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9. 6. 16:37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1985년 노래로 아직 인기를 잃지 않은 가수 정광태는 1983년 박인호 작사 작곡의 《도요새의 비밀》로 히트를 쳤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정치 시절, 열정을 실현하기 어려웠던 젊은이들은 그 가사를 흥얼거리며 밤거리를 흐느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 물으며 시작하는 가사는 뜨거운 태양보다, 무궁한 창공보다, 말없는 솔개보다 높이 날고, 밑 없는 절벽을 건너, 목 타는 사막을 지나, 길 없는 광야를 날아, 검푸른 바다를 건너, 춤추는 숲을 지나, 성난 비구름을 뚫고 멀리 날아간다고 노래했다. 비록 몸은 작아도 가장 높고 멀게 날고, 가장 높은 꿈을 꾸는 새라고 노래했으니 날개 꺾인 청년들은 그 노래라도 불러야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황새목 도요과에 속하는 13속 80여 무리 종에서 우리나라를 찾는 40여 종의 도요새 대표는 아무래도 마도요가 맡아야 하지 싶다. 덩치가 가장 클 뿐 아니라 활처럼 구부러진 부리가 길고 날카롭지 않은가. 국민가수 조용필이 하필 《마도요》를 노래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터. 큰 인기를 끌지 못했어도 1987년 박건호 작사로 작곡한 《마도요》는 네온사인이 화려해도 청춘을 만끽할 수 없는 젊은 도시인의 허전한 마음을 대변했다. 저마다 옳다고 우겨대도 들어주는 이 없는 도시를 마도요처럼 아쉬움을 남긴 채, 꿈을 찾아 떠나간다고 했다. 아, 1980년대! 그때 우리나라가 그랬다.

 

1980년 대 우리 서해안을 들린 마도요는 당시 대한민국의 청년들의 심사를 헤아렸을지 알 수 없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땅의 청년들은 서해안을 찾는 마도요의 두려움을 헤아리는 것 같지 않다. 선조의 기억을 따라 봄가을로 갯벌을 들러야 하는 마도요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한다. 몸길이 60여 센티미터로 닭 못지않은 덩치를 자랑하는 마도요지만 갯벌이 오그라드는 걸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갯벌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조용필의 활동이 전 같지 않아 그런가. 마도요를 기억하고 그들의 삶이 위축된다는 데 가슴 아파하는 이도 매우 드물다.

 

북유럽에서 러시아의 우랄과 몽골의 고비를 거쳐 만주 일원에 퍼져 번식하는 마도요는 둥지를 친 고향에 따라 겨울을 나는 곳이 다를 텐데, 인도와 아프리카 동부, 일본 남부와 타이완에서 동아시아를 찾는다. 일부는 우리나라 해안을 떠나지 않지만 적도를 지나 호주와 뉴질랜드의 해안까지 날아가는 무리도 적지 않다. 그런데 번식지에서 호주나 뉴질랜드를 해마다 왕복하는 마도요는 대부분 우리나라 서해안을 경유해야 한다. 1만 킬로미터 이상 나는 동안 몸무게가 절반 가까이 허해졌으니 보름 정도 머물며 영양분을 다시 축적해야하는 까닭이다. 그때 페르시아의 검처럼 날렵하게 구부러진 부리가 진가를 발휘한다.

 

물갈퀴가 없으니 물이 밀거나 들 때 부지런히 날아오르거나 갯벌에서 긴 발을 적시며 천천히 걸아야 하는 마도요는 고개 내미는 칠게가 눈에 띄면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다. 부리나케 달려들어 머리가 빠질 정도로 20센티미터에 가까운 부리를 푹푹 찌르기를 반복하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다 싶으면 40도 정도 구부러진 부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어김없이 한 마리 끌어내는 거다. 작다면 그대로 꿀꺽! 삼키지만 한 입으로 넘기기 어렵다면 강력한 부리가 다시 빛을 발한다. 다리를 물고 몸통을 전후좌우로 흔들면 다리를 하나 씩 떼어낼 수 있을 터. 움직일 수단을 잃고 허전해진 몸통을 냉큼 삼키면 갯벌에 다리가 남을 것이다. 메인 메뉴를 다 먹고 접시 위에 남은 디저트를 느긋하게 즐기는 미식가처럼 이제 갯벌 위의 다리를 천천히 집어삼킨다.

