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1. 2. 23:48

 

언제나 연말연시가 되면 그렇듯, 다사다난했던 해가 희망의 새해에 자리를 물려준다고 한다. 시간에 매듭이란 없지만 2010년도 보란 듯 다가왔다 슬며시 사라졌다.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지쳐버린 소를 몰아내고 기운 찬 호랑이가 경인년(庚寅年)을 당차게 열 거라 떠들썩했지만 무력하기만 했다. 4대강 사업으로 상처가 더욱 깊어진 호랑이는 구제역 소독약 세례를 받고 물러나고 말았다. 풍요와 지혜를 상징하는 신묘년(辛卯年)의 토끼는 어떤 희망을 안내하려나.

 

배고픈 호랑이가 잡아 한 입에 삼키려 할 때, 토끼가 꾀를 냈다나 뭐라나. 작은 몸 하나 먹어치운다고 양에 차겠느냐며 웅덩이에 꼬리를 담고 기다리면 먹이인 줄 알고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실컷 먹을 테니 놓아달라고. 때는 밤이 이슥한 겨울. 한 엄동설한이 계속되는 이맘때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토끼의 감언이설을 곧이곧대로 들은 호랑이는 토끼를 살려주고 꼬리를 웅덩이에 담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물고기는 오지 않고 대신 꼬리가 얼어붙는 게 아닌가. 순진한 호랑이는 그만 옴짝달싹 못했다는 우화가 전해온다. “호랑이 잡으려다 토끼만 잡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정부와 연예인의 성원과 달리, 신묘년도 기대 반 근심 반으로 시작될 것이다.

 

지난해 말, YTN은 연평도 폭격과 천안호 침몰을 비롯하여 201010대 뉴스를 발표했다. 북한 김정은 세습과 62지방선거의 여당 참패, G20 세계정상회의 개최, 4대강 사업 논란, 잇따른 기상이변, 한미와 한EU FTA 협상 들을 선정했지만 지금 다시 발표한다면 구제역 파동이 꽤 높은 순위로 올릴지 모르겠다. YTN이 선정한 201010대 뉴스 중 올해에도 계속 주요 뉴스로 이어질 부문은 많지 않아 보이는데, 환경과 직접 관련 있는 두 부문은 2011년의 10대 뉴스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작년 말, 환경단체의 연합체인 한국환경회의201010대 환경 뉴스를 발표했다. 예상한 대로 4대강 사업을 첫째로 올려놓고, 국립공원 케이블카 강행 논란, 서해 조력발전소 건설, 한미 FTA 추가협상에서 자동차 온실가사 규제완화,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위원회 멕시코 칸쿤 회의, 들의 항목이 눈에 띈다. 대부분 올해에 논란이 더욱 거셀 분야일 것 같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선정한 2010년 인천 환경 10대 뉴스도 다르지 않다. 인천만 조력발전소 논란을 필두로 계양산 골프장과 아래뱃길 검증위원회 구성, 그리고 송도신도시 11공구 갯벌 매립, 외곽의 S자 녹지축 보전운동과 수돗물불소화 논란이 눈에 띄는데, 역시 올해에 더욱 거센 논의가 뒤따를 게 틀림없다.

 

개발이 가속화될수록 환경은 피폐해지는 것, 이제는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국가의 한 해 계획을 진두지휘하는 대통령이나 인천시의 행정을 앞에 끌어가는 시장이나 환경보다 여전히 개발에 관심이 크다.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함께 행복한 국운융성의 해가 되길 기원한다.”면서, “선진국 문턱을 단숨에 넘자고 했다. 소득 3만 불을 넘어 어서 4만 불로 가자는 툰데, 소득이 높아질수록 국민의 행복지수는 떨어진다는 생태경제학자의 지적은 아마 뇌리에 없을 것이다. 지구는 더욱 온난해지고 기상이변은 그럴수록 가혹해질 텐데. 인천시장은 경제수도 인천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본격화할 기세다. 전 시장이 틈나는 대로 투기를 부추기는 경제! 개발! 타령하다 쪽박신세가 되고 만 사실에서 교훈을 구할 생각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 하랴. 이미 신묘년의 해는 떠올랐다. 호랑이와 토끼가 함께 나오는 속담이 우리네에 많다. “호랑이가 사라진 산에서 토끼가 왕!”이라 거나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토끼도 깔본다.”는 속담도 있다. 백두대간을 누비던 호랑이가 사람이 제 터전이 함부로 부수는데도 어흥! 표호하지 않는 걸 보면 우리 산하에 경인년의 호랑이는 없는 게 분명한데, 신묘년 토끼는 생태계를 난도질하는 사람에 맞서 왕 노릇 펼칠 수 있을까. 토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대하는 호랑이는 제 굴로 들어온 토끼를 잡아먹지 않는다 했다. 2011년을 기대하자. 2012 임진년(壬辰年)이 또 기다릴 테니. (기호일보, 2011.1.?)

