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7. 11. 30. 13:51


아침저녁으로 차갑다.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11월에 들어서면서 가창오리가 군무를 시작했다. 금강 하구와 천수만은 동틀 무렵과 해질 녘의 장관을 구경하려는 탐조객을 끌어들이지만 가창오리는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추워지면 천수만에서 해남의 넓은 호수로 이동하는 기창오리는 수십 마리가 전혀 부딪히지 않고 하늘을 수놓는다. 가청오리가 연출하는 장관은 보는 이의 넋을 빼앗는다.


겨울철새는 호수로 내려않는 가창오리만이 아니다. 서해안의 너른 갯벌에 수십 종류의 오리가 내려앉지만 최근 그 수가 크게 줄었다. 갯벌이 뭉텅뭉텅 사라진 뒤의 일이다. 식구 걷어 먹일 논배미를 위해 삽으로 갯벌을 매립할 적에 별 문제 없었지만 중장비를 동원해 광활하게 매립하면서 갯벌에서 먹이를 찾던 오리의 수가 줄었다. 매립한 갯벌이 들판이 되고 갈무리 뒤에 나락이 떨어지면서 늘어난 철새도 있다. 기러기들이 그렇다.


김포평야가 드넓던 시절, 부천 일원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들판은 뒤덮듯 내려앉은 기러기로 이맘때 떠들썩했다. 저녁 무렵 노을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파도치듯 알파벳 V자로 가르며 연실 날아오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곤 했지만 다 지난 일이다. 지금 김포평야는 없다. 부천에서 강화도 인근까지 모조리 매립돼 수도권을 한껏 부풀린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뒤바꿨다. 기억을 더듬고 날아온 기러기들은 앉을 곳을 찾지 못한다.


강도와 화도로 나뉘었던 섬이 고려조에 매립돼 강화도가 되었고, 그때 조성한 들판은 지금도 많은 쌀을 생산한다. 인근 교동도와 석모도 역시 매립으로 넓은 들판이 조성했기에 갯벌에 내려앉는 오리보다 나락을 찾는 철새가 많았는데, 요즘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는 없지만 들판에 나락이 없다. 농기계로 이삭을 털어낸 들판에 나락을 남긴 볏짚이 배고픈 기러기들을 유인했지만 지금 들판은 볏짚을 남기지 않는다.


겨울철 우리 들판과 갯벌을 찾는 철새들은 대개 시베리아에서 날아왔다. 모여들기에 우리는 겨울이면 쉽게 관찰 가능하지만 흩어져 여름을 지내는 시베리아에서 찾기 어려운 종류가 대부분이다.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날아와 체력이 고갈되었기에 철새들은 빠른 시간 안에 원기를 회복해야 하는데 갯벌은 해마다 뭉텅뭉텅 사라지고 널렸던 나락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서해안으로 날아오는 철새는 대폭 줄었다. 시베리아에서 더욱 희귀해졌다. 봄가을로 우리 갯벌을 잠시 경유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종류도 마찬가지다.


익은 벼로 황금빛이던 들판은 시방 한가롭다. 물론 철새가 없기 때문인데, 대신 볏짚을 둥글게 말아 거대한 연탄재처럼 하얀 비닐로 포장한 곤포사일리지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볏짚 사이에 유산균을 넣고 2개월 이상 숙성하면 영양 만점의 소 사료가 된다는데, 겨우내 소 한 마리가 두 개 정도 먹어치우는 500kg 곤포사일리지를 축산업계는 김장에 비유한다. 예전에 없던 곤포사일리지는 목장의 소를 배불리지만 겨울철새의 먹이를 가로챘다.



사진: 철새가 찾아와도 먹을 나락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곤포사일리지.


