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3. 23. 23:45

 

목마르던 대지가 모처럼 촉촉이 젖었다. 마음은 더 많은 봄비가 내려 남부지방의 저수지를 가득 채워주길 바랐지만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하늘만 바라보던 농부들이 일제히 분주해졌고, 매연으로 찌든 아스팔트와 대기까지 깨끗해진 도시는 한결 산뜻해졌다. 도시를 적시며 흥건하게 내리던 비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일요일 아침, 운동 삼아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걷는데 움푹 들어간 보행자도로와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남아있는 빗물이 보인다. 따사로운 봄볕을 받는 오후가 되면 이내 사라지겠지.

 

예년 평균 1300밀리미터 정도인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결코 작지 않지만 국토에 비해 인구가 많고 내리는 비의 60퍼센트가 장마철 전후에 집중돼 현대생활에 적응된 이에게 사시시철 물이 풍족한 건 아니다. 게다가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심한 산지이므로 전통 농경사회 이외에 물의 효율적 이용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 국가와 지방정부는 효율적 물 관리를 위해 댐이나 저수지를 만들어 강수량이 적은 계절에 대비하고 홍수를 예방하려 하지만 그건 평년의 강수량이 보장될 때에 한한다. 지구온난화 여파로 강수량이 절대 부족해진다면 아무리 커다란 댐도 소용없게 된다.

 

빙하에 덮이지 않은 우리나라는 고생대지층을 보유하고, 빗물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쌓아놓은 유기물을 평야와 갯벌로 나른다.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최근까지, 조상들이 그리 배곯지 않았던 거는 기름진 삼각주의 평야와 삼각주 너머 갯벌에서 농산물과 어패류를 풍부하게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에 쌓인 부엽토는 내리는 빗물을 머금다 조금씩 흘려보내 걷잡을 수 없는 재해로 연결되는 풍수해가 드물었고, 조상의 문화와 역사를 후대로 건강하게 이어올 수 있었지만 댐이 생기자 사정이 달려졌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빗물에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천수답을 관개농업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거대한 댐에 기대는 관개농업보다 천수답이 오히려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방죽에 빗물을 저장하고 가장자리에 물웅덩이를 파놓은 천수답은 여름에 집중되는 빗물을 자연스레 완충할 뿐 아니라 계단식으로 이어지며 강의 범람을 막아주고 강물과 지하수위를 계절에 따라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해왔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뙤약볕이 강할 때 논과 주변 생태계에서 활발히 증발한 수증기가 뭉게구름을 만들어 농작물을 보호해주었다.

 

굽이치던 강줄기를 직선으로 줄여 확보한 관개농업은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심화시켰다. 노도 같은 빗물이 강바닥을 훑으며 흙탕물이 되어 댐을 채우면 바닥을 올라가는 댐은 저장능력이 줄어들 뿐 아니라 밀려드는 토사의 압력으로 붕괴될 위험이 높아지고, 필연적으로 농약을 살포하는 관개농업은 물을 오염시킨다. 물이 채워진 상태의 준설은 가라앉은 오염물질을 일으키며 용존산소를 고갈시킬 수 있어 조심스러운데, 그렇다고 그냥 두면 댐의 관개 기능이 줄어든다. 방죽처럼 주기적인 준설이 가능한 작은 댐을 골짜기마다 만든다면 모를까 댐은 클수록 위험도 크다. 문제는 우리네 삶이 댐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올봄, 태백시의 심각한 가뭄도 역설적으로 거대한 댐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이 새는 낡은 수도관이야 물론 정비해야겠지만 댐이 없다면 대형 상수도가 없고, 강도 농경지도 생태계도 보전돼 사람은 지역의 수량에 맞는 생활을 벗어나지 않았을 터, 아닐까. 댐과 수도관이 쏟아내는 수량을 믿고 마을이 도시로 확장되고 소득과 더불어 물 소비가 늘었지만 지구온난화의 징후로 일정했던 강수량에 변화가 오자 어느 해는 물이 넘쳐 마실 물이 없고, 어느 해는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태백시에서 멈추지 않고 어느 지역이든 되풀이될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중호우와 가뭄이 몰려다니는 것이 지구촌의 걱정거리로 등장한 마당에 평균 강수량이 예년과 비슷하다는 건 심상치 않은 홍수와 가뭄으로 번갈아 시달리는 사람에게 전혀 위로가 될 수 없다.

