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10. 30. 11:59

 

이사하며 슬며시 사라졌지만, 집에 고무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잎이 넓고 두툼해 열대식물이라 짐작했지만, 아름드리로 자라는지 멕시코에서 실체를 보기 전에 몰랐다. 고무 수액이 나오는지 확인하지 않은 고무나무는 거실과 베란다로 옮길 때마다 힘을 쓰게 만들었는데,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에 간신히 살아갈지 모른다. 잎이나 가지를 물에 담그면 뿌리가 내려 여러 그루로 쉽게 늘릴 수 있지만,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고만고만하다. 기후와 토양이 멕시코와 다른 탓이리라.

 

서너 해 전인가? 제주도 선흘곶자왈에 기린과 하마가 거닐 사파리를 조성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계획이 아직 유효한지 확인하지 못했는데, 10월에도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강릉 경포해변을 가면 야자수 50그루가 이색 풍경을 선사한다고 언론이 보도한다. 해송과 어우러지던 해변에 야자수를 심으면 관광객이 탄성을 지르며 몰려들까? 쌀쌀해지면 따뜻한 공간으로 이식할 예정이라고 담당자는 밝혔다는데, 큰 비용이 들어간 실험 조경이 성공할까? 관광객 반응을 살펴보겠다고 밝힌 담당자가 야자수 도입을 경정했을까? 설마. 시장의 독특한 지시가 있었겠지.

 

사진: 경포대 해변을 장식한 야자수. 계절이 바뀌면 온실에 옮겨야 한다. 출처는 인터넷(https://blog.naver.com/hongpal544/222546158012)

 

작년 7, 1500여 논문을 분석한 환경부와 기상청은 사과나무는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추고 감귤은 제주도를 떠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평균 기온이 0.85도 오를 때 1.8도가 오른 우리나라는 2100년이면 4.7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 연구진은 이미 충청도까지 재배지를 넓힌 감귤을 강원도 해안에서 만날 거로 추정했다. 사과와 감귤만이 아니다. 주식인 벼와 감자도 4분의 1 이상 감소한다고 전망하니 우리 음식문화는 장차 자취를 감추는 걸까?

 

위도가 높을수록 온난화가 심하다는데, 한반도 주변의 수온이 세계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한다. 온배수 많은 발전소가 밀집된 영향일지 모른다. 수온 1도 상승하면 태풍 규모가 2배 이상 커지고 횟수도 늘어난다는데, 201092일 새벽, 7호 태풍 곤파스가 강화를 지나 인천을 휩쓸었다. 이례적이었다. 서해안을 관통해 연수구 베란다의 통유리를 산산조각 낸 곤파스는 놀이터에 그늘을 드리워주던 플라타너스를 뿌리째 뽑았다. 그해 5월 새벽, 긴꼬리딱새가 잠시 앉은 나무였다.

 

제 몸의 2배 이상 긴 파란 꼬리를 나풀거리는 긴꼬리딱새는 안경을 쓴 듯, 검은 머리의 하늘색 떼가 선명해 눈길을 끄는 제주도의 여름철새다. 몸이 작고 꼬리가 거추장스러워도 울창한 숲 그늘에서 곤충을 날렵하게 낚아채는 긴꼬리딱새는 꼬리가 짧은 암컷과 붙어 다니는데, 근린공원을 두리번거렸나 보다. 왜 나무가 우거진 곶자왈을 마다했을까? 골프장과 생수 공장이 난립하는 곶자왈은 사람이 번잡하게 드나든다. 한층 온화해진 날씨는 긴꼬리딱새를 경기 북부의 숲으로 안내하는데, 도중에 연수구를 들렸고 낯선 시선에 놀라 달아났을지 모른다.

