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1. 31. 12:12

 

2012년은 계사년. 검은 용의 해였다. 검은 용은 맑고 깊은 호수에 머물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테니 풍년이 깃들 것이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아무리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처참해도 쌀만은 자급했는데 작년에는 그마저 모자랐다. 인간이 곁에 오기 한참 전부터 유장했던 4대강의 흐름이 대형 보로 가로막히며 썩은데 그 원인이 있었는지, 지리멸렬하는 농업을 일으키리라 믿었던 2012년 검은 용은 통 힘을 쓰지 못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를 농업에 적용한다면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가격은 높아야 옳다. 쌀을 포함해도 국내 생산되는 농작물이 소비량의 4분의1에 지나지 않은 현실이므로. 한데 농민의 평균 소득은 갈수록 도시인과 격차가 벌어진다. 모자라는 농작물을 해외에서 싼 가격으로 대량 수입하기 때문이라는 거, 물론 모르는 이 없다. 소비보다 절대량이 부족한 현실에서 농민의 소득을 위해 수입을 자제할 수 없겠지만, 희생적으로 수고한 농민의 소득을 노동의 대가 이상 보장하면서 수입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농산물 수입업자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부라 해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닐 텐데, 농민은 여전히 소외되기만 한다.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라는 2013년 뱀의 해를 맞아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더욱 참담해지는 농촌에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최근 농업 관련 정부 투자기관의 장이 한 지방신문의 지면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 농촌에 날렸다. 3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우리 반도체와 조선도 세계 1등인데 5천년 역사를 가진 농업이 세계 1등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큰소리를 친 그는 기대에 찬 청사진을 숨 가쁘게 펼쳐 놓았다. 농업이 정보와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이 융복합된 산업이라고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농업이 희망 있는 산업으로 변모하는 선진국을 직시하며 패배주의에서 빠져나와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자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세계 1등 농업을 위해 인식 전환을 농민에게 요구했는데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농민은 우리 농촌에 시방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그가 염두에 둔 농촌은 어디이고 농민은 누구일까.


글로벌 농업 경쟁력 시대에 걸맞게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선택될 수 있는 농산물을 수출하자는 그는 우리나라의 녹색혁명을 해외가 인정하는 성공 사례로 들었다. 그런가? 금시초문인데, 이상스럽게 식량자급을 통해 얻은 과실이 건설과 조선과 중화학과 같은 2차와 3차 산업 발전의 터전이 되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우리나라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그는 우리나라가 지금 식량을 자급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통계를 읽지 못하는 바보거나 거짓말쟁이라는 겐가. 그가 농업관련 정부 투자기관의 장이라는 게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인식은 기능성 식품과 의학 소재들을 농촌에서 생산하면 큰돈을 벌 것으로 주장하는 데로 이어진다. 누가? 농민 등치는 자본이 아니라, 현재 우리 농촌의 농민이?


딱하게도 그는 농업의 소명을 근본에서 망각한다. 식량 자급도 못하는 주제에 고부가가치 농작물의 수출을 이야기하는 공직자는 우리 농촌과 소비자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겨우 버티는 이 땅의 농민들이 그가 요구한 대로 인식을 전환할 수 있겠는가. 그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수용하려면 농촌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 복잡하고 값비싼 기계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용만이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농민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성도 추가로 요구될 것이다. 그리 정교하게 생산한 농작물은 당연히 수출용일 테고, 돈벌이를 최우선 목적으로 할 텐데, 무슨 근거로 그런 농작물이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우리보다 석유 가격이 저렴하고 경작할 땅도 넓으며 인력과 자본력이 우수한 국가를 이길 수 있다는 겐가.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선동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무모하기보다 무책임하다.


우리는 기능성 식품이나 의학 소재를 먹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앞으로도 생명체인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산다. 물론 반찬도 먹는다. 그를 위해 우리 땅에서 생산하는 농작물은 밥과 반찬에 우선되어야 한다. 기능성이나 의학 소재는 자급 이후에 자본이 고려할 사항일 뿐이어야 한다. 그는 더욱 중요한 점을 망각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은 소비량의 4분의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먹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세계 식량위기가 다가온다는데, 그 물량을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가. 우리 농촌의 요즘 인력은 대부분 노인이다. 귀농인구가 없지 않지만 농촌은 절대 인구가 부족하다. 그뿐인가. 경작지는 온갖 개발로 줄어들기만 한다. 일부 유기농업을 제외하고 농민들은 농기계와 화학비료와 농약 지원 없이 경작을 못하는데, 2005년 이후 세계 석유 생산량은 생산량이 소비량을 밑 돌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농업용 석유의 가격도 이미 치솟았고,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듯 자급은커녕 버티기도 힘겨운 우리 농촌이건만 누구 좋으라고, 또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신성장동력 운운하는가.