봄이 멀었는데 황사가 몰아쳤다. 중국에서 발원한다는 황사는 이제 시도 때도 없는 걸까? 올겨울은 조류독감이 퍼지지 않을까? 해를 거르며 반복되던 조류독감이 겨울철마다 발생하더니 올 여름에 나타나 전문가들은 아연했다. 토착화를 걱정한 건데, 조류독감마저 계절을 잃은 걸까? 11월 초부터 징후가 나타난 조류독감은 철새가 옮긴 걸까? 살처분 회오리가 전국으로 휘몰아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도대체 조류독감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파된 걸까? 분명한 것은 2003년 년 이전 우리는 조류독감과 살처분이라는 용어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알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독감은 사람도 걸린다. 걸린다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은 왜 떼로 죽는 걸까? 조류독감에 유난히 약한 종류이기 때문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가금에 조류독감을 옮긴다는 겨울철새를 보라. 떼로 죽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기진맥진 날아와 허겁지겁 먹이를 찾는 철새와 나그네새들 중 일부는 조류독감에 감염된 채 내려앉았지만 이내 회복할 것이다. 갯벌이 원형을 보전하고 들판에 나락이 충분한 시절이라면 훨씬 빠르게 회복되었을 것이다. 사람처럼. 한데 닭과 오리는 왜 떼로 죽을까?


조류독감으로 닭이나 오리가 떼로 죽는 게 아니라 그만큼 무자비하게 살처분, 다시 말해 죽이는 게 정확한 성명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조류독감 창궐 때문에 살처분한 가금은 6천만 마리가 넘지만 조류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진 닭과 오리는 200마리가 넘지 않는다. 밀폐된 양계장에 그대로 두면 급속히 전파되겠지만 회복되는 개체가 대부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개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닭과 오리는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 익혀 먹으면 안전하지만 소비자는 외면할 것이다.


요즘 살아 있는 닭과 오리를 구입해 요리하는 소비자는 아주 드물다. 대형 축산업체는 초대형 자동 기계로 한꺼번에 도축해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고 소비자는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튀김으로 구입한다. 크기와 무게가 들쭉날쭉한 가금은 초고가의 기계를 망가지게 하므로 프랜차이즈 회사는 외면한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양계장 업주는 대안이 없다. 철새의 사체나 분변, 감염된 닭과 오리가 발견된 지역에서 안전반경 이내의 가축은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팔 수 없으니 정부의 살처분 요구에 동의하고 보상금을 챙긴다.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서해안의 들판에 사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양계장과 젖소와 한우 목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절은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이 시작된 시절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 시절부터 가을철 들판에 곤포사일리지가 들어섰다. 우리는 치맥에 열광했고 명절 이외에도 쇠고기 고기가 식탁에 풍성해졌다. 품종개량으로 바닥에 닿을 정도로 유방이 거대해진 젖소는 송아지가 아니라 사람에게 우유를 공급한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송아지는 도저히 엄마젖을 빨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3끼 일주일 21끼를 밥으로 챙기는 이는 드물어졌다. 하루 한 끼 이상 밀가루 음식으로 대체하거나 식사를 건너뛰기 일쑤다. 먹더라도 밥 양은 많지 않다. 한 사람의 1년 치 쌀 소비량은 평균 60kg이 채 되지 않지만 고기는 50kg에 육박한다고 한다. 머지않아 밥보다 고기를 더 먹을지 모르는데, 50kg 중에 닭이나 쇠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치킨전의 저자는 해마다 8억 마리의 닭이 튀겨진다고 통계수치를 제시한다.


이맘때 건포사일리지는 가을철 고즈넉한 들판의 색다른 정취를 보여주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쇠고기 과잉 소비를 반영한다. 유산균을 함유하는 건초가 유전자 조작 옥수수 사료에 찌든 쇠고기의 육질을 얼마나 개선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철새를 잃었다. 부드러운 살코기를 자주 먹는 만큼 조류독감이 늘었다. 조류독감 뿐인가? 구제역도 늘었다. 가금과 돼지, 그리고 소를 살처분해서 파묻은 땅이 늘었고 그 침출수로 인근 하천과 지하수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들판의 건포사일리지는 인간의 탐욕을 반영한다.


무거운 농기계와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농업은 석유 없이 유지 불가능하다. 그렇게 재배한 유전자 조작 사료도 마찬가지이므로 요즘 축산은 고기가 아니라 차라리 석유다. 석유는 2005년 이후 퍼 올리는 양보다 소비가 늘었다는데, 우리는 후손의 생존을 위해 고기 소비를 자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래저래 철새가 사라진 들판은 쓸쓸하다. (작은책, 201712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17. 8. 17. 13:30


비 내리는 밤에도 기운차게 울던 매미들이 조용해졌다. 가을에도 이따금 울어젖히는 도시의 말매미마저 시들해졌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이번 비가 그치면 귀뚜라미가 바통을 이울 테지. 형벌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이따금 거리에 나서야 했는데, 올여름에 분홍날개꽃매미를 보지 못했다. 한때 섬뜩할 정도로 거리에 나풀거렸는데 해마다 줄어드는 기세다. 더위가 심해진 게 이유일까? 방제가 철저해진 건 아닐 테니, 천적이 생긴 건 아닐까?


