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6. 12. 08:44

 

1970년대 후반. 대청봉 정상까지 한걸음에 오른 청년들이 화채봉으로 향했다. 가본 적도, 가는 길도 몰랐지만 좋다더라는 소문을 믿고 막연히 걸음을 재촉했던 사내들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당황했다. 슬금슬금 좁아지던 길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돌아나가야 옳았지만, 누가 앞장섰는지 건각들은 내친 김에 덤불을 헤치며 계곡을 내려갔다. 그러길 두어 시간. 날은 어둑해졌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적 없는 물길을 첨벙이다 넓은 바위가 편평해지면 계곡은 꼭 낭떠러지로 이어졌다. 양손에 든 기타와 가방을 진작 내버린 일행은 배낭과 엉덩이를 질질 끌며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썩은 나무에 발을 의탁하던 친구가 그만 머리와 다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아래로 떨어져 박히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우리는 거의 울상이 되었는데, 어리둥절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친구. 배낭 덕분에 멀쩡했다며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이튿날 반나절을 더 헤맨 끝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인적 없던 계곡을 벗어났지만, 헤진 바지에 엉덩이를 드러내며 첨벙이는 순간에도 청년들은 생생한 기억을 전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 친구들은 지금 흩어져 살지만 자주 만나 술잔 기울인다. 누구라도 심각하게 다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치러야했다면, 다시는 마음 편하게 만나지 못했으리라.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물쭈물하다가라고 썼다던데, 우리는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치거나 독선으로 치달아 일을 그르칠 때가 잦다. ‘아라뱃길로 이름을 분칠한 경인운하가 그렇다. 기획 단계부터 비판적 검토가 빗발쳤지만 정부는 독선으로 밀어붙였다. 경인운하에 현재 화물을 실은 배가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경인운하를 오가는 화물선에 화물을 실으려는 화주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 잘 뚫린 도로로 20분이면 넉넉한데 어떤 화주가 트럭과 화물선에 물건을 거듭 옮기며 하루 이상의 시간을 버리고 초과운임을 받아들이겠나.


경인운하는 애초 계양산 일원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예방하려 계획된 굴포천 방수로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자. 수해가 빈번한 곳에 마을은 형성될 리 없다. 계양산 인근의 다남동과 벌말은 김포평야가 주변에 온전할 때 수해는 거의 없었다. 드넓은 논이 빗물을 완충했던 건데, 부천시 중동과 상동 신시가지의 대단위 아파트, 인천시 삼산동과 계산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김포평야가 개발되면서 사정이 바꿨다.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에 쏟아진 빗물은 낮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휩쓸리기 시작한 것이다.


갯벌 매립으로 공업단지나 신도시를 조성할 때 충분한 면적의 유수지를 확보하듯, 아파트단지를 넓게 만들 때 반드시 수해를 완충하는 습지를 확보해야 했지만 외면했다. 아파트를 더 지어 분양했을 따름이다. 그러자 수해는 애꿎은 지역으로 전가되었다. 신문 1면을 장식할 사고가 여태 발생하지 않은 4대강의 16개 대형 보 역시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도도하던 강물을 틀어막았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어떤 물폭탄을 상류지역에 떨어뜨릴지 모르는데, 신중하게 관리한다면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시장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20091, 주민 5명과 경찰 1명을 불에 타죽게 한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어떤 논의로 진행될까? 초고층 빌딩이 화려했던 애초 계획은 희생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투자자에게 보장되는 돈벌이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사업 규모와 내용이 바뀌면 다시 진행될까?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규모가 비슷한 독일 베를린의 화물철도터미널 개발의 예와 크게 대비된다.


동서로 분단된 이후 50년 동안 사용하지 않자 우리의 비무장지대처럼 온갖 풀과 나무들이 가득 들어왔지만 다시 철도화물터미널로 환원하는데 이견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쉬움을 표시하며 보전을 제안했고, 절차는 중단되었다. 이후 개발과 보전의 타당성과 방향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고 논의 과정에 베를린 시민의 참여는 당연히 배려되었다. 수십 차례의 공청회 끝에 철도 환원과 녹지 보전을 반영하는 최종 2안을 상정하기로 했고, 시민들은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를 이뤄냈다. 현재 녹지는 보전돼 있다.


논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른 의견을 납득 가능하게 절충한 2개 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냈고, 논의가 충분한 만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개발을 선호했던 시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철도화물터미널 부지의 녹지는 베를린의 자부심이 되었다는데, 위험사회를 펴낸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시민의 민주적인 참여가 위험사회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발 방향과 시기를 결정했다면 용산역 주변의 주민과 경찰의 생명은 희생되지 않고 투자자의 적정 이익도 보장되었을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었을 게 틀림없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 잔뜩 만든 프랑스의 핵발전소들은 시방 낡았다. 아무리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해도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니 가동을 급작스레 중단해야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7등급 규모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앞으로 어떤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할지 점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관리와 운영이 투명하다면 사고 확률은 줄어든다. 부정과 비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뿐 아니라 수명연장이나 폐쇄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므로.


기계가 낡으면 고장은 필연이다. 구조가 복잡한 기계는 고치기 어려운데, 핵발전소가 특히 그렇다. 후쿠시마에서 보았듯, 낡은 핵발전소의 사고와 고장이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불허한다. 시민들이 납득할 정도의 민주적 토론 끝에 자국 핵발전소의 가동을 즉각 멈추거나 차례로 폐쇄하고 있는 독일은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햇빛과 바람으로 전기를 충분하게 생산하는 까닭에 핵발전소가 멈출 때마다 전기가 부족해지는 프랑스에 수출할 수 있다는 거다.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 태양과 바람은 간단한 발전설비만 요구한다. 사고 규모가 작아 주민들도 쉽게 고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대부분의 인공 구조물은 금방 부서지거나 고장을 일으키겠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유러터널은 예외적으로 천년 정도 버틸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지역의 환경이 안정적이고 시공이 철저했다는 건데, 유러터널은 공사 전부터 철두철미한 검토를 거쳤다. 기술과 경제 측면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는 물론 인문과 사회 영역까지 놓치지 않았기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하는 까닭에 사고가 없었다.


