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4. 28. 16:34

 

남녘에서 훈풍이 다가오는 5월이다.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박재란은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꽃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밀 익는 5월이면 보리내음새가 남쪽에서 불어오니 좋다고 노래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5월에 어떤 바람이 다가올까?


이 원고를 쓰는 4월 초, 전국은 21대 국회의원 선거 열기로 뜨겁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마다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는 자신을 알리려는 후보들의 약속들로 요란하다. 패딩점퍼를 치웠으니 떠들썩한 아침 시간은 피하고, 오후 한적한 길을 따라 동네 한 바퀴 걷는다. 코로나19 창궐이 부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부분의 약속은 연기 또는 취소되었다. 대학의 시간강의도 온라인 영상수업으로 대체했으니 훈풍 불 때 만보를 걷는다.


복수초를 이은 진달래가 한창인 계절인데, 향기가 남에서 불어올까? 아침저녁으로 쌀쌀해도 한낮은 제법 덥다.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아파트단지 구석구석에 심은 진달래는 꽃잎을 접었고, 향기를 내놓지 못한다. 며칠 전 뉴스는 관측 이래 가장 빠르게 벚꽃이 꽃봉오리를 펼쳤다고 캐스터는 걱정했다. 작년보다 일주일 빨랐다는데, 양지바른 곳의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린다.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한바탕 바람이 불면 올 벚꽃도 어김없이 엔딩을 맞겠지. 내년이 궁금한데, 활짝 펼친 수선화 노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조팝나무 하얀 꽃들이 앙상한 꽃대들을 도드라지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수선화와 조팝나무는 5월에 만개하는데, 이런! 5월의 여신, 라일락이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


며칠 전, 베란다 앞뜰의 매화에 부리를 밀어넣던 직박구리는 짝을 지었던데, 어디에 둥지를 쳤을까? 하수종말처리장 처리수가 흐르는 승기천의 가장자리는 이맘때 버드나무들이 연둣빛인데, 얼마 전 번잡스레 짝을 찾던 까치들은 집을 지었을까? 작년 가을 구청에서 가지를 친 가로수들은 잔가지를 볼썽사납게 잃었다. 가로수가 펼칠 잎사귀 수가 크게 줄어들 테니, 까치는 새끼에게 먹일 벌레를 가로수에서 찾기 어렵겠지. 매화나무가 잎사귀를 펼치지 않았어도 개나리는 어느새 초록 잎을 선보인다. 그래도 노란 꽃잎을 많이 남겼는데, 그 아래 영산홍이 붉은 꽃봉오리를 열기 시작했다. 5월은 아직 멀었건만, 뒤죽박죽이다.


반듯반듯 아파트단지로 채워놓은 동네에서 자연을 음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리미엄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재개발을 타진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나? 완공 30년이 지난 신도시에 조경수목의 뿌리는 활착했고, 코로나19를 무릅쓰고 봄은 찾아왔다. 여기저기 볼 게 많아 봄이라던데, 평일에도 인파가 모이는 벚꽃길을 피해 빠르게 걷는다. 마감 전에 원고 넘겨야 맘 편하기 때문인데,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얇은 점퍼를 벗고 교차로에 접어드니, 같은 옷을 입은 무리가 귀를 자극하는 스피커 장단에 몸을 맡긴다. 이윽고 트럭 단상에 오른 후보는 공약을 쏟아낸다. 이크! 길을 잘못 들었다.


마스크 쓰고 교차로를 점령한 선거운동원들과 거리두기하며 빠져나가는 일은 순조롭지 않다.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며 고막을 울리는 약속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전문성 있고 힘을 가진 자신으로 바꾸자는 말, 능력자인 자신이 이 지역을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말, 이러저러한 경험과 성과가 눈부신 자신을 믿어달라는 말,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말들이 허공을 가르며 흩어진다. 누군가 국회의원 선거를 대의제 민주주의의 축제의 장이라 했던가? 하지만 거리의 목소리들은 대의제를 진정성 있게 인식하지 못한다. 한결같이 자신이 적임자라고 거품을 무는 후보들은 개발과 경제성장을 외친다.


