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9. 10. 1. 23:09

 

모처럼 제주도에 가면 저녁 자리가 민망해진다. 육식을 피하려는데 명품 돼지고기를 내놓는 호의를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한 곡물로 키운 가축의 살코기를 외면하려 노력해도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지만 눈치 살피며 고기를 피한다. 간혹 잘 익은 고기를 친절하게 담아주는 이가 있다. 그럴 때 겨우 맛보는 제주도 특산 돼지고기는 육지와 다른가? 잘 모른다, 하지만 다르다고 제주도 사람들은 동의한다. 품종이 다르니 맛에 차이가 있다는 거다.


육지에서 압도적으로 사육하는 허연 돼지는 지역과 관계없이 품종이 한결같다. 경제성이 높기 때문일 텐데, 그건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공통이다. 품종만 같은 게 아니다. 사료와 사육조건이 비슷하니 맛도 거의 같다. 가격이 올라 수입하는 유럽산 삼겹살이 우리나라 삼겹살과 맛이 다르다고 말하는 미식가는 드물다. 그러니 돼지에 치명적인 질병의 목록도 세계가 공통이다. 경제성을 위해 최대로 밀집시키는 공장식 사육환경도 같으니 이웃 국가에서 질병이 돌면 바싹 긴장해야 한다.


구제역이 돌면 확산을 막으려 당국은 반경 300미터에서 500미터 이내의 돼지를 살처분한다. 확산 속도가 빠르면 반경을 늘려 죽는 돼지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데, 그건 발굽이 있는 소와 양의 사정도 비슷하다. 구제역이 창궐해도 살처분을 미적거리거나 회피한다면? 피해반경 이내의 돼지와 소는 결국 모두 감염돼 죽고 마는 걸까? 그 방면에 아는 바 없지만 수의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죽는 가축도 있지만 시름시름 앓다 회복하거나 잠시 증세를 보이다 이내 낫는 개체도 많다고 한다. 어쩌면 대부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감염으로 죽지 않는 개체가 많아도 반드시 살처분하는 이유는 확산 방지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감염된 축사의 가축, 피해반경 이내에서 사육한 가축은 어떤 도축업자도 받으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제역에 감염되었던 가축의 살코기라고 해도 먹는 이의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축산업자는 좋던 싫던 살처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개별 식당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구입해 식구나 이웃, 동료가 나누어 먹는 시절이 아니지 않는가. 같은 크기의 가축을 한꺼번에 도축해 포장한 뒤 대형 식품매장에 넘기는 요즘, 공장식 축산업자는 질병에 예민하게 대응해야 손해를 피할 뿐, 대안이 없다.


4만에 가까운 강화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게 만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치사율이 100%라고 한다. 먼저 감염된 중국은 근 1억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는 가운데, 북한 평안북도의 돼지는 전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멸이라. 살처분이 늦어 모두 감염돼 죽었다는 걸까? 분명치 않은데, 방역이 철저한 우리는 피해지역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다만 강화를 비롯해 피해반경 이내에 포함돼 사육하던 돼지들은 죽을 수밖에 없고 사육업자는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행일까? 감염과 관계없이 죽어야 하는 돼지는 얼마나 억울할까?



사진: 구제역 감염구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살처분되는 같은 크기의 돼지들.(출처는 인터넷)


영국 에든버러에 구제역이 돌았을 때 복제 양 돌리도 피해반경이 가까워지면서 살처분될 위기에 있었다. 살처분 광풍이 지나간 뒤, 그 지역에서 살아 있는 어린 양이 발견돼 과학자들이 환호한 적 있었다. 구제역을 이길 품종을 개발할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라는데, 이후 연구의 성공 여부는 알지 못한다. 구 성패를 떠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실제로 감염된 돼지를 모두 죽일까? 일부라도 살아남은 개체가 여태 모든 국가에 없었을까? 모두 살처분하지 않았다면 찾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혹 평안북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내성 돼지가 발견되는 거 아닐까? 희망의 열쇠가 될 수 있는데.