완공되었지만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은 내세운 애초의 목적을 충족시킬 구조물이 아니다. 그 시설은 토목자본에 경이로운 이익을 안겼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설계 시공하고 관리 운영하는 발전소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피해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치룰 수밖에 없다는 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배웠다. 노후해 폐기해야 선박을 적당히 수리해 규정 이상의 화물을 대충 싣고 안전조항을 무시할 때 어떤 참사를 빚을 수 있는지 우리는 세월호에서 보고야 말았다.


지하수가 넘쳐흐르는 땅은 핵폐기물 처분장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지금 핵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경주가 그렇다. 장차 어떤 사고를 일으킬까?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 뿐 아니라 태풍과 해일을 거세게 만드는데, 파고를 완충해오는 갯벌은 끊임없이 매립된다. 우리 내일은 안녕할까? 사고 가능성을 외면하는 개발은 눈앞의 탐욕에 충실하지만 내일의 안전을 백안시한다. 이제 안전을 등한시하는 독선적 개발은 멈춰야 한다. 시민과 함께 다시 검토해 개발의 방향과 성격을 바꿔야 한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작아, 20146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6. 2. 16:01


 

 

완공 1년이 되자, 예상한 물동량의 8퍼센트에 그치는 아라뱃길혈세 먹는 애물단지라는 비판을 언론들이 쏟아낸다. 공식적으로 225백억 원이라는 예산을 들여서 반대를 무릅쓰고 호언장담 속에 완공했건만 화물운송은커녕 수상레저관광도 악취와 수질오염으로 기대 이하라고 아프게 지적했다. 인천항 가까이에 새로 생긴 북항과 남항이 있으므로 일부러 돈을 더 들이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아라뱃길로 갈 화주가 있을 리 없다고 분석하는 언론은 결국 수 조원의 비용을 낭비한 거대한 수조, 그리고 세계 최대 자전거도로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한데 그럴 가능성을 언론은 애초에는 몰랐던 걸까. 언론의 뒤늦은 지적이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입과 연구 자료로 공사 이전부터 숱하게 제시되지 않았나. 완공 1년을 맞아 이제 아래뱃길로 치장된 경인운하의 다분히 의도한 신기루부터 벗겨야겠다. 생산적인 대안을 건강하게 모색할 수 있도록,

 

 

 

들어가는 글

 

아라뱃길이라. 그 이름 참 난데없다. 아라뱃길이라면 남한강의 정선 아리랑의 후렴구, “아리아리오에서 나왔을 텐데, 그 이름이 공모로 정해졌다니. 인천 사람은 누구 하나 경인운하의 이름을 공모한다는 소식, 듣지 못했는데, 인천에 만드는 운하의 이름을 도대체 누가 왜 인천 이외의 시민에게 공개적으로 물었다는 건가. 강원도 정선에 가서 물었나. 청와대 지하에 있었다는 전 정권의 워룸에서 끼리끼리 모여 의논했나. 누가 그 공모에 참석한 걸까. 아리송하기 그지없다. 여기서는 그냥 경인운하라 한다.


경인운하는 오늘날 갑자기 구상된 게 아니라고? 고려조와 일제 강점기에도 계획했지만 기술과 돈이 없어 하지 못했을 뿐, 이제야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고? 박수칠 일이라는 툰데, 조상님께 감사패 받겠군! 과거 이루지 못한 토목공사이므로 이 시점에서 양해 사항이라고 주장한다면 지금이 삼남 지방의 세곡을 배로 운반하는 시대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육상 수송이 변변하지 못했던 고려 때 강화와 김포 사이의 물살 거센 염하수로를 노 젓는 배로 다니기 어려웠으니 그런 구상을 했겠지만 도로가 잘 뚫린 지금 누가 쌀을 배에 싣고 서울로 향하나. 경인운하가 그런 짓을 매개해야 한다고? 지금은 쌀이 아니라 남쪽의 철강과 자동차를 인천항을 거쳐 서울로 운반할 거라고? 중국 물건을 실어올 거라고? 그럴까.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곶이었지만 세곡을 실은 배가 파도 거센 바다로 우회하지 않도록 조선 인조 때 삽으로 파내 섬이 되었다. 다리가 놓인 지금 다시 육지가 된 셈인데, 하루 종일 내려다보라. 안면도 다리 아래 어떤 배가 다니던가. 울산이나 광양에서 자동차와 철강을 싣거나 서울 한강에서 반도체를 실은 배가 한 척이라도 드나들던가. 세계에서 고속도로와 국도의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국내 물류를 배로 해결하려는 화주는 거의 없다. 삼면이 바다지만, 트럭을 활용할 따름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훨씬 더 들어 꺼린다. 앞으로 석유 가격이 정신없이 치솟은 뒤라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런 시절이 오더라도 만만치 않은 창고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K-water’가 내세우는 경인운하의 청사진을 들여다보기 전에 요즘 ‘4대강 사업때문에 자금이 쪼들린다는 ‘K-water’가 어디인지 독자들이 아리송할 수 있겠다. 생수 사업체는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토지공사주택공사가 지난 정권에서 합병해 이름을 바꾼 ‘LH공사와 같은 정부투자기관으로, 얼마 전까지 수자원공사라 했다. 여기서는 그 아리송한 ‘K-water’ 대신 수자원공사라 하기로 한다. 그 수자원공사가 내놓은 휘황찬란한 경인운하 그림은 무모하다. 그대로 만들어 운영한다면 파산을 면치 못할 우격다짐처럼 보이는데, 그런 허무맹랑한 그림을 숱하게 그렸던 ‘LH공사처럼 수자원공사도 빚에 쪼들린다. 결국 지방정부에 경인운하의 운영권을 떠넘기고 손을 털 공산이 클 듯하고, 실제로 그렇다.


이번 정부는 난데없이 핵재처리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이지만 지난 정권 만해도 일본통인 호주의 역사학자 개번 매코맥이 일본 허울뿐인 풍요에서 걱정한 1990년대의 토건국가 일본을 돌이키는 것 같았다. 토건자본과 정치와 행정이 끈끈한 토건족삼각동맹이 되어 국가 자본을 제멋대로 주무르다 부풀어 오른 거품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자 끝 모를 심연으로 나가떨어지게 된 일본의 사연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계에 다다른 우리의 현재 모습이 거품 터지기 전의 일본과 비슷하지 않은가. 한 국가에서 하나의 산업 비중이 3퍼센트를 넘지 않아야 건강하다던데 우리 토건산업의 비중은 20퍼센트에 가깝다고 한다. 현재 지방자치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에 몰린 이유가 투기를 조장하는 개발 거품에 정신을 판 결과일 테고, 현 정권이 미지근하게 감사하는 전 정권의 ‘4대강 사업이 토건족 배불리기의 본보기일 텐데, 경인운하는 아니 그랬던 걸까.


