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9. 10. 21. 18:15

미국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년에 쿠바에 살면서 여러 대작을 남겼다. 쿠바 여행자는 대개 적지 않은 입장료를 감당하고 헤밍웨이 저택을 방문하는데, 서재의 고색창연한 책들보다 벽 여기저기 붙은 커다란 사슴 대가리가 눈길을 끈다. 평소 사냥을 즐긴 그는 자신의 집에 장식하며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저택 마당의 한 구석에 4개의 앙증맞은 무덤도 방문객의 눈을 멈추게 한다. 헤밍웨이의 반려견들이다,


고기나 돈벌이가 아니라 오로지 재미를 위해 야생동물을 총 또는 석궁으로 사냥하는 부자들의 놀이가 있다. 잡은 동물을 기념이 될 박제로 만들어 과시하는 이른바 트로피 사냥이다. 대형 동물이 서식하는 아프리카에서 주로 미국인 고객으로 끌어들인다는데, 미 정부가 최근 트로피 사냥꾼의 전리품인 사자 사체의 일부나 가죽을 도입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그런 결정은 거센 논란으로 이어졌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트로피 사냥꾼이 지불하는 거액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생태계 보전의 재원을 확보한다고 미국 사냥협회가 환영 성명을 발표했지만 동물애호가 중심의 시민단체는 반대 목소리를 높인 모양이다. 일부 부자들의 잔혹한 과시욕을 위해 대형 동물의 사체 도입을 허용한다면 멸종위기 동물의 반입으로 이어질 거라며 항의하며 어처구니없어했다는데, 어떨까? 부자들의 트로피 사냥을 허용한다면 아프리카의 생태계가 보호될까? 트로피 사냥을 즐긴다는 미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은 그런 의견에 동의하려나?


제국주의의 산물인 동물원은 패권을 쥔 국가에서 과시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교육과 멸종위기 동물의 보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전시 방법도 개선했다는 걸 홍보한다. 훤히 보이는 곳에 가둬 마네킹처럼 전시하던 제국주의 시절과 달리 동물의 생태 조건에 최대한 부합하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물이 눈치 채지 못하게 관람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아무리 습성에 맞게 꾸몄더라도 동물원의 동물이 살가워할 리 없다. 고유 생태 조건과 기후가 맞지 않는 공간에 사로잡혀 야생성을 잃었고, 관람객의 냄새와 소음을 하루하루 견디며 연명할 따름이다.


동물에 맞는 생태계 조성과 관계없이 세계의 주요 동물 관련단체는 그 지역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의 전시 자체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제주도 곶자왈에 시대착오적 계획이 착착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관광 투자를 앞세우며 아프리카 사파리를 조성하겠다는 게 아닌가. 고유 생태계를 보유하는 곶자왈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온 지자체가 제주도인데, 그 중 생태계가 가장 자연스럽게 보전된 조천읍 선흘리 일원 곶자왈 56제주동물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니! 그런 민간 사업자의 계획을 제주도 당국이 묵인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논란이 커진다.


1600억 원의 사업비로 2023년 완공하겠다는 제주동물테마파크는 해외 동물의 생태공간일 수 없다. 제주도와 무관한 사자와 코끼리, 그리고 호랑이를 비롯해 20여 종의 대형 동물을 철망에 가두지 않고 사육하더라도 보전과 무관하다. 호텔과 그램핑장을 갖춘 사파리가 포함된 이상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선흘곶자왈은 제주 특유 동식물과 멸종위기종이 다수 분포하는 지역이다. 제주도는 아프리카와 생태환경이 엄연히 다른데, 생태적 가치가 빼어난 곶자왈에 아프리카 사파리를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까? 이권을 위한 민간 사업자의 계획을 반려하지 않았다니, 보전을 되뇌는 제주도 당국의 진정성은 당연히 의심받을 만하다.