 

지구온난화로 유발되는 기상이변은 천재지변이 아니지만 당장 극복할 수단도 없어 걱정인데, 원인을 제공한 지역의 사람은 무책임하게도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행동에 적극적이지 않다. 걸핏하면 녹색을 내세우지만 성장을 외치는 한 지구온난화는 가속될 수밖에 없는데, 최근 100년 동안 상승한 세계 평균 기온보다 배 이상 오른 우리나라는 어떤가. 홍수와 가뭄이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은 사막화다. 주지하다시피 사막화의 원인은 지구온난화이며 지구온난화는 에너지 낭비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에 있다. 봄이면 황사를 일으키는 중국과 몽골의 사막화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도시화도 사막화이고 관개농업도 사막화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 내리는 빗물을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도시를 보자. 한 방울의 빗물도 완충할 수 없어 아무리 적은 빗물도 도로를 넘쳐흐르지만 그치자마자 바싹 마른다. 완벽한 사막이다. 어디 그뿐인가. 도로를 넘치던 빗물은 저지대로 스며들어 일순 홍수를 일으킨다. 요즘 농촌은 지하수에 의존한다.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밭과 논도 지하수가 없다면 농사가 불가능한데 근처에 골프장이라도 들어서면 지하수는 고갈되고 만다.

 

번갈아 닥치는 지구촌의 가뭄과 홍수는 당장 해결할 수 없어도 노력하기에 따라 지역의 피해는 어느 정도 완충될 수 있다. 우선 봄 가뭄이 심각해진 우리나라부터 방죽과 같은 작은 댐을 골짜기에 만들고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칠갑이 된 도시에 빗물을 머금는 공간을 확충할 필요가 있겠다. 이른바 ‘비오톱’(biotop)이다. 도로와 주택과 건물 사이에 녹지를 충분히 배려하고 도심 곳곳에 나무가 울창한 공원을 조성하고 공원에 빗물을 완충하는 크고 작은 호수를 만드는 일이다. 비오톱에서 지하로 스며드는 빗물이 늘어나면 도심의 녹지는 더욱 건강해지고 녹자가 아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흡수하니 기온은 낮아질 것이다. 옥상에 풀을 심고 빗물을 활용하거나 하수 중간처리로 허드렛물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적극 고려할 수 있겠다.

 

빗물을 효과적으로 완충하며 저장하는 시설을 확보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시급한 행동은 에너지 소비와 더불어 물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생활이다. 절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온난화가 심화되는 지구촌에서 효율화도 재활용도 이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또한 대규모 댐에서 가져오는 물을 소비하는 도시와 그렇지 못해 가뭄과 홍수의 피해에 직면하는 지역의 위화감은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학교 선생님이 1주일에 한번은 꼭 목욕하라 당부하던 시절, 도시와 농촌과 사람의 몸과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깨끗했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보자. (작은책, 2009년 5월호)

매일 샤워하는 생활습관도 큰 문제겠지요. 조금은 더럽게, 조금은 느리게 사는 것도 괜찮을텐데요. ^^*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2. 8. 00:25

 

