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8. 4. 18. 00:57
 

1995년 10월 어느 날, 가톨릭회관에 모인 덕적주민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생업을 포기하고 나선지 거반 1년,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치고 가진 돈이 다 떨어질 즈음, 이제 마지막 집회라 다짐하며 섬을 나섰던 주민들은 정부에서 보낸 팩스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활성단층 때문에 핵폐기장을 공식 취소한다.”는 내용이지만 사실상 시민의 승리였다. 굴업도에 활성단층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던 일. 남은 생애를 걸고 고향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없었다면 굴업도는 버림받고 말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 39세 된 한 사업자는 굴업도에 누드해수욕장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내보였다. 외국인은 나이 제한 없지만 내국인은 40세가 넘어야 입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업자는 굴업도의 해변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걸 염두에 두었겠으나 계획에 앞서 그 사업자는 주민과 논의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대부분의 마을과 달리 퇴폐영업을 일삼는 다방이 한 군데도 없는 곳이 덕적도인데, 누드해수욕장을 주민들이 반길 리 없지 않은가.

 

엎드려 일하는 형상이라 굴업도라고 말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땅콩을 심어 실제로 엎드려 일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연이은 위기에서 벗어난 굴업도는 타고난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많지 않아도 끊이지 않는 관광객을 묵묵히 맞는다. 깨끗하고 완만하면서 고즈넉한 해변이 적당히 땀 흘려 오르면 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과 잘 어우러지는 굴업도는 불타는 석양과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이 찬란하기 그지없다. 한번이라도 들른 이는 다시 찾게 되는 매력적인 외딴섬이 되었다. ‘서해안의 진주’라면서 지키려했던 덕적주민과 인천시민들이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큰마을해수욕장과 목건너해수욕장, 코끼리바위와 큰바위얼굴, 연평산과 토끼산의 파식지형, 해안사구와 연결되는 산등성의 억새군락에 사슴과 흑염소가 자유를 만끽하는 굴업도는 희귀 동식물까지 안고 있다. 환경부에서 보호대상종으로 지정한 검은머리물떼새와 흰목물떼새가 해안을 수놓고 산기슭 바위틈에 구렁이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며 천연기념물인 매와 황새와 흑두루미가 안식처를 찾는다. 그뿐이 아니다. 다채로운 들꽃이 군락을 이뤄 식물학자의 눈을 크게 뜨게 하고 오고가는 철새들이 들려 조류학자가 눈여기게 된다. 52만 평에 불과하지만 10여 명의 주민이 정기항로나 낚싯대를 타고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으며 빼어난 경관과 생태계를 보전하고 있다.

 

그 굴업도가 현재 위기에 몰려있다. 국내 굴지의 기업 CJ에서 골프장을 비롯하여 호텔과 콘도미니엄, 그리고 스파라고 칭하는 특별한 목욕시설과 테니스장들을 두루 조성해 하루 평균 2천명 이상이 운집하게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CJ측은 사업계획서에서 주민소득을 높이겠다고 주장하지만 굴업도의 주민들은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루 최대 5천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소비할 에너지와 물을 어떻게 조달할지, 그를 위해 굴업도는 얼마나 훼손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굴업도를 지킨 대부분의 시민들은 사업계획 자체를 알지 못한다.

 

굴업도가 가진 정신적 상처는 아직 깊다. 최근 잇따르는 대기업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시민사회에 생긴 상처도 결코 작지 않다. 250여 억 원으로 굴업도 대부분의 땅을 구입한 CJ는 총 2700억 원 가깝게 투자해 개발하겠다는데, 그 정도면 안정돼 가는 굴업도를 보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요사이 국제 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윤리를 무역의 전제조건으로 여기는 추세다. 인천시의 자랑과 자부심으로 자리잡아가는 굴업도를 단지 놀이를 위해 대기업에 앞장서 훼손해야 옳을까.