내 땅에서 유기농업으로 생산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농작물은 차라리 석유다. 양을 늘리려 했든 질을 높이려 했든, 농작물에서 얻는 칼로리보다 최소한 10배 이상의 칼로리에 해당하는 석유를 퍼붓지 않으면 녹색혁명이 유도한 농작물일수록 기대하는 소출은 내놓지 않는다. 수입하는 농작물은 석유 의존도 훨씬 심하다. 그러므로 석유 가격이 오르면 농작물의 경작 비용은 그만큼 추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자 농사용 빌딩에 LED 조명을 비추며 36524시간 수경재배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농작물의 균형 잡힌 영양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예서 따지지 않더라도, 그런 농업은 더욱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겠나. 그 농작물이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을 정부에서 듬뿍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부가가치나 세계 1등과 같은 근거 없는 신기루로 농민들 현혹시킬 때가 아니다. 세계 농작물의 가격이 치솟은 작년, 4대강 사업으로 우리 4대 강가의 경작지가 망가졌을 때, 농업용수가 오염된 우리와 다른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농작물 수출국에 가뭄이 왔다.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로 더욱 극심해지는 가뭄은 식량주권이 그만큼 시급해졌다는 걸 경고한다. 식량이 모자라는 국가는 우리뿐이 아니다. 세계 최대 인구인 중국도 식량 순수입국이다. 지구온난화가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4대강의 재자연화는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어떤 대책이 절박한가. 수출 위주의 농업 신성장동력인가.


     농경지보다 높은 칼로리의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었던 갯벌과 알량하게 남은 경작지마저 개발돼 사라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내일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 농업의 대책을 근본에서 세워야 한다. 피폐한 이 나라의 농업은 무책임한 관료의 말장난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농촌과 농민의 소득은 물론, 자존심까지 살릴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경작지의 무모한 개발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량 증산을 위하 농경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실패한 개발용지와 파산한 골프장을 농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거나 자투리땅까지 활용할 수 있는 도시농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기농업으로 자급하려는 젊은 농민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농업은 후손까지 생각하는 내 땅의 생명산업이지 다른 국가를 물리칠 수출 산업이 아니다. (지금여기, 2013.1.29)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7. 11. 15:08

 

최근 농촌진흥청을 방문한 농식품부 장관이 패배감에 젖어있지 말고 농업을 2~3차 가공마케팅서비스산업이 결합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자 강조했다고 한 언론이 전했다. 올봄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바이오 농업 시대가 다가오면서 농업은 유망한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방송한 대통령 뒤를 이은 장관의 이번 발언은 진정성이 없는 원칙에 불과하다고 참석자의 혹평을 받은 모양이다.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21세기 농업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관광과 체험, 레저, 예술이 결합된 복합문화산업이자 지식기반산업이므로 농민과 협력해 도시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은 중국 농산물이 대량 수입돼 우리 농업이 위협 받고 있다고들 하는 현 시점이 새로운 기회라고 운을 떼고, “고소득층이 날로 늘어나는 중국이 고부가가치인 우리나라 유기농 농수산식품을 수입할 것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한데, 과연 그럴까. 또 그리 되는 게, 이 땅의 농촌과 농민에게 보람으로 이어질까.

 

대통령의 인식이 그 수준이니 장관도 그 모양일 텐데, 생각해보자. 거의 성사 단계에 있는 미국과 EU에 이어 중국과 FTA를 구상하는 현실에서 우리 농촌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우리 식량자급률은 26퍼센트를 밑돌 정도로 열악한데, 수출이라니.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운운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렵사리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중국의 부자들에 팔아 돈벌이에 나서라니. 정부가 판로를 이미 개척이라도 한 걸까. 세계적 식량위기 시대를 목전에 두고 투기를 일삼으라는 건가. 대통령은 유전자조작도 농약만 배제하면 유기농산물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제 땅에서 소비되어야 한다는 유기농 원칙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형용모순인 녹색성장을 주억거리는 청와대와 정부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산업을 도입하고 생활습관도 그에 걸맞게 바꾸기 위해 한여름 관공서와 공공시설의 냉방온도를 섭씨26도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근본과 거리가 있는 조치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농산물 수출을 언급하며 신성장동력을 운운하는데 기가차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논밭을 돈벌이를 위한 시설농업단지로 바꾸는 것도 걱정스런 일인데 아예 도시와 도로로 없애버리면서 뭐? 수출하라고? 내 나라 내 땅에서 재배하는 우수 농작물을 우리가 먹으면 큰 손실이라도 생긴다는 겐가.