제주도는 물론 전국의 환경단체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제주도의회도 민간 사업자의 계획을 즉각 반려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고 언론은 전한다. 몰상식을 돌이키라는 상식적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숲을 의미하는 과 우거진 수풀이라는 자왈이 모인 곶자왈은 제주도 중산간의 생태계 보고일 뿐 아니라 지하수의 원천이다. 생명의 모태인 곶자왈에 골프장과 생수공장이 버젓이 조성된 상황을 돌이키지 못하는 제주도에 아프리카 대형 동물을 가둔 테마파크가 조성된다면 세계적 조롱거리의 하나로 등록될 것이다.


총과 석궁으로 죽이지 않을 뿐, 계획된 제주도 곶자왈의 동물테마파크는 아프리카 트로피 사냥터와 다를 바 없다. 이윤 추구를 위해 대형 동물의 생명을 수탈하는 공간이 아닌가. 동물원 자체를 없애라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선명해지는 상황에서 곶자왈에 아프리카 사파리라니. 생태 관광이라는 추세에 역행한다. 제주도의 곶자왈은 보전될 때 가장 아름답다. (지금여기, 2019,10,21)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9. 10. 1. 23:09

 

모처럼 제주도에 가면 저녁 자리가 민망해진다. 육식을 피하려는데 명품 돼지고기를 내놓는 호의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한 곡물로 키운 가축의 살코기를 외면하려 노력해도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지만 눈치 살피며 고기를 피한다. 간혹 잘 익은 고기를 친절하게 담아주는 이가 있다. 그럴 때 겨우 맛보는 제주도 특산 돼지고기는 육지와 다른가?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르다고 제주도 사람들은 동의한다. 품종이 다르니 맛에 차이가 있다는 거다.


육지에서 압도적으로 사육하는 허연 돼지는 지역과 관계없이 품종이 한결같다. 경제성이 높기 때문일 텐데, 그건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공통이다. 품종만 같은 게 아니다. 사료와 사육조건이 비슷하니 맛도 거의 같다. 가격이 올라 수입하는 유럽산 삼겹살이 우리나라 삼겹살과 맛이 다르다고 말하는 미식가는 드물다. 그러니 돼지에 치명적인 질병의 목록도 세계가 공통이다. 경제성을 위해 최대로 밀집시키는 공장식 사육환경도 같으니 이웃 국가에서 질병이 돌면 바싹 긴장해야 한다.


구제역이 돌면 확산을 막으려 당국은 반경 300미터에서 500미터 이내의 돼지를 살처분한다. 확산 속도가 빠르면 반경을 늘려 죽는 돼지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데, 그건 발굽이 있는 소와 양의 사정도 비슷하다. 구제역이 창궐해도 살처분을 미적거리거나 회피한다면? 피해반경 이내의 돼지와 소는 결국 모두 감염돼 죽고 마는 걸까? 그 방면에 아는 바 없지만 수의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죽는 가축도 있지만 시름시름 앓다 회복하거나 잠시 증세를 보이다 이내 낫는 개체도 많다고 한다. 어쩌면 대부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감염으로 죽지 않는 개체가 많아도 반드시 살처분하는 이유는 확산 방지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감염된 축사의 가축, 피해반경 이내에서 사육한 가축은 어떤 도축업자도 받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제역에 감염되었던 가축의 살코기라고 해도 먹는 이의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축산업자는 좋던 싫던 살처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개별 식당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구입해 식구나 이웃, 동료가 나누어 먹는 시절이 아니지 않는가. 같은 크기의 가축을 한꺼번에 도축해 포장한 뒤 대형 식품매장에 넘기는 요즘, 공장식 축산업자는 질병에 예민하게 대응해야 손해를 피할 뿐, 대안이 없다.


4만에 가까운 강화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게 만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치사율이 100%라고 한다. 먼저 감염된 중국은 근 1억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는 가운데, 북한 평안북도의 돼지는 전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멸이라. 살처분이 늦어 모두 감염돼 죽었다는 걸까? 분명치 않은데, 방역이 철저한 우리는 피해지역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다만 강화를 비롯해 피해반경 이내에 포함돼 사육하던 돼지들은 죽을 수밖에 없고 사육업자는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행일까? 감염과 관계없이 죽어야 하는 돼지는 얼마나 억울할까?