투자를 사칭해 투기를 조장하는 토건족과 거기에 기름을 부어 이권을 챙기는 중앙, 그리고 지방정부의 정책이 빚은 총체적 거품 잔치는 머지않아 우리에게 끝 모를 나락을 강요할 수밖에 없을 텐데, 4대강 사업에서 치명적으로 실패한 수자원공사는 여전히 밑도 끝도 없이 휘황찬란한 그림으로 우리를 속이려 든다. 4대강 사업에 이어 경인운하의 경제적 폐해는 투기의 막차를 탈 순진한 자에게 돌아가겠지만 거기에서 그칠 리 없다. 나아가 인천과 국가의 환경과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길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 시절 정부와 수자원공사가 그린 그림을 보라. 운하란 모름지기 화물을 실은 배가 다니는 육지의 물길일 텐데, 그림은 운하라기보다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관광지다. 조용한 농촌마을이라도 그런 시설을 갖추면 관광객이 미어터진다는 경험적 자료는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있을 리 없다.

 

 

신기루 하나

 

완공 1년이 지난 경인운하의 엉터리 청사진을 살펴보자. 조성된 굴포천 방수로 14.2킬로미터에 한강 쪽으로 3.8킬로미터를 이어보아도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그 운하는 인천 서구 경서동에서 서울 강서구 개화동까지 수로로 연결한다지만, 사실 별로 연결할 게 없다. 수로의 깊이는 6.3미터에 배가 오가는 수면의 폭이 80미터이므로 배 두 대 이상이 교차할 수 있는 규모라고 자랑하지만 컨테이너를 싣고 화물을 운송한 사례는 현재까지 목표치의 8퍼센트에 불과하다. 수자원공사에서 225백억 원 가까이 투입한 운하는 양 끝에 갑문과 터미널 그리고 넉넉한 배후단지를 가지고 있지만 텅텅 비었다. 아니 텅 빈 컨테이너를 장식품처럼 쌓아놓은 지 오래다. 수자원공사는 화물운송만 담당하지 않을 운하임을 자랑해왔다. 계양산 일원의 수해를 예방할 뿐 아니라 관광과 레저, 그리고 문화의 기능까지 떠맡겠다고 포부를 밝히는데, 물론 그 성공의 확신은 토건족의 의도적인 상상력에 근거한다. 앞으로는 달라질까.


살짝 그 휘황찬란한 그림을 들여다보자. 랜드마크가 될 시천교인 워터브론터, 두물머리 생태와 바람개비 공원, 리버사이드 파크, 전통공원인 향유원과 만경원, 그리고 요트장과 박물관과 인공해변과 생태공원 들이다. 더 있다. 아니 많다. 하나같이 밑도 끝도 없는 아리송한 용어를 빌려왔다. 고즈넉한 농촌 마을에 요란한 시설물을 늘어놓겠다는 건데, 스토리텔링으로 해외 관광객 2000천 만 명을 수용할 예정이고 했다. 그러므로 듣는 이, 특히 그 지역의 인천시민은 그저 가슴을 설레라고 강요했다. 스토리텔링이라. 라인 강변의 로렐라이 언덕비슷한 설화라도 창작해 세계 방방곡곡에 알리겠다는 겐가.


선착장과 수상택시까지 동원하겠다고 했는데, 수상택시는 홍보 포스터에만 동원되었을 뿐이다. 장했던 꿈은 해소될 일이 실로 아득하다. 유명무실했던 한강 수상택시도 결국 문을 닫았는데 과연 누가 수상택시를 이용할까. 우리의 기존 전통 정원과 고궁에 외국 관광객이 얼마나 찾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곳 다 놔두고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어지다 바다에 닿는 경인운하 주변의 인공 시설을 어떤 외국인이 구경하려 몰려올 것인가. 현재 개설돼 있는 관광 시설도 제대로 관리 운영하지 못하는 주제에 그런 식의 그림을 펼쳐놓다니, 무책임하다. 물론 그 그림대로 성과를 올리지 못해도 책임지는 자 없을 것이다. 커지는 거품은 죄가 없으니 계속 커지기만 한다. 그래야 그림에 취한 자들이 투자하겠다고 돈 싸들고 나서겠지. 나중에 속이 썩어 터질지언정.


한강과 서해를 큰 생태축으로 연결해 시민이 물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수변공간은 물론, 교통축을 통해 물길은 사람과 교류하게 된다.” 제법 근사했다. 그를 위해 경인운하와 용산, 그리고 강화를 잇는 크루즈 코스를 개발하고 주변에 9천여 가구와 25천 여 가구의 휴양용 주거타운을 지을 테니 그린벨트를 해제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6명의 사망자를 낸 용산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런 포부를 다시금 해석하자니, 결국 공사비 마련을 위해 그린벨트까지 허물며 투기꾼을 대환영하겠다는 마음 씀씀이라 걸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그림으로 시민들 현혹해도 무방한 건가. 음식점을 하는 이,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들이 모여들길 기대하는 태도인데, 파산해도 모르겠다는 사기성 그림으로 보인다. 그림을 내세우며 관광 사업을 구상하는 이도 생겼다고 홍보했다. 완공까지 25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3조 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데 그 청사진 속에 주민에 대한 배려 따위의 계획은 빠졌다.


