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9. 4. 07:37

비타민 나무를 아시나요?

 

5년 만에 몽골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었어도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의 밤하늘에 별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전승기념탑에 오르니 새로 짓거나 입주하는 고층 아파트에 막혀 경관을 관망하기 어려웠다. 걸어서 20분 거리를 자동차로 1시간 넘게 가야 하는 도로에 경음기 눌러대며 끼어드는 자동차로 혼잡을 빚었는데, 그런 징후는 5년 전에 예감할 수 있었지만 그 지경일 거라 짐작할 수 없었다. 울란바타르의 난개발은 심각했다.


넓고 편평해 여유가 있던 울란바타르인데, 도시계획이 왜 그 모양이 되었을까? 힘 있는 자의 독선이 개입했을까? 좁은 도로를 덮을 듯 솟아오른 건물이 낡을 때까지 한동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텐데, 수도에서 조금만 떨어진 시골은 예전의 고즈넉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도로를 타고 울란바타르 경계에서 30분만 지나면 만나는 구릉지의 드넓은 초원은 방목하는 소와 말, 양과 염소가 드문드문 풀을 뜯었고 파란 하늘 아래 몽골 특유의 가옥인 게르가 어울리는 풍경은 그림엽서를 방불케 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5년 전에 없었다. 자동차들은 그저 목초지를 달렸고 23중으로 패인 흔적은 도로가 되어 그 자리마다 흙이 드러났는데, 울란바타르와 연결하는 2차선 도로는 목초지가 패는 현상을 어누 정도 막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막화는 막지 못했다. 내리는 빗물보다 증발량이 늘어 얼마 전까지 호수였던 지역은 바싹 말라가고, 그 사이사이의 목초지대는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식물, 방목하는 가축들이 외면하는 식물로 뒤덮였다. 캐시미어 제품을 위해 과도하게 사육하는 염소들은 목초의 뿌리까지 뜯어, 사막화는 심화되고 있었다.


평생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인에게 나무심기는 생소하다. 목축에 방해되지 않던가. 하지만 사막화가 심화되면서 몽골인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꿔간다고 한다. 바람에 따라 황사가 일며 확장되는 사막을 어떻게든 막아야하기에 뿌리 드러내는 목초지를 둘러싸며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무심기는 몽골인에게 낯설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파견된 국가기관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나무를 심고 심은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고 있지만 정작 몽골인들은 수동적이다.


진전되는 사막화를 가로막는 나무심기는 몽골 초원에서 어느 정도 활성화되는 모습이라 다행이었다. 2010년경부터 인천시민들이 나무를 심어온 지역은 나무만 자라 오른 게 아니라 주위 풀밭도 안정된 모습이었다. 나무만 심고 돌아서는 게 아니라 나무들이 활착할 수 있도록 인력과 자금을 적극 지원한 인천시와 시민단체의 헌신적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가축들의 출입을 차단한 작은 숲에게 외롭게 상주하며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주기적으로 뿌리고 있었는데, 신념과 보람이 없으면 불가능한 행동으로 보였다.


상주하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는 몽골인들과 밭작물을 심고 재배하고 있었다. 방목 이외의 방법으로 음식과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으로 보였는데, 효과가 있어 보였다. 마침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간 몽골인이 많다. 울란바타르는 한국식 음식점이 5년 전에 비교해 많이 늘었고, 적지 않은 몽골인들이 육식 이외의 음식에 조금씩 익숙해진다고 한다. 사막화가 심화되는 지역에서 방목에 의존하기보다 밭을 일구는 농업으로 돈도 벌어들이고 사막화도 예방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리라.


몽골의 방목지에서 몽골인이 능동적으로 시도하는 농업은 아직 드물지만 나무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모색되고 있었다. 단순히 사막화를 막는 나무심기라면 목측인들이 쉽게 식상할지 모른다. 사막화가 줄어든다 싶으면 가축을 풀어놓아 어린 나무들을 뜯게할지 모른다. 하지만 심은 나무에서 수입이 생긴다면 달라질 수 있다. 인천시민들이 심은 차차르간나무가 그것이다. 이른바 비타민 나무라는 별칭을 가진 차차르간은 2미터에서 4미터 정도 자라는데, 얇은 가지에 앵두보다 작은 오렌지 색 열매를 이맘때 켜켜이 매단다.