 

CJ에게 권하고 싶은 게 있다. 보전해야 할 생태계와 경관을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주는 이른바 ‘자연신탁 운동’이다. CJ는 충분한 의지와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다. 굴업도를 인천시민들은 희망으로 지켜볼 것이다. 인천을 근거로 성장한 CJ가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숙할 수 있기를. (인천일보, 2008년 4월 일)

CJ가 저런 기특한 일을 한다면, 오늘 당장 빕스에서 저녁 한끼 사먹겠습니다. ^^
http://cafe.daum.net/gulupdo 굴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CJ의 골프장계획으로부터 굴업도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 굴업도에서의 여행추억을 나누고픈 사람들...이 모인 카페입니다. 초대하고 싶네요~~ 멋진 글입니다... 퍼가고 싶은데, 퍼가기보다...가입해주셔서 직접 남겨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 초대합니다...^^
달빛효과님 반갑습니다. 이럽게 뵙는군요. 저는 이미 그 카페에 가입했고, 위 글도 올렸답니다. 그리고 가끔 달빛효과님의 블로그에도 들거가 봅니다. 같은 마음을 확인하고 기쁜 마음을 공유했지요. 감사합니다.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4. 16. 23:00
 

초식동물의 눈매는 대개 선하다. 소를 보라. 사람에게 가혹하게 사육되건만 그렇게 무던할 수 없다. 반면, 육식동물의 눈매는 사납다. 호랑이나 늑대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고양이를 보자. 먹이를 놓고 다툴 때 얼마나 앙칼지던가. 흑염소 새끼를 낚아채는 매는 말할 것도 없고 개구리를 노리는 때까치의 눈매도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닌데, 예외도 있다. 하늘의 제왕이라는 독수리는 그리 매섭지 않다. 죽은 동물의 썩은 고기를 먹어 그런가. 둥근 눈을 멀뚱거린다.

 

흑염소는 초식동물이다. 사료 작물은 물론, 소나무와 같이 거친 나뭇잎이나 가는 나무줄기까지 거뜬히 소화시키므로 사육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 한데, 흑염소는 다른 초식동물처럼 눈매가 무던하지 않다. 똑바로 쳐다보며 경계하는 눈매가 공격적으로 보여 가까이 가기 싫거나, 거만해 보여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그런가. 흑염소를 집 가까이에서 사육하는 농가는 드물다. 사람의 왕래가 드문 임야에 풀어놓거나 서해안의 외딴섬에 방목한다.

 

흑염소에 정이 가지 않는 건 사람만이 아닌 모양이다. 보길도 찻집에서 진돗개를 키우던 시인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산책 다녀오자마자 버둥거리던 개는 끈이 풀리기 무섭게 줄달음쳐 방목되는 흑염소 중 오직 한 마리만 물어뜯는 게 아닌가. 그 개가 앙갚음을 한 건 우연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건 흑염소의 처지에서 어처구니없다. 가족과 높은 절벽에 은둔하는 염소를 굳이 잡아와 가축으로 품종개량한 건 사람이다. 흑염소의 의지와 하등 관계없다. 살쾡이도 접근할 수 없는 환경에서 표정이 선하든 험하든 사람이나 진돗개가 신경 쓸 이유가 없는데 흑염소는 치명적인 곤혹을 치러야 했다.

 

환경이 척박하니 소나 말이 외면하는 거친 풀도 마다할 수 없고, 절벽을 뛰어 넘다보니 근육에 지방이 적은 건 당연한데, 사람들은 신화를 가져다붙인다. “100가지의 풀과 1만 가지의 꽃을 고루 먹는 매우 신비한 동물”이라는 거다. 칼슘과 철분이 많을 뿐 아니라 근육까지 연해 소화흡수가 잘 되므로 예로부터 환자의 보양식으로 애용되는 흑염소는 왕실의 약용동물이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서 ‘양기의 으뜸’으로 치켜세운 만큼 비타민E가 많아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불임을 예방하니 임산부에게 이로울 수밖에 없다. 간에 비타민A가 풍부하니 시력감퇴에 효과가 좋다. 하지만 그게 어디 흑염소만의 특징이던가.

