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10. 18. 17:46

뉴스는 온통 1957년 이후 최고의 10월 한파라고 했다. 한강공원의 연인들은 담요를 뒤집어썼고 홍대 근처 주점가의 인파가 경찰과 공무원의 거리두기 단속에 순순히 응했다고 전했다. 건강한 젊은이도 추운 날씨에 밤 10시 넘어까지 거리에 서성이려 하지 않았다고 취재기자가 덧붙였다. 내일도 오늘 못지않게 춥다는데, 20대 마지막 시기를 구가하는 막내는 10시가 넘도록 집에 들어올 기미가 없다.

 

뉴스 진행자는 농작물 냉해를 걱정했다. 설악산은 영하 9도를 기록했다는데, 고랭지에서 주로 재배하는 김장용 배추와 무가 얼어붙는 건 아닐까? 경기도 북쪽에 사는 SNS 친구는 마당에 살얼음이 끼었지만. 해가 떠오르자 녹았다고 귀띔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예년 날씨를 회복한다고 하니 기상 담당 기자의 걱정과 달리 냉해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데, 64년 만의 추위의 기록이 조만간 경신된다면? 장담할 수 없다. 너도나도 다수확 품종만 심는 요즘 고랭지채소는 기상이변에 약하므로.

 

10월 한파를 걱정한 뉴스는 화제를 바꿔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서 수확하는 사과를 보도했다. 환경부는 현재 추세로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금세기 안에 한반도에 사과 재배지가 사라질 거라 예견한 적 있는데, 재배지 상승 소식이 그리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특산물 가능성을 살피는 고성군의 기대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뉴스 화면의 사과나무가 이상하다. 가지가 아니라 줄기에 붉은 사과가 드문드문 붙였다. 어린나무에서 사과를 따려고 육종한 품종이다. 인건비는 아끼겠지만, 나무의 수명은 짧을 것이다. 유전다양성의 폭이 좁으니 기후변화에 속수무책이겠지.

 

카메라 앞에 선 젊은이는 기자의 의도가 보이는 질문에 장단을 맞췄지만, 그다지 추워하지 않았다. 담요로 야외의 쌀쌀함을 견뎠고, 언제든 따뜻한 실내공간으로 피할 수 있지 않은가. 내일도 마찬가지일 거고, 매서운 한겨울에도 근처 실내는 늘 따뜻하다. 두툼한 양가죽과 오리털 외투는 웬만한 바깥 추위는 무시하게 만든다. 오히려 따뜻한 겨울이 걱정이다. 작년과 재작년은 제설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했는데, 올해는 어떨까?

 

사진: 미국 동북부의 한파에 이은 폭설이 만든 모습, 폭설보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이 문제다(사진은 인터넷에서)>

 

뜻하지 않은 더위와 추위가 문제다. 난방이 불필요했던 미국 텍사스에 작년 겨울 한파가 몰아쳐 분수가 얼어붙었다. 부자들은 난방한 공간으로 재빨리 피신했지만, 비용 부담이 어려운 계층은 오돌오돌 떨어야 했다. 2003년 프랑스에 섭씨 42도의 열파가 급습하자 에어컨 없는 주민과 번듯한 직장이 없는 이주민 3만이 사망했다. 최근 45도를 넘나드는 열파에 휩쓸리지만, 2003년처럼 희생되지 않는다. 대피소에 에어컨을 켠다.

 

올해 우리 여름은 몹시 더웠다. 폭염주의보가 30일 넘게 이어지자 전기 사용량이 폭증했다. 사람이야 에어컨으로 폭염을 피했지만, 선풍기에 의존하는 가축이 걱정이었다. 올여름을 넘어서는 폭염이 닥친다면 가축을 다닥다닥 붙여 사육하는 축사마다 에어컨을 가동해야 할지 모른다. 전기 소비가 늘어나는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겠지. 덩달아 기후위기가 심해질 것이 틀림없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걱정이 크다, 급작스러운 기온변화는 유전다양성의 폭이 협소한 농작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다수확을 믿었던 걸까? 지자체장은 농토에 아파트와 공장을 허가했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곡물 기준으로 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입해야 생명을 부지하는데, 우리나라에 주로 수출하는 미국의 기상이변은 심각하다. 경작지의 사막화를 석유로 극복하지만, 한계가 다가온다.