 

마도요가 알을 낳는 고비와 만주의 풀밭도, 겨울을 나는 호주나 뉴질랜드 해변도, 주로 모래땅이다. 모래땅에 숨은 곤충과 도마뱀들을 잡는데 구부러진 부리가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부리는 아무래도 서해안의 갯벌에 적응한 결과로 보이는데, 도요새가 굳이 칠게만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동죽이나 백합도 마다하지 않고 갯지렁이도 대환영이다. 패각을 단단하게 여미는 꼬막도 마도요의 날카로운 부리 앞에 소용이 없다. 숨이 가빠 껍질을 살그머니 열고 입수공과 출수공을 내미는 순간, 날카로운 부리는 여지없이 몸을 파고든다.

 

갯벌 위를 칠갑한 듯 널렸던 칠게마저 시방 남획된다. 갯벌이 거듭 매립되면서 생계를 잃은 어민들이 간장에 졸여 저장하거나 낙지의 미끼로 사용하는 칠게를 마구 잡아들이자 마도요와 그 사촌인 알락꼬리마도요가 굶주리게 것이다. 가슴은 더 엷지만 머리에서 등까지 엷은 갈색에 검은 줄무늬가 산재하는 마도요는 꼬리가 흰 반면, 알락꼬리마도요는 등과 구별하기 어려운 꼬리를 가졌다는 게 두드러진 차인데, 사람이 만든 칠게 덫에 먹이를 잃고 만 것이다. 굴뚝으로 쓸 크기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세로로 길게 잘라 갯벌에 묻자 지나가다 미끄러진 칠게들이 하룻밤에 8킬로그램 자루로 가득 잡혀나가기 시작했고,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알락꼬리마도요처럼 마도요도 줄어들게 생긴 게 아닌가.

 

광활했던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에 이어 새만금의 갯벌마저 사라지자 서천군 유부도의 갯벌에 마도요를 비롯한 도요새 무리가 빼곡하게 모여드는 모양이다. 유부도만이 아니다.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보호하는 순천만, 조력발전으로 위기에 몰린 강화도 인근, 그리고 공터가 널린 신도시를 더 확보하기 위해 추가 매립하겠다고 벼르는 송도11공구의 갯벌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세계적으로 2만 마리 남은 알락꼬리마도요의 4분의1이 여전히 내려오니 고마울 따름인데, 오죽하면 찾을까. 그들에게 대안은 이미 없어졌다.

 

생태계의 오랜 보고이자 도요새 무리의 생명 기반인 갯벌이 산업단지와 최첨단 도시의 부지로 거듭 매립되자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하소연한다. 마도요가 와야 농사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시를 쓸 수 있는데, 아산시마저 ‘에코’라 접두어를 붙인 산업단지를 위해 130여만 평의 갯벌을 매립하려 혈안이다. 그래도 마도요와 알락꼬리마도요는 올 가을에 우리의 갯벌을 찾았다.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전원생활, 2010년 11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09. 7. 21. 09:38

 

1995년 여름방학 중이라고 기억한다. 굴업도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인천 지역의 원로들이 탄 작은 배는 덕적도를 벗어나 먼발치에서 굴업도를 바라보고 있었건만 10톤도 안 되지 않는 배는 바닥이 닿는다는 이유로 방향을 옆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바다 한가운데에서 포말이 일기 시작하더니, 아니! 바다 표면을 뚫고 느닷없이 모래톱이 올라오는 게 아닌가. 포말은 점점 넓게 퍼지고, 이윽고 샛노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지는 거였다. 그 때문에 배는 한참을 돌았고, 선장은 벅찬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는 일행을 위해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천천히 우회하며 굴업도를 향했다.