경제성도 대단한 것으로 자체 평가했다. 물론 그 과정은 투명하지 않았다. 꼭꼭 숨긴 자료를 여태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운하 건설과 운영 방면에 선진 기술을 보유한다는 네덜란드의 ‘DHV’라는 회사에서 경인운하의 경제성을 20061.76으로 평가했다고 수자원공사는 큰소리쳤다. 건설 관련 비용과 그로 인한 편익을 다양한 변수를 상정해 계산해서 1 이상의 수치가 나오면 경제성이 있다고 전문가는 평가하는데, 무려 1.76이라했다. 그렇다면 대단한 사업임에 틀림없다는 건데 이상했다. 0.1 이하로 평가한 시민단체는 자료를 꼼꼼히 제시했지만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네덜란드의 그 회사는 희한하게 수자원공사와 일찌감치 자문계약을 맺은 바 있다. 보답인가? 입막음은 아니었나? 수자원공사는 서양, 특히 네덜란드라고 해서 모두 믿을 건 못 된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러면 그렇지. 경인운하 완공 1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경제성 0.1은 다시 나왔다. 서울대학교 홍종호 교수는 경제성 0.1에 다시 방점을 찍었다. 예측이나 실제나 같다는 결론이다.


평가할 때 왜곡한 자료를 넣는 짓은 네덜란드의 전유는 아니었다. 우리 토건족의 막강한 싱크탱크인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20030.92에서 1.28, 2008년에선 1.065로 경인운하의 경제성을 연이어 계산했다는 게 아닌가. 수 조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의 경제성이 어찌 그리 들쭉날쭉하게 평가될 수 있었을까. 집히는 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공사 원가에서 누락시킨 부분이 많다는 항간의 의혹을 살펴보면 수긍이 가는 일이었다. 환경단체는 경제성 평가가 1.0 이상 나오게 하려고 현 국토교통부의 전신인 당시 건설교통부가 KDI의 자료를 예닐곱 차례 수정하도록 반송했다는 의혹을 여태 지우지 못한다. 앞으로는 달라질까. 그럴만한 근거를 제발 찾고 싶다.

 

 

신기루 둘

 

수자원공사는 경인운하에서 25천 개의 일자리 창출한다고 했다. 그랬던가. 현장은 달랐다. 시방 자전거를 타려는 사람 이외에 무척 적막한 그 구간은 공사 기간에도 적막했다. 덤프트럭과 굴삭기 몇 대 말고 없는 채용한 인원은 거의 없어 보였다. 환경 피해는 계상하지 않았을 테니 예서 접고, 생태계 교란은 무시할 수 없었다. 김포터미널을 만들면 천연기념물 재두루미의 서식환경이 훼손될 것으로 생태 전문가들은 우려했는데, 묵묵부답이었다. 당연히 모니터링 결과는 없다. 보전을 위한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 김포 갑문으로 바닷물이 한강으로 스미거나 반대로 운하에 갇혔던 한강물이 인천 앞바다로 스며들 때 발생할 운하 내부와 해양 생태계의 교란 역시 조사되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5기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201077, 수자원공사는 한진해운과 컨테이너 부두를 운영하기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맺었다고 전격 발표했다. 세계 9위 컨테이너 선사와 150500TEU 선박, 다시 말해 대략 6미터 길이의 컨테이너 150개와 500개를 실을 화물선을 내년 하반기 부두 개항과 동시에 운영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보도자료를 의기양양하게 뿌린 것인데, 양해각서는 말 그대로 서로 약속을 기억하자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트럭 150대 또는 500대에 나눠 실을 물량을 화물선 한 척에 모아 실을 것이므로 녹색물류라고 자화자찬한 수자원공사는 환경 비용이 도로의 14분의1, 철도의 3분의1 수준이고 에너지 효율은 도로의 9, 철도의 2.5배 이상이라고 시작하기 전부터 치적을 자랑하기 바빴다.


지난 정권은 언어를 모독했다. 그중 하나가 녹색이다. 아무데나 녹색을 가져다 붙이니 개나 소나 녹색을 찾는 형국이 아니었나. 정부가 하자고 하니 눈치 보아야 기업에서 하는 척하려고 MOU란 걸 맺었겠지만 도무지 화물이 없다. 생각해보자.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경인운하를 배로 운송한다고 녹색이 될 수 있겠나. 화주에서 시간은 금인데, 트럭이면 20분이면 주파할 거리를 화물선에 의존하려면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물론 화물을 옮겨 싣는 시간, 부두에 대기하는 긴 시간은 제외했다. 하지만 녹색이라니 시간은 예서 더는 따지지 않기로 하고, 운하와 부두를 축조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철근시멘트, 그 철근시멘트를 만들고 운반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 덤프트럭과 굴삭기가 움직이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또 얼마나 들어갈 것인가. 그래도 그마저 둘째로 치자. 컨테이너를 트럭에 싣고 내린 뒤 화물선에 싣고, 다시 트럭에 옮기는데 들어가는 석유 에너지는 왜 생각하지 않는 건가. 참으로 편리한 녹색이 아닐 수 없다.


수자원공사와 정부는 경인운하를 이용할 화물선이 중국과 일본을 오고갈 듯 여전히 주장한다. 심지어 앞으로 지금과 같은 폐선 직전의 낡은 여객선을 치우고 호화 여객선을 띄우겠다고 호언하기도 한다. 한데 그런 그림은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금방 드러나게 마련이다. 운하를 왕복하는 배와 대양을 오고가는 배는 그 구조가 엄연히 다르다. 물 깊이가 낮은 운하에 바닥이 깊은 해양 용 선박을 띄울 수 없다. 그런 배를 띄우려 운하를 깊게 판다면 주변 경작지와 지하수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만 토목에 들어가는 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 경인운하를 깊게 팔 경우, 홍수 예방이라는 태생적 임무는 포기해야 한다. “홍수 예방운운하는 이야기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운하를 왕복하는 바닥 편평한 배는 속도를 낼 수 없다. 속도를 내면 소비되는 연료가 크게 늘어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도 운하를 사용하는 독일은 시속 8킬로미터 이하의 속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느려터진 경인운하 18킬로미터를 이용할 컨테이너에 앞으로 무엇을 실을 수 있을까. 민원도 민원이지만, 시설도 수요도 없는 원목이나 석탄과 같은 벌크화물을 컨테이너에 실을 리 없으니 장담한 대로 완성품이어야 할 텐데, 시간을 다투는 화물일 리 없다. 안전을 요구하는 화물도 확률이 무척 떨어진다.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도 상상은 가능하다. 인천항이나 평택항까지 가지고 갈 수출입 화물은 아닐 게 거의 틀림없으니 남는 건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경인운하의 부두 사이를 오고간 뒤 트럭에 옮겨 실어도 무리가 없어야 할 화물일 게다. 서울의 한강에서 싣고 느릿느릿 인천으로 보낼 화물이 도대체 뭘까. 서울은 소비도시다. 생산하는 완성품이 없으니 컨테이너에 무엇을 실어야 하나. 인천에서 무엇을 서울로 보내야 하나. 바다와 갯벌이 거의 개발돼 잡히는 물고기가 드물고 소금도 인천에서 나오지 않는데.


