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9. 2. 9. 11:16

 

해발 395미터인 계양산은 인천의 진산(鎭山)이다. 북풍한설을 막아주고 맑은 물을 흘려주며 조상에게 영택(靈宅)을 내주는 진산은 아버지와 같은 산이었다. 진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있어 농사를 지었던 조상은 진산에서 구하는 목재로 집을 짓고 땔감으로 구들을 데울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그네는 멀리 진산이 보이면 한걸음에 달려가 아내와 아이를 끌어안기보다 비로소 행장과 긴장을 풀고 단잠을 청할 수 있다고 한다. 백성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끄는 진산이 있기에 조상은 문화와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

 

한남정맥의 끝에 우뚝 선 계양산은 계양산성과 봉월사터와 봉화대와 같은 유적을 남긴 인천의 문화와 역사의 원천이자 에스자 녹지축의 시원이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했던 계양산에 한국동란 이후 많은 시민이 몰려들어 나무를 베어내 한동안 헐벗었어도 1944년 인천 최초로 지정된 도시자연공원답게 현재 자연스레 회복되고 있으며 지금도 찾아오는 시민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한껏 도모한다. 제물포의 나지막한 바닷가를 굽어보는 계양산이 있기에 갯벌이었던 김포평야가 풍요로웠고, 갯일하던 조상이 계양산 아래 마을을 정하고 문화를 일굴 수 있었을 것이다.

 

조상의 얼을 돈 앞에서 무시하는 후손에 의해 계양산의 위상이 돌이키기 어렵게 훼손될 위기에 빠졌다. 야금야금 파고드는 주택이 기슭을 잠식하더니 전자파를 내뿜는 송전탑이 등성이를 훑고 지나고, 이제 굴지의 대기업에서 골프장으로 한 기슭을 통째로 무너뜨리려 팔을 걷었기 때문인데, 골프장이 과연 계양산과 어울릴까.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부자들만의 놀이다. 스코틀랜드 목동들의 소일거리에서 출발한 골프는 우리나라 환경과 전혀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멕시코만 난류가 흘러 겨울에도 춥지 않은 높은 위도의 영국은 빙하의 퇴각으로 깎여 국토가 완만한 구릉으로 형성돼 있다. 골프장의 잔디는 그런 지형과 기후를 가진 스코틀랜드의 자생 목초다. 건초를 위해 바싹 자른 목초지에 공처럼 뭉친 하얀 양털을 내려놓고 지팡이로 처서 구멍에 넣던 놀이가 기원인 골프는 스코틀랜드의 환경과 기후를 흉내내야 가능할 수밖에 없다.

 

잔디는 그늘에서 잘 자라지 못한다. 오랜 목양으로 키큰 나무가 드물고 식물상이 단순한 스코틀랜드와 달리 우리나라는 4천여 종의 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가진다. 우리 생태계의 나무를 뽑고 구릉처럼 완만하게 깎아내지 않으면 스코틀랜드 원산의 잔디는 자라지 못한다. 잔디밭에 다른 식물이 뿌리내려도 안 된다. 따라서 우리 기후에 적응된 나무와 풀을 포함해 풀씨와 미생물까지 모조리 제거해기 위해 땅을 1미터 가까이 파내고, 그 자리에 불로 지진 흙을 채운 다음, 문제의 잔디를 심어야 한다.

 

우리 잔디와 달리 잎사귀의 방향이 일정한 스코틀랜드 원산의 잔디는 여름이 무덥고 겨울이 매서운 우리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다. 비가 일년내내 부슬부슬 내리고 여름에는 영상 20도 이하, 겨울에 영하의 날씨는 드물게 맞춰야 유지되는 까닭에 여름에 시원한 물을, 겨울에는 따뜻한 물을 자주 뿌려야 하는데, 그 양이 매우 많을 수밖에 없다. 잔디 심은 토양이 쉽게 배수되기 때문이다. 지하수를 골프장에서 막대하게 퍼올리니 인근 농경지와 마을의 갈증이 커질 텐데, 계양산의 경우, 반딧불이나 도롱뇽과 같은 생물상에 영향을 미치고 생태보호지역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잔디를 양호하게 유지하려고 뿌리는 화학비료가 끌어들이는 다른 식물과 뒤따라 들어오는 곤충들을 제거하려면 제초제와 살충제가 필수인데, 그 양도 무시할 수 없다. 미생물을 이용한 방제는 효율이 낮을 뿐 아니라 사용하기 번거롭고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경제성을 따지는 운영자는 사용하기 꺼린다. 미생물 이용을 아무리 장담해도 감시하기 어렵다. 바람에 날리는 맹독성농약이 인근 생태계를 교란하고 주택에 스며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비용을 들여 우리 지역문화와 역사를 전복하지 않으면 건설과 운영이 불가능한 까닭에 골프장은 여유 없는 계층과 거리가 멀다. 골프가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 전동 골프카를 타고 이동한다. 품위 있는 신사의 놀이라지만 크고 작은 돈내기가 만연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골프장을 위해 진산을 보전한 조상은 없다. 주거지 인근의 자연녹지가 태부족한 상황에서 기슭을 거의 도려내는 대기업의 골프장을 위해 진산을 헌납하는 대도시는 인천 이외에 없다.

