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3. 2. 01:15

 

쇠똥구리가 맞나 소똥구리가 맞나. 아니면 말똥구리인가. ‘소의 똥’을 굴리므로 쇠똥구리가 맞는다고 국어사전은 주장하는데 말똥구리는 말똥을 굴리나. 세상의 똥은 참 많은데 쇠똥구리는 쇠똥이나 말똥만 굴리나. 굴리기 딱 좋은 염소나 토끼 똥은 누가 굴리나. 염소똥구리나 토끼똥구리에 대한 이야기는 앙리 파브르가 그 유명한 곤충기에서 쓰지 않았다. 모르지 않았을 텐데. 사람똥구리는 없나.

 

똥은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이가 있지만 쇠똥구리가 듣자니 참 터무니없을 것이다. 쇠똥을 땔감에 쓰고 쇠똥으로 집도 짓는 인도 농민도 어처구니없어 할 것이다. 말똥을 치우지 않고 씨름하다 그 위에 넘어지곤 하는 몽골의 목동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은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이겨내는데 말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4시간 뜨겁게 타다 금방 사그라지는 장작과 달리 8시간 동안 은은한 온기를 내는 데는 말똥이 최고가 아닌가. 그들에게 겨울철 잘 마른 말똥은 광에 수백 장 월동준비를 위해 쌓아놓던 우리네 연탄만큼이나 중요하다.

 

쇠똥구리를 말똥구리라고 말하기도 한다는데, 생물학자는 소똥구리라고 쓴다. 16밀리미터인 딱정벌레인 소똥구리보다 커 30밀리미터가 되면 왕소똥구리, 소똥구리보다 작아 12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뒷다리가 길면 긴다리소똥구리, 28밀리미터라 왕소똥구리보다 조금 작아 크기가 비슷하지만 코뿔소처럼 뿔이 솟아 있으면 뿔소똥구리, 뿔소똥구리보다 작은 18밀리미터 정도면 애기뿔소똥구리, 애기뿔소똥구리보다 작아 11밀리미터에 못 미치지만 뿔이 창처럼 길면 창뿔소똥구리라 칭하는 소똥구리는 종류도 많다. 유럽에는 토끼 똥만 굴리는 쇠똥구리가 있다하고 아프리카에는 코끼리 똥만 굴리는 녀석도 있는데 코끼리 똥이 워낙에 커서 그런지 코끼리똥구리(맞았을까?)의 종류도 많다고 한다.

 

호주에는 유럽에서 사람이 데려오기 전까지 소가 없었다. 당연히 소똥구리도 없었다. 호주 초원의 오랜 터줏대감은 캥거루였다. 그래서 호주에 캥거루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는 있다. 아니 캥거루똥구리라 해야 하나. 유럽에서 총도 가지고 간 사람이 캥거루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소를 들여놓자 소는 개체수를 급속하게 늘였다. 먹을 게 지천이었으므로. 그런데 건조하고 햇볕이 뜨거우며 바람이 거센 기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초원을 뒤덮은 소똥이 말라 바람에 가루로 날리는 게 아닌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린 소똥이 초원에 곱게 가라앉자 탄소동화작용을 제대로 못한 목초가 말라죽고, 이내 소들이 굶주리게 된 것이다.

 

캥거루 똥 굴리던 소똥가리가 소똥을 거들떠보지 않으니 과학자들은 비상에 걸렸고, 호주와 비슷한 기후를 가진 아프리카 초원에서 코끼리 똥을 굴리는 종류를 찾아 나섰다. 소똥구리와 비슷한 크기의 코끼리똥구리를 대량 번식시켜 호주의 초원에 풀어놓은 것이다. 결론은 해피엔딩. 캥거루 똥에 특화된 소똥구리 대신 아프리카 출신의 코끼리똥구리가 호주의 소똥을 먹으며 늘어난 뒤 이제 호주에서 소똥 바람은 불지 않는다고 한다.

