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5. 16. 16:18

치킨과 건축자재 가격은 왜 올랐을까?

 

 

1년에 10억 마리 가까운 닭, 아니 치킨을 먹어서 그런가? 가격 인상에 민감해하는 가게가 눈에 띈다. 프랜차이즈는 아닌데, 어쩔 수 없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인상을 선도한 프렌차이즈는 물론이고, 동네 치킨집의 가격 상승의 원인은 무엇일까? 공장 같은 양계장에서 5주 정도 키우는 병아리나 식용유일지 모른다.

 

우크라이나 국기는 맑은 하늘 아래 해바라기꽃이 만개한 들판을 닮았다. 실제 해바라기 주요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푸틴 침략전쟁은 세계의 식용유 대란을 일으켰다고 외신은 전한다. 우리는 콩이나 옥수수를 수입해 식용유를 추출하는데, 무슨 이유로 양판점은 1인당 식용유 1병만 판다는 걸까? 국내 또는 국제 재고가 부족한 걸까?

 

사진: 우크라이나 국기는 파란 하늘 아래 자국의 해바라기 밭의 모습과 비슷하다.(출처는 인터넷)

 

현물 인도 전에 거래하는 식량이나 에너지 같은 선물시장은 소문이 자금 흐름을 좌우하면서 투기가 끼어든다. 전쟁을 빌미로 해바라기와 무관한 식용유 시장에 공급 혼란이 생기는 건 투기 때문인지 파악할 능력은 없지만,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전쟁이나 선물 거래서 식용유 가격 상승 원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콩과 옥수수는 석유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대규모 경작은 불가능하다. 파종에서 수확, 운송에서 보관에 이르기까지 곡물로 얻는 칼로리의 10배 가까운 석유 열량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국제 석유 가격이 상승하면 전쟁과 관계없이 식용유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을 텐데, 식용유만이 아니다. 수입 옥수수와 콩으로 가공한 사료로 얻는 닭고기, 달걀, 쇠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우유 가격도 들먹일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결혼식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친지 자녀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실내장식 업자는 일감이 늘어나 다행이라면서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자재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한다. 전쟁이 빚은 일시적인 현상이길 바라는데, 그가 거론한 상승 폭은 식용유보다 컸다. 전쟁보다 석유 가격의 상승이 원인일지 모른다. 원유 고갈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석유 가격 상승은 일시적일 수 없지 않은가. 에너지 위기가 다가온 셈이다. 파국을 면하려면 에너지 덜 소비하는 방식으로 삶을 바꿔야 할 텐데,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에 나서고 있나?

 

결혼 앞둔 자식에 살던 집을 양도하는 부모는 젊은이 취향의 실내장식을 위해 적지 않은 퇴직금을 내놓아야 했다. 앞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작은 집으로 거처 옮기려는 부모에게 자식이 실내장식 비용 줄이며 함께 살자고 제안하면 어떨까? 해외의 화려한 자재보다 국내 자재로 소박하게 꾸미는 실내장식 업자는 위기를 견디며 살아남을지 모른다. 다소 과장일지라도, 고급 자재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석유 소비가 줄어들며 기후변화가 완화되는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

 

사회가 차분해지면 화려했던 건축계 종사자들은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할 텐데, 무엇이 좋을까? 위기가 현실이 되면 식량과 에너지 분야의 가격은 지금보다 무섭게 춤을 추며 상승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업은 반드시 전환해야 한다. 국가도 건축과 행정의 획기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멀지 않은 조상처럼 제 땅, 적어도 마을에서 농작물을 생산해 자급하는 일상이다. 신기루 같은 경제성장과 선진국 망령에서 벗어나는 정책이다.