 

1990년대 초, 한 중소기업에서 골프장 계획을 제출했을 때, 인천시민 10만 명이 서명운동으로 반대하고, 인천시는 시민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대기업은 진산에 골프장을 고집하고 인천시와 계양구는 적극 호응하며 일부 주민은 유치에 열성이다. 계양산 주변에 사는지 불분명한 찬성 주민들은 지역단체장의 오랜 지지층이라는 세간의 의혹과 관계없이, 확실한 것은 인천시민의 90퍼센트는 계양산의 보전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설악산이 주민 일부 의사에 종속돼 개발되어야 하는 생태공간이 아니듯, 계양산이 일부 주민의 의지에 의해 골프장으로 버림받아야 인천의 진산일 수 없다.

 

골프장은 파산하는 곳이 수두룩할 정도로 수도권에 많다. 환경이 우선되는 시대를 견실하게 살아남으려면 사회적 기업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양산 골프장을 고집하는 대기업도 세계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이미지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환경과 생태계 보전에 역량을 다하는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있다. 일본 동경에 위치한 국영소화기념공원의 골프코스는 원반을 사용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원반을 던지며 이동하면서 숲의 생태계를 배우고 친목도 도모하도록 설계되었다. 계양산의 내일이 대기업의 골프장이어야 옳겠는가.

 

계양산은 문화와 역사가 보전되는 진산, 시민의 관심으로 생태계가 보존되는 자연공원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나무 위 농성에 이어 서명운동과 단식을 거듭하는 시민을 무시하는 기업을 소비자는 기억할 것이지만, 아집을 버리고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인천리뷰, 2009년 3월, 창간호)

 
 
 

도시·인천

디딤돌 2008. 10. 13. 09:06

 

《솔숲에서 띄운 편지》, 윤인중, 신정은, 신종철 지음, 생명평화, 2008.

 

 

인도의 가난한 여성에게 숲은 생존을 위한 기반이다. 신분제도가 고착된 인도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뒤쳐지는데 계층의 낮을 경우 그 지위는 터무니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들은 지참금이 적어 시집을 갈 수 없거나 시집을 가도 아내나 며느리의 대우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는 거다. 그나마 아들을 낳으면 집에 남아있을 수 있지만 딸만 거푸 낳는다면 딸과 함께 내�기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집을 나와야 하는 여인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산이다. 거기에 나무와 숲이 있는 까닭이다.

 

산은 품이 넓다. 돈과 기술이 없는 여성도 무궁한 열매와 산나물을 뜯으며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약초와 목재를 내주니 약간의 돈도 장만할 수 있게 여성에게 배려해준다. 물과 맑은 공기, 그리고 숲에 어우러지는 수많은 동식물이 심신이 지친 삶과 휴식을 베풀어준다. 그런데 그런 산이 위협받는다. 사슬톱을 쥔 남성에 의해.

 

사슬톱을 쥔 남성은 자본의 지시를 받았다. 남성은 마을에서 쫓겨난 여성이 삶을 기대는 산으로 들어와 나무를 자른다. 그 여성은 시댁에서 쫓겨난 누나나 누이동생일 수도 있다. 처형이나 처제일 수도 있다. 언제나 다정했던 이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은 사슬톱을 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직장을 잃고, 직장을 잃으면 돈을 가질 수 없고, 돈이 없으면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 마을에는 돈이 없어 산에 들어가 목을 맨 남성도 많다. 그가 죽으면 아내는 아이를 안고 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안다. 그래서 사슬톱을 단단히 쥔다.