 

뱃전에 스치는 바닷바람이 시원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여름. 바다 한가운데에서 솟아올라 드넓게 펼쳐지는 모래사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지역 원로들의 눈 가에 이슬을 맺게 만들었다. 예가 인천 앞바다라는 사실에 감격하던 그들은 시간이 더 있다면, 조금만 젊었더라면, 당장 뛰어들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몇 시간이라도, 아니 몇 분만이라도 눈부시게 깨끗한 인천 앞바다의 속살에 몸을 맡기고 뒹굴고 싶었을 것이다. 선장은 그런 모래섬을 ‘풀등’이라 했다. 인천 앞바다에 풀등이 많아 바닷물이 낮을 때 다니기 어렵다고 했다. 인천의 자연유산인 풀등,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는 관광자원일 풀등의 존재를 정작 인천시민들이 몰랐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중에 해도를 보니 굴업도 앞의 풀등은 폭이 1마일, 길이가 5마일에 달했다. 1마일은 대략 1.6킬로미터. 1.6킬로미터에 8킬로미터를 곱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면적인가. 하여튼 감격에 겹지 않을 수 없었는데, 굴업도 앞의 풀등은 항상 드러나는 건 아니다. 그날도 간조 때의 바닷물 높이가 그리 낮지 않아 조금만 보여줬을 뿐이었다. 1년에 몇 차례, 고작 몇 시간 드러나지 않지만, 그 시간을 미리 안다면 그늘막과 마실 물을 준비하고 수영복 입은 채로 첨벙! 작은 배에서 뛰어들 수 있을 텐데, 인천의 원로들조차 몰랐다니. 직무유기였다. 가슴이 뛰는 저 장관을 인천시민에게 아니 우리나라 모든 시민들에게, 나아가 국제 시민들에게 알렸다면 인천의 자부심은 물론, 그로 인한 관광 효과는 무궁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에 당시 공연히 화가 나기도 했다.

 

 

 

바닷모래를 아파트 지을 때 사용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의구심이 생겼다. 그래도 되는 건가. 바다모래를 써도 건물은 제 수명만큼 안전할 수 있는 겐가. 넓게 감돌아 흐르며 내려놓은 강모래를 그렇게 긁어내는 데에도 물량이 모자란다는 건가. 딱히 임자가 없어 퍼가는 자가 주인인 강모래와 자갈. 하지만 그건 사람 이야기일 뿐이다. 강이 생긴 이래 모래와 자갈은 강에 기대 사는 목숨붙이들의 오랜 터전이었다. 주인 모르는 땅에 20년 이상 점유하면 자기 땅이 된다던데, 물이끼, 도래, 다슬기, 쉬리와 모래무지, 도롱뇽, 유혈목이, 자라, 물까마귀, 물총새, 수달 들은 어떤가. 그들은 사람이 접근하기 훨씬 전부터 강을 끼고 살아왔다. 인간도 그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건만 그 목숨붙이들의 터전은 무시해도 되나.

 

중학교 사회 시간에 우리나라 산악지대는 고생대 지질을 간직하고 있다고 배웠다. 그래서 푸석푸석하게 풍화가 되어 비바람에 잘 씻겨 내려간다고 들었다. 마사토를 보라. 발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져나가는 바위를 적당히 부수어 만들지 않던가. 그런 바위와 마사토에 억센 빗물이 연실 퍼부어지는 장마철, 계곡을 타고 흐르던 모래와 자갈과 고운 흙은 하류에 차곡차곡 쌓였다. 수 억 년을 물살에 덜그럭거리던 호박돌은 둥근 모양이 되어 중상류 하천 바닥에 흩어져 돌고기와 꺽지의 터전을 만들어주었고 굽이치는 하천의 안쪽에 가지런히 쌓인 모래는 모래무지와 쉬리의 산란처가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영겁의 세월 동안 곱게 풍화되면서 온갖 유기물을 함유하던 흙은 하류에 훌륭한 비옥토를 내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하구를 빠져나가 우리 서해안에 드넓은 갯벌을 형성해주었다. 예서 이미 잘 알려진 갯벌의 가치를 새삼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고생대 지질을 간직하는 우리 강산에 담수어류가 다양한 이유는 무엇이던가. 아주 오랜 세월동안 하천 생태계가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황하강과 양자강의 옛 지류였던 우리 하천들은 작은 땅에 발원을 달리하는 만큼 형태가 비슷하지만 엄연히 종이 다른 담수어류를 다수 보전하고 있다. 피라미와 갈겨니, 돌고기와 감돌고기, 버들치와 버들개, 왕종개와 참종개…, 그 수를 헤아리면 끝이 없다. 강이 보전되지 않았던들 어림도 없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다. 산 정상부에 도로가 뚫리면서 분수계(分水界)가 흐트러지고, 낚시꾼들이 함부로 여기에서 저기로 담수어류들을 옮기면서 서식지가 혼란스러워졌지만 그보다, 강모래와 자갈을 마구 퍼가면서 아예 자취를 감춰가는 실태인 것이다.