 

지구촌의 에너지 세기적인 원천기술인, 수문변경조력발전소는 친환경적인 조력발전방식입니다. 지구상에 유일한 복류방식이며 환경, 생태, 해수유통, 녹조, 적조, 염도구배, 그리고 경제성에서 가장 우수한 원천기술이며 1년 중 하루 평균 발전가동률이(발전이용률) 40~50%로 단류식 조력, 태양광, 풍력발전의 (15~25%) 2배이상 가동 되며 지구촌의 에너지대혁명를 이룰 최대의 원천기술 입니다.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27. 00:31

 

어느새 12월이다. 백화점들은 출입구와 벽면을 울긋불긋하게 치장하며 연말연시라고 소리를 치지만 12월 초순이라 그런지, 호주머니 사정이 마땅하지 못해 그런지, 시민들은 차분하기만 하다. 매듭이 없는 게 시간이지만, 한 달이 지나면 송구영신. 우리는 어김없이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을 것이다. 거실은 곧 두툼한 새 달력을 맞을 테지.

 

기축(己丑)년 소는 벌써 지쳤다. 경인(庚寅)년 호랑이가 바통을 이어 받을 텐데, 설레면서 걱정이다. 백두대간을 내달리는 호랑이가 4대강이 흐트러지는 꼴을 넘겨준 소의 뒤치다꺼리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지친 기축년을 보내는 가슴이 먹먹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기축년에 소처럼 과묵했던 시민사회는 경인년에 펄펄 뛸지 두고 볼 일이다.

 

올해 시민사회는 여느 해와 달리 과묵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전국을 휘감는 선거 열풍도 없었지만 내 주머니 사정이 서글퍼 다른 이의 희로애락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고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내년엔 다른 국가보다 경기가 더 호전될 거라고 정부가 장담하니, 비로소 이웃을 챙기게 될 겐가. 경기회복이 된다고 일자리가 당장 늘어나는 건 아니라던데, 그래도 희망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겠지. 한데, “경제성장!” 마패 앞에서 전에 없이 위태로워진 이 땅의 생명가치들은 어떻게 될까.

 

시민단체와 집권당 이외의 정당으로 구성된 ‘4대강사업 위헌, 위법심판을 국민소송단’이 ‘4대강 정비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행정소송과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을 비롯한 전국 4개 법원에 동시에 점수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국민 70퍼센트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정비 사업을 법치주의 근간을 파괴하며 밀어붙이는 정부의 독선과 오만을 심판하겠다고 천명한 국민소송단은 시민들의 의지를 확인한 이상,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로 ‘4대강 살리기’가 아닌 ‘죽이기’ 사업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는 거다. 국민소송단은 필요한 경비를 모금으로 충당하겠다고 다짐한다.

 

비단 4대강 사업만이 아닐 것이다.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투명한 논의 없이 수뇌부가 정책의 성격을 규정하면 다수를 점한 집권당이 합창하는 정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만일 수뇌부 이외에서 4대강을 이야기했다면 집권당의 똑똑한 선량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정치와 권력이 밀고나가자 다수의 주류 언론이 침묵 또는 왜곡하고 공권력이 기축년의 시민행동을 차단했는데, 많은 이는 독재의 필요충분조건이 무르익었음을 감지했다.

 

온대산림을 호령하는 호랑이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해야 힘을 가진다. 백두대간에서 비롯되는 강이 산을 넘지 않고 산이 강을 가로막지 않아야 삼라만상이 흥하고, 그래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자연이 살아야 민이 살고, 민이 살아야 국가에 탈이 없다. 곧 기축년 달력이 떨어진다. 지방선거가 있는 경인년의 달력이 걸릴 거다. (경향신문, 2009.12.2)

저번에 작은책 필자모임에서 만났던 최금희입니다. 그날 만나뵙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하여 아쉬운마음을 안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자주 찾아와 생명에대한 귀한 글 읽겠습니다. ^^
그래요. 반가워요. 많은 이야기 나누면 좋겠지만, 이 가상공간에서라도 자주 뵈면 좋겠군요. 최금희 씨의 생각 깊은 이야기가 참 좋았으니까요.
어제 경향신문에서 반가운 글을 접했습니다. 션찮은 조중동 편집인들도 박박사님의 글을 읽기를 바랍니다 ^^*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20. 11:05

 

올해는 경인(庚寅)년 호랑이띠의 해다. 해마다 그렇듯 다사다난했던 기축년을 보내고 대망의 2010년이 시작된 거다. 미국에서 비롯된 경제한파가 본격적으로 걷히고 이제 경제성장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호랑이 해. 아직 고용이 불안하지만 성장이 진행되면서 소비도 진작될 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치를 4.4퍼센트라 예상했다. 한국개발연구원과 민간경제연구소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으며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한다. 공연히 우쭐해지는 순간이다.