내가 도로를 놓았다! 무슨 소리냐? 그 도로는 지난 지방정부가 놓은 게 아닌가! 뭐라고? 알지 못하면 가만히 있어야지! 그때 여차여차해서 어렵사리 예산을 따왔고 굼뜬 지방정부를 움직이게 만든 게 누군데! 사과하지 않으면 고발할 테다! 발전의 기초를 쌓았고 성과를 낸 건 나잖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야! 나야 나! 그깟 도로? ! GTX노선을 놓을 거라고! 교육이면 교육. 경제면 경제, 낙후된 곳을 현대화할 적임자는 힘 있고 능력 있는 나라고! 발전, 상생, 행복, 복지, 명품도시를 만들 거라고!



사진: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될 해안의 도시를 상상한 그림.(출처는 인터넷) 콘크리트 일색인 도시는 생태적 완충력을 상실했고 기후위기와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4년 전 거리에도 비슷비슷한 공약이 난무했다. 반복되므로, 4년 전은 거짓말을 했나? 이번 공약이 이루어진다면 4년 뒤에 어떤 공약이 쏟아질까? 실상 언제든 어느 지역이든, 공약은 엇비슷하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출마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나라 밖의 사정도 대략 비슷하리라. 누가 도로를 놓았나? 국회의원은 분명히 아니다. 개막식이 아니라면 현장에 국회의원은 없었다. 도로를 놓았으므로 시민이 행복해졌나? 도로를 놓기 전에 시민과 필요성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알려고 하지 않겠지.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왕을 선발하지 않는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의원을 뽑는다. 기원전 6세기 이솝은 왕을 보내달라 기도하는 개구리 우화를 썼다. 하늘에서 나무토막을 보내자 무시했다. 그러자 황새를 보냈다. 황새는 규칙을 제 마음대로 정하고 어기는 개구리를 잡아먹었다. 유권자는 개구리이고 황새는 국회의원인가? 민의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건만 선출 이후의 행태를 보자니, 자신이 왕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선거운동할 때 잠깐 엎어져 절하며 표를 구걸하지만, 당선되기만 해봐라. 비켜! 난 왕이야!


여당 실세였던 자, 실력자 계파의 일원이 될 자는 국회의원감인가? 선망받는 대학 출신에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의 어떤 일류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면 국회의원 자격을 득하는가? 어떤 권능을 노리고 출마하려는지 모르지만, 국회의원은 행정가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법과 제도를 만들거나 정비한다. 국회의원의 소임은 예산 끌어오기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대의원이다. 주권은 유권자가 가진다. 입법에 앞서, 주권자의 의견을 먼저 묻고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논의하는 자세가 대의원의 마땅한 덕목이다.


코로나19는 왜 요사이 만연한 걸까? 개발과 발전이 모자라기 때문일까? 밑도 끝도 없는 신기루, 선진국을 향해 GNP 상승과 경제성장으로 매진한 지금, 우리는 전례 없이 발전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 시방 코로나19 수렁에 빠진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모자란다고? 우리는 선조가 꿈꿀 수 없는 돈과 물건을 쌓아두고 허우적거린다. 석유위기와 기후변화의 혹독한 상황을 마주할 후손은 발전의 과실을 맛볼 수 있을까? 코로나바이러스는 없었던 존재가 아니다. 하필 이때 창궐해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강력하게 경고한다. 개발 공약에 정신 팔린 후보는 그 경고를 듣지 못한다. 목소리 큰 후보일수록 경각심은 무디다.


작은책5월호가 독자 손에 들어갈 때, 어떤 후보가 당선되었을까? 서울로 빨리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를 놓겠다는 후보일까? 그는 어떤 바람을 일으킬까? 모든 후보가 비슷한 공약을 남발했으니 지역의 정체성은 무시되고 후손의 삶은 더욱 어두워지겠군.