 

개정된 농협법의 핵심은 금융 분야와 농업 분야를 분리해 유통을 비롯한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본 대통령은 농협이 유통과 판매를 책임져 중간 단계를 줄이게 되면 농민은 제값을 받을 수가 있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농산물 수급을 안정시켜 물가 불안을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는데, 그 말에 수긍할 농민과 소비자, 심지어 농협 관련자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협동조합이 농협인데, 생산과 판매를 분리하다니. 유기농업으로 땅과 내일을 살리려는 농민들이 관료화된 농협을 외면하고 왜 생활협동조합의 일원이 되는지, 유기농산물 수출로 부가가치를 챙기라 다그치는 대통령은 아마 모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가 줄어도 평균수명 연장만큼 늘어나는 이 땅의 인구는 먹는 농작물의 양과 질이 성큼 달라졌다. 초고령화된 농촌은 적막강산이 된지 오래고, 주로 공공기반의 개발로 경작지가 급격히 위축되는 현실이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상승하는 마당에 농업이 신성장동력이라니. 경작지의 거듭된 상실로 생존기반이 무력해지는 이때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은 무책임하다. 농민의 원성을 무시하고 FTA를 맺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곧 맺을 중국에서 수입할 농작물이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국제추이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처럼 개발로 식량기지가 위축된 데 이어 소비량이 급증한 중국이 농산물 순수입국이 된 마당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도 자국의 식량이 부족해지면 러시아처럼 수출을 지체 없이 금지할 가능성이 높다.

 

땅과 내일을 유기적으로 살리는 유기농산물은 가격이 높다. 농약으로 환경과 건강을 해치는 비용을 외부화한 기존 농작물과 달리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내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로 가족의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우리는 저급한 수입농작물,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농촌과 농민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정부는 농민을 돈벌이로 현혹하는 천박한 정책을 버려야 한다. 이 땅에 생명을 둔 이의 내일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농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으로 나서야 옳다. 농업은 더도 덜도 없는 생존기반이다. 투기가 된 농업에서 건강한 내일은 비롯될 수 없지 않은가. (푸른생협 소식지, 20119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11. 12. 22:42

 

오염된 먹을거리

 

‘좋다’ 또는 ‘나쁘다’는 말. 쉽게 사용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게 대부분이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있듯,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 심정 십분 이해하지만, 역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출판사에 좋은 책이 독자에 나쁠 수 있고, 개발업자가 볼 때 좋은 과학이 소비자에게 나쁠 수 있다. 생명공학은 ‘나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생명공학자 매완 호는 질소 성분이 풍부한 멜라민을 어떻게 평가할까.

 

열에 강한 식기나 주방 용기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멜라민은 우유에 섞는 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나쁜 화학물질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멜라민이 건빵에서 검출되었다. 수만 명의 중국 신생아를 죽음의 문턱까지 데리고 갔던 멜라민이 세계 각 국의 가공식품에서 걷잡을 수 없게 드러나 감당할 수 없는 음식 쓰레기를 양산시키더니 가격이 가장 저렴한 건빵까지 버리게 만든 것이다. 멜라민이 섞인 중국산 식재료가 포함된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제껏 건빵은 육식이었나? 그 건빵을 먹은 채식주의자가 당황할 노릇인데, 광범위한 식품에 멜라민이 검출되는 걸 보면, 중국에서 유제품에 멜라민을 넣은 지 꽤 오래 되었고 가공식품의 범위가 무척 넓다는 걸 새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누가 처음 멜라민을 유제품에 넣는 발칙한 발상을 한 걸까.

 

2000년 여름, 전국을 들썩인 ‘납꽃게’는 중국산으로 보도되었다. 무게로 가격을 결정하는 모양인지 문제의 꽃게 몸속에 납이 들어 있었는데, 단단한 껍질 속으로 납 조각을 집어넣는 요령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가격을 부피로 결정했다면 공기를 불어넣었을 레나. 중국에서 우유는 단백질 함양으로 품질과 가격이 결정되는 모양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리자 소규모 목장은 우유에 물을 섞는 일이 잦았다는데, 물을 부으면 납품하는 우유의 양이 늘어나지만 단백질 함양은 떨어질 터. 제값을 받으려면 단백질 수치를 높여야 했다. 질소 수치로 단백질 함양을 분석하는 걸 착안한 어떤 농부가 꾀를 써 자신이 생산한 우유에 멜라민을 넣었더니, 남보다 돈을 더 벌어들였다. 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졌고 10여 년이 지나면서 보편화되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중국 일각에서 전개되지 않았을까.