다행인가? 황소개구리에 이어 분홍날개꽃매미도 천적이 생겼다고 한다. 과학자의 체계적 연구로 밝혔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곤충세계의 대표적 포식자인 사마귀가 잡아먹는다는 소식이다. 일부 텃새들도 붉은색을 번뜩이는 분홍날개꽃매미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거다. 처음 보았을 때 혐오스러웠지만 조심스럽게 먹어보니 참을만했을까? 황소개구리의 커다란 올챙이를 삼키는 가물치와 메기, 왜가리와 백로도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황소개구리의 생태적 조절이 수달이 늘어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들린다.


황소개구리든 분홍날개꽃매미든, 원래 살던 곳에 천적이 없을 리 없다. 당연히 생태계에서 조절되었지만 엉뚱한 생태계로 들어서면서 혼란스러워졌다. 처음 맞는 생물이기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절되었다는 건데, 요즘 천적이 없다고 걱정하는 선녀벌레도 머지않아 천적이 등장할지 모른다. 배스와 블루길이 그랬던 거처럼. 멀리 보면 많은 지역의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도 다른 생태계에서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천적이 등장해 생태계에서 순치되었을 것이다.


분홍날개꽃매미와 같은 외래동물은 그렇게 순치되지만 식물은 어떨까? 그 방면 문외한이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포플러나무와 일본잎갈나무를 도입했을 때 천적이 없으므로 방제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는데, 지금은 매미들이 반기는 기주식물이 되었다. 이맘때 길바닥에 나뒹구는 매미 성체들은 아파트 둔치의 포플러나무와 일본잎갈나무에 알을 낳았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 밤잠 설치는 주민들의 민원이 생기겠지. 틈이 생긴 우리 생태계에 쏙쏙 들어오는 돼지풀과 미국자리공도 방제 일꾼들을 짜증나게 하지만 앞으로 어떨까? 시간이 지나면 순치되는 건 아닐까?


갯끈풀이라. 처음 듣는데, 갯벌에 뿌리를 내리는 외래식물이란다. 영국 원산이라는데, 중국에서 날아왔거나 상선의 평형수에 섞였던 씨앗이 뿌리내렸을지 모른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벼과 식물로 키가 1미터 이상 크고 억세 영국은 잘 엮어 화살의 과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갯끈풀은 왜 중국과 우리 갯벌에 등장했을까? 중국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형 선박의 평형수 유출도 마찬가지인데 최근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천뿐이 아닐 텐데, 갯끈풀은 강화 동막과 영종도에서 특히 확산된다고 한다.


갯끈풀이 빼곡하게 밀집되며 퍼지면서 다양한 게와 조개들의 터전이 망가지고 육지화가 촉진된다고 해양학자와 어민들의 걱정이 크다. 갯끈풀이 늘어나면서 갯벌이 황폐화된다지만 사실 갯벌의 생태계와 건강이 크게 교란된 이후 뿌리내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강화 동막은 예전의 생태계를 거의 잃었다. 최근 인천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그 양과 질이 형편없어졌다. 흔전만전했던 물고기들은 전설이 되었다. 수많은 어패류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갯끈풀을 제거할 천적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5대 갯벌이라는 자랑이 무색하게 곳곳이 거대하게 매립되면서 바닷물의 흐름은 예년과 다르다. 개펄의 양도 크게 줄었다. 해마다 거듭되는 바다모래의 채취만이 아니다. 막대한 개펄을 준설해 매립토로 사용하지 않나. 거기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은 갯벌의 건강에 치명적이었을 터. 바닷가에 자리하고 걷잡을 수 없는 온배수를 내뿜는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는 갯끈풀의 등장과 무관할까? 바다는 연결돼 있는데.


