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12. 21. 19:13

 

비싼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라면 곱빼기 먹은 뒤와 마찬가지로 다음날 어김없이 배고프다는 게 아무래도 억울한 일이다. 영양분의 차이가 가격만큼 크지 않다는 뜻이리라. 맛은 있었지만 허겁지겁 먹은 라면도 맛이 그만이었다. 음식이 전갈하고 종업원이 친절하며 식당의 시설이 빼어나긴 했다. 그렇다면 음식의 가격은 식재료보다 인건비와 땅값, 그리고 투자된 시설비의 크기에 크게 좌우되는 모양이다.

 

용모 단정한 종업원이 얼굴과 의상에 품위를 머금는 식당의 식재료는 사실 종로 피맛골 식당의 아줌마가 내놓는 사발 속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식재료의 출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데 요란한 장식과 별도로 허기를 면할 만큼만 차리는 고급식당은 밥 한 공기 흔쾌히 더 주는 동네의 식당과 달리 공짜를 요구하는 추가 주문에 대단히 난감해 한다. 그리고 어떤 식당이든, 식재료의 품격과 농사꾼의 인건비는 대체로 무시되는데, 시방 식재료와 농사꾼의 질적 양적 풍부함은 세계적으로 점점 위축되고 있다.

 

강화도에는 농경지가 풍부하다. 옛적부터 배곯지 않았기에 다른 지역 사람들은 강화 사람들을 괜스레 ‘뻔뻔이’라 했다. 많은 곡식이 공출돼도 살만하니 한양 양반네에 굽실거릴 일이 없기에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부러웠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고충이 없는 건 아니다. 갯벌을 매립해 일군 농경지인 까닭에 농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 작은 산에서 졸졸 내려오는 물줄기를 모으는 저수지를 곳곳에 만들어야 했다.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구들 데울 나무를 충분히 베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재배한 농작물이 도시로 제공되었다.

 

그런 강화에 골프장이 생긴다.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다. 골프장뿐이 아니다. 골프장과 세트인 스키장도 계획된다. 한해 강설량이 10여 센티미터에 불과하고 눈이 내리는 날이 20일도 채 안 되는 곳에 스키장을 만드는 건, 골프장과 콘도미니엄이라 이르는 대규모 숙박과 위락시설로 돈벌이하려는 속셈이란 걸 누가 모르랴. 문제는 놀이를 위해 오랜 농경지가 무너진다는 데 있다. 강화에서 골프장과 스키장은 숲과 들을 도륙내지 않으면 건설 자체가 불가능하다. 골프장의 영국 원산 잔디는 막대한 지하수를 뿌려야 자태와 때깔을 유지할 수 있다. 강화도의 지하수가 고갈될 위험이 그만큼 높다.

 

민간업자의 요청으로 상위법까지 뜯어고치려는 인천시와 그에 호응하려는 일부 시의원의 눈물겨운 행태로 강화 인화리의 농경지와 인근 숲이 위기에 처했다고 최근 인천 언론들이 일제히 전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금개구리와 매화마름이 자생하고 골프장이 제한되는 녹지가 70퍼센트 이상 포함된 양사면 별립산 북사면의 농림지역을 ‘계획관리지역’으로 변경하려고 2단계 이상의 행정절차를 단숨에 뛰어넘으려 한다는 거다. 인구 270만 대도시 인천의 공공성은 민간업자의 수중으로 떨어진 셈인데, 당장의 주민 갈증과 다가올 국제 식량부족 시대가 걱정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식량 자원은 석유자원과 더불어 점점 위축된다. 화학비료와 농약과 농기계가 필수인 요즘 농작물은 석유 없이 경작이 아예 불가능하다. 전문가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두 세대 이상 버티기 무척 어려울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유엔은 식량을 안보보다 주권 차원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하건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식량 자급은 25퍼센트를 겨우 넘는 정도다. 쌀을 빼면 5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런 지경에 단지 놀이를 위해 실한 농경지를 함부로 훼손해도 되는 걸까. 후손에 대죄가 되는 건 아닐까.

 

돈이 아무리 넘쳐도 식량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남미대륙을 지배한 유럽인은 발견한 은광으로 거액을 벌어들였어도 수입된 식량이 없자 쥐를 잡아먹어야 했다. 우리의 사정을 위해 자국의 부족한 식량을 내줄 국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식량기지마저 파헤쳐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머지않아 농경지로 바꿔야 할지 모른다. 우아한 식당에서 고가의 음식을 주문하는 이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우리는 골프장을 농경지로 환원할 연구에 시급히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천e뉴스, 2008년 12월 23일)

 
 
 

도시·인천

디딤돌 2008. 12. 19. 12:00

 

강화에는 이야기가 많다. 고인돌로 대표되는 신석기부터 해안의 포진지들이 웅변하는 조선 말기까지 수많은 유적이 산재하는 만큼, 드러난 이야기는 물론이고 감추어진 이야기도 숱하다. 강화에 이야기가 많은 건, 강화 땅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땅이 좋아 모여든 사람들이 옛적부터 유적과 전설을 곳곳에 남겨놓을 수 있었다.