 

개발 공약이 난무하던 대통령 선거의 후유증이 남은 상태에서 며칠 지나면 전국은 지방선거 회오리에 빠질 것이다. 전국 광역지자체와 기초자치단체의 단체장과 의원 후보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어도 공약은 분명치 않은데, 분명한 것은 여전히 개발이 대세다. 공항, 철도, 간선도로에서 사업자의 몫인 관광산업까지, 막대한 석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약속이 대부분인데, 기후위기는 물론이고 석유위기도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

 

치킨과 건축자재의 가격 인상은 일시적일 수 없다. 무섭게 치솟는 가격은 새롭게 출범하는 중앙과 지방정부에 새로운 일상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데, 후보들의 관심 밖이다. 코로나19가 주춤하자 시민의 경각심도 무뎌졌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는 코로나19와 차원이 다른 경고를 보낼 텐데, 파국을 외면하는 분위기에서 에너지 낭비에 익숙한 일상과 헤어지는 삶을 상상한다. 늘 그랬듯 허튼일이지만, 미래세대의 생존을 생각하니 중단하기 어렵다. (지금여기, 2022516)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4. 8. 18:33

 

책 읽고 글 쓰는 처지에 짜증스러운 일이 생겼다. 눈이 침침해지더니 돋보기를 써도 컴퓨터 모니터가 흐릿해지는 게 아닌가. 백내장인가? 경험한 친구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고, 수술을 결정했다. 10여 분 참으면 환한 세상을 맞을 거라는 기대에 앞서, 코로나19 간이 검사가 의무였다.

 

운이 좋아 용케 피했건만, 불가항력이었다. 뉴스가 보여주는 물건을 들고 검사실로 들어온 간호사가 따끔합니다.” 예고하더니 콧속 깊숙이 넣은 플라스틱 솔로 비강을 훑었다. 시약병에 플라스틱 솔을 흔들고, 시약을 작은 플라스틱 장치에 부은 뒤 잠시 긴장하자 간호사는 음성을 확인해주었다. 송창식 노래 7곡이 지나갈 즈음 수술은 끝났는데, 불편한 순간에 플라스틱을 생각했다. 플라스틱 없던 시절에도 백내장 수술을 했을 텐데, 그때 코로나19가 창궐했다면 어떨 뻔했을까?

 

플라스틱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비강을 긁어낼까? 살균한 면봉은 효과가 떨어질 것이다. 시약은 작은 유리병에 담고 소독한 코르크로 닫을까? 음성 여부는 종이필터에 표시할까? 비용이 적지 않을 테고, 검사는 오래 걸릴 듯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도 방역당국은 막아낼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발달한 과학과 빠른 운송 수단 이외에 믿는 구석은 더 있을 터! 플라스틱 주사기가 아닐까? 예전처럼 유리 주사기를 사용한다면 광범위한 접종은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1960년대 엄마 심부름으로 두부 사러 가면 가게 주인은 신문지에 싸주었고, 꼬맹이는 조심스레 들어야 했지만, 마트는 깨끗한 플라스틱 박스에 밀봉해서 판다. 플라스틱 아니라면 두부는 물론, 새벽 밀키트를 택배로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참에 라떼한 잔 마셔보자. 어렸을 때 이야기다. 비싼 장식품이 아니라면, 바가지는 필수 가재도구였다. 1960년대, 크고 작은 박이 초가지붕에 주렁주렁 늘어졌던 풍경화는 아련하지만, 잘 익은 박을 반으로 자른 바가지는 요긴했다. 부엌 바가지가 깨지면 어머니는 듬성듬성 무명실로 꿰매 등목 사워기로 썼다. 꿰맨 틈으로 쏟아지는 물줄기는 무척 시원했다.

 

나무를 깎거나 풀을 엮어 만든 물건은 요즘 플라스틱이 대신한다. 신분 상승한 공예품과 달리 플라스틱 물건이 펼치는 생활은 편리할 뿐 아니라 다채롭다. 어머니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나오자마자 깨지지 않은 바가지까지 손절했는데, 석유 덕분이다. 겨울철 북풍한설을 막아주는 창틀은 플라스틱이기에 가능하다. 옷도 집도 자동차도 플라스틱 없으면 만들 수 없다. 종량제 봉투는 비닐인데,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한도 끝도 없이 유용한 플라스틱은 화석연료다. 화석연료의 경이로운 변신술이 어느새 우리 삶을 지배한다.