1980년대 초 포병부대 신참 위생병이었을 때, 실탄 훈련이 예고되면 긴장해야 했다. 선반에 놓인 약품이 우수수 떨어지면 골치 아팠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랬는지 실탄보다 위력이 약한 훈련용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중국에서 로켓과 대포를 총동원해 하늘을 공격하려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최악의 가뭄을 맞아 하늘과 싸우려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그러랴 싶은데, 많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의 밀 생산량 중에 43퍼센트를 떠맡는 중북부 310억 평에 가뭄이 들어 429만 명이 식수난에 빠졌다고 한다. 세계 16퍼센트를 담당했던 중국의 생산량 부족 예상으로 중국내 밀 가격이 이미 5퍼센트 상승하고 국제시장도 3.6퍼센트가 올랐다는데, 밀보다 당장 물이 급하다고 언론은 전한다. 작년 10월 이후 베이징의 강수량이 0.1밀리에 그쳤다니 하늘을 원망할 만한데, 중국당국은 대포로 하늘을 관리하려한 건 아닐 것이다. 시름에 잠긴 인민에게 정부도 최선을 다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고육지책일지 모른다.

 

최근 4대 메이저의 하나인 호주오픈테니스대회가 열렸다. 중계방송을 본 테니스 펜은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대회기간의 폭염까지 주목했을까. 전문가의 입을 빌어 지구온난화현상으로 지목한 국제 언론은 살인적인 기온으로 경기를 마친 선수는 물론 관중석까지 지쳐 늘어지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햇살이 강해 여름철이 유난스러운 지역이 호주지만 이번 더위는 예전과 달랐다고 한다. 극심한 가뭄으로 도시에 물을 배급해야 했으며 노약자를 중심으로 사상자가 속출할 정도였다고 한다.

 

호주의 이번 더위는 수은주가 40도를 넘자 수만 명이 사망한 2003년 유럽의 폭서와 비견될지 모르지만, 그런 비교는 피해자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자동차에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선선했던 여름이 갑자기 뜨거워지자 속수무책이었던 유럽과 달리 호주는 나름대로 대처했어도 사망자가 속출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원래 사람이 죽을 정도였다면 거기에 도시가 만들어질 수도, 국제 테니스대회가 열릴 수도 없었을 텐데, 지구촌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역이 점차 늘어난다는 징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꼭지를 돌리기만 하면 원하는 물을 얼마든지 손쉽게 받는 도시인들에게 경각심이 전달되지 못하겠지만, 예전에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강우량으로 전국의 산하가 갈증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계속된다. 태백권에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한 강원도를 비롯하여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가 비슷한 실정이며 도서지방의 갈증은 참아내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한다. 제한급수와 식수차로 주민을 달랠 수 없는 관청에서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한다고 뾰족한 대책이 세워질 리 없다. 농사철은 다가오는데 비 소식은 없고, 장마철을 멀다. 문제는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지구온난화 상황에서 장마철에 비가 충분히 내릴지 전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보일러 스위치를 높이거나 에어컨을 커는 우리는 과학기술을 동원하며 환경을 극복해왔다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이제 그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오로지 사람의 편의에 맞추어진 철근시멘트 건물 속에 숨어 심각해지는 지구촌의 현실을 외면해왔지만 에너지를 과소비로 온난화를 더욱 촉발하는 거대한 인큐베이터도 한계를 드러낸다. 악화된 환경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는 노약자부터 희생되는 현상은 유럽과 호주에 이어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예외가 없을 텐데, 인큐베이터 속에서 펼치는 대책은 겉돌기만 한다.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인큐베이터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더위와 가뭄의 해결을 에어컨과 댐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입증되었으니 조상이 물려준 자연스런 환경으로 지구가 회복될 수 있도록 인큐베이터에서 벗어날 대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인큐베이터로 뒤덮이며 처참하게 오염된 지구가 더는 뜨거워지지 않아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면, 먼저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한사코 외면했던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지구는 자연스럽던 시절로 돌아갈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경제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거다. (기호일보, 2009년 2월 20일)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 24. 12:18

 

작년 가을에서 이번 겨울로 이어졌던 가뭄이 봄이 다가오기까지 풀릴 줄 모른다. 물기를 잃은 남도의 저수지마다 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 입안이 바싹 마를 지경인데, 제한급수로 하루하루가 고달픈 주민의 갈증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하늘만 바라보는 농부의 가슴은 진작 타버렸을 것이다. 추수 마친 뒤부터 강수량이 적은 기후대라 해도 이번처럼 지독했던 기억은 없다. 지난 장마철에 담긴 물이 전년의 3분의1에 불과했으니 봄을 앞둔 저수지는 존재 이유를 잃어버렸다.