 

이맘 때 잇따를 신년회마다 “발전”을 외칠 것이다. 꼭 신년회가 아니더라도, 회식이나 뒤풀이 장소에서 언제나 듣는 “무엇 무엇의 발전을 위하여!” 이어 박수가 여기저기 술자리마다 터져나올 테지. 선거철이 다가오는 만큼 “위하여”니 “위하야”니 하며 우스개를 나누는 풍경도 없지 않겠지. 그래서 누군가는 “위해서”라 한다는데, 그랬더니 동쪽에 사는 이가 서운해했다나, 어떻다나. 아무튼, 새로운 10년이 열리는 올해, ‘발전’은 가장 뚜렷한 화두일 게 틀림없다.

 

한데 ‘발전’이라는 말. 사극의 대사로도 어색하지 않지만 사실 그리 오래된 말이 아니다. 1949년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의회 연두연설에서 꺼낸 게 시초라고 한다. 사진 현상에 주로 사용하던 디벨롭(develop)이란 용어를 개발 또는 발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저개발국가와 선진국이라는 개념을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에게 미국적인 삶을 모델로 여기고 따를 것을 대외에 천명한 셈이었다고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 같은 이는 해석한다. 많은 이들이 별 생각 없이 ‘선진국’이란 말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미국적 삶에 고개를 흔드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을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발전이나 경제성장은 소비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상식 정도는 안다. 소비를 하려면 고용이 있어야 하고, 임금을 지불하려면 만들어낸 물건이 팔려야 한다. 세계의 수많은 공장과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유무형의 상품들.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것들인가. 어떤 황제보다 호화스럽게 먹어대는 음식들. 아무리 배불러도 반나절만 지나면 다시 배가 고파지는 건 라면 곱빼기도 마찬가지인데 우린 지나치게 많이 먹고 많은 쓰레기를 후손에게 넘긴다. 그런 음식을 준비하느라 얼마나 많은 낭비가 조장되었던가. 결국 지구온난화를 부르지 않았던가. 음식만이 아니다. 의식주가 다 마찬가지다.

 

어떤 경제학자는 아무리 천박한 기준으로 평가해도 행복은 소득 순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득 1만 달러가 될 때까지 행복은 비례하지만 소득이 더 증가한다고 행복 지수도 덩달아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장작에서 연탄으로 밥해먹다 석유곤로를 들여와 마음이 놓였지만 가스레인지가 나온 후 몸이 달았을 것이다. 가스레인지를 구입하고 뿌듯했을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가 시중에 나왔고 그것마저 구입하게 되었다. 대략 소득 1만 달러가 된 즈음이었을 게다. 사는데 필요하다 싶은 물건은 1만 달러 소득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미일 테지.

 

1만 달러 소득에 이어 4만 달러로 늘어나는 동안 행복은 대체로 정체된다고 한다. 멀쩡한 물건을 더 근사하게 광고하는 것으로 바꾸며 지내지만 그에 부응할 돈을 버느라 삶은 지치고 지겨워진다는 건데 소득이 4만 달러를 넘어가면 행복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한다. 그때부터 소비는 질시에서 비롯된다는 게 아닌가. 아침에 끼고 나갈 장갑을 미리 데워놓는 기계를 옆집에 구입해 자랑한다면 질투가 나고, 즉시 더 좋은 제품을 들여놓아야 분이 삭지 않는다면? 행복과 거리가 멀 것이다. 언제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광고했는데 얼마 전에는 “댁에는 있쑤?”로 바꿨고 이젠 “엄마 우리집은?”하며 약을 올린다.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그렇게 파는 시대가 되었다.

 

2008년 6월, 전자상가가 밀집된 일본 동경의 아키하바라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다짜고짜 찔러 죽인 이른바 ‘묻지마 살인극’이 백주에 자행되었다. 한데 더 끔찍했던 건 사람들이 그 광경을 무심코 바라보거나 신음하는 이웃을 외면하며 지나쳤으며, 어떤 자는 신기하다는 듯 핸드폰으로 사진을 냅다 찍었다는 사실이었다. 발전! 경제성장! 강박 속에서 속도와 경쟁에 치어지내는 자의 몸에 체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당시 나왔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아직 간직하는 우리는 아니 그럴 거로 확신할 수 있을까. 존댓말이 우리 이상 복잡한 일본은 겉보기 무척 친절하다. 그들의 가슴도 전에는 따뜻했을 것이다.

 

호랑이는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빨이 더 날카로워지면 남과 겨루고 싶어질 텐데, 그런다고 먹이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삼라만상이 다 그렇듯, 경합보다 양보와 타협을 택할 것이다. 빌 게이츠는 기부의 기쁨을 알고부터 일에서 손을 뗐다. 빌 게이츠 같은 부자만이 아니다.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베풀 줄 안다. 발전이라는 거. 이웃을 그들의 시선으로 배려할 수 있을 때 깃드는 게 아닐까. (야곱의우물, 201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