민원을 견딜 수 없었는지 해양환경관리공단은 갯끈풀의 퇴치에 총력 다하겠다고 선언한 모양인데, 갯벌에서 늘어나는 갯끈풀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뿌리로 확산되는 갯끈풀을 사람의 힘으로 뿌리 채 뽑아내기 불가능하다니 기계가 필요한데, 무거운 농기계는 갯벌에서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손쉽게 제초제? 숱한 경험으로 보아 제초제는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갯끈풀 제거를 위한 기계의 개발은 어려운 걸까?


침묵의 갯벌 암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은 갯끈풀이 늘어나면서 도요새와 물떼새의 먹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태학자들은 걱정이다. 암살자를 서둘러 처치하려 허둥대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정부에서 마땅히 고려하겠지만 생태적 조절의 가능성을 세심하게 살피며 퇴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영국에 분명히 천적이 있을 것이다. 그 생물을 들여오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국내외 사례가 증명하듯, 생각지 못한 생태계 교란으로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우리 고유 생태계에서 영국의 사례를 살피며 대안을 찾아보자는 거다.


갯끈풀이 뿌리내리기 전의 우리 갯벌 생태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건강하던 갯벌에 분포하는 어떤 생물이 갯끈풀이 뿌리내리는 걸 통제했을까? 그 상관관계를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제초제는 뿌리지 않을 거라 믿는데, 생태적인 방법을 찾기 전에 갯끈풀 제거는 전통적인 방법을 권하고 싶다. 당장 힘들더라도 손이나 기계로 뽑아내는 게 생태적 교란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한데 우리 정부는 지금 갯끈풀 제거에 얼마나 절실한 걸까? 예산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을까? 호미로 잡을 단계는 지난 듯한데. (인천in, 2017.8.17.)

물리적 방법의 호미 낫 삽 인력의 뽑기 장비 방법의 제거법으로 없애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점점 번져 골든타임은 지나가고 갯끈풀은 토착화 되어 버렸다.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6. 6. 19. 23:57

6월은 도톰한 병어를 만나는 계절

 

일찍이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스스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하고. 학창시절을 인천에서 함께 보낸 친구가 오래 만에 찾아왔을 때 그의 손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 하나. 함께 거닐던 바닷가? 기억을 머금은 갯벌은 난폭하게 매립돼 손가락만큼도 남지 않았다. 중턱에서 노을을 고즈넉 바라보던 청량산? 번잡한 공원이 되고 말았다. 옛 모습을 잃었다. 그래도 옛 맛은 남았지. 때는 6, 산란기를 앞두고 도톰해진 병어가 남아 있구나. 추억의 병어회도 병어조림도 권할 수 있겠다.


측편(側偏)하다는 말. 어류도감이 아니면 거의 듣지 못한다. 몸이 옆으로 편평하다는 뜻이니 참치나 고등어처럼 통통하지 않고 갈치처럼 몸이 납작하겠지. 그렇다면 몸이 날쌔거나 미사일처럼 빠르지 않으리라. 찹쌀떡을 마름모꼴로 꾹 눌러놓은 듯 납작한 병어가 그렇다. 그렇다고 물살에 휩쓸리며 허둥대는 건 아니다. 밀물과 썰물이 무섭게 교차하는 사리 때에도 멋지게 균형을 잡는다. 그때 입 큰 안강망을 조심해야 한다. 휩쓸리면 넓은 접시에 오를 때까지 세상 구경을 못할 테니까.


떼를 지어 물살을 거스르는 병어는 먹이를 가려 먹으며 잘 자라면 60센티미터, 두 자에 이른다. 꼬리를 뺀 몸통의 길이가 몸의 높이와 비슷한데 아가미에서 두시 방향을 가리키는 가슴지느러미는 단호하고, 이마와 턱에서 꼬리지느러미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배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는 완전한 대칭을 이룬다. 알파벳 브이 자를 옆으로 뉜 듯 몸길이의 4분의1이 넘는 꼬리지느러미는 거센 물결을 헤친 측편한 몸을 재빠르게 나아가게 한다.





육지의 화려한 꽃들이 6월 햇살에 화답하며 자태를 뽐내는 계절, 바다의 생명들도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식물성플랑크톤이 번성하길 기다리던 동물성플랑크톤이 덩달아 늘어나면 56젖에 들어갈 젖새우들이 풍부해질 터. 때를 기다리던 병어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때마침 양식장 주변에서 플랑크톤을 쫒던 해파리들도 미각을 자극할 테니, 바닷물이 최대로 따뜻해지기 직전, 한껏 통통한 병어는 하얀 살이 더욱 연하고 기름기가 충만해진다.