 

생활을 지배하는 플라스틱

 

오래 쓴 물건은 예외 없이 망가진다. 새 물건이 나오는 순간 싫증이 나는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은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지구촌 곳곳의 쓰레기장에 플라스틱이 넘친다. 내버리는 플라스틱이 이토록 넘칠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는데, 사람 손에서 마당을 지나 강과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은 오대양마다 한반도 넓이의 위용을 드러낸다.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옳을까? 태우는 게 속 편한데, 온실가스뿐 아니라 해로운 가스가 나온다니 해결책에서 제외된다.

 

다행히 플라스틱은 재활용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구석마다 더미로 쌓인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가 어딘가로 실려가는 게 그 증거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얼마나 될까? 자료를 들여다보지 않아 모르는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오대양 이외에 바닷가로 밀려온 고래 사체에 많다. 여간해서 끊어지지 않은 플라스틱 그물을 펼치는 어선이 물고기를 싹 잡아들이자 고래는 먹을 게 부족해졌다. 커다란 강 하구에 흔전만전했던 물고기는 댐과 대형 보가 강물을 가로막자 자취를 감췄다. 대신 도시와 공장의 오·폐수와 뒤엉킨 폐비닐이 바다로 쏟아지면서 고래는 배고파졌다. 해파리라도 먹어야 한다.

 

그림: 바다로 나간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그림. (출처는 인터넷)

 

리아스식 해안의 천혜 산란터마저 워터프론트로 휘황찬란하게 바뀌면서 남은 물고기들이 떠났다. 워터프론트의 회식당과 거래하는 양식장이 들어서니 없던 해파리가 나타났다. 양식장에 오물이 넘칠 뿐 아니라 수온이 오르지 않던가. 평소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해파리마저 놓치면 허기진 몸 달랠 길 없는데, 저 고래가 분홍 해파리에 호기심을 보인다. 먼저 헤엄쳐 낚아챘는데, 이런! 라면 봉투다. 배가 더 고파진다. 정신이 혼미한데, 저기 하얀 해파리가 다가온다. 덩치가 괜찮아 서둘러 삼켰는데, 파도에 흐느적거리는 비닐봉지였다.

 

바다에 나풀대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햇볕에 가루로 부서진다. 그런다고 썩는 건 아니다. 심해로 우유처럼 쏟아져 내려가는 플라스틱 가루는 나중에 퇴적암처럼 단단해질까? 알 수 없는데, 그래서 문제다. 30억 년 넘게 이어온 생태계 순환이 차단된다.

 

4억 년 전? 바다에 살던 생물이 육지로 오를 때, 공기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없을 게 틀림없다. 먼지가 세포막을 통과하는 환경에서 생물이 살아갈 수 없으니 바다에 남았겠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4억 년 동안 없었던 플라스틱이 먹이에 섞이니 피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알을 깨고 나온 치어는 해양 생태계의 기반이다. 커다란 물고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시작인데, 치어는 플랑크톤을 먹으며 자란다. 그중 동물성이 있다. 동물성플랑크톤은 세포막을 부풀려 몸속에 식물성플랑크톤을 끌어들이며 먹는데, 플라스틱도 들어온다. 플랑크톤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마이크로플라스틱이 늘어나면서 치어의 몸에 쌓인다. 치어를 먹는 물고기에 들어간 마이크로플라스틱은 큰 물고기로 들어가고, 큰 물고기를 먹는 사람의 몸에 어김없이 들어간다.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닌다.

 

화석연료가 만드는 아주 작은 먼지는 마이크로플라스틱만이 아니다. 자동차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부딪혀 갈리며 퍼뜨리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거리를 더럽힌다. 머리카락 두께의 5분의 1 이하인 미세먼지는 눈에 띄지 않는데 미세먼지의 5분의 1에 불과한 초미세먼지는 세포막을 통과한다. 낡은 트럭이나 승용차가 경유 태우면서 쏟아내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한술 더 뜬다. 보행자의 코 높이에서 호흡기를 위협한다.