사진: 구제역 감염구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살처분되는 같은 크기의 돼지들.(출처는 인터넷)


영국 에든버러에 구제역이 돌았을 때 복제 양 돌리도 피해반경이 가까워지면서 살처분될 위기에 있었다. 살처분 광풍이 지나간 뒤, 그 지역에서 살아 있는 어린 양이 발견돼 과학자들이 환호한 적 있었다. 구제역을 이길 품종을 개발할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라는데, 이후 연구의 성공 여부는 알지 못한다. 구 성패를 떠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실제로 감염된 돼지를 모두 죽일까? 일부라도 살아남은 개체가 여태 모든 국가에 없었을까? 모두 살처분하지 않았다면 찾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혹 평안북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내성 돼지가 발견되는 거 아닐까? 희망의 열쇠가 될 수 있는데.


바나나는 세계가 한 그루를 재배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이 없는 품종이다. 창궐하는 질병에 매우 치명적이므로 자칫 멸종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해왔다. 곰팡이가 돌면 피해반경 이내의 바나나 밭을 모조리 불태우지만 바나나 씨앗은 극도로 안전하게 관리한다. 바나나 껍질 속에 유리파편처럼 박힌 씨앗은 따로 모아서 새로운 품종을 찾는데 이용한다고 한다. 1960년대 그로미셀 품종을 이은 캐번디시 품종을 그렇게 찾았고, 다시 새 품종을 찾으려 바나나 재배업자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 퍼지기 전에 누구라도 이겨낼 품종을 찾아야 하지 않나?


육지와 연결된 다리 두 곳을 잘 차단하면 전파를 최선으로 억제할 수 있는 강화에서 모든 돼지의 살처분은 아쉽기 그지없다. 가축 감염 전문가는 공기로 전파되는 구제역과 달리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철저한 방역으로 전파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강화는 완전 살처분 대상지에서 제외해야 옳지 않았을까? 이미 살처분이 결정된 마당이므로 무척 아쉽다. 죽어가는 돼지에게 아쉽다는 표현은 온당치 않은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이기는 개체를 찾는 기회를 우리는 놓쳤다. 충분한 보상으로 사육하는 축산업자의 양해를 구해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치사율 100% 감염병? 그런 질병이 가당할까? 숙주를 100% 죽이는 바이러스라면 머지않아 숙주와 더불어 사라진다. 그런 질병은 생태계에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전 세계의 사육장에서 돼지가 같은 질병으로 모두 죽었다면 우리는 사육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장식 돼지 축산의 참혹한 현실을 보라. 위생적일 뿐 아니라 동물복지에 맞게 바꾼다면 그런 치사율은 있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배설물과 사료가 뒤엉켜 썩으며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사육하는 관행을 고집하는 한 돼지 뿐 아니라 소와 닭도 살처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사람은 아니 그럴까? (인천in, 2019.10.2.)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9. 5. 20. 16:52

 

모내기를 앞둔 대장들녘에 도시개발추진위원회가 생뚱맞은 현수막을 붙었다. “금개구리보다 사람 사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인데, 농민이 붙였을까? 확인하지 않았지만, 서울과 가까운 부천시 대장들녘 300만 여 헥타르 논의 소유자에 농민은 거의 없을 거 같다. ‘부천 대장지구 도시계발추진위원회에 농민이 대거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금개구리가 서식하는 대장들녘의 보전을 부천 지역 환경단체에서 요구하자 부랴부랴 내걸은 추진위원회는 평소 멸종위기 2급인 금개구리는 물론, 수도권 집값상승을 걱정했을 거 같지 않다.