 

반면, 높이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던 빙하가 녹으며 움직여 평지에 가깝게 깎은 유럽 대륙은 중생대 지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산림에 4천 여 종의 나무와 풀이 어우러지는 우리와 달리, 불과 수백 종의 식물만 자생할 뿐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따로 조사하지 않아 모르지만, 담수어류의 다양성도 우리보다 떨어질 것 같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독일 북쪽의 바다에 형성된 갯벌은 맨발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곱게 형성된 우리와 달리, 몹시 거칠다고 한다. 일 년 내내 일정하게 내리는 빗물이 평지의 강을 천천히 흐르는 유럽은 우리처럼 다채로운 생태계에 복잡다단한 생물종들을 보유하지 못한다는 거다.

 

우리는 지금 여기, 복 받은 땅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몰려 있어도 최근까지 금수강산일 수 있었을 게다. 여름 한철 몰려오는 강우가 고생대 지질로 이루어진 산비탈에 쏟아지면서 영겁의 세월 동안 강과 들과 갯벌과 모래사장을 만든 결과로, 덕분에 한반도에 자리잡은 조상은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었다. 풀등은 그런 연유로 탄생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자연유산이다. 강모래가 모자랄 지경으로 강을 파헤치고 들과 갯벌을 메우기 전까지 분명히 그랬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우리는 주택 200만호 열풍에 휩싸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의 주택을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지어야했으니 모래가 모자라는 건 불문가지. 바로 그 직전 정권의 강압적인 ‘한강종합개발’로 직선화하고 바닥을 일정 높이로 깎아내면서 한강에서 산더미처럼 퍼올린 모래는 순식간에 바닥났고 결국 바다모래를 본격적으로 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급한 일처리로 소금기가 제대로 제거되었을 리 없었다. 당시 지은 아파트의 벽은 습기만 머금으면 하얀 소금기를 토해냈고, 벽지 사이로 자디잔 개미들이 고물거렸다.

 

바다는 공유수면인가. 영해가 국가에서 관할하는 수역이더라도 그물이나 낚시로 건져 올리는 물고기는 개인의 소유이듯, 바다의 바닥도 파내는 자가 임자가 되어야 하나. 아마 그런 모양이다. 바다모래는 퍼올리는 자가 소유했고, 건축 현장에 팔아넘겼다. 그런데 사전에 허가가 필요했고 그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지방자치단체에 지불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바닷모래는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선소유하는 모양인데, 바다모래에 태고 적부터 터잡고 살아온 숱한 어패류의 권리 역시 나중에 온 인간에 의해 무시당했다.

 

육지에서 표층의 흙이 중요하듯 바다도 바닥의 표면을 덮고 있는 모래와 갯벌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도입을 서두르는 독일 모델인 표토에 관련된 법률은 불가피하게 땅을 파야 할 경우, 표층의 흙을 따로 모아두었다 녹지를 조성할 때 활용하도록 규정돼 있다고 한다. 표토에 수많은 미생물과 영양물질이 함유돼 추후 나무를 심거나 생태계를 복원할 때 요긴하기 때문이라는 건데, 그건 바다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수많은 어패류들이 알을 낳고 해초류가 싹을 트며 생태계를 구성하며 어우러지지 않던가. 과문해서 그런가, 아직까지 우리의 토목 현장에서 표토를 모아두고 다시 활용하는 모습을 본 적 없는데, 바다는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 시늉조차 할 수 없다.