 

2천 년 전 중국에서 들여와 서해연안부터 사육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흑염소는 덕적도 인근의 굴업도에 흔하다. 소득사업을 위해 주민이 일찌감치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땅콩 밖에 심을 게 없어 엎드려 일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던 굴업도는 척박한 모래섬이다. 서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굴업도에 주민이 있는 건 국가로서 중요하다. 그래서 국가는 국가 땅에 대한 흑염소 방목을 허용한 것인데, 덕분에 52만 평 굴업도에는 현재 수백 마리의 흑염소가 자유를 만끽한다. 정부가 핵폐기장 설치를 발표한 1994년 이후, 수려한 경관이 세상에 알려진 굴업도에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10명 남짓한 주민이 흑염소를 잡지 않아도 생계를 꾸릴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굴업도의 흑염소들이 최근 새로운 생존 문제를 마주하게 생겼다. 굴지의 기업인 CJ가 골프장과 목욕시설을 갖춘 대규모 위락시설을 조성해, 하루 2천명 이상 북적이도록 망쳐놓겠다는 게 아닌가. 핵폐기장의 위협이 사라진 굴업도는 한때 누드해수욕장으로 오염될 위기에 처한 적 있다. 어이없게도, 당시 39세 먹은 개발업자가 외국인에게 나이 제한 없는 누드해수욕장을 열어 40세 이상의 내국인에게 허용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던 것이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는데, 골프장이라니. 핵폐기장을 반대하던 시민들이 ‘태평양의 진주’라고 칭송하던 경관을 골프장으로 훼손해도 괜찮은 걸까. 카메라를 들고 굴업도 기슭을 돌아다니며 경관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흑염소는 묻고 싶을 것이다.

 

1998년 한국과학기술원은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를 젖으로 분비하는 흑염소를 유전자조작 기술로 개발했다고 자랑했다. 이름하여 ‘메디’. 1그램에 9억 원을 호가하는 치료제로 국내외 백혈병 환자의 치료는 물론, 국가 부가가치를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금 그 흑염소는 어디에 있나. 십여 마리 이상으로 복제하겠다고 호언하던 메디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도 5세대 후손을 보았다는데, 2001년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거로 장담한 백혈구 증식인자는 여태 감감무소식이다. 분명한 사실은 메디 후손은 굴업도의 흑염소보다 결코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몸무게가 40킬로그램에 미치지 못하는 흑염소는 가을에 임신하여 새순이 돋는 봄에 새끼를 두 마리 낳는다. 이때 외딴섬의 흑염소 어미는 하늘을 선회하는 매를 조심해야 한다. 방심하면 순식간에 새끼를 낚아챈다. 인간의 등쌀로 육지를 떠난 매도 제 새끼를 먹여야 한다. 4월 초 굴업도에서 머리와 뼈만 남은 어린 흑염소 사체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흑염소는 사람 손도 조심해야 한다. 길목에 친 올무에 걸려 관광객의 저녁상에 올라갈 위험도 있지만 사람 냄새 밴 새끼와 생이별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급히 몸을 피해야할 만큼 다가왔던 사람이 방금 낳은 새끼를 귀엽다고 만질지 모른다. 굴업도 이장 집에는 15일 된 흑염소 ‘깜둥이’가 사람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

 

충분히 건강한 사람은 흑염소를 약용으로 증탕하거나 불고기, 전골, 수육, 심지어 파인애플과 조려 먹는다. 그렇게 100만 마리의 흑염소가 해마다 세상에 태어났다 등지는데, 봄을 맞은 굴업도에는 천남성이 군락을 이뤘다. 사약 재료인 천남성의 순을 흑염소들이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흑염소는 그렇게 외딴섬의 생태계를 형성하는데 기여를 한다. 여기저기 흔적을 남긴 흑염소 똥들 옆에 못 보던 들꽃들이 꽃대를 밀고 올라온다.