대장들녘은 금개구리의 보전을 위해 농사짓는 곳이 아니다. 대장들녘에 분포하는 금개구리는 자신이 멸종위기 2급인지 모른다. 삶터가 위축될 뿐 아니라 위험해지는데 왜 1급이 아니라 2급으로 취급하는지 의아할 리 없다. 습지가 게 있으니 서식해왔다. 어쩌면 사람이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살았겠지. 농약 때문에 알에서 올챙이를 거쳐 성체로 성장하는 금개구리의 수가 크게 줄었어도 습지가 논으로 보전되니 견뎌냈는데, 언제 자취를 감출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대장들녘 쌀로 밥해먹는 사람보다 훨씬 적을 금개구리는 언제까지 남을까?



사진: 대장들녘에 느닷없이 게시된 현수막(대장들녘지키기시민행동 제공).


작년 12월에 이어 지난 57일 국토교통부에서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자 2기 신도시로 주거지를 옮긴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서울 집값 잡자는 3기 신도시가 오히려 서울 집값을 올린다는 주민들은 서울의 베드(bed)타운이 된 2기 신도시가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이제 데드(dead)타운으로 전락하게 생겼다며 3기 신도시 계획의 철회를 외친다. 한데 대장들녘이 위치하는 부천시는 영상문화산업단지와 함께 첨단산업 중심의 창조산업 허브 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반겼다. 금개구리가 인간의 휘황찬란한 꿈을 그간 방해했던가?


부천의 환경시민단체가 대장들녘지키기시민행동으로 모였다. 대장동 개발의 논의 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를 철석같이 약속했던 부천시였건만, 기회주의자처럼 국토부 계획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에 분노한 것이다. 대장들녘은 녹지가 태부족한 부천의 산소탱크요 식량창고이자 학습공간이다. 수많은 생물이 분포하는 생태공간이 아닌가. 3기 신도시 계획 이전에도 보전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행동은 멸종위기종의 분포를 조사했다.


역시! 많은 금개구리들이 숨죽이고 있었다. 금개구리뿐이 아니지만, 정부가 공식 지정한 멸종위기 종이므로 찾아내야했다. 확인해야 살려낼 수 있기에 농수로를 뒤졌는데, “금개구리보다 사람이 우선이란 현수막에 맥이 빠진다. 금개구리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멸종위기 종을 구할 책무 때문만이 아니다. 자식들과 부천에서 살아갈 시민행동은 금개구리가 잘 살 수 있어야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진: 대장들녘을 지키는 금개구리(대장들녘지키기시민행동 제공)


대장들녘만이 아니다. 서울을 행해 도열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1기와 2기 신도시 역시 대부분 논을 비롯한 경작지와 녹지를 파헤치거나 매립하고 들어섰다. 그 이후 서울과 주변 주택의 가격은 내려갔던가? 주택은 남아돌아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3기 신도시가 필요했던가? 신도시는 과연 주민을 위했나? 광고가 투기를 노골적으로 부추겼지만 정부의 대책은 없었다. 거듭 넓히기만 했던 도로는 여전히 막힌다. 더 넓히겠다고? 넓은 도로로 출퇴근하며 진이 빠지는 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거의 없는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가중되기만 한다.


생명체인 우리는 아파트나 자동차를 이용할 뿐, 먹지 않는다. 아파트와 자동차가 드물었던 시절, 사람들은 지금보다 값싼 집에서 살았다. 다정다감한 이웃과 밥을 나눴고 살가운 동물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주위에 녹지와 습지가 넓기 때문이었다. 논밭과 녹지를 헐어 다세대주택, 다세대주택을 헐어 고층아파트를 지을 때 몰랐는데, 고층아파트를 헐어 50층 넘나드는 초고층을 휘황찬란하게 짓는 요즘, 두려워진다.


하늘이 비좁아지면서 회색도시의 주민들은 삭막하기만 하다. 낯모르는 이의 폭력에 전에 없이 시달린다. 잘 아는 이도 조심해야 한다. 그런 삭막함을 금개구리가 걱정할 리 없지만 석유위기, 기후변화, 미세먼지로 인한 다음세대의 생명을 걱정하는 우리는 금개구리를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 식량위기가 머지않았다. (지금여기, 2019.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