바나나는 세계가 한 그루를 재배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이 없는 품종이다. 창궐하는 질병에 매우 치명적이므로 자칫 멸종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해왔다. 곰팡이가 돌면 피해반경 이내의 바나나 밭을 모조리 불태우지만 바나나 씨앗은 극도로 안전하게 관리한다. 바나나 껍질 속에 유리파편처럼 박힌 씨앗은 따로 모아서 새로운 품종을 찾는데 이용한다고 한다. 1960년대 그로미셀 품종을 이은 캐번디시 품종을 그렇게 찾았고, 다시 새 품종을 찾으려 바나나 재배업자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 퍼지기 전에 누구라도 이겨낼 품종을 찾아야 하지 않나?


육지와 연결된 다리 두 곳을 잘 차단하면 전파를 최선으로 억제할 수 있는 강화에서 모든 돼지의 살처분은 아쉽기 그지없다. 가축 감염 전문가는 공기로 전파되는 구제역과 달리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철저한 방역으로 전파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강화는 완전 살처분 대상지에서 제외해야 옳지 않았을까? 이미 살처분이 결정된 마당이므로 무척 아쉽다. 죽어가는 돼지에게 아쉽다는 표현은 온당치 않은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이기는 개체를 찾는 기회를 우리는 놓쳤다. 충분한 보상으로 사육하는 축산업자의 양해를 구해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치사율 100% 감염병? 그런 질병이 가당할까? 숙주를 100% 죽이는 바이러스라면 머지않아 숙주와 더불어 사라진다. 그런 질병은 생태계에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전 세계의 사육장에서 돼지가 같은 질병으로 모두 죽었다면 우리는 사육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장식 돼지 축산의 참혹한 현실을 보라. 위생적일 뿐 아니라 동물복지에 맞게 바꾼다면 그런 치사율은 있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배설물과 사료가 뒤엉켜 썩으며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사육하는 관행을 고집하는 한 돼지 뿐 아니라 소와 닭도 살처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사람은 아니 그럴까? (인천in, 2019.10.2.)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1. 22. 17:05

   유전적 다양성을 없앤 탐욕

 

올 겨울 버금가게 추웠던 재작년, 강화에서 돌아오는 길목에서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 아스팔트 위의 눈이 빙판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몹시 추운 날, 차선을 좁힌 어떤 기계에서 분무된 구제역과 조류독감 방제액이 차 앞 유리에 닿자마자 얼어붙은 게 아닌가. 떨어진 방제약이 얼어붙은 빙판길에서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았다면 앞차와 부딪힐 수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당국은 조류독감을 대비한다. 철새들이 날아오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재작년 구제역으로 인한 3백만이 넘는 돼지와 수십만의 소들이 살처분될 때, 6백만 마리에 달하는 닭과 오리들이 죽어야 했다. 당시 매장된 돼지와 소 대부분은 구제역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죽였다. 담당 공무원들의 과로사가 빈발하던 시절, 시민들은 더 넓은 지역으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으려는 고육지책으로 이해해야 했지만 사실 상업적 이유가 더 컷을 것이다. 신뢰를 잃지 않아야 나머지 지역의 소와 돼지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으므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어도 침출수가 흐르도록 매장되어야 했던 소와 돼지는 억울했을까? 소와 돼지보다 두 배 가까이 죽은 닭과 오리는 어땠을까.


생매장되는 돼지처럼 보는 이를 아연하게 만들지 않았어도, 산 채로 구겨지듯 자루에 담겨 생매장된 600만 마리의 닭과 오리 중에 조류독감에 걸린 개체는 전혀 없었다. 단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된 철새의 배설물에서 안전반경이내의 농장에 사육되었다는 이유로 살처분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억울했을까. 사람이라면 억울하기보다 분노에 휩싸였겠지만, 정작 억울한 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포함된 배설물을 흘린 철새였을지 모른다. 살처분은 사람이 저질렀으면서 몇 마리 안 되는 철새에게 조류독감 전파의 혐의를 뒤집어씌우지 않았나.