시민 대부분이 거리두기의 피로를 이겨내면서 코로나19도 진정될 것이다. 하지만 발전과 성장을 위해 생태계를 짓밟고 파괴하는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변화돼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뿐이겠는가? 뒤죽박죽인 계절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경고는 더욱 무서워질 텐데, 작년 지구촌은 겪어본 적 없는 기상이변으로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5월이 왔다. 어떤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올까? (작은책, 20205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4. 13. 22:39

 

올 경칩은 35일이었다. 3월은 영어로 March. 시작이라는 뜻이다. 한데 개구리는 이미 알을 낳았다. 북방산개구리다. 지리산 남녘은 한 달 전이리라. 작년 1년 평균 기온이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더웠다더니, 그래서 그랬을까? 올해는 유난히 빨리 알을 낳았다. 경칩 새벽에 물이 얼었는데, 괜찮을까?


얼어붙은 물이 녹기 시작할 때, 북방산개구리 수컷들이 리드미컬한 목청을 높이면 얼핏 비슷해도 작고 날씬한 한국산개구리가 슬그머니 경연장에 다가오는데, 인천 학생들이 그 모습을 보려면 관광버스로 2시간은 나가야 한다. 운 좋으면 산기슭에서 어슬렁어슬렁 방죽으로 내려오는 두꺼비들을 만날 수 있다. 두꺼비는 자신이 태어난 방죽을 찾는데, 방죽이 드물어지면서 두꺼비는 보호 대상이 되었다.



사진: 번식 시기에 포접한 상태로 나타나는 두꺼비 암수. (출처: 인터넷)


알을 바가지 크기의 덩어리로 낳는 북방산개구리나 조랑박 크기로 낳는 한국산개구리와 달리 염주처럼 수초 사이로 알을 길게 늘어놓은 두꺼비는 겁이 없다. 피부 독에 혼비백산한 뱀과 족제비도 외면할 것이므로. 떼로 몰려다니는 올챙이들도 천적의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지만 5월 중순 자동차 바퀴를 조심해야 한다. 엄지손톱 크기의 어린 성체들은 야심한 시간, 호수가 아스팔트에서 처참해질 가능성이 크다.


두꺼비를 잇는 청개구리는 덩치가 가장 작아도 목청은 우렁차다. 그런데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청개구리는 미국 개구리 소리를 낸다. 광고회사는 그런데 관심이 없다. 경칩을 맞은 인터넷에 마스크를 한 개구리가 등장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한국에 없는 개구리를 데뷔시켰는데, 올봄은 개구리보다 코로나19가 우리를 깨웠다.


코로나바이러스는 1930년대에 알려졌지만, 전염성이 강화되어 다시 나타났다. 유전자가 RNA라서 쉽게 변한다는데, 그건 예전에도 그랬겠지. 그간 독성이 약해 무시당했을까? 치료제가 없는데, 이번 바이러스는 독성도 갖췄다. 면역 떨어진 노인에게 치명적인데, 전염력이 여간 빠른 게 아니다.


색다른 종교적 신념이나 교주의 요구에 자신의 행동을 맡기는 이들의 일탈이 자제 또는 통제된다면 코로나19는 진정될 것이다.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과 관련 공직자의 진정성 있는 노력, 그리고 막대한 예산과 시민 대다수의 성심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봄은 다시 열리리라 확신한다. 하지만 생태계의 오랜 질서, ‘생태적 다양성이 황폐해졌다. 다양한 동식물이 어우러지면 바이러스를 포함해 어떤 생물도 감히 창궐하지 못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다시 변해 나타나면 능히 막아낼 수 있을까?


온난화된 지구에서 인간의 분별없는 개발이 망가트린 생태계는 재해를 완충하지 못한다. 개구리가 사라진 생태계는 바이러스 창궐에 무력한데, 자식 행복하길 바라는 우리는 어떤 내일을 준비해야 하나? 코로나19는 경제성장을 외치는 우리에게 어떤 묵시록을 전하려는 걸까? (갯벌과물떼새, 2020.4.5.)