 

1990년 전후로 본격 퍼올려지기 시작한 서해안의 모래는 전국의 건축 현장으로 옮겨간 물량이 전부가 아니다. 그 무렵부터 서해안은 걷잡을 수 없게 매립되었고, 건축 현장에 들어가는 정도는 애교에 불과할 정도로 막대한 바다모래가 매립토로 사용되었다. 생각해보자. 갯벌을 대규모로 없애버리는 요즘, 매립은 만의 끄트머리를 서로 연결하는 규모를 넘어선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밀어붙인 인천공항은 광활한 바다를 통째로 바닷물 높이 이상으로 매립했다. 송도신도시는 어떤가. 세계에 2천 여 마리 만 남아 국제사회가 긴장하며 보호하는 저어새가 하필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의 인공섬에 둥지를 친 다음, 먹이활동을 위해 부지런히 오고가는 약 10만 제곱킬로미터인 인근의 11공구 갯벌만이 잠시 보류되었을 뿐, 무려 43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갯벌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돼야 위험할 정도로 매립되지 않았던가.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새만금 제방은 40킬로미터가 넘는다. 100미터의 높이에 바닥의 폭이 300미터에 달하는 제방의 내부는 모래로 가득 채워놓았는데, 전부 바다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제방 내부의 모래는 간척사업에 들어가는 양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제방으로 바닷물의 침입을 막고 해수면보다 낮게 개발하겠다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현장에도 성토가 필요하다. 당초 약속대로 농경지를 조성하려면 4미터 이상의 흙을, 도시나 공업단지를 조성하려 해도 1미터 이상 흙을 쌓아야 한다. 물론 공원으로 조성할 곳도 육지에서 충분한 흙을 가져와야하지만 그만한 흙을 어디에서 충당해야할지 막막할 것이다. 아직 내부 기반공사는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흙을 맨 위로 올리기 전에 간석지의 높이를 어느 이상 올려야 하는데, 간석 규모를 미루어 그 지점까지 들어가야 하는 바다모래의 양도 막대할 것이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1400만평 갯벌을 매립한 인천공항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간석지의 거의 전부를 해수면 이상 높였고 그를 위해 역시 바다모래가 들어갔다. 실로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이후 인천 앞바다는 돌이킬 수 없게 버림받았다. 어획고의 질은 물론이고 양적으로 바닥을 드러내, 이제 먼 바다가 아니라면 조기와 민어는 잡히지 않고 갈치도 제주도 해역으로 빠져나갔으며 그 흔하던 밴댕이의 작황도 전 같지 않다. 재수 없게 그물에 걸려 텀벙 텀벙 버려야 했던 ‘물텀벙이’(아귀)도 수입에 의존해야 용현동 ‘물텀벙이 골목’의 소비 물량을 댈 정도가 되고 말았다.

 

 

 

인천공항보다 규모가 훨씬 커진 송도신도시 부지는 최근까지 바다모래를 퍼올렸다. 먼 바다에서 거대하게 이어지는 대형 파이프로 연실 토해내는 모래로 기반을 높인 자리에 갯벌센터(Get Pearl Center)가 올라섰고 주식회사 포스코에서 초고층으로 세운 주상복합 건물이 높이를 자랑하게 되었으며 머지않아 미국 아트만에서 151층 쌍둥이 빌딩을 하늘까지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발전된 토목건축 기술이 집약되었다는 걸 인천시는 자랑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후손과 함께 보전해야 할 인천 앞바다는 시방 몹시 우울하다. 갯벌과 함께 생태계의 오랜 이웃들을 한꺼번에 잃은 바다는 자신의 생존 기반이던 모래까지 모조리 빼앗기기 직전이 아닌가.

 

최근 인천 지역의 신문들은 풀등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개탄하며 보도했다. 인천 앞바다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대이작도와 사승봉도 주변의 풀등은 2007년 제출된 ‘인천 연안도서 해양환경 보전 및 관리계획’ 보고서 결과, 무려 230만 제곱미터(70만여 평) 이상에 달했건만 현재 66만 여 제곱킬로미터(20만여 평)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게 아닌가. 바닷물이 썰 때 3시간 남짓 드러났다 밀 때 사라져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풀등이 이처럼 처참해지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건 아니다. 수 억 년 각고의 세월에 걸쳐 형성된 풀등이 불과 20년 만에 허물어진 셈이다.