철새는 한 종류가 아니다. 주로 오리 종류인 수많은 겨울철새들도 사람처럼 독감에 걸릴 수 있을 것이다. 독감이 심한 개체는 먼 거리 날아오지 못했을 테고, 힘겹게 날아와서 충분히 먹고 쉬지 못한 개체는 우리나라에 와서 독감에 감염되었을지 모른다. 얼지 않은 습지를 찾아 갯벌이나 저수지를 오르내리며 배설물을 흘렸을 철새 중에 독감에 걸린 개체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치유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그래서 철새가 백만 개체 이상 운집하는 천수만이나 우포늪에서 조류독감으로 널브러진 사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면역이 약한 개체, 다시 말해 다른 병에 걸렸거나 늙었거나 지나치게 굶주렸거나 아주 어리지 않다면 거뜬히 이겨냈을 게 틀림없다.


철새들은 조류독감으로 떼로 죽지 않는 게 확실한데 왜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등장하는 농장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대부분 죽어나갈까. 돼지의 원종인 멧돼지도 구제역에 걸릴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돼지들이 무참하게 매장될 때를 돌이켜보자. 먹을 게 없어 주택가로 나왔다 총 맞고 죽은 경우는 있어도 구제역으로 죽은 멧돼지가 있다는 소식 들은 바 없다. 미국 대평원의 들소처럼 이동하는 소는 우리나라에 없지만, 감염성이 아무리 높아도 버펄로라 하는 미국의 들소들이 구제역으로 떼지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유치원이 휴교에 들어갈 정도로 수두가 번져도 아기들이 죽어나가지 않듯.


우리는 샐러드에 닭 가슴살을 넣는 주부가 드물지만 미국은 아니다. 식당의 샐러드 바에 각설탕처럼 자른 닭 가슴살이 수북하다. 닭 한 마리에서 나오는 가슴살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축산과학은 가슴살을 키웠다. 어려서부터 가슴살이 예외적으로 큰 닭이 있었다. 축산과학은 그렇게 산업적으로 유용한 유전자를 그냥두지 않는다. 그 개체를 활용해 얻는 여러 새끼들 중에서 가슴살이 두툼한 암수를 골라 근친교배를 거듭했을 것이다. 그렇게 개발한 가슴살 두툼한 닭은 그만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 아니 병아리는 하루 백만 마리 가까이 기계로 자동 처리한다. 크기가 들쭉날쭉하면 값비싼 기계가 고장날 수 있다. 축산과학은 기계의 오차범위 내로 획일적인 품종을 만들었고, 가축은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잃고 말았다.


유전적 다양성이 줄면 환경변화에 견딜 능력이 크게 부족해진다. 그래서 축산과학은 인큐베이터처럼 균질한 사육조건을 창안했다. 온도, 습도, 면적, 실내조명, 먹이, 항생제 들을 일정하게 조절하며 일정 기간 키우면 원하는 닭고기를 얻을 수 있다. 기계 오차범위 내로 들어오는 삼계탕용 병아리만이 아니다. 먹이 다 먹으면 일제히 실내등을 끄는 미국의 가슴살 용 닭도 마찬가지다. 가슴살을 위한 닭은 이론상, 1년 키우면 몸무게가 200킬로그램 가깝게 자란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 죽을 것이다. 두 달 이상 키우지 않는 닭, 아니 병아리인 대부분의 개체들은 도살 전에 다리에 깊은 상처를 가진다. 늘어나는 몸무게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인데. 축산과학이 그리 선도했고, 공장식 축산이 그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요즘 닭은 용도에 맞게 극단적으로 육종돼 있다. 삼계탕과 가슴살용만이 아니다. 적은 사료를 먹어도 많은 계란을 빨리 낳는 닭이 있을 테고, 바삭바삭 튀겨지는 고기를 위한 닭이 있을 것이다. 오리도 메추리도 사정이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돼지도 마찬가지다. 살코기를 위한 돼지는 전 세계 품종이 동일하다. 그래서 유럽산 삼겹살이 우리 삼겹살과 맛이 다르지 않다. 미국 축산자본의 압력에 굴복해 신종플루로 느닷없이 명칭이 바뀐 돼지독감이 순식간 세계로 퍼진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고기를 위한 소, 우유를 위한 소의 사정이 다를 리 없다. 밍크도 은여우도 비슷할 것이다. 개도축이 법으로 허용된다면 고기용 개도 예외가 없을 것 같다. 극단적으로 변형된 애완용 개와 고양이의 수명이 짧고 병에 약하다. 극도의 육종은 면역력까지 약화시킨다.