 

1957년 가을, 엉금엉금 기는 아기는 아궁이에 군불 지피는 어머니를 성가시게 했을 것이다. 당시 추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가 64년 만에 10월 추위를 만났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호강은 계속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담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낙타를 탔는데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아들은 제트비행기를 탄다네.” 그 속담은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타야 할 걸세.” 하고 마무리한다. 위기를 맞은 기후변화는 2000년 이후 기상이변의 기록을 거듭 바꾸게 만드는데, 이 땅의 현재 손주들은 10월 한파를 견딜 수 있을까? (지금여기, 2021.10.18.)

 

 
 
 

도시·인천

디딤돌 2021. 9. 10. 10:22

 

기억이 맞는다면 2008년은 더위가 유난히 길었다. 가을이 무르익을 계절로 이어진 무더위는 겨울철새가 찾아오는 11월 중순까지 계속되었다.

 

먹이가 풍부한 아무르 일원에서 여름을 지낸 철새들이 혹한의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무리로 날아와 내려앉는 곳은 우리 갯벌이다. 소금기가 있으니 웬만한 추위에 물이 얼지 않을 뿐 아니라 먹이도 풍부하니, 우리 갯벌은 세계 주요 철새 이동통로와 도래지로 명성이 높다. 인천도 중요한 철새도래지가 분명하지만, 광활했던 갯벌이 거의 사라진 현재, 명성은 퇴색되었다. 맹렬하게 갯벌이 매립되던 2008, 기억을 더듬던 철새는 인천을 잊지 않았다.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는 홍수를 대비해 승기천으로 흘러드는 물을 가득 채우지 않는데, 2008년 무더위는 유수지 가장자리 갯벌에 생기를 떨어뜨렸나 보다. 산소가 스며들지 못하자, 자연의 가장 강력한 독소, 보톡스를 내놓는 보툴리눔 균이 발생했고 번진 상태였다. 시베리아와 아무르 일원에서 쉬지 않고 날아온 철새들은 한국 서해안 갯벌에서 내릴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는데,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철새 무리가 얌전하게 내려앉은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사진: 지낸 해 호주대륙 거의 전역을 휩쓴 산불. 사상 최대 산불로 호주는 캥가루를 비롯해 특유 10억 이상의 자연의 이웃(야생동물)을 잃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생물은 헤아릴 수 조차 없었다.

 

공중에서 본 유수지 철새들은 움직임이 없거나 둔했다. 안심하고 내려간 철새들은 먼저 내린 철새 주변에 구더기들이 떠다니는 걸 보았고 허겁지겁 먹었다, 먹이를 보면 허기가 심해지는 건 비슷한 모양인데, 아뿔싸. 먼저 내린 철새의 옆구리에서 빠져나간 구더기는 보툴리눔 균에 감염되었고 구더기를 먹은 나중에 내린 철새도 감염되고 말았다. 연쇄반응은 11월 중순 지나 찬바람이 일 때까지 계속되었다.

 

균을 정제하면 성형외과에서 주로 처방하는 보톡스를 분리할 수 있다는데, 근육을 일정 기간 마비시키는 보톡스와 달리 보툴리눔 균은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는 철새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 사실을 나중에 파악한 환경단체에서 하필 찬 바람 부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와 주변 갯벌에 모였다. 가을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갯벌에서 꽹과리를 치며 내려앉으려는 철새들을 쫓아내던 회원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얌전하게 떠있던 철새를 구조하려 덥석 안으면 순간 고개를 뚝 떨어뜨려 죽으며 몸에서 구더기가 우수수 쏟아내는 게 아닌가.