 

울창한 숲의 나뭇가지 틈에 둥지를 치는 긴꼬리딱새가 나타나면 카메라가 추접스럽게 몰려든다. 조용히 촬영하길 거부하는 자칭 생태작가들은 천적의 시선을 차단하는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 숲을 휑하게 만든다. 알을 품거나 새끼에 먹이 건네는 긴꼬리딱새 부모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생태적인데, 긴꼬리딱새처럼 하얀 눈 테두리가 선명한 동박새도 사정이 비슷하다. 곶자왈과 지리산 남쪽의 숲에서 동백꽃의 꿀을 찾는 연한 녹색의 동박새도 긴꼬리딱새를 따라 경기도 숲에 둥지를 틀자, 카메라가 몰려든다.

 

앙증맞으면서 수려한 남도의 신비롭던 새들이 가까이 다가와 반갑지만, 기쁘지 않다. 숲이 그만큼 위축되고 평균 기온이 올랐다는 의미가 아닌가! 충청도에서 감귤을 재배한다는 사실도 서글프다. 제주도보다 겨울이 쌀쌀해 별도의 보온이 필요할 텐데, 열매는 충분히 매달리는지 궁금하다. 서귀포의 한 비닐하우스는 망고를 재배한다. 인근 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배수를 활용하더라도 난방장치를 추가해야 한다던데, 제주도 이외 지역도 열대과일 재배 면적을 늘린다. 적지 않은 난방 에너지를 감당해도 수익이 나오는 모양이지만, 그런 농사는 기후변화를 부추긴다. 경제성을 따지기 전에 위기로 치닫는 기후부터 살펴야 옳지 않을까?

 

석탄이 모자라 인도와 중국에 전력난이 발생했다고 외신이 보도하는 가운데 천연가스가 풍부한 러시아가 은근히 미소 짓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과 발맞춰 견제하는 호주의 행보에 발끈한 중국이 석탄 수입을 금지하자 전력난이 발생했다는데, 최근 수입을 재개했다는 후문이 돈다. 전력이 원활치 않자 호주에 대한 인민의 분노가 가라앉았는지 모르는데, 인도는 공장 증가로 인한 전력 수요 폭발이 석탄 수급을 초과했고, 전력난이 발생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왜 웃음을 참지 못할까?

 

기후변화는 겨울에 내리던 눈을 비로 바꿨고 빙하가 줄어들면서 북유럽의 담수량이 줄었다. 수력에 의존하던 국가에 전력난을 초래하더니 바람이 약해지면서 서유럽의 풍력발전이 주춤했는데, 이런! 기다렸다는 듯 천연가스의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올 초보다 5배나 상승할 정도라는데,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겠다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을 서두른 유럽이 자초한 혼란이라며 비웃은 모양이다. 석유 운반 트럭의 운전자가 부족하다는 소문으로 영국은 주유소마다 차량이 장사진이었다는데, 생활 습관 개선 없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소문을 소란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잠깐이다. 위기로 다가가는 기후에 대한 유럽의 정책 변화는 확고하다.

 

수출입 선박의 배기가스 규제에 돌입한 국제사회에 호응하는 유럽연합은 2023년부터 철강을 비롯해 화석연료 소비가 과다한 특정 화물에 적지 않은 탄소국경세를 집행하겠다고 선포했다. 준비 없는 상태에서 탄소국경세가 부과되면 우리 철강 수출 기업들은 당장 곤란해지겠지만, 머지않아 대상 목록은 늘어날 것이다. 미국도 동참을 선언한 탄소국경세는 세계 각국으로 퍼질 텐데, 우리는 현재 어떤 대책에 나서나? 2023년은 코앞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시급하게, 그것도 획기적으로 줄일 궁리에 골몰할까?

 

지난 831일 국회는 녹색성장꼬리표를 떼지 못한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켰다. 통과에 앞서 법안 검토에 참여한 학자는 3가지 탄소중립 방안을 제시했지만, 환경단체는 시큰둥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미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얼마 전, 6차 보고서를 발표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탄소중립의 시한을 10년 이상 앞당기라고 각국 정부에 당부했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검토하는 IPCC는 마음이 급한데, 우리 기업은 한가하다. 아니 무모하다. 법안의 탄소중립 목표가 과도하다는 게 아닌가.