차차르간은 척박한 토양에 살아가는 나무답게 면역력이 높은 모양이다. 오렌지색 열매 100그램에 비타민C 함량이 200밀리그램에서 1500밀리그램에 달해, 다래나무의 2에서 4, 감귤의 5에서 30, 파인애플의 8에서 30배에 이른다고 전문가는 분석했다. 다만 열매를 짜내 단순한 음료수와 약간의 식품재료로 가공하는 수준에서 머물 뿐이다.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개발하거나 효능을 적극 홍보하여 매출을 늘리거나 수출하는 데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차차르간 나무를 심는 몽골인이 늘고 있어 다행이다. 그들은 나무 심는 맛과 보람을 알고 있으므로.


인천의 공정무역은 몽골 차차르간 나무의 열매를 수입해 시민에게 선보일 방법을 찾으려 한다. 몽골의 사막화는 몽골인이 전폭 책임질 일은 아니다. 몽골에서 캐시미어를 많이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사막화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캐시미어의 원료가 되는 염소를 많이 방목하게 만든 책임을 말하는 건 아니다. 몽골 일원의 온난화는 주변국의 산업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는데, 우리나라의 급격한 산업화가 몽골의 사막화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몽골에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행동과 더불어 사막화 방지를 위해 심은 나무의 열매, 다시 말해 비타민 나무의 열매를 수입해 사막화 방지에 눈 떠가는 몽골인을 지원하는 일도 무척 의미 있는 행동이다. 몽골의 사막화를 방지하고 몽골인의 수입이 늘어난다면 그 이익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몽골에서 수확해 가공한 비타민C를 저렴하고 안전하게 먹는 효과에서 그칠 리 없다. 지구온난화가 그만큼 줄어들어 기상이변이 억제되고 우리 생태계 보전에 기여할 게 아닌가?


가공할 공장을 만들고 효과적으로 수입할 방법을 찾아야 할 테니,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겠지만, 몽골은 물론 우리의 건강과 이익을 위해, 지구촌의 온난화와 사막화가 심화되는 이때, 양국 미래세대의 안전한 생존을 위해, 기왕 나무심기로 몽골의 사막화방지에 나선 인천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인천 여기저기의 산업체에 많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몽골인에게 자금심이 생길 것 같다. 무지개가 피는 나라, ‘솔롱고스인 우리나라에 대한 몽골인의 인식은 더욱 살가워질 테고. (인천in, 20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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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09. 9. 19. 16:31

 

옛말에 돈을 잃으면 조금, 건강을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지만 신뢰를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라고 했다. 그만큼 신뢰, 다시 말해 상대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건데, 주로 도시에서 소비자를 만나고 농촌에서 생산자와 만나는 생활협동조합은 신뢰를 기반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그걸 모토로 삼는다.

 

도매시장에 밭떼기나 차떼기로 넘길 농산물은 상품성을 높이려는 상인의 주문대로 화학비료와 농약을 듬뿍 뿌리지만 제 식구가 먹을 건 유기질 비료를 주며 온갖 정성을 다해 재배한다던데, 상식을 가진 농부라면 저와 친밀하게 지내는 이에게 알고는 먹기 찜찜한 농산물을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농부가 정성을 다한 유기농산물은 그만큼 자존심이 크다. 그런 농산물을 아무렇게나 팔아치우려는 농부는 없을 터. 하지만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소비자가 많지 않은지라 어렵게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중간상인에게 넘길 때가 많은데, 헐값으로 가져간 유기농산물이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식품매장에 높은 가격으로 전시된 걸 보면 속이 상한다.

 

가족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도 걱정이 많다. 잘 알고 지내는 농부가 있는 게 아니라서 그나마 공신력이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찾는데, 식품매장의 유기농산물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으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허구헛날 일반 농산물이나 그 가공식품을 고르자니 영 탐탁하지 않다. 사실 생산자인 농부에게 돌아가는 몫을 생각해보면 일반 농작물의 가격이 그리 낮은 것도 아니다. 소비자에게 불만을 사는 농산물 시장은 열심히 농사짓는 농부의 의지를 꺾어놓기 일쑤다.