과학축산이 창안한 품종의 특징을 잘 살리려면 그에 맞는 환경을 철저하게 유지해야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되던가.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축산환경이 무너질 수 있다. 우박이 양계장의 비닐 천장을 뚫으면 어린 닭들은 우수수 죽어나간다. 태풍으로 창문이 열려도 마찬가지다. 양계장의 환풍기가 돌아가면서 이동하던 철새의 배설물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 그때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들어가면 병아리들이 떼로 죽어나간다. 구제역은 수의사의 넥타이, 여행자의 구두 굽으로 전파될 수 있다. 마당에서 발로 흙을 파며 벌레를 잡아먹는 닭에서 볼 수 없는 떼죽음이 만연된 현상은 과학축산과 무관하지 않다. 과학축산은 축산자본이 견인했고, 교묘한 광고로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은 살처분과 무관한 자세를 취한다.


     결국 탐욕이다. 탐욕이 부른 공장식 축산이 살처분을 몰고 왔다.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어들이려는 탐욕이 그 동물의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없애자 작은 환경변화에도 맥을 추지 못하는 가축들이 기계로 찍어낸 듯 양산돼 공장식 축산에 수용되었고, 획일적인 유전자를 가진 가축들은 병원균에 턱없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러자 안전반경이라는 허구를 구상한 축산과학은 그 안에 있는 가엾은 가축들을 몰살시키는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도록 농장 주인을 다그치고 당국을 움직이게 했다. 탐욕을 위한 일이다. 자본의 탐욕스런 유혹에 소비자가 흔들린다면 살처분도, 극단적 육종도 개선될 리 없다. (프레시안, 2013.1.22)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4. 3. 00:08

 

1

 

이른 3월 눈 덮인 산하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복수초는 봄을 기약하고 늦은 3월 산기슭을 노랗게 수채화처럼 물들이는 산수유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알린다면 4월 중순 흐드러진 하얀 벚꽃은 봄이 무르익었다는 걸 선언한다. 추위를 무릅쓰고 복수초와 산수유를 기웃거리던 꿀벌들이 분봉을 앞두고 열심히 꿀을 모을 즈음인데, 웬걸! 길게 이어지는 벚나무 주위에서 꿀벌 한 마리 알현하기 어렵다. 떠들썩한 상춘객 때문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나타났다는데, 우리의 꿀벌에도 무슨 변고가 생긴 게 분명하다.

 

원고를 쓰는 야심한 밤에 출출하다고 아내를 깨울 수 없으니 얼마 남지 않은 땅콩을 한 움큼 집어든다. 시중에서 파는 중국산 땅콩이 꺼림칙해 유기농 국산을 찾는데 생활협동조합에 가도 없을 때가 많으니 이따금 가까운 양판점에서 아몬드를 구입하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책임진다니 이 밤중, 인천의 한 방구석에서 깨물어먹는 아몬드 역시 캘리포니아 산임에 틀림없을 텐데, 바로 이 아몬드는 미국의 꿀벌집단붕괴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어떤 과학평론가는 주장했다.

 

과육을 먹는 살구와 비슷한 종류인 아몬드는 씨를 먹는다. 따라서 실한 열매를 위해 가는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피는 꽃을 상당히 떼어내는 살구와 달리 아몬드는 그 꽃들이 모두 꽃가루에 수정되어야 하는데, 꿀벌이 그 역할을 맡는다. 거듭된 품종개량으로 많은 꽃이 같은 계절에 한꺼번에 피는 아몬드나무들이 한 지역에 집중돼 있지만 그때 그 지역의 양봉업자가 모든 꽃의 수정을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전 미국에서 벌통이 모여든다. 미국 벌통으로 모자라 캐나다와 멕시코의 벌통이 모이고 중남미는 물론 유럽의 벌통도 대환영이다. 그렇게 한 보름동안 집중적으로 꽃가루 수정을 받는데, 그 아몬드나무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폭이 아주 좁다. 열매를 많이 맺는 품종끼리 거듭 근친교배하자 조상의 다양성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벌꿀을 남보다 많이 빨리 채취하고 싶은 양봉업자도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크게 좁혔다.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협애하면 어느 생물이나 환경변화에 이겨낼 능력이 떨어진다. 그런 개체들이 밀집돼 있을 경우, 천적에게 쉽게 희생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질병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꿀벌이 그랬다. 손실을 막아보고 싶은 양봉업자는 천적을 막을 살충제와 병균을 차단하는 항생제를 남발했고 꿀벌의 면역력은 그만큼 약화됐는데, 천지사방의 꿀벌이 모여드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농장은 짧은 기간에 꿀벌의 질병을 유럽과 북중미로 퍼뜨리는 진앙이 되고 말았다.