 

넓고 깨끗한 모래사장과 오랜 파도로 깎인 암벽 해안선이 경이로운 경관을 연출하는 굴업도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흑염소는 비록 방목된 처지지만 핵폐기장과 누드해수욕장은 물론, 골프장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감탄하는 굴업도를 인천시에서 해양시립공원으로 지정하기를 간절히 원할지 모른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5월호)

 
 
 

서평·추억

디딤돌 2008. 3. 12. 01:19
 

주어진 시간과 장소. 생태조사자는 대체로 그 조건을 따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굴지의 법인이 추진하는 골프장 예정 지역이었다. 주민들의 반대가 첨예한 현장에서 실시된 생태조사에서 나는 놀랬다. 1990년대 초, 그때에도 보기 드물었던 꼬리치레도롱뇽이 작은 돌을 들출 때마다 실개천에서 무리지어 나타나는 게 아닌가. 골프장 예정지를 안내한 주민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조사 결과를 넘겼으므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반대운동을 위한 생태조사는 어색했다. 운동판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허둥거리는 경찰 사이에서 괭가리를 치며 거리행진을 벌이는 주민을 감당해 하기 어려웠다. 꼬리치레도롱뇽의 출현으로 보아 보전가치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제공하고 당연히 돌아서려는데, 식물생태를 담당한 교수는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함께 조사하자고 제안했던 식물생태 전공의 교수는 고교 선배였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 애쓰던 그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권했고, 나는 엉거주춤 주저앉았다.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아무리 비싼 값을 쳐준다 해도 지켜온 땅인데, 밭뙈기로 쓰던 국유지를 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조상이 물려준 농토마저 내놓으라니. 그러지 않으면 내쫓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부아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농사짓는다고 무시하는 건가. 민주화되었다 해도 소용없는 일인가. 어디 하소연도 못 하고 빼앗기나 싶었는데 빨갱이라던 환경단체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도와주었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는데, 학자들까지 찾아와 보호해야 할 생태계라고 말해주니, 주민들은 고맙기 그지없다며 막걸리를 한상 차렸다.

 

과학자는 객관적인 사실만 도출할 뿐, 가치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믿어왔던 나는 그 자리에서 주민들 분노의 실체를 보았다. 평생 순박하게 살아왔던 마을에 군수를 대동한 승용차가 지나가더니 이장이 갑자기 바빠졌다. 이후 이장은 마을이 크게 발전할 거라며 수선떨며 다녔고. 그런데 웬걸. 안 팔면 매국노라도 되는 양, 땅을 팔고 떠나라는 게 아닌가. 죽은 이의 것까지, 맡겨둔 도장을 찬성자 명단에 알뜰하게 찍은 이장은 급기야 마을을 이간질시키고, 서울 산다는 부자는 관권을 동원하는 협박과 매수를 서슴지 않았다. 막걸리를 연실 권하는 주민들은 돈과 권력의 오만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자리는 내게 분수령이 되었다. 연구실에서 보이지 않던 왜곡된 현실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썼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므로 피시통신을 활용했다. 그러자 반응이 나왔다. 원고청탁과 강연요청이 왔고, 우리 현장을 와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그래서 찾아갔고, 또 쓰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강압적이며 불합리한 결정의 뒤에 돈과 권력에 충성하는 과학기술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그래서 과학은 가치중립이라고 믿었던 이공계는 인문학을 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부터 읽은 《녹색평론》은 천박했던 생태의식을 깊어지게 만들었다.

 

자신 때문에 학자가 아닌 운동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지금도 미안해하는 선배는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제자를 키울 수 있는 길을 포기한 건 결코 아니지만, 연구실로 돌아가라고 더는 당부하지 않는 선배에게 감사한다. 그때 그의 권유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의식 수준이 낮은 이공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한동안 환경운동가라는 말이 어색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환경 운동하는 생태학자라는 소개에 고마워하고, ‘생태주의자’라는 지적을 칭찬으로 오해하는 화상이 되었다. 모두 그 어색했던 막걸리 자리 덕분이다. (시민사회신문, 2008.3.17)

환경사랑하는 마음이야 크고 작음의 차이가 없다 하겠지만 박병상님과 같은 환경운동가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환경사랑하는 이들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얼굴 뵌지는 몇년이 흘렀지만 주변 생과 삶에 대한 애정을 많이 배웁니다. 진솔함과 더불어.. 마음 가까이 함께 할수 있도록 부족한 저도 배우고 배우겠습니다. 근래 공부해보려고 농과대를 들락날락 하면서 삶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고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