 

남성에 사슬톱을 쥐게 한 자본은 댐을 만들려고 한다. 댐을 만들어지면 마을과 농토가 물에 잠기고, 물이 차오른 산은 마을과 고립될 것이다. 산에 기대며 사는 여성들은 다시 쫓겨나야 하지만 더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사슬톱에 저항하기로 한다. 귓전에서 윙윙대는 사슬톱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는 것이다. 나무와 함께 삶을 마치겠다는 의지로 나무를 꼭 끌어안은 여성을 보는 남성은 곤혹스럽다. 여성에 욕설을 하며 사슬톱으로 몇 번 위협하던 남성은 차마 나무를 자르지 못하고 사슬톱을 내동댕이친다. 나무를 끌어안은 여성이 마을의 이웃이고, 누이동생이고, 누나거나 처형이 아닌가. 여성성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이른바 ‘칩코운동’이다. 칩코운동을 지켜본 생태여성주의자 반다나 시바는 핵물리학자였다. 인도에서 여성이 핵물리학을 전공한다는 게 쉬운 어디 쉬운가. 반다나 시바는 보통 계층이 아닐 것이다. 그 반다나 시바가 핵물리학을 버렸다. 거대자본이 추진하는 핵물리학은 중앙집중적이다. 파괴적이다. 남성주의다. 여성과 마을을 짓밟는다. 인도의 여성에게 칩토운동의 가치를 전파하는 반다나 시바는 당연히 댐을 반대한다. 토착지식을 훔쳐 사유화하는 생명공학도 반대한다.

 

대학을 갓 마친 한 여성이 한 나무의 고통을 듣는다. 미국 서북부, 아주 멀리 떨어진 벌목 현장에서 전해오는 나무를 공포를 감지한 그 여성은 불원천리, 맨발로 고통받는 나무에 오른다. 738일. 혹독한 겨울을 세번 견디며 나무에서 두번 생일을 맞이한 여성은 미 정부가 일대의 숲을 매입해 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내려온다. 나무의 이름은 ‘루나.’ 2년 넘게 자신을 받아준 루나와 헤어지면서 눈물을 펑펑 흘린 그는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덕분에 수천년 수령을 자랑하는 미국 메타세콰이어 원시림의 극히 일부는 지금까지 보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과 같은 역할을 17일 동안 계속한 이가 있다. 그는 ‘환경정의’라는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박용신이고 남성이다.

 

용인은 난개발로 파헤쳐진 곳이다. 공업단지는 흩어진 공장지대를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진다. 아파트단지도 비슷한 목적을 표방한다. 그런데 아파트단지가 난립되면 어떻게 될까. 바로 용인이 그렇다. 난립된 아파트단지로 울창했던 숲이 거의 사라졌고 교통난이 심각하다. 그곳에 대지산이 있다. 경주 김씨의 문중 산으로, 잘 보존된 곳이다. 덕분에 철근시멘트에 지친 용인시민들은 숨을 쉴 수 있었는데, 토지공사에서 거기마저 벗겨내 아파트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박용신은 대지산 100평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구입한 시민들의 성원을 받고 상수리나무 위에 올랐다. 그리고 토지공사가 “보전하겠다!” 천명한 약속을 법원에서 공증을 받아올 때까지 17일간 버텼다. 덕분에 대지산 4만5천평을 포함한 죽전지구 8만5천평이 공원과 보존녹지로 지정될 수 있었다. 박용신은 자신을 받아준 상수리나무에 이름을 붙였다. “장군”이라고.

 