 

국토의 65퍼센트 정도가 경사 급한 산지인 우리나라는 내리는 비의 3분의2가 여름 한철에 집중돼, 계절에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다른 강은 다채로운 풍광을 산기슭에 연출한다. 커다란 바위가 이리저리 겹친 계곡을 급하게 휘감아 내려가는 물줄기는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소를 여기저기 남기며 중상류로 이어지고, 쏟아지듯 허겁지겁 내려오는 계곡의 물줄기는 중상류로 모이며 안정을 찾는다. 안정을 찾은 물줄기는 모래와 자갈이 깔린 산허리를 굽이치며 합류하다 하류로 천천히 접어들면서 고운 흙을 내려놓아 범람원에 넓게 펼쳐놓았고, 하류의 기름진 범람원에서 농사짓던 조상은 자손에게 문화와 역사를 이제껏 전할 수 있었다.

 

비가 여름에 집중되어도 강은 맑은 물을 사시사철 흘려주었다. 이따금 넘치거나 모자라 때때로 어려움을 겪었어도 고향을 등져야 할 만큼 주민들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았다. 농사지을 땅이 있다면 식구들은 배를 곯지 않았다. 가뭄에 잘 견디는 씨앗, 뿌리가 길어 홍수를 이기는 씨앗, 볕이 드문 평지에서 수확이 좋은 씨앗, 양지바른 비탈에서 잘 자라는 씨앗 들을 다채롭게 갈무리하던 조상은 혹독한 한발이나 홍수를 너끈히 넘겼다. 주위의 울창한 숲에서 굽이치는 강으로 물을 넉넉하게 공급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숲의 푹신한 낙엽은 훌륭한 수원지의 몫을 다한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낙엽층은 빗물을 저장할 뿐 아니라 정화해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물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방죽 이외에 댐이 없어 천수답에 의지했어도 벼농사에 큰 지장이 없었던 조상에게 심각한 갈증은 드물었다. 논이 다목적 댐 이상의 저수능력일 가졌을 뿐 아니라 지하수를 늘 깨끗하게 채우고 인근의 크고 작은 강에 물줄기를 이어주었던 거다.

 

흘러내리는 물을 비뚤배뚤한 논둑으로 막으며 계단처럼 이어지는 천수답은 지하수위를 건드리거나 오염시키지 않았지만 요즘의 관개농업은 지하수의 오랜 안정을 해친다. 소가 쟁기를 끌던 논배미를 농기계가 움직일 만큼 넓게 사각으로 합치면서 수맥이 훼손되고, 무거운 농기계가 논바닥을 다지면서 지하수가 차단된 것이다. 대신 댐에서 적시 적량 물을 공급받지만 관개수로와 먼 논은 자하수를 양수기로 퍼올려야 했고, 그 때문에 지하수위가 낮아졌다. 관리가 부실한 관정으로 농약이 스며드니 우물을 믿지 못하는 농촌은 상수도에 의존하거나 산에서 맑은 물을 끌어들이게 되고, 지하수는 더욱 버림받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논이나 강이 주변 생태계와 단절된 것이다.