컨테이너 화물? 사실 그럴 가능성은 앞으로도 낮아 보인다. 유럽이나 미국의 운하용 선박 대부분은 컨테이너 화물을 싣지 않는다. 그저 원유와 석탄과 시멘트와 원목과 같은 벌크 화물을 취급한다. 그런데 원하는 사업체가 서울에 없으니 벌크 화물의 이동 가능성은 생략하자. 석유나 시멘트나 원목은 취급하는 항구가 따로 있으니 역시 제외해야 한다. 이제 남는 건 수도권 생활 쓰레기와 바닷모래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이미 수도권 매립지의 수명이 2016년으로 끝나가지 연장을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하는 서울시는 경인운하로 쓰레기를 운반하겠다는 속셈을 슬며시 드러낸 바 있다.


새벽마다 동네 후미진 곳에 적치해두었던 생활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경서동의 매립지를 다녀오는 수고는 수도권의 도시마다 피하고 싶을 것이다. 앞으로 한강의 부두는 생활 쓰레기 부두가 될 가능성이 높겠다. 생활 쓰레기를 싣고 인천에 내린 뒤 바로 가까운 경서동 매립장으로 가면 지금보다 편리하고 1000만 서울시민의 민원이 줄어들 수 있겠다. 또 한강 부두에 인천부두에 쌓아둔 바닷모래를 운반하면 얼씨구나 가지고 갈 건설업체가 많을 것 같다. 일거양득이로다. 때문에 인천 앞바다의 생태계는 절딴 나고 악취 나는 경인운하의 관광효과는 더욱 위축되게 생겼다.

 

 

신기루 셋

 

채무액이 마구 증가해 1년 전보다 75퍼센트 늘어나던 시절, 200911, 서울시는 한강에서 경인운하와 연결하는 이른바 서해비단뱃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빚이 16조 원이 넘는 서울시 투자 SH공사에서 어떻게 추진하려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당시 서울시장은 서울도 아니고 하필 홍콩에서 중국 상해와 홍콩 마카오, 일본 등을 국제적으로 연결하는 동북아 수상관광 거점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홍콩선언이라고 부하들은 요란을 떨었다. 그를 위해 승객 120명이 이용할 수 있는 5천 톤 급 국제 크루즈선을 도입해 중국과 일본의 주요 도시를 오가는 테마형 관광 상품을 개발하겠다고 포부를 발표했다.


서울이 여객, 관광, 크루즈가 한 번에 가능한 세계 수준의 동북아 중심 수상 관광도시로 도약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장담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이 대한민국 관광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원동력이 될 것으로 점쳤다. 한술 더 떠, 국내에 방문한 외국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로 활용할 2천에서 3천 톤 급 국내 크루즈선도 운항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서남해와 연안도서를 관광할 수 있는 여행상품으로 개발할 구상에 잠겼다는 것이었으니, 할렐루야! 시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어찌 될 뻔했을까.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수자원공사는 2천만 명의 해외 방문자가 경인운하를 다녀갈 것이라 하고, 서울시는 외국인의 필수 관광코스를 개발한다고 장단을 맞췄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 무척 바쁠 뻔 했다. 당시 담당자는 이제와 그 계획은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고 장담하고 싶지만 모른다. 어떤 이가 시장이 되는가에 따라 디시 꺼낼지 모른다. 그때 서울시와 수자원공사가 서로 경쟁할지 상생할지 알 수 없겠으나, 여의도에서 르네상스운운하다 실패한 용산을 거쳐 여의도를 지나 크루즈선은 초일류를 가장할 것이다. 고작 120명을 태운 바닥 편평한 관광선을 선뜻 또는 덥석 받아들일 중국과 일본의 무모한 항구도시가 과연 존재할지 그때나 지금이나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 위태로운 관광 상품을 해외에 팔 생각에 젖은 여행사가 어디 있을까. 만일 다시 추진하려 한다면 서울시는 든든한 생명보험회사와 동업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새로 출범한 서울시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아리송한 서해비단뱃길 사업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벼렸는데, 타 도시에 관심이 적은 인천시민이라 그랬는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모른다. 다만 책임지고 자리를 떠난 이가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일단 서울시의회는 행주대교와 양화대교의 교각 폭을 넓히고 상판을 아치로 바꾸려던 공사도 중단시켰다는 건 언론보도로 알았다. 새로 선출된 시장이 서해비단뱃길을 철회했다는 것도 알지만 왜 그런지 통 안심이 되지 않는다.


서해비단뱃길 계획을 세웠거나 지지한 전 시장과 시장 후보가 서울 소재의 대학에 교수로 임명되는 분위기가 불안을 줄이지 않는다. 전 시장이 구상한 중랑천과 안양천을 오고갈 뱃길도 현재 무산되었지만 토건족의 절치부심은 시간과 돈줄을 쥐고 있지 않은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토건족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방정부에서 일시적인 빚잔치는 일상일 뿐이다. 사업 중단의 명분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서해비단뱃길은 경인운하와 운명을 공유하려 할 것인데, 굴포천과 경인운하를 연결하려고 구상한 부천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을까, 수상택시와 수상버스를 위해 수천억 원을 들이 부을 예정이라던 부천시의 단체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바뀌었으므로 중단했을 것으로 믿는다. 시민들의 의견을 편중되지 않게 듣는다는 평가가 있는 그는 신기루를 감지했을 테니까. 다음 정권에서 불안은 불식할 수 있을까.


