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9. 11. 01:31
 

깜깜절벽. 눈앞부터 깜깜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를 어른들은 깜깜절벽이라 했다. 사진반이었던 대학 시절, 필름을 현상하려고 암실의 전등을 끄면 잠시 깜깜하지만 동공이 확장되면 벽 틈에서 작은 빛이 새들어오는 게 보였다. 깜깜절벽은 다르다. 시간이 지나도,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게 전혀 없다. 가름할 수 없는 시커먼 사방이 집어삼킬 듯 엄습한다.

 

눈을 뜨나 감으나 사방이 똑같은 깜깜절벽은 볼 수 없는 실체다. 오직 경험할 뿐이다. 1970년대 중반 여느 여름, 계룡산에서 깜깜절벽을 경험했다. 억수 같던 비가 멈춘 밤, 산기슭에서 텐트 자리를 찾던 일행은 문득, 전등 빛이 멀리 퍼져나가는 하늘에 달도 별도 없다는 걸 알았고, 어떤 이의 제안으로 일제히 불을 껐다. 일순, 깜깜절벽.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줄인 일행에게 두런두런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줄 뿐, 그야말로 경이로운 어둠이었다.

 

일행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깜깜절벽에 신기해하는데, 손에 잡힐 듯, 한 줄기 곡선의 빛이 모스 부호처럼 깜빡깜빡 눈앞을 지나갔다. 반딧불이었다. 한 마리가 빛을 내자 여기저기 빛이 춤을 추더니, 웬걸, 풀숲에서, 어깨와 머리 위에서, 깜빡이는 곡선을 그리며 반딧불이들은 한바탕 향연을 벌였다. 깜깜절벽을 한순간에 밀어낸 어둠 속의 반딧불, 애반딧불이인지 늦반딧불이인지 모르는 그 반딧불이는 칠흑에 갇힌 우리의 뇌리에 빛의 가치를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이끼에 알을 낳는 반딧불이는 애벌레 때 다슬기를 먹는다. 그래서 반딧불이는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 오염된 산간 계곡에 이끼도 다슬기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혀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깊은 산 속 인적이 드문 계곡 주변의 습지에서 더러 반짝이고, 드물게 도시 인근의 작은 산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양팔 간격으로 심은 나무 사이로 자연이 발아시킨 나무가 다채롭게 자라오르면서 숲은 다양성을 회복하고, 오가는 시민들의 의식이 달라지면서 맑은 물의 흐름이 방해받지 않자 나타난 가녀린 빛이다.

 

깜깜절벽은커녕 어둠도 경험하기 몹시 어려운 요즘, 반딧불이 사람의 눈에 띌 순간이 전에 없이 줄어들었다는 걸 반딧불이는 알고 있을까. 괘념치 않겠지만, 반딧불이의 빛, 다시 말해 반딧불은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사람의 의지를 강하게 북돋운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은 저녁 무렵 네온사인에 끌리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고, 전등 없이 어두운 산길을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밤에 산에 드는 이는 산을 상당히 좋아할 게 틀림없다. 그의 눈에 반딧불이 들어온다. 십중팔구 그는 반딧불이가 그 산에 산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반딧불을 만나는 건 아니다. 반딧불을 보고 싶은 마음은 산을 좋아하는 성향과 대체로 무관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반딧불을 보고 싶은 게 분명하다. 반딧불이가 많아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된 덕유산국립공원의 무주구천동은 해마다 ‘반딧불축제’를 여는데, 작지 않은 입장료를 흔쾌히 부담하는 사람들이 운집하지 않던가.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밤하늘에 연출하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는 관광객은 입장료를 더 내고 들어가는 ‘반디랜드’에서 형설지공을 체험하고, 계곡에 풀어놓은 송어를 잡으며 90여 가지 프로그램에도 취할 것이다. 그들은 무주구천동 계곡이 상류의 송어 양식장과 주변의 골프장과 스키장으로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50년 이상 자생한 숲은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생태학자는 높은 산의 습지는 반드시 지켜야 숲이 보전된다고 더욱 강조한다. 무주구천동을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그런 습지를 메우며 50년 이상 자란 나무를 무참히 잘라 만들었다. 그러자 천연기념물이 무색하게 반딧불이는 사라졌고, 환경단체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골프장을 허가한 지방당국과 골프장을 개장한 회사는 인공시설에서 반딧불이를 키워 계곡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주구천동의 반딧불축제는 시작됐다. 사람이 내준 다슬기를 먹다 성체가 된 반딧불이는 밤하늘을 잠시 수놓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폐수와 농약으로 오염된 계곡 주위에 성한 이끼가 태부족인 탓이다.