 

대규모 간석사업을 위해 옹진군에서 허가를 한 모래채취가 발단이 되었는데, 2002년 1100만 세제곱미터 가까이 퍼올려 최정점을 이룰 때 어민들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2005년과 이듬해까지 휴식년으로 멈추었지만 그것도 잠시, 2007년부터 채취가 재개된 현재 풀등은 고작 3분의1 남겼는데에도 불구하고 대이작도의 풀등에서 겨우 8킬로미터 떨어진 선갑도 앞에서 채취가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옹진군은 앞으로 3년 동안 최정점을 이뤘던 2002년의 채취량을 초과하는 3600만 세제곱킬로미터의 바다모래를 3년 이내에 퍼내겠다고 다짐하는데, 그건 풀등에 대한 사형선고다. 풀등이라는 세계 자연유산이 우리 세대에 종말을 고할 순간을 맞은 것이다.

 

지역 환경운동가의 지적처럼 “꽃게의 산란장이면서 바닷물고기의 보육장으로 요긴”한 바다모래와 풀등은 이제 그 경관과 생태적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해 휴일이면 적지 않은 시민들이 찾아오고 있다. 맨발로 조개를 캐는 이도 있지만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상기된 채 두세 시간동안 모래섬을 맨발로 거닐거나 끌어안는다. 어머니의 속살과 내 피부를 부비며 부둥켜안는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집요할 뿐 아니라 서둘러대는 채취로 대이작도의 큰풀안해수욕장의 해변마저 절벽이 될 정도로 모래가 유실되었다. 바닥이 2.5미터 이상 절벽처럼 깎여나갔다고 대책위원은 한숨을 푹푹 쉬는데, 세계에서 유일한 풀등의 보전을 위한 체계적인 실태조사와 대책을 세워야 할 중앙정부는 수수방관하기보다 아예 옹진군에 해사채취를 강력히 요구하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지역 어민을 외면하는 지방정부는 채취업자의 수수료로 재정을 확충하려는 태도로 일관하며 여름마다 풀등에서 모래를 퍼와 해수욕장에 끼얹을 따름이다.

 

단 한 차례의 강력한 비와 바람으로 드러난 해운대의 자갈밭은 국내 최대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 실상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부산시는 어디선가 바다모래를 퍼가 다시 두툼하게 뿌릴 테지만 지구온난화 이후 태풍이 2배 이상 강력해지고 천둥과 번개와 강풍을 동반하는 국지성 호우는 더욱 기승을 부릴 거라던데 소용이 있을까. 먼 바다에서 형성된 높은 파고로 은근히 다가와 해안을 휩쓸어가는 너울이 전에 없이 빈발하는데, 분별없는 매립과 모래채취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해안에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동해안에서 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심화될수록 너울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수심이 낮고 바다의 폭이 좁은 황해는 너울성 파고가 드물지만 바다의 온도는 감당하기 어렵게 오르는 실정이다. 잡히는 생선의 종류가 바뀌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 아닌 해파리 무리가 어장을 급습해 눈에 보이는 육젓 새우 떼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어민들은 울상이고 갯벌과 모래를 잃은 바다 속 생태계는 점점 허전해가기만 한다. 유사 이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조개와 게와 낙지와 온갖 생선으로 풍성한 밥상을 차려온 우리는 어장과 농장을 동시에 잃을 위기를 맞았다. 대규모 도시화로 농경지마저 매립되지 않던가.

 