20106월 고양시는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 7.49제곱킬로미터를 람사르 습지로 등록하자고 환경부에 제안했다. 정확한 명칭이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10람사르 총회200810월 창원에서 개최한 우리나라는 1997년 협약에 가입해 우포늪과 순천만을 비롯해 11개 습지를 등록한 바 있는데, 고양시에서 장항습지를 추가로 등록하자고 정부에 발의를 요청한 것이다. 환경부가 진정 환경을 생각하는 정부의 부처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마땅했지만 ‘4대강 사업에서 진작 태도를 짐작하게 했던 환경부는 애써 듣지 못하는 척 했다. 고양시는 서울의 서해비단뱃길이 다시 실현된다면 장항습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우려한다. 5천 톤이 넘는 배를 운항하기 위해 한강의 신곡수중보를 14킬로미터 아래 하성대교 예정지로 옮긴다면 수위가 1.1미터 상승할 테고, 그러면 재두루미와 저어새, 그리고 국내 최대로 서식하는 말똥게와 고라니와 버드나무 군집은 온전할 수 없을 게 분명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는 한 술 더 떠, 10억 톤이 넘는 골재를 채취하겠다고 기대했는데, 다행히 서울시장은 바뀌었고, 장항습지는 아직 보전되고 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고 한강의 모래사장이 복원되면 토건족들이 조용해지려나.


파격적인 개발을 제안한다면 경인운하의 사정이 바뀔 수 있겠다. 그를 감지한 걸까. 최근 경인운하의 텅 빈 유람선에서 해괴한 상황을 연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비키니를 입은 외국 무희들이 나이트클럽에 가야 볼 수 있는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를 벌이며 성인 남성 승객들을 술판을 유도한다는 게 아닌가.(아시아경제, 2013.5.20., 인터넷판) 그렇다면 한 가지 추가할 게 남겠다. 유람선에 슬롯머신과 같은 가벼운 도박장을 만들고, 경인운하 주변에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강원랜드와 같은 도박장을 설치해 관광객, 아니 도박꾼을 유도한다면 예상외의 돈벌이가 가능할지 모른다. 물론 내 쌈지의 돈이 남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도박꾼보다 수수료를 떼는 도박장에서 돈을 더 벌듯, 도박장의 운영 주체는 짭짤할 수 있겠다. 수도권에 근사한 명분으로 내외국인이 출입가능한 도박장을 그것도 그 춤판 유람선을 능가할 정도로 야릇하게 꾸민다면 라스베이거스 부럽지 않은 도박꾼들의 방문을 기대할 수 있겠다. 다만 강원랜드와 제주도의 카지노의 불같은 항의를 견뎌야 할 테고 우리네 정서가 걸림돌일 뿐이겠다. 이 글이 도박장을 권장하려는 목적이 아니니, 제발 오해말길 바란다.

 

 

신기루 넷

 

경인운하 계획은 고려조가 아니라 굴포천 방수로에서 급조돼 나왔다. 부평의 만월산에서 발원해 부천시를 거쳐 김포시 고촌읍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굴포천은 현재 한강의 홍수위보다 4미터 정도 낮아 상습 수해가 발생한다. 1987년 전국적인 큰비로 굴포천 일대에서 16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천만 평이 넘는 농경지가 침수하자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공약으로 부랴부랴 굴포천 주변에 고인 물을 서해로 빼내는 방수로를 발표했다. 1992년 그 사업을 시행했지만 기왕 만드는 방수로를 운하로 활용하자는 토건족의 기특한 발상으로 3년 후 운하로 변경, ‘경인운하주식회사를 설립해 민간사업으로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거듭 드러나는 환경문제에 대한 반대운동에 부딪혀 노무현 정부 초기에 사업이 중단되었고 2003년 감사원에서 사업 경제성이 과장되었다고 지적해 공식 반려된 사업이었다. 하지만 토건족의 집요한 공작에 힘입었는지 20091월 지난 정부에 의해 경인 아라뱃길로 개명된 뒤, 다시 추진된 것이다. 요는 수해가 발생하자 얼씨구나 추진한 눈물겨운 토건사업이었다.


한강 홍수위보다 굴포천 수위가 낮은 건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한강의 하상 관리가 자연스럽지 못했던 탓일 텐데, 그렇다고 굴포천이 홍수 피해를 늘 받은 건 아니었다. 피해가 상습적이었다면 호수나 범람원이 형성된다. 농경지와 마을로 개발돼 주민이 살 리 없다. 이따금 큰비가 내릴 때 피해가 작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잊을 만하면 사망자가 속출하고 무려 천만 평이 넘는 농경지가 침수되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1987년의 홍수 피해는 어찌 보면 범람원 자리에 마을과 농경지가 조성된 탓도 있지만 워낙 큰비가 내린 데 원인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1987년 당시 홍수 대책의 일환으로 방수로가 선호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한데, 사실 드문 빈도로 내리는 거대한 홍수 피해를 방수로만으로 해결하는 건 무모했다. 생태호수 개념의 범람원을 조성하는 방법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주의 만봉천과 화순의 지석천, 그리고 담양의 영산강 상류가 홍수 조절용 생태호수를 조성해 상습 홍수 사태를 해결했다. 평상시 학생들의 생태 학습효과는 물론이고 산불진화용 물 공급도 기대할 수 있는 범람원을 넓게 만들어 비가 갠 뒤 모인 물을 비우는 방식이다. 굴포천은 피해 면적이 그 하천들보다 넓다면 방수로와 생태호수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었다. 평소 호수가 딸린 농경지로 활용하다 큰비가 내릴 경우 범람원으로 홍수를 완충하면서 방수로를 활용해 고인 물을 서해안으로 빼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 대안이 비용도 훨씬 적고 민원도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효과가 높았을 것이다. 사업비는 경인운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그래서 기각된 게 아닐까? 그 수준의 예산으로 토건족의 막대한 먹성을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운하로 밀어붙였다는 의구심이 생긴다. 억측인가.


그런데 한창 공사 중인 경인운하와 가까운 계양산 북측 저지대는 기후변화 시대에 두드러지는 최근의 잦은 홍수에 늘 피해를 입는다. 변고가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라 삭막한 도시화의 필연적 부작용이다. 공원 일원과 택지의 좁은 녹지를 제외하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철두철미하게 덮여 있는 도시는 사막이다. 내리는 비는 바닥을 흥건히 적시며 허겁지겁 어디론가 낮은 곳으로 사라지지만 전혀 지하로 스며들지 못한다. 녹지가 부족한 만큼 빗물을 완충하지 못한다. 1987년 대홍수 이후 지금의 중동과 상동 일원의 김포평야가 아파트단지로 개발되었다. 평야보다 높게 성토된 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칠갑을 한 것이다. 이후 굴포천은 자주 범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공출 명목으로 쌀을 빼앗아가려고 일제가 논으로 매립하기 전에 갯벌이었던 김포평야가 다시 매립돼 도시로 개발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평야일 때 아주 드물었고 갯벌일 대 거의 없었던 홍수 피해가 요즘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건, 빗물을 완충할 수 없는 도시의 필연적 한계다.