 

냉방기를 모르던 캐나다 도시에 올여름 섭씨 49.5도의 폭염이 닥쳤다. 난방이 필요치 않던 텍사스에서 분수가 겨울철에 얼어붙더니 여름에 접어들자 이변이 터진 것이다. 체온보다 10여 도 높은 기온이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도시를 데웠고 감당할 수 없는 산불이 번졌다. 그 사이, 사계절 일정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폭우가 쏟아져 150 이상의 인명이 희생되더니 도쿄올림픽이 진행되던 시기, 터키와 그리스는 체온보다 높은 온도에 헉헉대는 도시를 강력한 산불이 휘감았다. 시베리아는 어땠을까? 미국, 터키, 그리스 피해를 합친 면적의 3배 이상의 산림이 불타고 말았다.

 

1998년 여름, 하루 600mm의 강우로 강화는 깊은 상처를 받았는데, 이후 기상이변이라는 말은 일상으로 다가왔다. “관측이래최고, 또는 최대의 기록을 경신하는 기상이변이 이어진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최고 기상이변이 2000년 이후에 집중된다, 한결같이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기상이변들은 점점 상상을 초월하는데, 우리는 아직 견딜만하다. 올여름 폭염주의보가 30일 넘게 이어졌지만, 냉방기 보급 덕분인지, 희생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예외일까?

 

2008년 보툴리눔 균이 물러난 덕분일까? 그 무렵부터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저어새가 둥지를 틀었다. 오염된 개흙을 긁어모아 쌓아놓은 작은 섬에 둥지를 쳤던 재갈매기가 떠나자 세계적인 멸종위기 저어새가 찾아온 것인데, 해마다 잊지 않고 유수지를 찾아온다. 한때 700마리로 위축된 저어새가 4000마리 이상 늘어난 데, 유수지도 기여했을 텐데, 기나긴 폭염 때문일까? 보툴리눔 균이 다시 창궐했고 저어새와 오리 종류가 수백 마리 죽고 말았다. 관리자의 신속한 대처로 2008년 비극의 재발은 막았다는데, 안심해도 될까? 기상이변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일지 모르는데. (기호일보, 2021.9.10.)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7. 21. 15:55

 

덥다. 열이 많은 몸이라 되도록 뜨거운 낮시간을 피하는데 대지를 식힌 소나기 덕분에 무사히 콘크리트 숲에서 만보를 채웠다. 먼지가 없기에 창문을 열고, 마감 다가오는 원고 쓰려고 책상에 앉았더니 거실에서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밤중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연실 토하는 소리는 굿샷!”이다. 골프에 관심 있는 식구가 없는데 이상하다. 아무도 없는 거실, 야심한 시간이니 텔레비전을 껐다.

 

독일은 커다란 피자를 굽는 프라이팬 위의 달걀부침과 비슷한 데가 있다. 노른자가 도시라면 터진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는 농촌이다. 농촌과 도시는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달걀부침을 넓게 둘러싸는 검은 프라이팬은 숲이다.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가 가득하다. 목재로 유용한 침엽수 가문비나무만 심었더니 병충해를 견디지 못하기에 활엽수 너도밤나무를 고루 섞었다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었다. 그런 독일과 주위의 서유럽에 홍수가 발생했고 200명 가깝게 희생되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독일의 이번 이변은 예견되지 않았다. 2003년 프랑스에 폭염을 부른 기상이변도 예견되지 않았다. 섭씨 50도 가까운 불볕더위로 3만 명이 넘는 프랑스인을 비롯해 7만이 넘는 유럽인이 희생되었다. 주로 낡은 집에 거주하거나 번듯한 직업을 찾지 못한 이민자였지만, 관공서를 중심으로 피난처를 준비한 요즘이라면 비슷한 재난으로 7만 명까지 희생되지 않을지 모른다. 얼마 전, 폭염에 데인 캐나다 서부 지역은 2021년에도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잣집이라도 평소 에어컨이 불필요했으므로