갯벌이 드넓은 우리 서해안에 두루 분포하는 병어를 인천 특산이라 감히 말할 수 없다. 갯벌이 넓은 해역에 많은 젖새우와 갯지렁이를 비롯해 동물성 플랑크톤까지 작은 입으로 즐겨먹는 병어는 수심 10에서 20미터인 암초 사이의 모래바닥에 알을 낳으니 인천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에서 적지 않게 잡았고 소래포구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옛이야기가 되었다. 한강에서 쓸려온 모래와 갯벌이 곱게 내려앉은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10미터 이상 크다. 바닷물이 혼탁해도 깨끗할 뿐 아니라 영양분이 풍부하니 병어가 토실토실했지만 그 명예를 신안 앞바다에 넘길 수밖에 없다.


오륙월 사리 때 신안군 해역은 병어잡이 어선으로 가득한데, 왜 병어(兵魚)일까? 입 작은 생선, 병사들처럼 떼로 움직여서? 하긴 사람처럼 허우대에 비해 입이 작은 동물도 없다. 하지만 떼로 움직이는 생선은 많은데? 나당연합군으로 참여한 중국 병사에게 잔뜩 올라온 병어를 실컷 먹여 그렇다나 뭐라나. 뭐 그런 설화도 있나본데, 서해안의 갯벌이 대부분 온전하던 시절 흔전만전하던 병어는 이제 고급생선이 되었다. 이맘때 신안 해역으로 모이는 어선은 값나가는 생선, 병어에 목을 맨다.


백 미터가 넘는 안강망은 물살이 거센 사리 때 커다란 입을 바다 중간 깊이에 펴고 크고 작은 병어를 즐겨 맞는데 넓은 그물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쪽에서 훑어내는 쌍끌이는 병어는 물론 바닥에 사는 아귀와 크고 작은 어패류까지 일망타진한다. 그물을 다시 내려도 한동안 소용없을 정도로. 그때 커다란 병어가 잘 든다. 흔히 덕자라 말하는 대병어. 한 자, 다시 말해 30센티미터가 넘으니 을 쌓은 병어가 아닐 수 없다. 작은 내장을 빼내고 가지런한 뼈를 고르면 풍성한 하얀색 고기를 접시로 하나 구할 수 있지 않은가.


, 여기 토실토실하고 동글 넓적한 병어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이맘때 병어의 위상을 살리는 걸까? 일단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비늘들을 털어내고 위아래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라낸 뒤 아가미 앞의 머리와 내장을 깨끗하게 제거해야겠지. 그러면 몸이 조금 줄어들지만 살은 여전히 묵직하다. 광어와 달리 병어회는 껍질 채 썬다. 칼을 기울여 어슷하게 자르면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의 살점이 신선함을 과시하는데, 식성마다 다르겠지만, 6월의 쫀득한 병어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건 아무래도 무성의하다.


듬직한 병어까지 회로 먹자니 아깝다면? 역시 6월 병어는 조림이 제격이다. 조림에 들어가자면 내장과 지느러미만 제거하면 된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를 집에서 가장 큰 냄비에 부은 뒤, 통으로 썬 여름 감자와 무를 침대처럼 깔아놓았다면 주인공인 병어가 등장할 차례다. 육수에 자박하게 잠길 정도로 얌전하게 올려놓은 병어 위에 간장에 고추장과 다진 마늘과 갖은 양념으로 걸쭉하게 버무린 양념장을 얹고 처음에 팔팔, 나중에 보글보글 끓여내면 고종과 순종이 좋아했다는 병어조림이 완성된다. 접시에 옮겨 담기 전에 숭숭 썬 대파와 실고추를 흩뿌리면 금상첨화겠지.