인천의 진산 계양산에 ‘우직(愚直)’, ‘묵직(默直)’, ‘눌직(訥直)’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나무가 있다. 그 3그루 소나무를 기둥삼은 고공텐트에서 155일 머문 윤인중은 동학(東學)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솔숲에서 띄운 편지》에 적었다. 해월선생은 무슨 일을 처리할 때 고지식하고, 말없이 신중하며, 어눌하지만 정직하게 행하라고 가르쳤다면서, 155일 동안 자신을 받아준 소나무에 그리 이름을 헌정한 것이다. 그는 고소공포증을 가진 50줄의 목사다. 하지만 계양산이 골프장으로 훼손되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2006년 10월 26일, 인천녹색연합의 신정은이 먼저 소나무 위의 텐트로 올랐다. 과년한 딸이 겨울로 들어가는 계양산에서 56일이나 나무 위에 올라 있는 걸 그의 부모가 감내하기 어려워하자 윤인중이 2007년 5월 23일까지 바통을 이어받았다. 계양산이 골프장 족쇄에서 풀리기를 기다리며 155일 동안 고독을 자청한 그는 철학자가 되었다. 계양산에 골프장이 생긴다는 풍문을 들은 등산객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호기심으로 다가와 격려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해야 했고, 일부러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으며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가끔 성난 얼굴로 찾아오는 개발업체 관계자의 목소리도 들어야 했다. 올려준 책을 읽으며 다가오는 산새도 바라보았다. 소나무 위에서 철학자가 된 목사는 그 상념을 기록했다. 신정은도 썼다. 그 글들을 묶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서. 과연 자본은 여성성을 짓밟는데 정부보다 집요하다.

 

계양산 소나무에 처음 오른 신정은은 여성이다. 윤인중은 남성이지만 따뜻한 여성성을 가졌다. 다음 세대를 걱정하므로 나무 위에 올랐다. 대지산의 상수리나무, 장군에 오른 박용신도 남성이지만 그도 여성성을 가졌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여성이다. 칩코운동은 여성의 운동이다. 모두 자본에 저항하며 대지의 여성성을 지키려 행동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써야 했던 쓴 더글러스 러미스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경제성장”이라고 단언한다. 그 말이 맞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독재일 때, 운동은 쉬웠다. 상대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다. 민주화운동으로 패가망신할 위험이 있더라도 신념으로 싸울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제국주의일 때,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어도 싸웠다. 그들 덕택에 대한민국은 불완전하나마 독립을 이뤘다. 한데 지금, 우리는 상대가 분명치 않은 경제성장과 맞서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행동이 어렵다. 자본이 우리에게 세뇌한 경제성장이라는 상대는 내 안에도 똬리틀고 앉아있지 않은가.

 

경제성장이라는 마패를 내미는 세력에 의해 파헤치는 대지의 상처는 깊고 넓다. 내일을 위협할 지경이다. 조상이 물려준 대지를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 신념은 땅, 삼라만상의 생명을 잉태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대지에서 찾아야 한다. 알도 레오폴드는 일찍이 ‘대지의 윤리’라고 했다.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쓴 윤인중과 신정은은 대지의 윤리를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신종철 선생은 사진으로 그들의 행동을 기록했다.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함께 쓴 윤인중과 신정은과 신종철 선생은 반다나 시바,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박용신과 더불어 나무와 숲을 끌어안은 사람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다음 세대의 대지를 지키려 나무와 숲을 나무와 숲을 끌어안은 이는 많을 것이다. 여성성을 지닌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숨 쉴 수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를 명분이 있다. 우리는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읽으며 그이들의 노고를 기억할 의무가 있다. 더욱 힘겨운 행동을 위해. (《솔숲에서 띄운 편지》 서평, 2008년 10월)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12. 7. 13:31

 

     부평 계산동에서 서구 연희동을 넘어 강화로 연결되는 계양산의 징맹이고개는 왜 그런 이름을 가졌을까. 고려 충렬왕이 매를 징발한 고개라는 뜻을 가져 그렇다고 향토사학자는 설명하는데 계양산에 현재 매는 없다. 앞으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생태통로와 관계없이 뭉텅 잘려나갈 계양산 생태계에 어떤 먹이 생물도 깃들기 어려울 것이므로.

 

꼬불거리던 고개가 2차선으로 파헤쳐졌어도 동물들은 견딜만했다. 밤중에 목숨 건 횡단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록을 끊은 왕복 8차선 도로가 아스팔트로 확장되면서 그만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한쪽 산에서 근친교배에 의존하다 악성 유전자가 축적돼 사라진 거다. 한데 이제 걱정하지 말란다. 계양산을 절개해 돈을 번 건설족이 고개를 콘크리트로 이었다며 함박 웃는다.