 

100여 기업의 의견을 모은 경제인연합회는 경제적 부담과 기술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법안에 산업계 의견수렴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럴까? 탄소중립은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는 멀지 않은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한다. 편의를 배려한 정부가 산업계의 전기요금을 생산가 이하로 책정했더니 우리 기업은 타성에 젖었다. 유럽과 달리 에너지 효율화 연구를 등한시했고 보조금 타령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정부 탓하는 기업보다 자영업자부터 철퇴를 맞는다. 수입 농작물의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닌가.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은 얼마 전, 2020년 이후 태어난 세대의 생존을 걱정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탄소 배출량 감소 약속을 세계 각국이 철석같이 지키더라도 심각한 사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1960년대 출생자보다 7배의 폭염에 노출되고 2배의 산불과 가뭄, 3배의 홍수와 흉작에 시달린다고 예측한 것이다. 탄소를 과소비하며 흥청거린 지 두 세대 만에 위기에 몰린 미래세대는 고통에 휩싸일 텐데, 우리 기업은 이익 추구에 매몰된 셈이다. 이런 와중에 치킨집은 식용유 가격 상승으로 닭을 튀기지 못해 걱정이 태산이다.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고 닭을 사육하는데 필요한 석유의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리라.

 

곧 겨울이니 경포대 야자수를 온실로 옮기겠지? 이제 내년 여름을 기다려야 하나? 더운 여름이 아무리 길어도 겨울이 아직 추우니 뿌리내리지 못하겠지만, 기린이 거닐 선흘곶자왈처럼 경포대의 야자수는 아름다울 수 없다. 철모르고 반길 2020년생 이후의 아기와 그 부모를 차마 마주하지 못할 거 같다. (작은책, 202111)

 

 
 
 

도시·인천

디딤돌 2021. 9. 18. 10:54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으면, 인천 앞바다 인근은 어떻게 바뀔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금의 추세를 돌이키지 못하면 금세기 안에 해수면이 평균 7m 상승할 것으로 추측했다고 환경단체는 주장한다. 만 명 넘는 연구자들이 수십만 편의 기후 관련 논문을 분석하는 IPCC20084차 보고서 이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올해 6차 보고서를 제출했다. IPCC는 단정적으로 예측하지 않는다. 위기의 범위를 발표하는데, 자료가 축적되면서 보고서를 더욱 정밀하게 수정한다. 환경단체는 수정한 IPCC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경고 목소리를 한층 높인다.

 

6차 보고서에서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상승하는 시기를 10년 이상 앞당긴 IPCC는 온난화되는 기후변화가 예측보다 빠르다는 걸 지적했는데, 지난 814일 관측 이래 처음으로 70억 톤의 폭우가 내린 그린란드에 410억 톤의 빙하가 녹았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한반도의 8배가 넘는 그린란드에 평균 1.5km 두께로 덮인 빙하는 크레바스로 녹아내리는 물을 폭포처럼 쏟아내고, 그 물은 빙하 아랫면을 따라 바다로 흘러들 것이다. 아직 그린란드의 빙하는 대지 위에 붙어 있지만, 앞으로 바다로 곤두박질하는 빙하는 풍랑을 일으키며 녹는 속도를 급격히 높일 게 틀림없다.