 

벌과 나비가 없는 꽃에서 향기를 느낄 수 없다고 허난설헌이 말했다던가. 4월 중순 여의도 윤중로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향기가 없는 건 아닐 텐데, 벚나무 아래 어깨를 부딪치는 인파는 꿀벌 한 마리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생물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집단붕괴현상이 꿀벌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태학자들의 경고가 신문과 방송에 무게 있게 보도되지 않는 실상에서 경각심을 가질 리 없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4년을 견딜 수 없다고 아인슈타인이 경고했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을까.

 

 

2

 

심각에서 경계로 한 단계 낮춰서 그런지 전국의 구제역 방역 초소들이 일제히 철수했고, 텅 비었던 축사들이 다시 활발해졌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창궐할 때마다 주춤하긴 해도 고기를 즐기는 소비자층이 두터운 만큼 수익을 보장되므로 축산업은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문을 닫지 않은 식당들도 그리 믿을 텐데, “가족 같은 가축들을 매몰하는 농부의 안타까움을 강조한 언론들은 생매장되는 현장을 고발하는 동영상에 왜 어린 돼지가 없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진정 가족 같이 여겼다면 태어나는 돼지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붙이고 애지중지 키웠을 텐데, 눈물짓는 농부가 왜 살처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가족 같다면 어미와 새끼가 어울려야 맞는데, 굴삭기 삽날에 밀려 10미터 아래 구덩이에 떨어진 돼지들은 왜 덩치가 한결같았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내다 팔 목적만으로 가축 서너 마리를 키우는 농가도 가축 한 마리 한 마리에 함부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름이 붙은 녀석을 도축장에 넘길 때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가축을 키우는 산업축산은 이름을 붙일 리 없다. 가족? 어림없다. 이름 대신 쇠귀에 인식표를 달거나 돼지는 아예 귀를 톱니처럼 잘라 표시할 따름이다. 그런 가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정 규모를 가진 개별 축사에 가축을 공급하는 종축장에서 죽어라고 새끼만 낳는 암컷 일부와 죽을 때까지 정액만 쏟아내야 하는 수컷 극소수, 그리고 분양된 축사에서 부지런히 살을 키워 성숙하기 전에 일제히 도살될 운명을 지닌 나머지 대부분의 개체들이다. 예외도 있다. 아주 어려 거세되는 살코기용 돼지나 소와 달리 산란용 병아리의 수컷은 부화되자마자 쓰레기가 되고 젖소 수컷은 고기용으로 냉큼 전환된다. 가축의 본성은커녕 최소한의 복지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느 경우나 같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볼 수 있는 목장은 대개 일정 규모 이상을 차지하고 종축장에서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어린 가축을 한꺼번에 가져와 획일적으로 사육한다. 발정기를 맞은 암컷을 마을의 든든한 수컷과 만나게 해 임신시키는 일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구제역에 감염된 종축장이 아니라면 살처분 현장에 어린 돼지와 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린 가축들을 공장처럼 쉼 없이 생산하는 종축장에서 사육하는 다수의 암컷은 유전자가 거의 유사하다. 수컷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태어나는 가축의 유전자가 일정할 것이고, 그런 가축을 예정된 기간 동안 획일적인 조건으로 사육하면 예측 가능한 살코기를 갖는 비슷한 크기의 가축을 집단으로 도살장에 넘길 수 있다. 가축들이 도살장 기계의 오차범위 내에 들어가야 기계가 고장 나지 않으니 많은 수익을 노리는 축산업자는 들쭉날쭉 자라는 가축을 기피한다.