안녕하세요? 본문 중간에 삽입하신 두꺼비 사진은 제가 찍은 것입니다. 이 사진을 비롯하여 비슷한 사진이 여러 장인데, 제가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것도 있고, (사)두꺼비친구들 측에 제공하였기 때문에 더 많이 공개되어 있을 것입니다. 2007년 2월 25일 청주 산남동 산남한내들(당시는 유승한내들) 아파트와 구룡산 사이의 통로입니다. http://www.slrclub.com/bbs/vx2.php?id=theme_gallery&no=452408 필요하시다면 비슷한 사진을 드릴 수 있습니다.
허락도 없이 사진을 사용해 송구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하구요. 나중 출판에 사용할 일이 있으면 사전에 문의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자료의 출처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할 경우 양해를 구하고 사용하겠습니다.

 
 
 

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1. 20. 17:04

 

1960년대 유학생으로 미 텍사스를 처음 만난 지도교수는 넓은 초원에 빼곡한 관목을 보며 가족을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온기 겨우 남은 아랫목에서 겨울마다 오돌오돌 떨던 가족에 땔감으로 보내고 싶었다는데, 캥거루가 겅중겅중 뛰는 초원에 정착한 유럽은 실천에 옮겼다. 초원에 목초를 심어 소와 양을 방목한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일까?


과연 소는 무럭무럭 자랐고 성공적으로 늘어났다. 가끔 목축을 방해하는 캥거루들을 총으로 제거하면 그뿐이었는데, 아뿔싸! 건조한 기후에 소똥이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소똥을 동그랗게 뭉쳐 먹으며 그 안에 알을 낳아 처리해주는 소똥구리가 호주에 없었다. 캥거루 똥을 굴리는 호주의 비슷한 곤충이 거들떠보지 않자 바싹 마른 소똥이 바람에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목초지를 뒤덮는 게 아닌가. 광합성 못하는 목초가 시들자 소들이 비실거렸다. 하는 수 없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를 수입했고,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1960년대 이야기인데, 그 효과 지금도 유효한지 알지 못한다.


유칼립투스 잎사귀만 먹는 코알라는 행동이 굼뜨다. 독성 많고 영양분 적은 유칼립투스를 잔뜩 먹고 오랜 시간 소화해야 하는 코알라는 천적을 피할 수 있는 나무 위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잘 뿐 땅에 내려오는 경우는 드물다. 독특한 습성을 맞추기 어려워 코알라를 사육하는 동물원은 매우 드물다는데 이번 호주의 거대한 산불로 멸종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이 언론 국제면을 채운다. 10억 마리가 넘게 타죽은 야생동물 중 절반이 코알라일 거로 분석하는 기사도 보았다.



사진: 호주 산불로 삶터를 잃은 코알라. 겨우 목숨 건진 코알라에 물을 권하는 소방관(출처는 인터넷에서).


유칼립투스 나무는 여간해서 불에 잘 타지 않지만, 기름기가 많아 일단 타오르면 걷잡기 어려운 모양인데, 온도와 수분이 충분하면 교목으로 빠르게 성장한다고 한다. 목재로 활용하는 교목은 물론이고 종이로 가공하는 관목도 유용해 호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매우 선호하는 수목이지만 집중해서 심으면 생태계를 단순하게 만들어 자탄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뿌리를 깊게 내리며 수분을 독점하기 때문에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게 아닌가. 호주의 유칼립투스 숲은 자연림일까 조림일까? 제지산업이 왕성한 호주에 코알라가 유유자적하는 건 자연스러운데, 코알라에게 이런 산불은 일찍이 없던 재앙이었다.


드넓은 호주 초원에 사탕수수를 심으면 막대한 이익을 챙길 게 틀림없다. 관목과 덤불을 제거한 드넓은 평지에 끝도 없이 심은 사탕수수에 새카맣게 딱정벌레가 달라붙을 줄 거대 농업자본은 애초 짐작하지 못했다. 호주 두꺼비의 노력으로 퇴치되지 않자 하와이에서 축구공 반 크기의 수수두꺼비를 들어왔더니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언덕 많은 하와이에서 엄금엄금 기면서 곤충을 먹어치우던 수수두꺼비들이 수십만 마리로 늘어나 호주 사탕수수 농장을 벌떡벌떡 뛰어다니며 딱정벌레를 걷어먹었으므로. 하지만 사탕수수 밖으로 나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희귀한 호주 곤충들을 멸종위기로 몰아넣는 게 아닌가.