 

전북 무주군이 반딧불로 뜨자 경북 영양군도 나섰다. 애반딧불이를 맞아 반딧불축제를 6월로 앞당긴 무주와 달리 늦반딧불이를 보라며 축제일을 8월 말로 정한 영양군의 프로그램도 요란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딧불이는 그저 돈벌이를 위한 미끼다. 반딧불을 보려는 관광객들은 다슬기가 사는 계곡에 들어가 은어 잡자고 첨벙일 것이다. 형설지공과 생태학습의 체험을 내세우지만 반딧불이의 처지에서 생태는 없다. 그러니 학습도 없다. 재미를 쫓는 한 여름 밤의 체험으로 그칠 따름이다.

 

인천시의 진산인 계양산에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몰려든 피난민의 아궁이 속으로 숱한 나무가 잘려 들어가 시민 기억 속에 한동안 황폐했던 계양산이 생태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빛을 보낸 것이다. 심은 소나무가 울창해지고 그 주변에 참나무를 비롯한 다채로운 활엽수가 자라오르자 맑은 물이 보전되었고, 생태의식이 깃든 시민들이 진산을 아끼면서 이끼도 다슬기도 돌아왔나 보다. 실로 오랜만에 반딧불이를 만난 시민들은 그 사실을 침묵에 붙였다. 아니 붙이려고 했다. 굴지의 대기업이 하필 계양산에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고집 피우기 전까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인천시장과 그 휘하의 공무원, 계양구청장과 그 휘하의 공무원들이 골프장 유치를 외치는 앵무새가 되었고, 생태계 보전을 내세우던 도시계획위원들이 골프장 계획에 일사분란하게 찬동하며 표결을 강행했다. 계양산의 회복을 축하하던 반딧불이는 그만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한해 수 조 원의 예산을 자랑하는 광역시에서 수 십 억의 지방세 수입을 앞세우며 수 천 억 짜리 부가가치를 대기업에 헌사한 처사는 후손의 처지에서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반딧불이의 처지에서 깜깜절벽이다. 차라리 범죄다.

 

1970년대의 사람에게 빛의 가치를 선사한 반딧불이는 21세기에 버림받았다. 사방이 휘황찬란한 요즘, 어둠을 잃은 우리는 빛의 가치를 영영 잃어버리고 마는 것인가. 석유와 핵이 그 바닥을 드러내는 마당에, 다시 나타난 반딧불이에게 미안하다. 생태계 보전을 위한 형설지공은 이제 꿈이런가. (물푸레골, 2007년 10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07. 8. 25. 15:57

     도저히 그 순간, 도시계획위원회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진산에 골프장을 허가하려 표결을 감행하다니. 북한산이나 금정산에 골프장을 만들자고 어떤 기업이 제안할 수 있고, 어떤 도시계획위원회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공업단지가 유난히 많은 인천은 녹지가 부족하기로 타 도시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 최대의 공항과 인접한 계양산에 명맥을 겨우 유지하는 녹지마저 부유층의 놀이를 위해 파괴하려 들다니. 인천시민의 자격으로 참여한 마당에, 역사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을 잠시라도 공유할 수 없었다.

 

롯데건설이 골프장 조성을 위해 시에 제출한 개발제한구역관리계획 입지계획은 보도된 자료만으로도 부실과 왜곡의 흔적이 농후했다. 신빙성 확인 없이 도시계획위원회에 진위가 의심되는 자료를 거의 그대로 제출한 시 당국은 공정한 심의를 방해했으므로 시민사회는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상태였다. 도시계획위원회에 참석한 공무원들은 롯데건설 사원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위원의 질의에 일사분란하게 대처하는 기민함을 보였으며, 현장에서 왜곡된 자료를 두둔하더니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연출했다. 법적 하자 없다며 감사 청구된 사안을 표결로 강행 처리하려는 행정부시장의 행태도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다.