 

어떤 사료를 어떻게 먹여야 살코기가 가장 빨리 불어나는지 축산과학은 진작 밝혀냈다. 같은 사료를 똑같이 먹여도 빨리 자라는 개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개체도 있었지만 축산과학은 천천히 자라도 온순한 개체들은 도태시켰다. 빨리 자라는 개체들끼리 거듭 교배시켜 유전적 다양성을 잃는 개체들만을 종축장에 공급했다. 한데 그런 가축들은 환경변화에 취약하고 그만큼 사육조건이 까다롭다. 그래서 살코기 생산 공장처럼 많은 가축을 예측 가능하게 사육하려는 업자는 큰돈을 투자해야 하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

 

비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동시에 밀어넣은 공장식 축산은 가축 한 마리 한 마리에 신경을 쓸 시간도 마음도 없다. 어서 몸집이 불어나기만 바랄 따름이므로 성장호르몬을 주입하고, 질병이 돌지 않도록 항생제를 미리 투여할 따름이다. 덕분에 감당할 수 없게 불어나는 몸집은 생존에 부담을 줄 정도지만 도살장에 넘길 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뿐이다. 고기 생산기계인 가축은 정붙일 생명체가 아니다. 한없이 키울 이유가 없다. 사료 먹는 양에 비해 살코기가 불어나는 속도가 쳐지는 순간, 넓은 축사에 움직일 틈이 없는 축사에서 시간이 갈수록 부대끼던 가축들은 일제히 도살장으로 향할 것이다. 사람 나이로 뼈가 아직 약한 7살 전후에 불과하지만 덩치는 청소년기에 육박한다.

 

발굽이 달린 가축은 들판을 뛰어 돌아다녀야 건강하지만 성장호르몬을 처리한 가축에게 체질에 맞지 않는 유전자조작 곡물 사료만 집중적으로 먹이는 공장식 축산은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과학축산이 권장하는 사육조건에 뛰어다닐 공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종축장에서 사온 어린 가축은 넓은 공간을 잠시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허락된 시간은 짧다. 무럭무럭 자라 앞뒤와 좌우에 다른 개체들로 꽉 차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 되면, 만원버스에 이리저리 밀리는 러시아워의 승객들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 답답한 돼지는 앞 돼지의 꼬리를 물고 닭은 쫀다. 그래서 입는 상처가 깊으면 진작 처방한 항생제도 소용없이 감염될 수 있고, 질병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공장식 축산은 돼지의 꼬리를 미리 자르고 닭의 부리를 뭉툭하게 자르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런다고 감염이나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어린 가축의 일부가 죽지만 약간의 손실은 어쩔 수 없다. 그뿐인가. 제때 치워지지 않는 배설물로 인한 암모니아 가스가 폐를 파괴하지만 도살장에 넘길 때까지 대부분 살아남을 것이다. 영악한 과학축산은 일찌감치 그리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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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을 철새가 전파한다고? 그런데 철새는 왜 떼로 죽어 자빠지지 않는 걸까. 지극히 일부의 철새가 죽는 것으로 보아 유전적 다양성을 집단 내에 확보하고 있는 철새와 우리 강산의 텃새들은 사람이 그렇듯, 독감 따위에 쉽게 제 생명을 놓는 건 아닌 모양인데, 삼계탕용으로, 통닭용으로 도살장에 일제히 넘겨야 하는 닭, 아니 병아리에게 대개의 독감은 치명적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결여한 개체들로 빼곡하니 양계장에 바이러스가 스며드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퍼질 테니까. 한번 스며든 조류독감이 양계장의 닭을 모조리 죽이는 건 아니다. 더러 끄떡없이 살아 널브러진 사체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를 피하는 대견한 녀석의 모습이 뉴스 화면이 이따금 방영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를 먼저 생각하는 공장식 축산은 안전반경을 정해 그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를 남김없이 살처분한다. 그렇게 면역력을 가질 기회를 차단당한 가금류들은 이듬해 창궐하는 같은 바이러스에 여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조류독감이 이따금 사람을 공격하지만 양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몸을 감염시킨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못한다. 종 특이성이 있기 때문인데, 만일 돼지가 그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매개할 경우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돼지의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사람과 닭의 독감 바이러스까지 수용할 수 있는 돼지의 몸에 들어간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돼지에서 사람으로 옮겨간 뒤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 퍼져나갈 수 있는 까닭이다. 조상의 유전적 다양성을 충실하게 간직한 멧돼지에게 구제역이 쉽게 전파되지 않듯, 돼지독감도 멧돼지를 위협하지 못하는데, 축사 안의 돼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가금류와 달리 감염되어도 증세가 금방 드러나지 않고 독감의 종류에 따라 증세가 미약할 수 있지만 주변의 사람과 가금류를 쉽게 감염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조류독감이 돌면 안전반경 이내의 돼지들도 불문곡직 죽인다. 재작년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의 한 농장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진 신종플루가 그랬을 것이다. 미국계 다국적 축산기업, ‘스미스필드푸드에서 공장식으로 돼지 수백만 마리를 사육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바이러스 외부의 항원이 다양하고 내부 8개 가닥의 RNA 유전자가 환경변화에 따라 현란하게 서열구조를 바꾸는 독감 바이러스는 사람의 첨단의학을 비웃는다. 거듭 개발하는 항생제나 치료제를 차례로 무력화시킨다. DNA 유전자로 구성된 일반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나 빨리 변화하는 까닭에 많은 연구자의 노력으로 어렵사리 개발한 백신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다. 그 사이 유전자가 변했기 때문이다. 다만 가축의 면역이 강하다면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처럼 웬만한 독감을 견디거나 끄떡없을 수 있다. 과거 농촌에 조류독감으로 가금류와 돼지가 떼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없었던 이유의 설명이기도 한데, 공장식 축산을 개발해서 확산시킨 자본은 문제의 근본을 헤아리길 거부한다.