 

‘공정무역’이란 게 있다. 여러 단계의 중간상인을 거쳐 복잡하게 가공된 뒤 유통 단계에 이르면 최종 소비자에게 팔리는 가격이 최초 농산물에 비해 어처구니없이 높아지는 무역의 불합리를 바로 잡으려는 시민운동이다. 커피나 초콜릿을 보자. 정작 농토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이에게 돌아가는 보수가 지나칠 정도로 작다. 대개 최종 소비자에게 팔리는 가격의 1퍼센트 미만이라고 하니 시민단체가 나섰다.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농산물을 유통과 가공 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여 소비자에 되도록 값싸게 제공하는 운동을 펼치는 거다. 커피, 초콜릿, 설탕, 바나나와 같은 농작물에서 시작한 공정무역은 티셔츠와 청바지와 같은 의류제품까지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공정무역 제품은 대개 다국적기업이 장악해 판매하는 상품에 비해 가격이 다소 높고 익숙해진 미각이나 촉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막강한 기술력을 가진 거대한 자본처럼 한꺼번에 많은 물량을 사들이지 못하고 입맛을 말초적으로 길들이는 첨가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공정무역의 정신을 십분 이해하는 소비자들은 흔쾌히 양해하며 구입한다. 몸에 더 좋다는 걸 확신하는 이웃의 경험이 주효한 까닭이기도 하다.

 

무역만 공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수확하기 전부터 계약하는 중간상인에 헐값으로 넘기고도 먹고 살만큼 이윤을 남기려면 많은 양의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농부는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다수확 품종 농작물의 씨앗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 몸만 축나는 게 아니었다. 조상이 물려준 땅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미생물에서 곤충과 개구리, 두더지와 뱀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던 농토는 어느새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외상으로 산 씨앗과 비료와 농약 값을 갚고, 생활비를 벌어들이려면 다른 도리가 없다. 농작물을 건강하게 만들던 생물이 사라진 농토는 그만 생산 능력을 잃어버렸다. 척박해진 땅에 뿌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는 증산이 아니라 감산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래서 생활협동조합이 나섰다. 신뢰를 바탕으로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생산자를 공정하게 연결하려는 시민운동의 일환이다.

 

생산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보장하는 생활협동조합은 복잡한 유통단계를 줄여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농업은 땅을 살리고 먹는 이의 생명을 살리는 산업이어야 하기에 화학농법을 마다하고 유기농업을 적극 환영한다. 덕분에 생활협동조합은 외국의 유기농산물이나 그 가공식품을 버젓이 전시하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와 달리 식품매장의 유기농 코너에 가야 알현할 수 있는 지체 높은 농산물보다 훨씬 저렴한 유기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 물론 화학농업으로 생산한 시중의 농산물보다 가격이 다소 높은 경우가 많지만 그건 땅을 살리며 힘겹게 농사지은 생산자에 제공된 몫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활협동조합의 일꾼에게 충분한 급여를 제공하는 건 아니다. 시민운동의 차원인 까닭이다.

 

많은 이들은 여유 있는 계층만이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할 수 있다고 아쉬워하는데, 그건 눈앞의 현상만 짧게 해석한 오해다. 물론 당장 돈이 더 들어가는 건 맞지만 유기농산물은 먹는 이의 건강을 나이든 뒤까지 도모할 테니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주머니에 돈이 부족하다면 덜 구입하면 된다. 우리나라 도시의 소비자 대부분은 시방 영양이 많아 걱정이지 않은가. 다이어트에 들어가는 돈으로 생활협동조합의 유기농산물을 구입해 가족과 오순도순 조리해 먹는 선택을 권하고 싶다. 비교적 가격이 높은 고기를 구입하지 않거나 줄이는 것도 비용을 아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유기농이든 화학농이든 고기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채소나 곡물에 비해 훨씬 많지 않던가.

 

어떤 이는 유기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화학농업에 비해 생산량이 줄어 식량부족을 자초하게 된다는 점을 꼬집는데, 그건 하나만 보고 그 이상을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땅이 척박해질수록 석유를 가공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 뿌려야 하는 화학농업은 생태계의 안정을 해칠 뿐이 아니다.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화학농업에 적합하도록 개량해서 종자회사가 파는 씨앗은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까닭에 환경변화에 아주 약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런 씨앗을 믿다 석유위기가 닥치거나 지구온난화가 심해진다면 식량위기는 돌이킬 수 없게 될 테고, 인류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이진다. 따라서 내일의 식량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이제 겨우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유기농업이 어서 화학농업을 압도할 수 있기를 성원해야 한다. 그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생활협동조합은 조합원에게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유통 기능에서 그치면 안 된다. 고향의 정취를 잊어가는 도시의 소비자 조합원을 흙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 생산자 조합원이 바쁜 시기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농촌을 찾아간 다음세대들은 농산물이 어떻게 재배되는 걸 알게 될 뿐 아니라 농부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맨발로 흙을 디디면서 고향의 정취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체험할 수 있다면 유기농산물의 가격이 결코 비싼 게 아니라는 걸 절절하게 이해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게 아닌가.