 

올 장마는 길 것으로 기상청이 예견했건만 체감한 시간은 하루에 불과한 듯하다. 그때 뿌린 빗물은 많았는데, 이후 도시는 바싹 말랐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칠갑이 된 도시는 비 내리자마자 흥건하지만 그치면 사막인데, 벌써 며칠째 뜨겁다. 어떤 기상학자는 우리나라의 요즘 더위를 작은 규모의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의심한다. 캐나다보다 미약해도 2018년 폭염보다 심할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도 있다. 형벌 같았던 2018년보다 더하다면 체열 높은 시민은 견딜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말란다. 에어컨 보급이 거의 완벽하단다.

 

사진: 회색 대도시의 여름 실내공간을 시원하게 만드는 에어컨은 실외를 그만큼 뜨겁게 데운다. 그때 필요한 에너지는 지구를 덥힌다. 그 중가가 되는 뒷골목의 에어컨 실외기.(사진은 서울신문 자료실)

 

우리 집과 동네 피난처를 시원하게 하는 에어컨은 지구를 데운다. 적도 지역의 싱가포르를 세계 으뜸의 근면한 국가로 만든 에어컨은 화력발전소가 화석연료를 펑펑 태우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만간 유럽은 수입하는 상품에 탄소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과 중계무역으로 수입을 올리는 싱가포르와 달리 중화학공업 생산물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이 시급할까? 지구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뜨거워지는 이때, 탄소세는 시급한 대책의 시작에 불과하다. 한데 우리는 에어컨을 믿는 걸까? 시시각각 대가오는 가혹한 기상이변의 경고에 도무지 귀를 열지 않는다.

 

체온보다 높은 기온에서 사람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체험하지 않아 모르겠는데, 사육하는 목장마다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목장만이 아니다. 이상적인 기후에 최적화된 작물만 재배하는 논밭과 과수원도 속수무책일 텐데, 에어컨 없이 체온 이상 솟구칠 기상이변을 견딜 가축은 없다. 에어컨이 완벽해도 오래 견딜 수 없다. 실외기가 거리를, 온실가스가 지구를 데우기 때문만이 아니다. 먹을 게 대폭 줄어든다. 화학농업과 기계화에 최적화된 농작물을 거대한 선박이나 항공기로 수출입하는 농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과 같은 지역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이고 국토의 65%가 경사가 심한 산지인 우리나라는 비가 여름 한 철에 집중된다. 숱한 경험과 어느 정도의 대비로 걷잡지 못하는 재난은 피하리라 기대하면서, 불안하다. 이번 서유럽과 캐나다의 폭염은 예외적인 불행에서 그칠까? 생존을 위해 더욱 강력한 재난을 대비하자는 전문가의 목소리는 유럽에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다급한 대책은 식량이다. 갯벌과 논밭을 메워 화석연료 펑펑 태우는 도시를 휘황찬란하게 세운 대한민국에서 미래세대는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 정부와 전문가는 물론이고 언론도 소름 끼치게 걱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니다. 방송국에서 리얼리티 골프 프로그램을 편성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우리의 리얼리티는 머지않아 생존이다. 산록 생태계를 파괴한 자리에 서양 잔디를 평탄하게 깔아놓는 골프장은 재난을 부추긴다. 골프장을 고유 생태계로 환원하거나 석유가 태부족해도 자급이 가능할 농토로 바꾸는 연구가 시급하다. 그런 연구를 소개하며 경각심을 보태는 리얼리티 방송을 보고 싶은데, 꿈인가? 체열 높은 몽상가의 여름밤 목소리는 오늘도 미약하다. 정치와 올림픽 열풍에 비몽사몽 타버리겠지. (지금여기, 202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