 

공장식 축산이 소비하는 사료의 양은 실로 막대하다. 내장이나 뼈와 같은 도축 부산물도 엄청나다. 공업용으로 값싸게 팔리는 내장과 뼈를 갈아 사료로 준다면 목장주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초식동물인 소는 건강이 악화될 수 있지만 도살할 때까지 살아 있으면 그만이다. 그 결과 광우병이 발생했다. 때늦은 후회로 소 도축 부산물을 소에 주는 행위는 제한되었지만 미국은 잡식동물인 돼지와 닭에게 소 도축 부산물을 준다. 문제는 돼지와 닭 도축 부산물을 초식동물인 소에 준다는 거다.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남는다. 수백 명의 사람과 수백만 마리의 소가 희생된 이후 어떤 도축 부산물도 소에 먹이지 않은 유럽은 소 광우병 발생을 성공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미국의 축사와 도축장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쇠고기는 어떨까. 우린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다.

 

아무리 숨긴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를 먹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법으로 차단하자니 음성화될 터. 이참에 도축을 합법화하자는 목소리가 집요하다. 개 사육은 불법이 아니다. 어떤 법적 규제나 지침이 없으니 도축은 분명히 불법이 아니다. 만일 제도로 합법화한다면 개도 당장 품종개량해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도축할 게 틀림없다. 그리 벼르는 이가 있다. 돼지는 꼬리를, 닭은 부리를 미리 자르는데, 늑대의 후손답게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개는 어떻게 사육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을까. 스트레스 받으면 주위의 약한 개를 다짜고짜 물어 죽이는 개는 요즘 도시 변두리의 사육장에서 자행하듯 고막만 뚫는다고 얌전해지지 않을 텐데. 공장식 축산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는 개에 만연하게 될 질병의 목록 중에 사람도 끔찍하게 감염시키는 광견병이 추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텐데, 도축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는 국제적 망신 따위에 주눅들지 말자고 소비자와 권력자들을 설득하느라 여념이 없다.

 

구제역은 정부의 주장처럼 진정 사람을 감염시키지 못할까. 그 방면 전문가는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감염되지 않겠지만 드물게 감염돼 가벼운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공장식 축산으로 전에 없이 늘어나는 인수공통전염병을 주목한다.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 그리고 광우병이나 광견병만이 아니다. 페스트와 에이즈도 동물에서 왔다. 환경변화에 적응해 다시 나타나는 질병이 전에 없이 강력해지는 현상도 걱정한다. 공장식 축산이 몰고올 인수공통전염병의 병원균을 사람의 의료과학이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지 않은가. 만일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공학으로 인수공통질병을 막겠다고 호언한다면? 우리는 가축을 매개로 사람에게 퍼져나갈 조작된 유전자까지 걱정해야 하는 비극을 추가해야 할지 모른다.