 

문제는 화력발전이다. 발전소 굴뚝으로 내뿜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실로 막대하다. 화력발전소는 석탄을 가루로 부수어 태우니 재가 밀가루처럼 나오는데, 대부분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한다. 굴뚝으로 나오는 초미세먼지가 통제할 수 없는 걱정거리다. 배출가스가 나오며 차가운 공기의 작은 물질과 결합하므로 걸러낼 방법이 없다. 깨끗하다고 믿는 천연가스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석탄 못지않은 초미세먼지를 내뿜는데, 온몸을 돌아다닐 자격을 가졌다.

 

석탄으로 난방할 때의 미세먼지는 걷잡을 수 없다. 서민의 석탄 난방을 막지 못하는 중국에서 편서풍 타고 넘어오는 먼지는 속수무책이다. 중국이 천연가스나 전기 난방으로 바꾸면 줄어들까?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한다면 효과가 낮을 것이다. 우리나라 겨울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대부분 중국발일까? 조사하니 아니란다.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먼지가 더 많다고 연구 결과가 밝혔다. 일주일에 플라스틱을 신용카드 한 장만큼 먹는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는데, 생태계는 어쩌나? 생태계마저 무너지면 사람은 버틸 재간이 없는데.

 

이산화탄소를 고정한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썩지 않아서 탈이라고 말한다. 서해안 섬을 해안으로 걸어보라. 육지에서 떠내려온 온갖 플라스틱은 물론이고 양식장에서 나온 스티로폼이 아무렇게 뒹군다. 양식장 오물이 찌들어 거무튀튀하거나 파도에 부서진 채 바위틈에 틀어박혔다. 섬을 지키는 노인 지원하는 자금으로 주기적으로 치우지만, 감당하기 버겁다. 아주 머나먼 미래, 플라스틱이 두텁게 매립된 지층에 새로운 생물이 나타나 말끔히 분해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어떤 생물도 분해하지 않는다.

 

플라스틱을 태우면 석유 못지않은 열을 내놓는다. 장차 어떤 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하며 그 열을 칼로리로 활용할지 모르지만, 이렇다 할 생물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원유를 분해하는 미생물 이외에 없는데, 아닌가? 최근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찾았다는 과학자의 보고가 잇따른다. 2016년 일본 쓰레기 매립장에서 6주에 페트병 하나를 완전히 분해하는 미생물을 확인했다는데, 관련 유전자를 조작해 분해 속도를 개선한 미생물을 만들어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먹구름 속의 한 줄기 빛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썩는다는 건 생태계에서 미생물이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한다는 의미다. 플라스틱을 음식쓰레기처럼 분해할 수 있으면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다. 그 과정에 어떤 냄새를 풍길지 모르지만, 식물이 흡수해 생태계 순환에 이바지한다면 반길만한데, 얼마나 가능할까? 우유나 곡물을 발효시켜 치즈나 알코올을 추출하듯 부산물을 남길지 모르는데, 해롭지 않을까? 획기적인 연구로 연간 4억 톤 가까운 플라스틱을 유용하게 처리할까?

 

괜스레 반갑지 않다. 기후위기가 만만하지 않다. 평균온도가 섭씨 1.5도 이상 상승하는 걸 막으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기후 과학자들이 최근 탄소중립 시기를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다. 현재가 아니라 1990년이 기준인데, 기준보다 이미 1.1도가 상승했다. 20년 이내에 0.4도 이상의 상승을 막아야만 한다.

 

환경운동가는 마음이 급하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와 화력발전소를 당장 모두 정지해야 희망이 보인다며 화석연료 사용 자제를 절박하게 호소한다. 플라스틱도 화석연료다. 해마다 3억 톤의 플라스틱을 생명공학으로 효율화 극대화한 미생물이 완전히 분해하면 장차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탄소중립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기상이변과 해수면 상승은 기후 과학자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을 게 틀림없다.