 

호주 초원에 화학비료나 농약은 뿌리지 않는 모양이다. 출신이 어디든 소똥가리 종류가 아직 멀쩡한 걸 보면. 우리의 사정은 아니 그렇다. 거의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린 보호대상종으로 짐작하다시피 농촌에 살포되는 농약이 주범이다. 소똥구리가 발견되면 소문이 파다하게 나서 생태관광객이 각지에서 모여들고,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은 비싼 값이 팔려나갈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똥을 특화했던 우리나라 소똥구리도 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농약 뿐 아니라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먹은 소가 내놓은 똥을 도저히 먹을 수 없던 소똥구리가 하는 수 없이 서해안 외딴섬에 방치된 흑염소의 똥을 먹기로 작정했다는 게 아닌가. 발견 자체가 로또가 된 소똥구리가 아니라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한 애기뿔소똥구리가 그들이다. 1994년에서 1995년,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운동으로 간신히 핵폐기장 위기에서 살아남은 굴업도에 애기뿔소똥구리가 흑염소 똥에서 발견했다고 한 지질학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애기뿔소똥구리는 파브르가 기록한 소똥구리처럼 똥을 경단처럼 둥글게 말아 집에 굴려 넣은 뒤 그 안에 알을 낳지 않는다. 행동이 독특하기 짝이 없다. 짝짓기를 마친 수컷이 똥 덩어리 아래 긴 굴을 파는데 굴도 복잡하지만 굴을 판 다음의 행동도 여간이 아니다. 수컷이 굴 표면에 소똥을 발라 매끄럽게 만들면 암컷이 안으로 들어가고, 수컷이 길쭉한 서양 배처럼 뭉친 소똥 경단을 내려보내면 암컷은 경단을 받아 그 속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는데, 그것 참! 작은 소똥 경단의 수는 낳을 알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는데 이틀에서 나흘이 걸리고,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나는데 1주일, 경단 속에서 3번 허물을 벗으며 소똥을 먹고 자라 작은 성체가 되어 경단을 깨고 나오는데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 누가 소똥 속을 그리 들여다보며 연구했는지 대단한데, 애기뿔소똥구리는 연구자에게 고마워할 것 같지 않다.

 

흑염소 똥이 동글동글하지만 보통 무더기로 쌓이니 굴업도의 애기뿔소똥구리는 흑염소 똥 아래 굴을 팔 것인데, 오래 살아가려면 흑염소의 서식지가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 핵폐기장 위협에서 벗어낸 굴업도는 시방 흑염소에게 살만한 공간인가. 아직은 그렇다. 서해안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총 들고 들어오는 무뢰배는 없다. 손님에게 내주려고 나일론 끈 올무로 발목을 잡는 주민이 흑염소 집단을 위협하지 않는다. 하늘을 선회하다 새끼를 낚아채는 매도 지나친 증가를 막을 따름이다. 무심한 흑염소는 모르겠지만 애기뿔소똥구리를 위기에 몰아붙이는 건 다름 아닌 골프장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굴업도의 땅을 대부분 구입, 18홀 정규코스의 골프장을 고집하는 까닭이다.

 

골프장과 흑염소는 당연히 상극이다. 흑염소가 쫓겨나면 애기뿔소똥구리 수컷은 뭘 경단으로 만들어 암컷에 내려보내려 할까. 개똥? 하긴 어떤 생태관광지에서 개똥에 모인 애기뿔소똥구리를 보았다는 소문이 있다. 골프장까지 왕림할 개가 먹을 미국산 수입 개사료는 소 도축 부산물로 가공했을 텐데, 그 똥에 항생제는 없을까.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뇌가 작은 곤충과 무관하겠지. 고급 관광지에 사람의 똥이 있을 리 없지만 혹시 있더라도 먹지 말길 바라야 한다. 멸종위기종이 항생제나 식품첨가물에 오염되면 안 될 테니까. (물푸레골에서, 2009년 4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3. 1. 13:54

 

굴업도에서 ‘첫 남성’을 만났다. 키 작은 들꽃들이 작지만 화사한 자기만의 색을 부끄럽게 피어올리는 4월 중순,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기슭에 웅크린 그를 1994년과 1995년 뜨거웠던 핵폐기장 반대투쟁으로 간신히 지켜낸 서해안의 진주,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에서 만날 줄이야.

 

