세대에 치명적인 유전적 변화를 전할 수 있다. 뜻하지 않게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위 치료는 교정과 성격이 다르다. 유전자 증강도 아니다. 차라리 망상에 가까운데, 유전자가위 기술의 연구를 배아에 적용하자는 신기루 같은 제안이 나온다. 태어날 아이의 유전자를 치료해 후손에 불치병과 난치병이 나타나지 않게 하겠다는 뜻인가? 무책임하다. 끔찍한 우생학이다.


유방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진 유전자 때문에 안젤리나 졸리는 예방적 절제수술을 받았다. 그 여파는 예방적 유방절제 수술하는 여성의 수를 크게 늘렸다는데, 2년 만에 5, 난소절제수술은 4.7배 증가하게 했다는 거다. 불안한 마음으로 공연히 수술한 사람들은 평생 건강하게 사는 사람에 몸에 유방암 유전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사전에 충분히 듣지 못했을 것이다. 유전자가 있으므로 암으로 반드시 진행되는 게 아니다. 암으로 진행할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유전자가위 연구자들이 노화나 치매 유전자를 치료하고 키와 IQ를 높이겠다고 호언할까 더럭 겁이 난다.


201818, 과학학술지 <네이처><사이언스타임스>는 유전자가위 기술로 편집한 세포에서 면역거부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스탠포드대학교의 연구결과를 심층 보도했다. GMO나 배아복제와 같이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는 교만스런 기술이 인간 자신은 물론이고 생태계까지 파국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우울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오만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비윤리적이다. 사고가 빈발하는 낭떠러지를 그대로 두고 병원 시설을 개선하거나 신약을 연구하는 게 타당할까? 환자에게 교정 운운하며 부가가치를 점치고, 생물 집단의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단순하게 획일화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장차 어떤 내일을 안내할까? (<그린 챌린지, 2018 한국환경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