 

민의를 제대로 파악해 행정에 임해야 하는 민주주의에서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모두 들으며 논의하기 매우 어렵다. 할 수 없이 대의제를 채택했지만 대의제도 충분한 논의가 불가능해 위원회를 둔다. 따라서 위원회는 다수결을 배제해야 한다. 공정하고 충분한 논의 이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에 한해 표결에 들어가더라도 표결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데 이번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그런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었다. 감사 대상인 자가 해명을 주도하고, 표결로 다수의 횡포를 결행했다.

 

8월 23일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이전 위원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골프장 건설에 문제를 제기하던 위원들이 찬성으로 선회했고, 표결을 강행하기 전 행정부시장은 소수의견을 달자고 제안했다. 이번에 가결되지 않으면 5년이 지나야 다시 심의하게 된다는 급박함은 인천시의 몫이 아니건만, 무슨 연유인지 시 공무원들은 롯데건설의 처지를 옹호하며 민의를 짓밟았고, 시의원 한 명과 시민을 대표한 다른 위원 한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위원들은 역사에 범죄를 저지를 게 분명한 표결에 순순히 응했다.

 

도시계획위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위원회는 행정의 들러리가 아니다. 로비나 압력의 대상일 수 없는 위원은 권력을 쥔 양 위선을 떨 필요도 없다. 그를 위해 위원회는 위상만이 아니라 위원의 인선 과정도 중시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편중되지 않아야 한다. 도시개발에 관련된 전문가와 관련 공무원과 시의원이 장악하는 도시계획위원회의 사정은 어떤가. 인천시에 제한된 문제는 아니겠으나, 공정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뇌물수수와 같은 범죄로 위원이 구속되는 보도가 드물지 않는 현실에서 도시계획위원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 시민의 행복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면 위원회에 개발 관련 전문가 위주의 포진은 곤란하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 헌법에 보장된 환경권이 개발로 희생되지 않으려면 인문사회 전문가를 포함하여 다음 세대 시민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인사가 구속력 있게 참여해야 한다. 공정한 논의를 충분히 보장하고, 표결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는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개발독재의 구태를 멈추지 않는 인천시 상황에서 현 도시계획위원회는 행정의 책임을 떠맡는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계양산 골프장만이 아니다. 인천시는 남촌동과 서운동 그린벨트의 골프장도 반대의견을 억압한 채 표결로 허가했다. 개발하려는 시와 보전을 원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첨예할수록 표결 처리할 것이 분명해진 이상,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계속 수행할 이유가 없었다. 추천해준 시민에 대해 기만이므로. 자식 키우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역사의 죄인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인천신문, 2007년 8월 28일)

어제 병원에서 신문(한국경제신문8/23일자)을 보다 롯데건설의 계양산골프장 건설 홍보광고를 보고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프장건립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우려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암세포처럼 끊임없이 서서히 지구를 파괴해 나가는 인간의 광기에, 그 가속도에 놀라움을 넘어선 두려움이 앞섭니다. 동요풀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까요......
병원이라니요?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주 시원하게 잘 그만두엇네 제고 들어가자마자 배운것 학식은 민족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 난그것이 어디서 나온말인가 햇는데 교회갓더니 거기서 알앗네 하여튼 잘때려�어 축하하고 기쁘네

 
 
 

도시·인천

디딤돌 2006. 8. 24. 18:55
 


우리나라는 적도 이북에 위치한다. 바람이 대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 지구가 자전하는 까닭이다. 그런 편서풍은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 남태평양 고기압이 영향을 주는 여름과 달리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시린 바람을 공급한다. 장마철과 삼복더위가 지나 다가오는 편서풍은 기상대도 예견하지 못하는 물풍선을 여기 저기 떨어뜨리는데, 중국 장강 유역에서 함유된 수증기가 우리나라의 차가운 공기를 만나기 때문이란다. 최근 빈발하는 국지성호우가 그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겨울의 북풍한설을 막고 여름에 빗발치는 호우를 완충해주는 아버지 같은 자연이 우리나라에 있다. 금수강산을 든든하게 지키는 진산이다. 크고 작은 마을은 진산의 품에 안겨 양지바른 겨울을 맞았고 여름이면 진산에서 기원하는 하천에서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하천은 물고기를 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하천 아래에는 논을, 위에는 밭을 일구었다. 조상은 선조의 영택(靈宅)을 내주는 진산에서 실한 목재를 구해 초가삼간에서 대궐까지 지을 수 있었다.