 

플라스틱 없어 행복한 내일

 

플라스틱이 유용하든 쓰레기로 넘치든, 이산화탄소를 붙잡은 상태다. 탄소중립이 긴박한 이때 플라스틱 생산을 억제하지 않으며 분해에 열광하는 건 위험하다. 재활용은 의미가 있지만,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은 필수다. 최소화해야 한다. 재활용보다 재사용이 중요하고, 플라스틱 생산을 자제해야 옳은데, 무엇보다 삶 깊숙이 들어온 플라스틱에서 멀어지는 생활방식을 찾아야 한다.

 

에어컨과 보일러에 익숙한 처지라도 찾아보자. 나무와 풀로 만든 물건은 잘 부서지지만, 누구나 고친다. 벌어진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차갑게 들어와도 솜 누빈 옷으로 조상은 견뎠다. 덩치 커진 우리가 못할까? 화석연료는 2005년 고갈을 이미 예고했다. 그렇더라도 유용하기 짝이 없는 플라스틱을 모조리 포기할 수 없다. 엄선한 물건으로 한정해야 할 텐데, 그 전에 우리는 일상을 바꿔야 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기 전에 생활을 바꾸지 못하면 생태계는 붕괴를 면할 수 없다.

 

화석연료와 플라스틱이 사라지면 핸드폰마저 사라질 테니 불행해질까?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속절없이 희생될까? 다시 생각해보자. 플라스틱이 일상에 없었다면 화석연료 소비가 지금 같지 않을 테니, 코로나19는 팬데믹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에서 치유했을 것이다. 자급자족하는 마을에서 이웃이 살가워지면 승용차 이동이 크게 줄어들고 핸드폰은 없어도 그만이겠지. 잠시 불편해지겠지만, 건강한 생태계가 드넓어질 것이다. 눈이 침침해지면? 책을 놓고 다정한 이웃과 편안한 여생을 누리지 않을까?

 

플라스틱을 줄이려면 화석연료 소비와 더불어 경제성장을 포기해야 한다. 행복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경제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미치광이이거나 경제학자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가진 돈이 많아야 행복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무엇을 할까? 선물을 전하면 어떨까? 선물은 받을 때 행복하다. 하지만 받을 때보다 전할 때 훨씬 행복하다. 다정한 친구와 이웃이 곁에 있을 때 행복하다. 생존이 위험해지는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행복할까? 흔쾌히 불편해지는 삶, 플라스틱 없는 삶은 어떨까? (Thinker, 유네스코제주, 2021년 2월호, 8-12쪽.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4. 2. 22:02

 

2021년 반환된 인천의 마지막 미군 부대는 이 시간, 공원으로 탈 바꾸려는 꿈을 실현하는 중이다. 일본군이 점유한 치외법권 지대는 광복 이후 미군이 차지했지만, 80년 지나서 시민의 품에 돌아왔다. 시민 의견을 묻지 않고 외국군에 내준 금단의 땅에 들어가 보았다. 낡고 볼품없는 막사 사이에 아름드리로 성장한 양버즘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보전하려나? 수치스러운 역사도 역사다. 시민 의견을 반영해 보전 가치가 있는 건축물은 남기겠다고 인천시는 약속했는데, 어떤 모습으로 개과천선할까?

 

미군 부대에 납품할 빵을 굽던 부평 캠프 마켓 터에서 지금도 시민 출입을 한사코 막는 곳이 있다. 다이옥신을 비롯한 화학물질로 오염되었다는데, 원인은 모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정화는 미군의 몫이 아니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미국 부대가 마찬가지라는데, 시민단체의 항변을 무시하고 오염 상태로 인수한 주둔지는 미군 부대만이 아닐 것이다. 확장된 도시에서 떠나는 우리 군부대도 정화가 필요하지만, 국방부는 비용을 떠맡지 않았다. 장차 통일되거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남북한의 군부대가 크게 줄어도 사정이 비슷할지 모른다.