첫 남성? 아니, 천남성이다. 남쪽 하늘의 별, 천남성(天南星). 근사한 이름을 가졌지만 섣불리 접근하다 자칫 생명이 빼앗길 수 있는 따뜻한 지방의 독초. 가시를 숨긴 장미와 차원이 다르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찔린 뒤 죽었다지만 그건 백혈병이 있었기 때문이고, 첫 남성, 아니 천남성은 자신을 무턱대고 탐하던 생태계의 백성을 수도 없이 응징했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천남성은 첫 남성을 치명적으로 유혹하는 팜므파탈이었는지 모른다. 응달에 고개 숙이고 피어오른 천남성에 멋모르고 접근했던 의기양양한 사내는 후회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들풀들이 저마다 새순을 내보내려 애쓰는 4월 중순, 긴 꽃대를 밀고 원통의 깔때기 모양의 녹색 꽃을 비스듬하게 내미는 천남성은 굴업도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흑염소에게 철저히 외면 받는다. 마침 젖을 보채는 새끼를 낳아 허기질 텐데, 하얀 선들이 세로로 평행선을 그으며 부드럽게 올라오는 꽃잎과 말랑말랑한 잎사귀에 입도 대지 않는 흑염소는 천남성의 첫 남성이 아닌 게 분명하다. 천식이나 소염, 거담과 중풍에 효과가 있다지만 그건 약을 아는 사람들 이야기고, 조금만 먹어도 피부에 알레르기가 나타나게 하는 천남성은 사약의 원료가 아니던가. 사람은 배워서 알지만 흑염소는 경험을 물려주며 각인했을 것이다.

 

바닷바람이 싱그러운 4월, 덕적도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닿는 작은 섬 굴업도에는 새 생명의 향기가 가득하다. 이따금 이장네 작은 트럭이 방문자를 실어나르는 길가에 하얗게 피어난 민들레가 반가운 굴업도의 산록은 잎눈에 생기가 도는 소사나무가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두드러지게 파란 하늘에는 커다란 매들이 천천히 맴돈다. 어릴 적 기억의 세계로 되돌아간 착각에 빠질 즈음, 문득 한 무리의 검은 눈동자들의 무심한 시선을 느낀다. 굴업도의 터줏대감 흑염소다.

 

마을이라야 대여섯 가구가 전부인 굴업도에서 이장 집에 짐을 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성이를 오르면 옅은 해무에 싸인 해변이 신비롭게 드러나는 굴업도는 과연 서해안의 진주답다. 동섬과 서섬을 잇는 두개의 넓은 백사장은 등을 맞댄 채 한가롭게 드리워지는데, 높은 하늘을 맴도는 매나, 사람들의 발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흑염소는 한가로울 수 없다. 방금 세상에 태어난 제 새끼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까닭이다. 마른 억새 사이로 파릇한 풀을 뜯던 흑염소 가족에게 매는 치명적이다. 천남성에 입을 댈지 몰라 어미가 안절부절 못하는 틈에 벼락 같이 내려와 새끼를 채가는 까닭이다.

 

다가오는 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는 흑염소가 만들어 놓은 오솔길로 발을 옮기다보면 여기저기 매에 희생된 어린 흑염소의 잔해가 눈에 띄는데, 굴업도와 같은 서해안 작은 섬의 하층 생태계를 왜곡시킨다며 지탄받는 흑염소는 저렇듯 매를 불러들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매를 보려면 굴업도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주민도 흑염소 증가를 억제하는데 한몫을 담당한다. 총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길목에 직경 10센티미터 이하로 오므린 나일론 끈 올무를 여러 개 펼쳐놓고 며칠을 기다리면 필시 발목이 걸려 달아나지 못하는 녀석이 있을 터. 집에서 잡아 저민 고기를 원하는 손님상에 올리거나 연안부두로 판다.

 

몸무게가 30킬로그램 남짓에 불과해 염소 무리 중에서 작은 편인 흑염소는 한국 토종이다. 토종답게 추위에 잘 견디며 독초를 제외하면 아무거나 잘 먹어 섬 지방 주민의 수익을 위해 오래 전에 정부가 풀어놓은 가축이었다. 늦은 가을 짝짓기를 해 새싹이 파릇파릇한 계절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 흑염소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아 무인도에도 방목했지만, 섬 지방에 주민이 줄어들고 몰이꾼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터줏대감이 됐다. 그러자 팔색조가 분포하는 섬에도 마구잡이로 풀어주었던 사람들이 뒤늦게 아우성이다. 유해동물이라며 엽총을 드는 게 아닌가. 엽총을 들자 매가 접근하지 않고, 천적이 사라지자 거침없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사람이 제공했건만, 굶주릴 수 없어 발굽으로 풀뿌리를 파먹고 여린 나무껍질과 나뭇가지까지 뜯는다고 난리를 친다. 흑염소 성장호르몬을 개발했다고 소문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죽이잔다.