피부에 맹렬한 독샘을 가진 수수두꺼비는 호주에 천적이 없었다. 첫 대면에 징그러워도 덩치가 크니 덥석 잡아 조심스레 뜯어먹은 주머니고양이가 죽어나가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호주가 자랑하는 악어 크로커다일마저 수수두꺼비를 삼키자 데굴데굴 구르며 죽는 게 아닌가. 생태계의 무법자로 변한 수수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땅이 꿈틀거리는 거로 보이기에 호주 당국은 뒤늦게 포상금을 걸어 포획작전을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지금은 더는 퍼지지 않도록 관리할 따름이라는데, 우리 황소개구리처럼 천적이 나타나기만 기다려야 할 처지라고 한다.


200여 년 전 인도에서 호주로 들여온 낙타가 곧 수난받을 모양이다. 물을 많이 마시는 습성이 화근인가? 100만 마리로 늘어난 낙타 중 1만 마리를 제거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낙타가 호주 산불의 원흉이던가? 1만 마리 죽여도 소용없으면 총을 쥔 인간이 구상할 다음 대책은 무엇일까? 애초 낙타는 왜 들여왔을까? 소와 양을 방목한 이유, 사탕수수밭을 광활하게 조성한 이유와 크게 다를까?


모든 인류가 평균적 미국인처럼 살아가려면 지구가 5개 이상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인 평균으로 산다면 3개 이상이라는데, 호주 평균이라면 7개 이상이란다. 호주의 환경은 문명화한 사람이 편안하게 살아가기 척박한 모양이다. 호주에 핵발전소는 없지만, 우라늄 최대 국가로 얼려졌다. 2500만 인구가 국토 면적에 비해 많은 건 아니지만 1인 소비 전력은 대단한 모양이다. 전기는 주로 화력이 담당하는데, 호주는 세계 최대 석탄 수축국가 중의 하나다. 그래서 그런지 온실가스 증가와 지구온난화의 관계를 부정하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유별나다.


이번 호주 산불은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 불볕더위와 가뭄이 호주에 일상화된다면 코알라는 물론이고 사람도 생존하기 버거울 게 틀림없다. 확대되는 사막은 호주의 기후대를 변하게 할 텐데, 인류가 원인을 제공하는 기후위기는 호주와 몽골의 사막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올겨울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동토의 숲이 거대하게 타버린 이유도 기후위기로 과학자는 분석한다. 관측 이래 최대였다는 지난여름의 불볕더위는 냉방장치 마련한 유럽을 지치게 했지만, 인도의 경작지를 황폐화할 태세였다. 우리는 괜찮을까?


불볕더위와 가뭄을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산업이 극복하게 할 가능성은 단호하게 없다. 핵발전소로 바닷물을 담수화해 사탕수수밭과 유칼립투스 숲을 얼마나 적시겠나? 이미 돌이키기에 늦었지만, 그렇다고 종말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건 아직 아니겠지. 지나친 낙관이더라도, 생존을 절실하게 생각해보자.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대책은 당장 모두 철회해야 편안하게 숨 쉴 여유를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든 개발, 온실가스를 내보내는 경제성장 정책으로 기후위기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 과학기술? 감언이설에 가깝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산불만이 위기의 전부가 아닌데, 자연을 잃은 회색도시에 더욱 만연되는 범죄, 끝없는 탐욕이 빚는 경쟁은 다음세대의 위기를 가중하는데, 미세먼지가 호흡을 방해해도 덩치 커다란 지프형 승용차가 잘 팔리는 세상에서 무슨 소리를 해야 할까? 타들어가는 코알라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머물 수 없는데, 어제오늘의 현상은 괴로움 너머의 세상을 직시하라고 우리를 거듭 경고하는데. (지금여기, 20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