 

주둔하던 군부대의 오염은 사소할지 모른다. 고엽제 피해가 대를 잇는 베트남을 보라. 전쟁 참화는 얼마나 끔찍할까? 60년 이상 출입을 제한하는 비무장지대는 겉보기 멀쩡하지만, 땅속 유골은 처참했던 전쟁을 생생히 기억한다. 두 세대 지나서 한 구, 한 구, 발굴할 때 주위 생태계의 훼손을 최소화해야 할 텐데, 전쟁으로 파괴된 자연은 여간해서 회복되지 못한다. 젊은이 희생과 생태계 파괴를 막으려면 어떠한 전쟁도 되풀이되면 안 된다.

 

명분이야 어떻든, 푸틴 대통령이 일으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말 많고 탈도 많던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길 기다린 걸까? 러시아 기갑부대는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농경지를 일거에 짓밟았다. 그 뒤 며칠, 쉽게 점령할 거라 믿은 러시아의 탱크와 장갑차는 눈 덮인 대지에 볼썽사나운 고철로 나뒹군다. 훈련이라 여기고 탱크에 탄 러시아의 어린 병사들은 목숨을 잃었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처절하게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군인과 시민은 봄볕 받은 벌판이 심각하게 오염되는 모습에 분통 터질 게 틀림없다. 전쟁이 아니라면 곧 씨앗 뿌릴 곡창지대가 아닌가.

 

군 시설이 표적이라던 러시아 미사일은 주택과 병원, 심지어 어린이 시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파괴한 군 시절에 석유 저장탱크와 천연가스 배관도 포함되었다. 석유와 가스는 군대만 사용하는 에너지가 아니지만, 미사일을 맞은 시설은 시뻘건 불길을 허공에 하염없이 내뿜었다.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대기로 배출되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방의 군수물자가 지원된다고 종군기자가 전한다. 양측의 무기는 연실 불을 뿜고, 인명이 어처구니없게 희생될 것이다. 그뿐인가? 도시와 농촌은 폐허와 황무지로 변할 것이다. 와중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낭비될까? 전쟁이 끝나도 걱정은 남는다. 복구하며 동원할 막대한 에너지는 전쟁 아니라면 불필요했다.

 

국제적 비난과 자국 젊은이의 희생을 걷잡지 못하자 푸틴은 은근히 핵무기 사용을 떠보았다. 제정신인가? 이 글이 인쇄될 즈음, 설마 사용한 건 아니겠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으름장이겠지? 언어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를 상당히 공유하는 우크라이나만 아니라 러시아까지 파국에 빠뜨릴 무기가 아닌가. 핵폭탄을 진정 터뜨린다면? 무고한 생명을 숱하게 해친 푸틴은 세상에 남을 가치를 잃을 것이다. 희생은 사람에서 그치지 않는다. 폭심을 중심으로 생태계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한다. 세계가 핵전쟁에 휘말린다면? 기후위기가 예고하는 파국은 바싹 당겨질 수밖에 없다.

 

사진: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참략 전쟁의 참혹함. (사진인 인터넷에서)

 

전파력 강한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가 창궐을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지상군 전투는 치명성을 높일 수 있다. RNA 유전자를 가진 코로나19는 변이가 특히 심하다. 화약이 터지며 먼지에 휩싸이는 전장의 환경은 바이러스의 변이를 촉발할 것이다.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8, 독성이 미약하던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치명적으로 돌변해 급격히 퍼졌고, 당시 세계 인구의 적어도 2%, 5천만 명 이상 목숨을 잃어야 했다. 3.1운동을 준비한 우리나라도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번 전쟁에서 무사히 지나갈까? 두세 종류의 변이 유전자가 한 사람의 몸에 침투한다면, 지극히 위험한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후 어떤 변이가 무섭게 창궐할지 누구도 점치지 못한다.