 

사람의 난소암 치료 성분을 젖으로 생산할 거룩한 임무를 씌우고 흑염소의 유전자를 조작한 생명공학자는 한 때 ‘메디’라 이름붙인 그 흑염소만 있으면 세계 시장을 평정할 것처럼 언론에 떠벌였지만 메디는 소리 소문도 없이 죽었다. 사료 첨가제, 안약, 식품과 화장품의 방부제로 사용하기 위해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유전자를 조작한 흑염소는 항균력을 가진 락토페린을 생산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언론이 이름을 주목하지 않은 그 흑염소와 후예는 특허권자에게 기대만큼의 이익을 보장했고 여전히 보장하고 있을까.

 

땅콩 심은 모래땅에서 엎드려 일하던 주민에게 짭짤한 소득을 보장해준 굴업도 흑염소의 운명이 시방 바람 앞에 등불이다. 제 새끼들을 키우려 하늘을 맴도는 매나 발목 올무로 부수입을 올리는 주민 때문이 아니다. 핵폐기장 위기에서 벗어난 뒤 찾아간 방문객들의 적극적인 입소문으로 아름다운 자태가 세상에 알려진 작은 섬에 18홀 정규코스 골프장이 포함된 관광단지를 만들려고 우리나라의 한 굴지의 대기업에서 52만 평 거의 대부분을 사들인 것이다. 흑염소는 골프장과 공존할 수 없다. 흑염소만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파란 하늘을 맴돌던 매도, 방문객에게 방을 내주던 주민의 운명도 언제 꺼질지 모른다.

 

천남성을 무심하게 피하는 흑염소는 하늘을 천천히 맴도는 매와 눈이 휘둥그레진 방문객을 맞는 주민과 더불어 오늘도 서해안의 진주, 굴업도를 지킨다. 시민들은 골프장을 위해 핵폐기장을 반대한 게 아닌데, 사활을 걸고 알려야 하는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를 굳이 골프장으로 더럽혀야 할까. (전원생활, 2009년 4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2. 26. 16:35

 

1992년 파주군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크고 작은 군대가 주둔하는 법원리의 건국대학교 목장이었다. 시민단체가 막 맹아를 터뜨렸지만 행동반경이 좁았고 군사정권이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회와 시위가 극히 조심스러웠던 시절, 군대 차량이 질주하는 거리에 머리띠와 피켓을 들고 나온 주민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농토를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절대 반대라는 거였다.

 

막 태동한 환경단체의 부탁으로 골프장 예정지의 동물 분포를 조사했다.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계곡의 넓적한 돌을 들추자 이런! 꼬리치레도롱뇽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저 돌은? 뒤집으니 갑자기 햇빛을 받은 꼬리치레도롱뇽 서너 마리가 달아나느라 부산을 떨었다. 상류로 오르며 들춘 돌에는 어김없이 꼬리치레도롱뇽이 숨었고, 깊은 산중에서 어쩌다 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숲속에 넘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깊은 계곡에 분포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은 그때에도 멸종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드물어지는 야생동물이었다. 산에 임도가 부설되면서 계곡에 흙탕물이 들어오고, 도로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흘리는 유기물질로 오염되면 자취를 감췄다. 이따금 발견되지만 그 수는 매우 적고, 발견 장소도 협소해지기에 환경부에서 보호야생동물로 지정한 꼬리치레도롱뇽이 무리지어 나타난다는 건 극히 예외적이었다. 생태학적으로 볼 때, 그 지역은 재론의 여지가 없이 골프장은 들어설 수 없었다.

 

이후 꼬리치레도롱뇽은 더욱 자취를 감춰갔지만 환경부는 보호야생동물 명단에서 제외했다. 짐작 가는 데는 있다. 지율스님의 거듭된 단식으로 경부고속전철 천성산 터널 구간의 공사가 착공을 미루던 시절에 보호야생동물을 재조정하던 환경부는 환경단체와 생태학자의 강력한 주장을 백안시한 것이다. 주민들의 결연한 의지 덕분인지 건국대학교는 골프장을 포기했지만 파주의 다른 지역 두어 군데에 골프장이 들어섰고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진행이 중단돼 곳도 두어 군데 있으며 10여 군데에서 추진하려고 은근히 움직인다는 소문이 들린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심한 산악인 우리나라는 비가 여름 한철에 집중되고 좁은 평야에 많은 인구가 밀집돼 있어도 오랜 세월 자급자족했던 금수강산이다. 보전된 백두대간에서 사시사철 흐르는 크고 작은 강이 들을 적시고, 갯벌이 보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갯벌은 매립돼 거듭 사라지고, 백두대간은 도로와 광산으로 끊어지거나 파헤쳐졌다. 백두대간과 이어지는 1정간과 13정맥의 사정도 비슷하다. 전국을 바둑판처럼 난폭하게 끊는 고속도로와 국도는 물론이고, 산을 이리저리 휘감는 임도와 더불어 스키장과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가 가세하면서 생태계의 연결은 맥없이 끊어졌다. 잇따라 들어서는 야릇한 숙박시설과 정체불명의 가든, 펜션과 식당으로 계곡은 버림받았다.