 

해수면이 7상승하면 인천공항은 사용 가능할까?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항 밖에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하는 제방을 쌓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기온이 상승할수록 거듭 강력해질 태풍이 해일과 쓰나미를 일으키며 제방을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공항만이 아니다. 상하이 푸둥공항, 오사카의 간사이공항처럼 바다를 매립했거나 해안을 차지한 아시아 대도시 인근의 국제공항 대부분이 해수면 아래로 잠길 수밖에 없다. 비행기를 타고 안전한 지역으로 피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그림: 해수면이 7m 상승했을 때 바뀌는 해안선의 예측. 인천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않는다. 송도신도시의 화려함은 신기루임이 드러날 것이다.(사진은 인터넷에서)

 

최근 세계은행은 30년 안에 기후변화가 2억 명이 넘는 이주민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측했다. 그들은 어디로 삶터를 옮겨야 할까? 해수면이 7m 상승하면 상하이를 비롯해 중국 인민이 거주하는 동부 해안은 거의 사라진다. 10억이 넘는 인민을 중국 내부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데, 그린란드 빙하기 모두 녹을 즈음이면 히말라야 빙하는 이미 녹았을 가능성이 크다. 히말라야 빙하에 의존하는 인구는 중국 해안 인민의 수보다 많을 텐데, 그들은 어디로 옮길 거처를 찾아야 할까? 파키스탄 독립할 때 수억 인구가 터전을 옮긴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다.

 

2017년 일본의 유력 정치인 아소 다로는 유사시 10만 명 이상 발생한 한반도의 난민이 일본에 상륙할 때 자위대가 사살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의 400명 가까운 특별기여자 정착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국민이 마음으로 돕는다. 따뜻한 이야기인데, 앞으로 어떨까? 위기로 치달아가는 기후변화는 10만 난민을 가볍게 넘길 텐데. 중국과 인도, 일본과 동남아,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아소 다로의 상상과 달리 중무장한 자위대도 소용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해수면이 7m 상승할 국가의 정부, 그리고 도시는 거의 대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금세기 안이 먼 이후일까? 임기 내에 별문제 없을까? 7m 상승하기 전부터 해안은 재난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큰데, 나 몰라라 방임해도 무방할까? 꼭 짚지 않는 IPCC 과학자들은 자신이 쓴 책에서 위기를 강조한다. 환경단체는 불안하다. 예상보다 빠른 기후위기에도 정부는 느긋하지 않나. 기업은 태평하다.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게 틀림없는 도시의 단체장들은 몸이 달았을까? 중국과 가장 가까운 인천은 어떤가?

 

송도신도시를 바라보는 아파트의 3층에 살지만 공동 사용 공간이 2개 층에 있으니 바닷물이 7m 상승하면 잠기지 않을지 모른다. 강력해질 태풍은 서쪽 송도신도시 고층빌딩을 거푸 부딪쳐도 약해지지 않겠지만, 빌딩 숲을 헤집던 쓰나미가 다가올 즈음, 식구는 옥상으로 대피할 여유는 허용될지 모르겠다. 그런다고 무슨 소용일까? 전기도 물도 식량도 모두 끊어질 텐데. 위기는 코앞인데, 주민들은 태평하다. 프리미엄 상승 소식에 솔깃할 따름이다. (인천in, 202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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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21. 3. 9. 18:29

 