 

강화는 원래 두개의 큰 섬이 매립돼 합해졌다. 고려 시대 원나라의 침공을 견뎌낸 건 강도와 화도 사이의 너른 갯벌이 있기에 가능했다. 백두대간 일원에서 억겁의 세월동안 쌓이고 쌓이며 풍화된 흙이 한강을 타고 실려와 근 만년 가까이 섬 사이에 갯벌로 응축되었는데, 그 갯벌을 매립해 얻은 땅이 강화에 있기에 막강했던 원나라를 상대로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었다. 백두대간에서 이은 한남정맥의 기운이 마지막으로 용틀임하는 강화는 그래서 오늘날에도 몇 안 되는 살기 좋은 고장 중의 하나다.

 

동의보감에 “맛이 달고 오장에 이로우며 소화를 돕고 종기를 해소한다.”고 기록된 순무는 씨도 몸에 좋다. “볶아 기름을 짜서 하루에 한 숟가락 씩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눈빛이 영롱해진다”고 전한다. 한방에서 “먹는 이의 몸이 가볍게 하고 기를 늘려”주는 순무는 강화 땅을 벗어나면 재배하기 쉽지 않고, 재배해도 그 맛과 효능은 나타나지 않는다. 순무만이 아니다. 뜸에 활용되는 쑥은 강화 것이어야 효과가 높다고 한다. 강화 땅의 높은 기(氣)가 작물에 스며들기 때문이리라.

 

그런 강화가 현재 위기에 처했다. 경관을 가로막거나 독차지하는 외지인의 펜션에서 그치지 않는다. 문화와 역사를 보듬지 않고 벌이는 후손의 개발로 인한 여기저기의 생채기가 아물지 못하는 가운데 예고되는 대형 개발이 실행되면 이제까지 버텼던 강화는 만신창이로 버림받을 게 분명하다. 갯벌을 휩쓸어버릴 조력발전으로 후손에 대한 전대미문의 범죄행위를 자행할 태세인데 특정인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한 여기저기의 골프장은 강화의 안정된 생태계와 숱한 이야기를 좀먹는다.

 

‘녹색성장’이라는 형용모순을 앞세우는 조력발전은 어떤가. 온난화를 방지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갯벌에 존재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탄소동화작용으로 제거하는 이산화탄소의 막대한 양을 감안한다면 조력발전은 오히려 온난화를 촉발하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 세계는 바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조력발전소를 이미 포기했다는 사실을 한사코 외면한다. 오로지 개발세력과 제방으로 발생할 투기세력의 이익에 눈이 멀었을 따름이다. 조력발전은 강화 땅에 뿌리내린 이의 정서를 배격할 뿐 아니라 조상의 얼과 물론 후손의 생명을 저당한다.

 

환경부 지정 보호동물인 금개구리와 멸종위기인 매화마름이 자생하는 양사면 인화리 일원은 어떤가. 일개 개인사업자의 이익을 도모해주려고 법적 절차에 어긋나게 토지의 용도를 변경하려 획책하지 않던가. 일부 시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공적 성격이 강한 사업”이라고 주장한 시의원은 도대체 누구 이익에 충성하려는 건가. “민간사업자의 용도지역 변경 제안까지 수용해 도시계획 관련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 법령상 적합한지” 회의적인 해당 전문위원은 특혜소지를 염려한다. 자연림으로 환원하기 직전으로 보존된 녹지자연 7등급의 숲이 70퍼센트나 차지하는 인화리를 뿌리째 파괴하는 게 골프장인데, 그 시의원은 어찌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나.

 

최근 언론은 세계적인 경제 한파로 국내 골프장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다고 전한다. 회원권이 40에서 70퍼센트까지 하락한 가운데 추가 하락이 예고되면서 연쇄 부도가 우려된다는 거다. 강화에 골프장이 지역경제를 위한다는 객관적인 보고서가 있을 리 없지만, 강화의 역사와 문화는 차치하고라도, 갯벌을 매립한 강화에서 골프장으로 인한 지하수 오염은 주변 농경지에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땅이 좋아 자신감이 넘쳤던 곳인 만큼 외지인은 강화 사람을 ‘뻔뻔이’라 했다. 부러움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 강화, 천박한 개발에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기호일보, 2008.12.26)

 
 
 

도시·인천

디딤돌 2008. 10. 13. 09:06

 

《솔숲에서 띄운 편지》, 윤인중, 신정은, 신종철 지음, 생명평화, 2008.