 

시로 승격한 파주는 차라리 약과다. 대도시와 이어지는 경기도 일원의 생태계는 가히 골프장 천국이다. 들일하는 농부 사이로 무리 짓는 고급승용차가 위화감을 뿌리는 건 이제 일상이 되었다. 골프장이 들어설 때마다 들썩이는 땅값으로 오랜 공동체가 해체되기 일쑤인데, 건국대학교는 다시 자신의 목장 터에 골프장을 짓겠다며 나섰다. 비즈니스프렌들리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추진했을지 모른다. 뒤통수를 맞은 주민들은 격앙돼 있었지만 찬성주민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저수지 주변의 식당이 더 잘 될 거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것이다.

 

지난 1월 말, 17년 만에 다시 찾은 파주시 법원리 건국대학교 목장부지의 꼬리치레도롱뇽은 고맙게도 그대로였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와 솔부엉이가 분포했고, 2005년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한 무산쇠족제비나 대륙목도리담비로 추정되는 동물이 출현한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그런 희귀 야생동물이 분포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곳에서 찾아왔을 텐데, 오래 훼손된 목장에 야생동물이 모여드는 데에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소를 보호하려고 외곽의 숲을 철저히 보전했다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냄새를 극도로 경계하는 야생동물이 모여들지 않는다. 어쩌면 길이 끊긴 야생동물에게 달리 대안이 없었는지 모른다.

 

사업자 측은 학교법인답게 주민의 요구에 응한 공청회를 전향적으로 개최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공청회장에서 어떤 청년이 엽총을 난사하는 사진을 보여준 지역 환경단체는 희귀동물을 쫓아내려는 사주가 아닌지 추궁하면서 골프장 예정지의 생태계를 고의적으로 낮게 평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골프장 입지가 가능한 녹지자연도 7등급 이하라는 사업자 측의 주장과 달리 환경단체를 도운 다른 연구진의 조사 결과 보전녹지로 규정된 8등급이 대부분이라고 반론을 펼친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작성한 업체는 꼬리치레도롱뇽과 보호대상 야생동물의 분포를 확인하지 못한 실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골프장 입지로 문제가 없다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평소에도 물이 부족한 까닭에 건국대학교 목장 주변의 농민들은 30미터 이하의 관정으로 농사를 짓는데 사업계획대로 골프장에서 지하 200미터의 관정을 뚫는다면 어떻게 될까. 농사용 관정에 물이 마르면 저수지의 물을 대규모로 끌어와야 할 텐데,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과 갈등이 예견된다. 골프장도 물을 끌어간다면 저수지가 마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공청회에서 제기되었지만 사업자 측은 문제없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전문가의 주장이 대립될 경우 공동조사가 필요하다. 양측이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참여하는 가운데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충분하게 실시해 합의에 의한 결론을 내야한다. 갈등을 신뢰로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라고 생각한다.

 

경기도의 지방도시마다 골프장이 포화되어 파산이 속출하는 마당인데, 학교법인에서 골프장을 고집해야 할까. 물이 부족해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데, 농촌 공동체의 뿌리를 더욱 흔들 골프장이어야 할까. 영국 원산인 골프장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골프장 운영자가 반드시 퍼부어야 하는 물과 농약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유기농을 추구하려는 농업에 치명적이다. 골프장을 둘러싼 지역의 갈등은 골프장이 들어서든 그렇지 못하든 좀처럼 풀리지 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심을 버리지 않아야 할 학교법인과 골프장은 어울릴 수 없다.

 

학교법인에서 앞장서서 희귀 야생동물이 분포하는 생태계로 보전하는 건 어떨까. 중부 식생을 보전하는 수목원을 목장부지에 조성하면 주민의 소득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의 각 급 학교 학생에게 교육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고, 건국대학교의 긍정적 이미지를 대외에 천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백두대산에서 한북정맥으로 겨우 연결된 생태계에 가녀리게 보전된 희귀 야생동물에게 마지막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책,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