 

논은 주변 산과 들의 생물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공간이었다. 가장자리에 마련한 물웅덩이마다 온갖 수서곤충과 작은 물고기가 빼곡했고, 곤충은 개구리를, 개구리는 뱀과 형형색색의 새들을 끌어들였건만 지금은 아니다. 둑에 제초제를 뿌려 여름에도 풀이 노랗게 말라죽고, 곤충이 다가오지 않아 봄이 와도 개구리는 물론 새도 울지 않는다. 농약 냄새가 진동하면서 침묵에 휩싸인 농촌에 어느덧 아기 울음소리마저 끊겼다. 지하수위가 낮아지자 갈수기에 강바닥이 바싹 마른다. 모내기철마다 다급해지는 민원에 따라 굴삭기를 동원하는 관청이 바닥을 깊게 파내면서 강의 생태계는 괴멸된다.

 

강은 상류와 하류만 이어주는 게 아니다. 굽이마다 바위와 모래와 자갈과 진흙과 갈대와 부들과 갯버들이 잘 어우러지는 폭포와 소와 여울을 연출하는 강은 주위의 숱한 생물을 모여들게 할 뿐 아니라 지하수와 이어지고 계절과 역사를 창연하게 기억하는 까닭에 사람들은 강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를 다채롭게 꽃피워왔다. 문제는 강을 파편적으로 이용하는 관개농업보다 흐름을 거대하게 막는 댐이고, 더 큰 문제는 강을 계단처럼 막는 운하다. 일정 깊이를 유지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강의 흐름을 관리해야 하는 운하는 상류와 하류, 좌와 우, 강과 지하, 그리고 계절과 역사를 모조리 단절한다. 거대한 인공호수를 정체시키는 댐과 달리 운하는 강의 생명을 전면 부정한다.

 

강을 직선으로 만들면 빗물을 한꺼번에 바다로 밀어내고, 운하는 바다로 나가기도 전에 강물을 버림받게 만든다. 빗물이 흘러드는 계곡에 도로를 뚫거나 거대한 건물을 짓고 나무를 함부로 자르거나 낙엽을 긁어내면 노도처럼 이는 황토물이 생태계를 덮친다. 비가 그치치자마자 토사를 내려놓는 황토물이 흐름을 잃는 호수에 들어와 바닥을 높인다. 높아지는 바닥은 집중호우 때 제방을 위협하니 주변 농토와 주민의 삶은 위태로워진다. 깊은 콘크리트로 제방을 높게 보강하면 지하수가 낮아져 주변의 농토는 바싹 마를 것이다. 제방 너머 강기슭에 개발을 예정하는 운하는 ‘4대강 정비’라는 위장과 관계없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지역에 안길 것이 거의 틀림없다.

 

가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구온난화가 걱정이므로 온실가스를 방출하는 개발을 획기적으로 억제하는 제도를 한시바삐 정비하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겠지만 그런 행동만으로 남도의 이번 갈증이 즉각 해결되지 않는다. 비를 육지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운하는 터무니없고 댐도 한시적일 뿐이다. 숲의 천연 댐 기능을 보전하고 논의 생태적 가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렇다고 여름철에 바다로 흘러나가는 빗물을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강물은 갯벌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해양 생태계에 불가항력으로 필요한 생명수다. 덕분에 수많은 어패류가 알을 낳고 가까운 바다에 어군을 만들어 우리는 밥상을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이 된 도시도 바꿔야 한다.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 수 있도록 물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비오톱(biotop)을 조성해 곳곳의 피부를 살려낼 필요가 있다. 빗물도 완충하고 도시의 더위를 식혀주는 비오톱은 지친 시민에게 휴식과 생태학습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쟁하듯 깊어지는 관정으로 지반을 뚫고 강바닥을 깊게 파내려간다면 내일의 갈증은 더욱 증폭될 뿐이다. 자연의 보습력을 회복시키려는 행동에 서둘러야하지만, 그보다 먼저, 물 걱정에서 먼 도시인들은 남도의 농민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비록 관개농업이더라도 그들이 농토를 지키기에 도시의 갈증부터 언제나 모면되지 않던가. (작은책, 2009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