 

 

4

 

구제역 발생이 소강상태로 들어가면서 방역체계의 획기적 개편과 체계적인 예방접종 계획을 밝힌 정부는 허가제를 주축으로 하는 축산업 선진화 기반 구축을 천명했다. 2012년부터 실시할 예정의 허가제는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교육을 마친 대규모 농가에 우선 허가를 내주겠다는 것, 그리고 소규모 농가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축산업 등록제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원칙을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지칭한 대규모 농가는 농가라기보다 사실상 축산자본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결국 지금보다 규모가 큰 축산자본에게 축산업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제까지 검토한 공장식 축산의 문제는 어찌될 것인가. 근본문제를 방치하기보다 부추기는 만큼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킬 수밖에 없을 텐데.

 

적정한 축사 면적을 위해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고 청결 유지를 위해 소독시설과 축산폐수 배출시설을 두어야 하는 우리 축산업 등록제는 위반하면 징역과 상응하는 벌금을 여지없이 부과한다. 따라서 우리 축산업 등록제는 사실상 허가제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수의학 관련 전문가는 허울뿐인 허가제 전환이 아니라, 축산업의 대규모화 및 집중화를 완화하고 지역의 다양한 농장들을 지원함으로써 동물의 건강과 식량안보 및 식품안전을 증진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편 옳은 지적인데, 공장식 축산으로 그 전문가의 조언이 실현될 리 없다. 분명한 것은 허가제든 등록제든, 제도가 불필요했던 시절에는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살처분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위가 왔을 때 씨암탉 잡고 모내기 마치고 돼지 잡으며 마을 잔치 때 소 잡던 시절, 다시 말해 공장식 축산이 없었던 시절에는 요즘과 같은 가축의 질병 창궐과 그에 이은 살처분 같은 불경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근본대책을 세우기 전에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벌어진 구제역 사태는 매뉴얼이나 농민의 탓이 아니라 무능한 정부에 있었다는 한 전문가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이 아무 반성 없이 이어진다면, 숱한 경험을 미루어볼 때,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뿐 아니라 광우병 이상 긴장하게 만들 인수공통전염병이 거듭 창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대안은 더욱 큰 자본을 끌어들이는 공장식 축산일 수 없다. 다시 숱한 경험을 상기해보자. 공장식 축산과 도살이 빚는 추악한 탐욕과 불결한 위생은 가축의 본성을 보장하는 유기축산으로 크게 완화할 수 있다는 거,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모색하는 허가제는 문제를 오히려 증폭시킬 게 틀림없다. 예전처럼 농촌에 살면서 외양간에서 한두 마리 키우는 농가를 적극 지원하지 않는 한,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반복되는 우리 축산업의 문제의 해결에 접근조차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구제역과 광우병 따위로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채식에 자신이 없는 이가 많은 이상,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가축으로 인한 대부분의 질병이 사육하는 이와 고기를 먹는 이가 분리되면서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대안으로 소비자가 직접 가축을 사육하자고 제안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가축을 건강하게 키우는 농가를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지만 2012년부터 추진하려는 정부의 허가제나 강화된 등록제일 수 없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신뢰로 거래하는 협동조합이 현실적 대안일 수 있겠다.

 

한층 더 근본적인 대안은 송곳니가 어금니보다 작은 만큼 고기를 자제하는 식습관이다. 가축의 복지와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유기농 계란과 우유, 지나치게 어린 개체를 제외한 물고기, 남획과 거리가 먼 조개와 오징어 같은 해산 무척추동물까지 포함하는 육식이 채식의 4분의1이 넘지 않는다면 가축과 사람, 그리고 생태계까지 지금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사료로 전용하는 미국산 유전자 조작 옥수수와 감자의 수입도 크게 줄어들어 우리 농촌과 도시의 경제도 그만큼 건강해질 것이다. (, 3, 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