식량 자급 없는 내일은 후손의 처지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법이다. 지금 프랑스의 식량 자급률은 180퍼센트에 달하는데, 2차 대전 직후 드골은 독립은 식량자급부터라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당시 프랑스의 식량자급률은 80퍼센트였는데, 우리는 현재 쌀 포함해서 26퍼센트에 그친다. 쌀을 빼면 5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굶주리는 북한보다 훨씬 심각하건만 우리 사회의 어느 일각에서도 경각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감당할 수 없는 해수면 상승을 예고하고 세계 곡창지대의 사막화를 경고하는데, 바다와 농경지의 보전 없는 우리 후손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비록 목전이지만 먼 훗날로 여기며 생각 차제를 거부하는 우리의 지구온난화 문제는 예서도 그만 접어두기로 한다. 당장 사라지는 풀등을 어이해야 하나. 천혜의 자연유산을 진정 당대에 사라지게 방관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여름이 지나면 해변의 모래를 풀등으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풀등이 사라지는 가장 큰 원인은 매립과 건축자재 충당을 위한 모래채취가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제 해양생태계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매립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갯벌과 모래가 해안에 줄어들수록 다가오는 너울성 파고와 해일의 힘이 완충되지 않는다. 재앙이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해안의 매립은 반복하면 안 된다. 기존 간석지도 여건이 허락된다면 해안으로 되돌리는 게 내일을 위한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건축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정책을 훨씬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인천 서구 수도권쓰레기매립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건축폐자재가 벌써 몇 년 째 산더미처럼 야적돼 있다. 재활용이 목적이라지만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방치돼 민원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악취와 먼지 발생하고 지하수 오염을 걱정스럽게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멀쩡한 아파트를 헐어 재개발하는 투기 풍조를 잠재우지 못하는 이참에, 감당하기 어렵게 늘어나는 건축폐자재를 의무적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면 어떨까. 1992년까지 공항으로 사용하던 부지를 생태주택 ‘메세스타트-림’으로 조성한 독일 뮌헨시는 공항 시설물은 물론, 공사 시 발생한 건축 폐기물을 단지의 기반공사에 적극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완벽하게 정화 처리해 민원이 발생되지 않은 건 물론이다. 시화호의 일부를 개발하면서 건축폐자재를 무단 사용해 겨울철새들이 떼죽음 당했다는 의혹과 유사한 사례가 발생되지 않았다.

 

건축폐자재에서 모래와 자갈을 얻고 철재까지 분리하려면 많은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어쩌면 지역에서 민원이 거세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민원에 상응하는 혜택을 강구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면 어떨까. 인구 만 명 이상 거주하는 메세스타트-림이 지열로 주택 에너지의 대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태양이나 바람, 그리고 지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십분 활용하고 물은 얼마든지 정화해 재사용할 수 있다. 건축폐자재 재활용 시설의 입지를 위한 논의 절차에 주민의 참여를 민주적으로 보장하면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시설의 건축과 운영을 투명하게 실시하며 주민을 위한 녹지공간을 충분히 조성한다면 민원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를 위한 투자가 정책적으로 이루어지고 뒷받침하는 법적 제도로 재활용 건자재의 활용을 규정한다면 풀등을 포함한 인천 앞바다와 황해의 생태계의 보전은 그만큼 약속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4대강 정비사업에서 막대하게 긁어낼 토사를 활용할 수 있지 않는가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바닥을 치명적으로 긁어내는 성격의 사업은 후손에 대한 치명적 범죄행위가 될 텐데 어찌 그런 행위에 방조할 수 있겠는가. 4대강 정비사업은 있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강행한다고 해도 거기에서 나온 토사는 나중에 하천 복원에 다시 사용해야 하므로 건축에 활용할 성격일 수 없다.

 

한데 옹진군 장봉도 일원의 갯벌이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강화 인근에 정부와 인천시에서 각기 추진하는 조력발전들이 친환경이라는 허울로 갯벌과 모래를 유실시킬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사금과 티탄철의 채취를 빙자하는 광산업자가 나타나 바다모래를 퍼낼 궁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 때문이다. 풀등을 가진 장봉도 일원의 갯벌은 정부에서 지정한 습지보전지역의 인근에 위치해 개발이 불가능해야 옳지만 ‘습지보전지역 지정고시 취소 소송’까지 제기한 업자는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하며 광산 행위를 제한했음에도 개발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부 산하 광업조정위원회의 심의를 법적 절차에 의거해 의뢰한 상태라는 거다. 만일 그 위원회에서 채취 허가를 얻는다면 장봉도 일원의 해양 생태계는 물론이고 광산 채취 허가가 남발되면서 인천 앞바다와 황해 연안의 생태계는 쑥대밭이 될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이 채취 가능한 사금과 티탄철의 경제성을 의심하는 걸 보아, 광산업자의 속셈은 다른 데 있을 게 거의 틀림없다. 그들이 그토록 집요한 건 바다모래에 대한 욕심이라고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천 앞바다의 생태계와 어족자원 보전을 위해 주민과 환경단체의 노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행정당국의 역할이 지대한데, 인천시와 정부가 조력발전 의지를 거두지 않는 상황에서 연목구어는 아닐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가녀린 자취만 힘겹게 남기고 있는 풀등은 한시적인 이익을 위한 인간의 탐욕으로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인천에 시방 황해가 있긴 있는 걸까. (황해문화, 2009년 가을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