 

생활협동조합은 조합원 교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무래도 소비자가 생산자를 끌어가는 게 낫다. 소비가 안 돼 기껏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버리는 것보다 늘어난 소비자가 화학농업에서 벗어나려는 농부를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게 이끄는 편이 바람직하므로. 그를 위해 생활협동조합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라면 기꺼이 소비자에게 소개하며 판매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척박해진 땅이 유기농업으로 기름져질 때까지 생산량이 급감하는 전환기 농부를 격려하며 지원해야 하므로. 필요하다면 농산물의 가격에 전환기 농부 지원 기금을 포함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생활협동조합에서 소비자는 왕이 아니다. 생산자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 조합원이어야 한다. 물론 생활협동조합은 생산자와 소비자 조합원 모두에게 신뢰를 잃지 않도록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영리가 아니라 운동이어야 하는 생활협동조합은 생산자 조합원과 소비자 조합원의 충분한 의견을 모아 운동의 질적 양적 확산에 주력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행동이 자칫 생활협동조합 사이의 세력 불리기 위한 경쟁으로 비화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것이다. 초심을 잃을 것이고, 쌓았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외국의 유명한 유기농 매장이 가격공세로 밀고들어올 경우 경쟁력도 사라질 수 있다. 한데 외국의 유기농산물은 엄밀한 의미에서 유기농이라 해석할 수 없다. 운송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니, 크던 작던 지구온난화를 부추긴 까닭이다. 그렇다면 생활협동조합은 최대한 제철 제고장 농산물을 취급하는 원칙을 고수해야 옳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최소화할 때 땅과 생명이 가장 건강할 뿐 아니라 그만큼 지역의 문화도 보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9월)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6. 5. 16:47
 

요즘은 가끔 커피를 마신다. 《자원전쟁》에서 저자들이 밝힌 18세기 스웨던 국왕 구스타프 3세의 실험 결과가 유혹했다. 독이 있을 거라 믿은 당시 국왕은 사형수로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한 명은 커피를 다른 한 명은 녹차를 마시게 했는데, 실험을 담당한 의사 두 명이 먼저 죽고 국왕이 늙어 사망한 다음, 녹차를 마신 사형수가 83세로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커피 마신 사형수는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을 정도라는 게 아닌가.


커피는 첨가물이 없는 원두여야 한다. 아무 커피나 마시는 것도 아니다.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커피만 허용한다. 몸 때문만은 아니다. 이웃과 마시는 커피가 원두를 생산하는 지역의 땅과 삶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공정무역으로 들어온 갈색 설탕은 조금 섞을 수 있겠다.


최근 세계의 기업은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무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른바 ‘공정무역’이다. 미성년자를 착취한 제품의 판매를 거부하고 농약에 오염된 농작물을 배제하는 옥스팜이나 보디숍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유통업체가 공정무역을 주도하는 가운데 다국적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을 판매했다 비난받은 네슬레는 유럽시장에서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없는 식품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났으며 그런 현상은 대형 슈퍼체인으로 확산되었다고 2000년 서울 아셈회의에 참석한 유럽 그린피스 대원이 밝힌 바 있다.


인터넷이 세계로 열린 요즘은 이미지가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제품의 질에서 큰 차별이 보이지 않는 국제시장에서 이미지는 기업의 생존에 강력한 영향을 주지 않던가. 노예노동이나 아동학대를 배격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정무역에 적극 참여하는 기업은 높아진 이미지를 홍보하며 살아남으려 무던히 애를 쓴다. 공정무역은 사원의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연봉보다 이미지를 직장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젊은이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꽤 높아졌다. 이럴 때 광우병을 걱정하게 하는 쇠고기를 버젓이 진열하거나 보전가치가 높은 생태계에 골프장을 지으려는 기업은 실추된 이미지를 여간해서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유전자조작 옥수수로 가공한 시럽을 넣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골프장 부지의 생태계를 보전하겠다고 발표한다면, 그 기업은 긍정적 이미지를 내일까지 이을 게 틀림없다.


더욱 첨예해지는 경쟁시대를 맞아,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일까. 금수강산이 무너지는 우리나라에 유전자조작 옥수수가 수입되었고, 30개월이 넘는 미국산 쇠고기마저 통관을 기다리는 마당이다. 오늘의 소비자는 내일, 어떤 기업을 기억할까. (경향신문, 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