굴포천이 인천 앞바다와 가까우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의 한계를 방수로가 어느 정도 해결해줄 수 있지만 굴포천 방수로 계획자와 경인운하 계획자는 진정한 대안인 범람원은 몰랐거나 외면했다. 휘황찬란한 시설을 꿈꾸는 경인운하는 앞으로 굴포천 일원의 홍수 피해를 막아줄 수 있을까. 예측하건데, 잦은 빈도의 홍수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일 경우 걱정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유난히 큰 인천 앞바다가 만수위일 때 빈도가 낮은 거센 홍수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앞바다의 수위는 경인운하 수위보다 높다. 걷잡을 수 없게 큰비가 내릴 경우 경인운하의 내부 용량으로 저장할 수 없는 빗물은 고스란히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소에 물을 빼낼 수 없는 운하의 약점이 그럴 텐데 수자원공사는 장마철에 물류를 제한하고 운하의 물을 빼내면 된다고 주장한다. 보름 정도면 충분하단다. 만일 그렇다면 화물선 탑재를 기다리는 수도권 2천만 명의 생활 쓰레기와 바닷모래는 부두에서 보름 동안 악취를 뿜어낼 수밖에 없을 건데, 민원이야 보름동안 달래면 그뿐인가. 문제는 슈퍼컴퓨터도 예보하지 못하는 국지성호우에 있다. 지구온난화로 최근 부쩍 늘어난 물풍선 같은 국지성호우는 예고가 없지 않은가. 강우량의 기록도 번번이 경신되기만 한다.

 

 

나가는 글

 

5기 지방정권으로 바뀐 인천시는 한강 유역 주변 11개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경인운하에 대한 재검증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동안 주민의견을 제대로 청취하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를 형식적으로 작성했을 뿐 아니라 자의적인 경제성 평가를 작성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인운하를 엄격하게 검증해 중앙정부에 대안을 건의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위원회는 사업성이 4배나 뻥튀기 되었다는 발표를 뒤로 공식 활동이 멎었다. 완공 1년이 지난 지금, 움직임이 없는 재검증위원회보다 경인운하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실질적인 대안 모색이 중요하다. 경인운하가 실효성이 없으니 대안은 무엇이어야 할까.


2009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이 경인운하 사업 방향의 수정을 요구했다. 운하와 대양을 오고갈 수 있는 화물선과 여객선으로 중국과 무역에 나서고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당시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호언했지만 경제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불가능하니 재조정하라고 권고한 것인데, 사실 전부터 환경단체와 시민사회에서 주장한 내용의 반영이었다. 바뀐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시민들의 엄중한 요구를 새겨들어야 한다. 고즈넉한 농촌에 휘황찬란한 시설을 즉각 유치해 당장 큰돈을 벌어들일 것처럼 그림 그리며 주민들을 선동하거나 현혹시키는 일은 정부의 몫이 아니다.


범람원 개념의 생태호수라는 대안을 찾아내길 강하게 희망하면서 동시에 방수로로 환원될 현 경인운하의 재활용 여부를 적극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강 하구의 오염된 물이 정체돼 악취를 풍기는 운하가 아니라 평소에 지역주민과 인천시민, 그리고 내외국인의 휴식과 휴양 장소가 되는 아름답고 쾌적한 녹지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운하 안의 물을 대부분 빼내고 그 자리를 녹지로 바꾸는 상상은 가능하다. 그리 된다면 운하로 생활권이 차단되므로 다리를 더 건설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하던 주민들도 반가워할 게 틀림없다. 생활권이 녹색으로 연결될 게 아닌가. 터전을 잃을 뻔한 김포시 고촌면 전호리 평야지대의 재두루미도, 장항습지의 저어새와 고라니와 말똥게도 예전처럼 보전될 것이다. 토건족 수중에 들어가기 직전의 막대한 예산이 소외되었던 복지와 문화와 교육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굴포천 일원에 홍수가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빗물을 완충할 수 있는 비오톱(biotop)을 도심 곳곳에 조성해야 한다. 공원에 나무와 풀을 넉넉하게 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지하수와 이어질 수 있는 호소를 곳곳에 마련하는 일이다. 빗물이 침투할 수 있도록 적어도 공공건물의 구조를 우선 개선하고 새로 짓는 건물은 유럽의 많은 도시가 현실화하듯 반드시 빗물을 재활용하거나 완충해 지하로 스밀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비오톱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시는 깨끗해지고 그만큼 열섬화현상도 줄어든다. 복중의 열대야현상도 크게 완화될 게 틀림없다.


경인운하가 수자원공사의 그림대로 개발될 리 없지만 자금을 계속 퍼부으며 진행된다면 숱한 경험에서 증명되었듯, 주민들은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시민사회는 더는 어설프게 속지 않을 것이다. 홍수 피해를 해결해 줄 듯 거룩한 표정으로 다가와 거품 같은 그림을 앞세우며 터전에서 내쫓는 행위는 시민사회는 물론 주민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토건사회의 폐해를 진저리치게 겪은 시민들을 설득하고 지역의 경제와 환경을 안정시키려면 경인운하는 반드시 원점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숱하게 문제를 제기해왔던 환경단체, 사회단체, 그리고 주민들과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


거기에 하나 더. 이미 경인운하는 운하보다 기네스북에 너끈히 등재될 정도의 세계 초특급 자전거도로를 갖추고 있지만, 경인운하 옆에 왕복 4차선 도로와 자전거 길을 내어 교통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도 거두어야 한다. 실패한 운하는 대안을 찾아야 옳고, 교통문제는 별도의 사안으로 논의해야 한다. 통행료를 미끼로 경인운하의 운영을 도모하려는 시도 역시 정부의 몫과 거리가 멀다. 공사 전부터 실패가 예정된 경인운하의 완공 1년을 맞아 국회에서 공개 토론회를 실시했다면 이제 허심탄회하고 민주적인 논의를 해야 수순에 적합하다. 경제성 0.1에 대응할 수 있는 향후 대안을 관심을 가진 시민과 정의롭게 실시할 것을 새로운 정부와 수자원공사에 제안하고 싶다.(지금여기, 2013년 5월 24, 28, 31, 6월 5일, 4회 연재) 

좋은글 고맙습니다...공유합니다.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12. 28. 00:22

   재발 방지를 위한 청문회

 

곧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다. 새 정권보다 그 다음의 정권을 생각했고, 이번에 선택된 정권은 차기를 위한 튼튼한 징검다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출마한 유력한 후보의 면면을 볼 때 다음세대 유권자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새로 출범할 정권, 건강한 차기에 바통을 넘길 바람직한 정권으로 어떻게 하면 기억될 수 있을까. 우선 청문회로 그 가능성을 주목하고 싶어진다.