 

1권력에서 히로세 다카시는 두 가지 이상의 증서를 제시하면서 전쟁의 원인을 탐구했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근대 이후 전쟁 대부분은 은행이 부추겼다고 주장하면서 기득권의 더러운 탐욕을 주목했다. 주장의 진위를 판별할 능력은 없는데, 분명한 것은, 나중에 양해되는 전쟁의 명분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리라. 푸틴이 일으킨 전쟁도 마찬가지다. 히로세 다카시가 지적한 더러운 탐욕이 원인일지 모르는데, 인류 멸종을 염려하게 만든 기후위기 시대에 전쟁은 전혀 가당치 않다. 푸틴은 당장 도발을 멈추고 탐욕이 빚은 갈등 상황을 서둘러 돌이켜야 한다.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역사를 주도하려면, 힘을 가져야 한다.”라는 취지로 연설하면서, 김구 선생이 바라던 문화의 힘을 소환했다. 세계 6위의 군사력과 세계를 선도하는 소프트파워를 성취한 국가라고 벅차게 확인하면서, 선조의 희생과 헌신이 있어서 평화를 누릴 군사력과 세계인의 부러움 받는 문화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평화가 이어졌기에 가능한 성과라는데 동의하면서, 우리는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사실을 새롭게 추가해야 한다. 그를 위해 우리나라도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했다. 기후위기에 적지 않게 일조한 것이다.

 

힘으로 평화가 보장될까? 우크라이나는 힘이 부족했던 걸까? 군사력이 엇비슷하다면 푸틴은 엄두 내지 못했겠지만, 러시아만큼 군사력을 키워야 했을까? 더러운 탐욕이 원인 아니겠는가. 오랜 세월 전쟁이 끊이지 않던 유럽에서, 작은 국가들이 누리는 요사이 평화는 군사력과 무관하다. 숱한 역사를 돌이켜보자. 군사력이 강한 국가는 지배자의 탐욕을 어떻게 해결하려 도발했던가? 1권력은 전쟁을 부추겨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은행을 고발했는데, 정작 전쟁은 군사력이 추동했다. 갈등과 탐욕은 군사력으로 억제할 수 없다. 상호 존중하는 평화가 문화로 정착될 때 평화는 비로소 깃든다.

 

요한 갈퉁은 평화를 전쟁이 없는 상태로 해석하지 않았다. 폭력을 배제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를 염원했다. 푸틴은 탐욕을 채우려 침략했지만, 부당한 전쟁이다. 전쟁은 갈등을 키울 뿐이다. 큰 문제는 기후위기가 더욱 심각해질 거라는 사실이다. 미래세대와 생태계에 미칠 위기를 전쟁은 악화시킨다.

 

최근 6기후위기 평가보고서를 펴낸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협의체(IPCC)’는 현 추세의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하지 못하면 50년 안에 지구촌 평균 기온이 섭씨 2에서 3도 상승할 거로 예측했다. 축적된 연구를 바탕으로, 7억 이상의 기아 인구가 발생하리라 주장했는데, 그 시한은 2030년이다. 10년도 남지 않았다. 온실가스 발생을 당장 멈추더라도 기온 상승을 당분간 막을 수 없다는데, 전쟁은 위기를 최악으로 증폭한다. 군사력은 해결책이 아니다. 갈등 없는 적극적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

 

석유종말 시계의 저자 크리스토퍼 스타이너는 석유 위기 시대의 평화를 긍정적으로 상상했다. 갤런 당 2달러일 때 마구 소비하던 석유였는데, 바닥을 드러내면서 가격이 치솟는다. 갤런 당 20달러로 상승한다면? 크리스토퍼 스타이너는 전투기와 함정을 도저히 띄울 수 없는 상황을 예상했다. 지구촌에 평화가 깃들 수밖에 없다는 거였는데, 언제 그런 평화가 다가올까? 에너지 위기를 그전까지 평화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갈등이 심각해질 텐데, 그때까지 인간은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국가 사이의 갈등만이 아니다. 생존이 위태로워질 미래세대와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생태계의 숱한 생물에 닥친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평화는 깃들지 못한다. 푸틴은 거기까지 생각했을 리 없다. (작은책, 2022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