전라남도 해양바이오연구원은 살이 붉은 생선보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많은 병어는 DHA, EPA와 타우린이 풍부해 동맥경화나 뇌졸중과 같은 순환기 질환을 억제하고 치매와 당뇨병은 물론 암까지 예방하는 것으로 홍보한다. 물론 이맘때 지방질이 풍부해 별미 중의 별미인 병어가 치료제일 리 없다. 손쉽게 무침이나 구이, 매운탕이나 지리로 끓여도 맛을 끝내주는 병어는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철의 밥도둑인데, 어라! 머지않아 고급 생선으로 등극하려는가? 해마다 작황이 줄어드는 만큼 가격이 높아지는 병어는 큰맘 먹어야 알현할 수 있는 생선이 되었다.


나당연합군의 기록이 남았을까? 작황이 해마다 줄어드는데 고급음식의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 중국인들이 병어 공판장에 나와 두둑한 전대를 풀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돈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 해역에 무리지어 그물을 펼치는 이유의 설명일 텐데 남획을 걱정하는 전문가는 회와 조림이 전에 없는 유명세를 타자 주문량을 맞추려는 어선들이 산란기의 병어를 싹쓸이한다며 개탄한다. 전문가는 치어 방류기나 산란기에 병어 어획량을 제한하자고 제안하는데, 치명적 감소는 남획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참조기가 서해안을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남획임에 틀림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갯벌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생선도 모천을 찾는다. 자신이 태어난 갯벌, 알 낳을 곳이 사라졌는데 어찌 다가올 수 있다는 겐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갯벌이 무려 13천만 평이고, 인천공항으로 1400만 평의 갯벌이 자취를 감췄다. 인천의 송도신도시와 청라도 매립으로 사라진 갯벌이 1000만 평이 훨씬 넘지만 규모를 키우는 갯벌 매립은 도처에서 멈추지 않는다.


갯벌을 매립하려면 최대로 밀려든 해수면보다 높게 무언가 조간대 위에 쌓아야 하는데, 육지의 흙은 아니다.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지만 민원을 감당할 수 없다. 갯벌 위에 쌓아는 물질은 바로 병어가 산란하는 바다의 모래다. 매립되는 면적보다 훨씬 넓은 인근 갯벌에서 퍼올린다. 모래가 사라지면서 병어는 산란장을 잃고, 모천을 잃은 병어는 구천을 헤맬 수밖에 없으리라. 그뿐인가? 세계 최대의 꿈을 아직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은 조력발전은 병어의 길목을 차단할 태세다.


우리 서남해안을 비롯해 인도양에서 남지나와 동중국해에 두루 분포하지만 우리 해역에서 점차 드물어지는 병어는 모두 3종이다. 맛과 생김새가 하도 비슷해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이 불가능한 병어와 덕대, 그리고 중국병어가 그것인데 해양수산부는 올 초 병어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했다. 치어를 양산해 서식하는 바다에 풀겠다는 계획이다. 한데 갯벌 매립이 중단하지 않고 치어를 방생한다고 병어가 예전처럼 회복될까? 신재생에너지로 위장한 조력발전 계획은 어찌될 것인가?


어부들이 덕자병어라 말하는 대병어는 덕대와 같은 종은 아니다. 병어든 중국병어와 덕대든, 길이가 한자가 넘으면 전부 덕자다. 플랑크톤과 해파리를 즐겨 먹으며 30센티미터 이상 자란 병어의 내장은 같은 어장에서 잡히는 아귀와 비교할 때 터무니없게 작다. 어민들은 살아 있을 때 제 배는 곯아도 죽어서 사람한테는 많은 걸 남기는 생선이므로 德者라 했고, 전라남도 주민들은 제사상에 올린다. 이제라도 절 받는 생선의 터전을 보전해야 조상께서 양해하지 않을까?


일본 관서지방에서 최고의 생선으로 여기는 병어는 서양에서 버터피시(Butterfish)라고 말한다. 비린내가 없는 병어는 6월에 더욱 고소하고 달콤한데, 서울 강남에 무역 사무실을 차려놓은 고향 친구가 인천다운 맛을 선보이겠다고 손을 잡아끈다. 모국에서 막 도착한 손님을 한식당에서 대접하는 교포의 성의와 비슷한 건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해산물 요리가 영 아니었다. 병어조림이 있다면 봐주려 했건만, 없다. “친구야, 6월이 되었으니 인천으로 와라. 학생 시절 푸짐하게 먹던 병어회와 조림을 준비할게! (중앙Sunday, 2016.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