 

2007년 8월 12일 인천시는 기름진 웃음을 드리운 인사들을 거느리고 ‘계양산 징맹이고개 생태통로 및 녹지축 연결사업’ 기공식을 거행했다. 사람도 같이 다니자고 설계한 생태통로에 어떤 동물이 동참할까. 동물에게 여론조사를 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경험상, 동물은 사람의 냄새와 소음을 반길 리 없다. 문제는 동물과 손잡고 건너자는 생태통로만이 아니다. 기공식 얼마 전,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시민사회의 압도적 반대를 묵살하고 계양산 생태공간을 골프장 부지로 변경한 까닭이다.

 

국정홍보처는 최근 신문 전면광고에 나섰다. 지구온난화를 예방하자는 제안이었다. 우리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한다는 걸 정부에서 동의한 것일까. 그리 믿고 싶지만 미덥지 않다. 백두대간을 보전하자며 국가 등산로를 마루 금에 개설한 정부에서 람사르 총회를 유치했지만 갯벌을 매립하는 정책은 숙으러들 것으로 확신할 수 없다. 100년 세계 평균 기온이 섭씨 0.6도 올랐지만 한반도는 1.4도 상승했다. 그래서 이상이변이 해마다 그 빈도와 정도를 더한다. 해안 매립을 전제로 하는 ‘국토U자화’와 바둑판 식 고속도로는 이 땅의 오랜 이웃, 야생동물을 배려한 걸까.

 

국정홍보처는 서울 남산의 소나무가 죽어간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때문이라지만 남산의 터널은 왜 의심하지 않을까. 남산의 소나무는 터널이 뚫리자마자 말라비틀어진 건 아니다. 지하수가 내려가면서 동물이 사라져 죽어간 것이다. 애국가 2절로 더욱 각별한 소나무가 죽는 현상은 남산도 위험하다는 걸 웅변한다. 사람은 물론 지구의 생명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걸 반증한다. 지금 열심히 뚫고 있는 천성산은 괜찮을까. 산을 뚫자 지하수가 펑펑 새나온다. 그건 자연의 피다. 천성산의 생물들은 온전할 수 없다.

 

미생물이 볼 때 사람의 수명은 매우 길다. 사람의 수명은 자연보다 현저히 짧다. 항생제가 사람의 장을 통과할 즈음, 미생물은 수십 세대를 지난다. 그 세월이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충분히 갖춘다. 사람의 눈으로 당장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던 남산은 터널 생긴지 30년이 지나자 죽어간다. 천성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에 깃들었던 생물들이 사라지면서 자연이 죽어가는 건데, 과학기술과 개발이라는 인큐베이터 속에 숨은 사람만이 괜찮을 거로 스스로 세뇌한다. 징후는 흉흉하거늘.

 

지구온난화를 편승한 자본이 속 터지는 광고로 한몫 잡으려 한다. 쫙쫙 갈라진 호수바닥의 파라솔에 기대앉은 비키니의 여인이 이글거리는 태양을 비웃으며 하는 말, “나는 지구온난화 펀드에 가입해 떼돈 번다!” 국가 사이의 배출가스 거래제도 역시 지구온난화 펀드와 맥이 다르지 않을 텐데, 보전하든 개발하든 자연을 대상으로 돈을 벌어들이려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지구에서 생물들은 터전을 보전할 수 없다.

 

몇 해 전, 시민단체와 한 대학의 연구진은 서울시 주변에서 보전가치가 충분한 습지를 찾으려 돌아다녔다. 한데 그 움직임은 습지에 독약이 되었다. 카메라와 지도를 든 한 떼의 젊은이들이 무언가 일감벌이는 모습에 당황한 지주들이 중장비를 동원, 밤새 습지를 매운 것이다. 새만금, 천성산, 서울외곽고속도로 사패산 구간, 많은 발전소와 온갖 골프장이 그렇다. 문제를 제기하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함께 검토하지는커녕 후다닥 개발공사를 서둘지 않았던가. 이런 이 땅에서 사람보다 먼저 깃든 생물들의 삶은 고달프다. 2008년이라고 바뀌지 않을 것이다.

 

습지에 사는 생물의 처지에서 람사르 총회는 터무니없는 연출이다. 온갖 개발특별법이 무소불위 권력을 구가하는 신개발주의 시대에 분통터지게 하는 오리발이 아닐 수 없다. 자연과 그 안에 깃든 동물의 눈높이가 아닌 정책은 개발의지를 감추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그러니 자연의 생물이여 2008년도 2007년처럼 은둔해 잘 견디길 바란다. 사람보다 먼저 들어온 이 땅을 사람보다 늦게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08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