 

 

인도의 가난한 여성에게 숲은 생존을 위한 기반이다. 신분제도가 고착된 인도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뒤쳐지는데 계층의 낮을 경우 그 지위는 터무니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들은 지참금이 적어 시집을 갈 수 없거나 시집을 가도 아내나 며느리의 대우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는 거다. 그나마 아들을 낳으면 집에 남아있을 수 있지만 딸만 거푸 낳는다면 딸과 함께 내�기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집을 나와야 하는 여인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산이다. 거기에 나무와 숲이 있는 까닭이다.

 

산은 품이 넓다. 돈과 기술이 없는 여성도 무궁한 열매와 산나물을 뜯으며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약초와 목재를 내주니 약간의 돈도 장만할 수 있게 여성에게 배려해준다. 물과 맑은 공기, 그리고 숲에 어우러지는 수많은 동식물이 심신이 지친 삶과 휴식을 베풀어준다. 그런데 그런 산이 위협받는다. 사슬톱을 쥔 남성에 의해.

 

사슬톱을 쥔 남성은 자본의 지시를 받았다. 남성은 마을에서 쫓겨난 여성이 삶을 기대는 산으로 들어와 나무를 자른다. 그 여성은 시댁에서 쫓겨난 누나나 누이동생일 수도 있다. 처형이나 처제일 수도 있다. 언제나 다정했던 이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은 사슬톱을 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직장을 잃고, 직장을 잃으면 돈을 가질 수 없고, 돈이 없으면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 마을에는 돈이 없어 산에 들어가 목을 맨 남성도 많다. 그가 죽으면 아내는 아이를 안고 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안다. 그래서 사슬톱을 단단히 쥔다.

 

남성에 사슬톱을 쥐게 한 자본은 댐을 만들려고 한다. 댐을 만들어지면 마을과 농토가 물에 잠기고, 물이 차오른 산은 마을과 고립될 것이다. 산에 기대며 사는 여성들은 다시 쫓겨나야 하지만 더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사슬톱에 저항하기로 한다. 귓전에서 윙윙대는 사슬톱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는 것이다. 나무와 함께 삶을 마치겠다는 의지로 나무를 꼭 끌어안은 여성을 보는 남성은 곤혹스럽다. 여성에 욕설을 하며 사슬톱으로 몇 번 위협하던 남성은 차마 나무를 자르지 못하고 사슬톱을 내동댕이친다. 나무를 끌어안은 여성이 마을의 이웃이고, 누이동생이고, 누나거나 처형이 아닌가. 여성성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이른바 ‘칩코운동’이다. 칩코운동을 지켜본 생태여성주의자 반다나 시바는 핵물리학자였다. 인도에서 여성이 핵물리학을 전공한다는 게 쉬운 어디 쉬운가. 반다나 시바는 보통 계층이 아닐 것이다. 그 반다나 시바가 핵물리학을 버렸다. 거대자본이 추진하는 핵물리학은 중앙집중적이다. 파괴적이다. 남성주의다. 여성과 마을을 짓밟는다. 인도의 여성에게 칩토운동의 가치를 전파하는 반다나 시바는 당연히 댐을 반대한다. 토착지식을 훔쳐 사유화하는 생명공학도 반대한다.

 

대학을 갓 마친 한 여성이 한 나무의 고통을 듣는다. 미국 서북부, 아주 멀리 떨어진 벌목 현장에서 전해오는 나무를 공포를 감지한 그 여성은 불원천리, 맨발로 고통받는 나무에 오른다. 738일. 혹독한 겨울을 세번 견디며 나무에서 두번 생일을 맞이한 여성은 미 정부가 일대의 숲을 매입해 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내려온다. 나무의 이름은 ‘루나.’ 2년 넘게 자신을 받아준 루나와 헤어지면서 눈물을 펑펑 흘린 그는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덕분에 수천년 수령을 자랑하는 미국 메타세콰이어 원시림의 극히 일부는 지금까지 보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과 같은 역할을 17일 동안 계속한 이가 있다. 그는 ‘환경정의’라는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박용신이고 남성이다.