싱가포르 수상 리콴유는 에어컨을 20세기 최고 발명품으로 추켜세웠다는데, 미국 과학한림원은 양변기를 포함한 상하수도 시스템을 인류에 최고 혜택을 준 20세기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한다. 에어컨을 여태 몰랐다면 제주도의 3분의 1인 싱가포르는 느리게 살아가는 어부와 신출귀몰한 말레이 해협의 해적이 출몰하는 적도 지역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고질적 악취와 질병을 도시에서 몰아낸 수세식 양변기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30년 연장했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대소변이 눈앞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게 만드는 상하수도 시스템은 마술이었다. 머리 위에서 느닷없이 쏟아지는 배설물을 막는 얇은 코트와 발에 묻지 않도록 신던 굽 높은 구두가 수세식 양변기를 계기로 유행을 선도하는 장신구로 위상을 바꾸게 되었다. 역시 마술이었는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걷잡을 수 없는 수인성 전염병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 부유한 도시부터 도입했을 것이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는 도시를 뒤덮은 오물과 무관하지 않았다. 벼룩이 달라붙은 쥐들이 거리를 휩쓸 뿐 아니라 크고 작은 개천과 하천이 모두 불결해 옷도 음식이 깨끗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감염병뿐 아니라 피부질환도 흔했을 텐데, 침방울로 전파되는 페스트가 치명적으로 창궐했다. 세균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할 어떤 수단도 없던 당시는 죄가 깊은 탓이라 여겨 기도에 몰두했지만, 소용없었다, 죄를 사해주던 사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의사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십자군 전쟁과 페스트 악몽은 신에 의지하던 사회를 계몽시켜 인류는 드디어 르네상스 시대를 펼치게 되었다고 우리는 배운다. 학문과 기술이 함양되고 신보다 사람에게 합리적인 제도가 유럽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종교 섭리의 족쇄가 풀리면서 자유로워진 연구와 논쟁 덕분에 과학도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오염된 물로 전파되는 병균의 존재는 현미경으로 세포를 1665년 관찰한 로버트 훅 시대에서 한참 지나야 파악할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1930년대에 알았다는데, 희생자가 터무니없이 이어지던 감염병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학이 실생활에 다가온 영향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새삼 확인한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1억 명이 넘는 세계 인구가 감염되고 그중 220만 넘게 희생되었지만, 서광이 보인다. 자본력을 갖춘 초국적 제약회사의 집중 연구로 효능과 안전성을 기대하는 백신이 속속 개발되고, 물량이 모자랄 정도로 접종 중이다. 이제까지 8만의 확진자와 1500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우리나라도 접종을 시작할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놀라운 과학이 감염병을 극복한 역사를 다시금 기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페스트는 왜 하필 14세기 유럽에 무섭게 창궐했을까? 세균 품은 쥐벼룩과 쥐가 도시와 농촌에 돌아다니는 건 14세기 이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비슷했는데, 역사학자는 당시 냉기가 몰아쳐 수확을 건지지 못한 농노들이 굶주리며 도시로 모여들었다고 했다. 배설물과 더불어 쥐와 벼룩이 골목에 널렸을 게 틀림없다. 농촌과 농노가 건강했다면 페스트는 막강한 교회를 무너뜨릴 정도로 창궐하지 못했을지 모르는데, 비슷한 일은 1918년에 반복되었다.

 

1차대전 참호의 젊은 병사 수백만을 희생시킨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는 애초 독성이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유전자가 변했다. 독성과 전파력이 치명적으로 강해지자 당시 세계 인구의 2% 이상 사망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산한다. 부패한 시신이 강에 떠다니자 소스라치게 놀란 인도 농민들은 도시의 슬럼으로 파고들었고, 슬럼에 독감이 번지자 헐벗은 난민 천만 이상이 한꺼번에 사망했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 요즘 아무리 위험한 독감이 창궐해도 1918년 같은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사진: 초등학교의 단체 예방주사의 한 장면. (인터넷 자료)

 

코로나19도 독감처럼 유전자가 쉽게 변하는 RNA 바이러스다. 방역당국은 3, 다시 말해 밀집, 밀폐, 밀접을 피하라고 당부하고 시민들을 대부분 응한다. 정부 지침에 맞게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진정 기미를 보이는데, 감기와 독감 환자가 크게 줄었다. 다른 호흡기 질환도 줄었을 텐데, 사람은 본디 거리를 두고 살지 못한다. 그렇게 진화되지 않았다. 백신이 나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도 접종받을 코로나19 백신의 효능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독감은 6개월 정도라는데, 코로나19는 그 이상일까? 집단면역이 생기려면 얼마나 많은 인구가 얼마나 자주 주사 맞아야 할까?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으면 집단면역은 유지될까? 가능하다면, 꼭 그래야 할까?