 

지역의 문화요 역사인 진산,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는 진산을 주민들은 경외했다. 불경스럽게 산을 오른다고 하지 않았다. ‘산에 든다’면서 나막신도 마다했다. 딸깍 딸깍, 아버지와 같은 산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진산이 곤혹을 치루고 있다. 서구 합리주의라는 주술에 빠져 존재가치보다 이용가치를 앞세우는 자의 배타적인 돈벌이를 위해 파괴된다. 진산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이에 의해 개발의 포클레인이 춤을 추는 것이다.

 

송전탑이 전자파를 내뿜는 것은 애교에 불과하다. 목표와 속도를 위한 아스팔트 도로는 산허리를 이리저리 뚫거나 통째로 절개한다. 산록과 기슭을 파고드는 아파트와 골프장은 진산의 생태적 균형을 교란한다. 반만년 이상 경외되던 진산이 급기야 당대에서 그 종말을 예고한다. 진산이 파괴되면 백성의 삶은 온전할까. 송전탑이 돋자 마을에 괴질이 도는 현상은 무지가 빚는 억지가 아니다. 숲과 지하수의 결을 교란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 그 영향은 마을에 미칠 수밖에 없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던 계양산은 인천의 진산이다. 625 이후 춥고 배고픈 시민에게 땔감을 내주며 헐벗었던 진산의 처지는 지금 어떤가. 존재가치보다 이용가치를 앞세우는 후손들의 손아귀에 마구 파괴되고 있다. 군부대가 차지하더니 송전탑이 산허리를 점령했고 기슭으로 파고드는 주택에 산록을 잃었다. 진산의 앞뒤와 좌우는 속도를 지고의 선으로 모시는 아스팔트에 맥을 끊겼는데, 이제 대기업 롯데에서 마지막 철퇴를 내리치려 한다. 골프장으로 가녀린 숨통을 틀어막으려는 것이다.

 

1990 초, 시민의 열화 같은 반대 집회로 무산된 골프장을 15년 만에 재촉하는 대기업 롯데는 무엇인가. 이윤을 위해 아무리 물불 가리지 않는 게 기업이라지만, 기업에도 윤리가 있다. 아동착취를 거부하고 생태계 보전에 공조하는 이른바 ‘페어트레이딩’이 기업윤리로 주목받는 시절이 아닌가. 소비자 덕택에 성장한 롯데는 기업윤리와 절연되었을 리 없다. 그런데 롯데와 공조하려는 지방자치단체는 무엇인가. 당대는 물론 후손의 생명까지 지킬 책무를 지닌 단체가 아닌가. 아스팔트와 시멘트 콘크리트가 늘어나는 만큼 녹지가 중요해지는 오늘, 기업의 이윤과 일부 계층의 질펀한 놀이를 위해 진산의 속살마저 뜯어가라고 파괴 면허를 내주려 하다니,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인을 자처하려는가.

 

땅의 형세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설명하는 풍수는 미신이 아니다. 4천년 이상 이어온 과학이다. 100년도 못 가 이론이 허물어지는 서양 과학과 차원이 다르다. 진산에 기대 살던 우리는 도심 속의 녹색섬처럼 버림받고 있는 계양산을 보전하도록 노력해야 옳다. 녹지가 모자라는 만큼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에 푸른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에 시달리는 도시를 녹색으로 구해야 한다. 이는 조상을 가진 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후손의 정언명령이다. (인천신문, 2006년 9월 일)

우리 동네도 CJ에서 짓는 골프장으로 말이 많더구만요.
누가 그러데요, 까짓 잔디에 농약을 치면 얼마나 치냐구요, 먹거리 밭에 치는 건 그보다 못 하냐구요.
잔디를 유지하기 위한 약품도 약품이지만, 산이 잘려 나가고 숲이 없어지고...그거 더 무서운 거 모릅디다.
요즘 골프장 반대 현수막 붙었는데, 그 속사정이 더 어이 없답니다.
진짜로 골프장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 산 주인은 문중에서 세를 더 높여달라는 속셈이라니...돈이 그렇게 좋은가 봐요.
하긴 도지사께서는 군사시설이 늘어진 연천에 골프장이라도 지어야 먹고 살지 않겠냐고 하시더만, 그 골프장 지어 돈은 누가 버는 건지 아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