 

용인은 난개발로 파헤쳐진 곳이다. 공업단지는 흩어진 공장지대를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진다. 아파트단지도 비슷한 목적을 표방한다. 그런데 아파트단지가 난립되면 어떻게 될까. 바로 용인이 그렇다. 난립된 아파트단지로 울창했던 숲이 거의 사라졌고 교통난이 심각하다. 그곳에 대지산이 있다. 경주 김씨의 문중 산으로, 잘 보존된 곳이다. 덕분에 철근시멘트에 지친 용인시민들은 숨을 쉴 수 있었는데, 토지공사에서 거기마저 벗겨내 아파트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박용신은 대지산 100평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구입한 시민들의 성원을 받고 상수리나무 위에 올랐다. 그리고 토지공사가 “보전하겠다!” 천명한 약속을 법원에서 공증을 받아올 때까지 17일간 버텼다. 덕분에 대지산 4만5천평을 포함한 죽전지구 8만5천평이 공원과 보존녹지로 지정될 수 있었다. 박용신은 자신을 받아준 상수리나무에 이름을 붙였다. “장군”이라고.

 

인천의 진산 계양산에 ‘우직(愚直)’, ‘묵직(默直)’, ‘눌직(訥直)’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나무가 있다. 그 3그루 소나무를 기둥삼은 고공텐트에서 155일 머문 윤인중은 동학(東學)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솔숲에서 띄운 편지》에 적었다. 해월선생은 무슨 일을 처리할 때 고지식하고, 말없이 신중하며, 어눌하지만 정직하게 행하라고 가르쳤다면서, 155일 동안 자신을 받아준 소나무에 그리 이름을 헌정한 것이다. 그는 고소공포증을 가진 50줄의 목사다. 하지만 계양산이 골프장으로 훼손되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2006년 10월 26일, 인천녹색연합의 신정은이 먼저 소나무 위의 텐트로 올랐다. 과년한 딸이 겨울로 들어가는 계양산에서 56일이나 나무 위에 올라 있는 걸 그의 부모가 감내하기 어려워하자 윤인중이 2007년 5월 23일까지 바통을 이어받았다. 계양산이 골프장 족쇄에서 풀리기를 기다리며 155일 동안 고독을 자청한 그는 철학자가 되었다. 계양산에 골프장이 생긴다는 풍문을 들은 등산객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호기심으로 다가와 격려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해야 했고, 일부러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으며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가끔 성난 얼굴로 찾아오는 개발업체 관계자의 목소리도 들어야 했다. 올려준 책을 읽으며 다가오는 산새도 바라보았다. 소나무 위에서 철학자가 된 목사는 그 상념을 기록했다. 신정은도 썼다. 그 글들을 묶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서. 과연 자본은 여성성을 짓밟는데 정부보다 집요하다.

 

계양산 소나무에 처음 오른 신정은은 여성이다. 윤인중은 남성이지만 따뜻한 여성성을 가졌다. 다음 세대를 걱정하므로 나무 위에 올랐다. 대지산의 상수리나무, 장군에 오른 박용신도 남성이지만 그도 여성성을 가졌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여성이다. 칩코운동은 여성의 운동이다. 모두 자본에 저항하며 대지의 여성성을 지키려 행동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써야 했던 쓴 더글러스 러미스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경제성장”이라고 단언한다. 그 말이 맞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독재일 때, 운동은 쉬웠다. 상대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다. 민주화운동으로 패가망신할 위험이 있더라도 신념으로 싸울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제국주의일 때,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어도 싸웠다. 그들 덕택에 대한민국은 불완전하나마 독립을 이뤘다. 한데 지금, 우리는 상대가 분명치 않은 경제성장과 맞서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행동이 어렵다. 자본이 우리에게 세뇌한 경제성장이라는 상대는 내 안에도 똬리틀고 앉아있지 않은가.

 

경제성장이라는 마패를 내미는 세력에 의해 파헤치는 대지의 상처는 깊고 넓다. 내일을 위협할 지경이다. 조상이 물려준 대지를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 신념은 땅, 삼라만상의 생명을 잉태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대지에서 찾아야 한다. 알도 레오폴드는 일찍이 ‘대지의 윤리’라고 했다.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쓴 윤인중과 신정은은 대지의 윤리를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신종철 선생은 사진으로 그들의 행동을 기록했다.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함께 쓴 윤인중과 신정은과 신종철 선생은 반다나 시바,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박용신과 더불어 나무와 숲을 끌어안은 사람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다음 세대의 대지를 지키려 나무와 숲을 나무와 숲을 끌어안은 이는 많을 것이다. 여성성을 지닌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숨 쉴 수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를 명분이 있다. 우리는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읽으며 그이들의 노고를 기억할 의무가 있다. 더욱 힘겨운 행동을 위해. (《솔숲에서 띄운 편지》 서평, 2008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