정권을 넘겨줄 현 정권은 합리성을 왜곡하며 여러 사업을 강행해왔다. 대표적인 건 ‘4대강 사업이다. 운하를 전제하지 않으면 설명이 아예 불가능한 사업이라는 거, 양심을 속이지 않는 전문가라면 누구나 지적했건만 운하가 아니라며 손으로 하늘을 가렸다. 법망까지 교묘하게 피했다. 규모가 훨씬 작은 사업도 4계절 환경영향평가 조사를 하건만, 며칠 만에 얼렁뚱땅 마쳤다. 공사 전부터 예고했던 부작용이 사실로 드러나건만 지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새 정권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려면 현 정권이 한사코 감추려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행정부의 고백은 쉽지 않을 터. 청문회가 필요하다.


인천의 한 국회의원은 경인운하의 문제를 청문회에서 따져보자고 제안했다. 그도 그럴 게, 사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충분한 근거로 타당성이 의심되었지만 수자원공사는 27천억에 가까운 예산을 쏟아 부어 강행했고, 개통 5개월이 지났어도 투자비의 20퍼센트만 건지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던가. 화물과 여객선 이용 예측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졌을 뿐 아니라 온갖 화려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주변 배후지를 투자하려는 민간자본도 나타나지 않았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밑도 끝도 없는 정부의 투자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건설사들의 일감을 위해 수자원공사 부채만 늘려놓은 사업으로, 목적도 불분명하고, 투자에 비해 경제성도 떨어지는 예산 낭비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한 국회의원은 다시는 경인운하 같은 예산 낭비가 없도록국회 차원의 청문회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소속이 야당이라서 그런지 아직 청문회는 열리지 않았다. 청문회 개최를 위한 여야 논의가 진행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사업이라면 여당의원은 청문회를 발의할 수 없어야 하나. 문제의식이 있다면 당적에 관계없어야 마땅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야당의원만이 발의하고 여당의원이 마다하는 청문회라면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행정부가 벌인 무리한 사업의 시시비비를 청문회로 밝혀낸다면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할 수 있을 텐데, 현재까지 우리 국회는 부응하지 못했다. 여당 국회의원이 다수를 점해서 그랬을까, 입법부답게 행정부를 감시하거나 견제하지 않았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이젠 달라야 한다. 정권에 빌붙는 검찰에 진저리를 치는 시민들이 왜 국회에 거듭 실망해왔는지 국회의원이라면 살펴야 한다. 민의에 부합하는 청문회가 사안에 맞게 그때마다 열린다면 유권자들의 생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국회가 개과천선해 청문회를 부지런히 열어준다고 해도 언론이 그 뜨거운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하지 않는다면 이내 시들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정권이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면 언론인의 속성 상 생중계에 나설 테고, 유권자들은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를 위해 현 정부의 언론 정책 역시 청문회의 도마에 올라가야 한다. 청문회는 행정부의 책임 추궁을 위한 절차가 아니다. 새 정권의 청문회는 과오를 저지른 행정부, 그리고 그 과오를 호도한 언론의 자기반성과 재발 장지를 다짐하는 약속을 끌어내야 한다. 물론 드러난 과오는 필요하다면 사법부에서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많은 국회의원들이 청문회 개최를 호언해왔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효용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문제점이 잘 드러내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국회의원의 발의에도 청문회가 열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시시비비가 가려지더라도 상응하는 조처가 법적 행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청문회 결과는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청문회를 언론이 방송하더라도 시민들은 이내 시들해지고, 청문회 개최 소식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워진다. 달라져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아직은 이상적이지만, 청문회 제도가 활발해지면 다수당의 안건 날치기 통과가 궁극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민의를 민주적으로 묻지 않은 채 강행 처리한 안건은 결국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만일 문제가 드러난 안건을 청문회에 상정할 수 있다면, 강행 처리하는데 앞장 선 국회의원의 행태는 백일하에 드러날 테니, 그 의원은 유권자의 선택을 더는 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과오가 분명한 이를 후보로 내세우는 정당은 주도권을 잃을 것이다. 청문회가 이상적으로 운용될 때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다.


청문회는 행정부가 벌인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 실시된다. 문제가 벌어진 뒤에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파악할 뿐이다. 순리대로라면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현 정부는 과거 입법부에서 정비해 놓은 관련 제도를 무시하거나 왜곡했다. 4대강이나 경인운하 사업이 그렇다. 중립을 지켜야 할 권력기관과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기관에 편향된 이를 임명하면서 행정부는 무소불위 독선을 자행했다. 핵발전소를 추가하며 다음세대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재발되지 않아야 할 과오였다. 새 정권을 맞은 국회가 청문회를 열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올해는 계사(癸巳)년이다. 뱀의 해인데, 국회의원들이 뱀처럼 냉철한 정신으로 청문회에 임한다면 행정부는 민의에 어긋나는 행정을 함부로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청문회다운 제도 정비에 국회의원이 가장 노력해야하겠지만, 각성한 시민들의 분명한 요구가 없다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국회의원은 머뭇거릴 수 있다. 유권자인 시민의 편중되지 않는 요구를 투명하게 반영하는 청문회가 국회에서 일상화된다면 민주주의는 성큼 성숙할 수 있다. 국회의원도 청문회에 임하기 전에 준비와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을 터. 곧 청문회의 계절이 열릴 것인가. (작은책, 2013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