 

무증상 감염이 생소해서 그랬는지, 많은 국가에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증상이 없는 젊은이가 면역이 약한 노약자에 전파해 목숨을 잃게 했는데, 이번 백신을 계기로 코로나19가 사그라지길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잦은 변화로 감염성과 독성이 강화될 수 있으니 마음 놓을 수 없다. 백신과 치료제도 개선되어 2019년 중국 우한에서 퍼진 코로나19는 결국 사라질 거라 기대해보자. 하지만 감염병은 계속될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무슨 감염병이 발생할지 누구도 점칠 수 없지만,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한, 걷잡기 어렵게 나타날 가능성은 무척 크다. 과학이 언제나 대처해줄 것인가? 그때마다 사람들은 철저한 거리두기에 동의할까?

 

거대해진 과학은 막대한 자본이 이끈다. 제약회사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신속하게 지원하지 않는다면 과학은 신기술을 개발하지 않을 텐데, 자본은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1930년대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치명적이지 않아 그랬는지 과학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거대 기술과 결합한 요사이 과학은 석유의 지원이 없으면 결과를 내지 못한다. 플라스틱 없이 진단과 처방이 불가능한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사람은 물론, 가축과 농작물에 대한 감염병 백신과 치료제 대부분이 그렇다. 한데 석유는 한계를 보인다. 고갈된다면 더욱 무서워질 감염병에 우리는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에 직면한 우리는 과학에 모든 걸 맡길 수 없다.

 

6번 교향곡 초연에서 혹평받은 차이콥스키는 화를 달래려 벌컥벌컥 마신 냉수로 콜레라에 감염돼 사망했다는데, 유럽에 페스트와 콜레라가 만연할 때 희생자가 거의 없는 지역이 있었다고 한다. 화강암 모래가 강물을 정화하는 곳이었다는데, 우리나라의 하천은 대부분 화강암 모래가 물을 정화하며 흐른다. 그래서 그런지, 페스트도 콜레라도 몰랐다. 대형 댐과 보에 흐름이 막힌 요즘은 아니다. 예로부터 그냥 마셨던 크고 작은 강이 더러워졌다. 오염된 강물을 과학으로 정화하지만, 미덥지 못한지 끓여서 마신다.

 

기후변화가 심할수록 우리는 과학을 생각한다. 하지만 성장과 번영을 앞세우는 과학은 기대를 외면한다. 자본에 의존하는 과학은 지속 가능한 내일을 제시하지 못한다. 어떤 과학이어야 할까? 적도의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에어컨일까? 일찍이 장자는 기계에 의존하려는 마음, 다시 말해 기심(機心)을 경계했다. 기계에 의존할수록 순수성을 잃고 탐욕스럽게 변한다고 지적했다. 일찍이 무지를 극복하도록 이끈 과학은 재앙을 예방하게 했다. 지속 가능한 길을 제시했을 텐데, 그런 과학에 생태적 사유는 물론,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맥락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개발, 발전, 선진국을 추동하는 근대문명은 화석연료 과소비에 이은 기후위기를 심화시켰다. 콘크리트로 고층빌딩을 돋아 올릴수록, 고속도로와 공항이 늘어날수록 물과 공기는 더러워지고 자연은 위축되었다. 생물다양성을 잃고 완충력이 파괴된 생태계는 인간사회에 코로나19를 불러들였다. 찬란한 과학을 거듭 동원하더라도 생태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기상이변과 감염병은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파국을 만난 생태계에서 후손의 삶이 멈추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코로나19가 던지는 묵직한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생존 가능한 내일을 어떻게 열어야 하나? 탐욕이 견인하는 과학은 그 답을 모른다. 21세기의 인류는 제2 코로나와 제2 페스트를 부를 정도로 치명적으로 번영했다. 치명적 무지를 극복하게 할 과학이 다급하다. (작은책, 2021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