 

8년 전의 납꽃게, 중국인의 독창적 작품일까. 꽃게는 중국 어선이 군사분계선 주변이나 북한 해역에서 잡았다. 그렇다고 그 꽃게가 남한산과 다른 종류는 아니다. 꽃게에게 배타적 경계수역은 없다. 남한 배가 잡으면 남한산, 북한 배가 잡았다고 북한산이 아니듯, 중국 배가 잡았으므로 황해 연안의 꽃게가 중국산으로 둔갑하는 건 아니다. 우리 해역을 수시로 침범하는 중국 배들은 대개 공해상에서 우리 배에 어획고를 팔아넘긴다. 중국 배가 잡은 어획물은 우리 배로 옮겨져 공판장으로 가 팔릴 텐데, 우리도 꽃게의 가격을 무게로 결정한다. 중국산 꽃게에 들어간 납 조각들. 수사관의 무용담을 듣자니 넣긴 중국인이 넣은 모양인데, 누가 그리 하도록 요구했을까. 그건 우리 수사당국이 밝혀내지 않았으므로 당사자 이외에 아무도 모른다. 한데, 물고기의 배에 돌멩이를 넣은 건 우리가 먼저였다. 도살하기 직전에 물을 마구 먹이거나 물을 정맥에 강제로 주사한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다.

 

날씨가 쌀쌀하니 시장에 겨울딸기가 곧 나올 것이다. 딸기는 원래 봄이 제철인데 어찌된 일일까. 일본에 300억 원에 가까운 특허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겨울딸기도 벌이 수정해주어야 하는데, 늦가을에 기운을 잃는 벌은 비닐하우스까지 왕림하지 않는다. 농부는 겨울철 딸기만을 위한 벌을 별도로 구입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빗물이 스며들지 못한다. 농부는 양수기를 동원해 지하수를 뿌려야 한다. 이래저래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겨울딸기. 하지만 비용에 비해 버는 돈이 많으니 너도나도 나섰다. 입덧하는 임산부의 간절한 소망이 계기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겨울딸기, 처음 꾀를 낸 농부는 누구일까.

 

누가 처음 생각해냈는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남보다 돈을 더 덜 수 있다는 소문이 경쟁을 불러 비닐하우스에 연탄과 기름보일러를 가동하게 만드는 상승작용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제 겨울딸기는 새롭지 않다. 오히려 제철 딸기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신선할 지경인데, 겨울딸기 사이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새빨갛고 큼직할수록 소비자의 눈길을 끄니 계란만한 딸기도 선보였다. 그를 위해 성장호르몬을 듬뿍 바른 농부는 비료를 충분히 뿌려야 한다. 성장호르몬이 요구하는 영양분을 제때 공급하지 않으면 수확은 엉망이 된다. 돈벌이를 위한 경쟁은 투여하는 자본의 크기와 시기에 좌우되니 대부분의 시골 농부는 견디기 어렵다. 겨울철 비닐하우스에 최적화된 종자를 구입하는 비용도 부담되지만 융자받기 위한 담보가 부족하니 까다로운 품종을 만족시킬 시설을 설치하기 버겁고 종자회사가 권고하는 복잡한 재배 방식에 낯설다. 지역의 웬만한 농부는 제 땅에서 파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다. 땅마저 지력을 잃는다.

 

겨울딸기에 비해 멜라민우유는 제조하기 쉽다. 짜낸 우유에 멜라민을 섞으면 그만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멜라민이 섞인 분유를 먹은 아기의 몸에 결석이 생긴 데 그치지 않았다. 멜라민이 섞인 중국의 분유와 우유가 자국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물론, 중국의 멀쩡한 유제품과 그 가공식품 모두 세계적 불신을 받게 된 것이다. 멜라민을 섞은 게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왜 이제야 문제가 드러난 걸까. 사실 멜라민의 부작용은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닐 것이다. 일부 유아의 결석이 진작 나타났겠지만 워낙 드문 일이어서 무시되었을지 모른다. 분유를 먹이는 가정이 요즘처럼 급증하지 않았다면 당분간은 더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멜라민을 대기업에서 먼저 넣었다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과학자를 동원할 수 있는 그들은 사전에 기준치를 확보할 것이므로 수많은 유해 첨가물이 버젓이 사용되듯, 어떤 사건이나 문제점도 드러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벌써부터 우리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멜라민 기준치를 운운한다. 미국과 유럽의 멜라민 하루 허용량이 체중 1킬로그램에 0.63과 0.5밀리그램이라고 운을 띄우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체중 60킬로그램인 성인이 멜라민 137피피엠이 검출된 카스다드 제품을 먹고 이상이 있으려면 매일 낱개 40개 이상을 먹어야 한다. 또 멜라민 1.5피피엠이 검출된 커피 프림 제품의 경우엔, 성인이 매일 4000잔 이상을 지속적으로 마셔야 한다. 일상생활에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처 기준치를 마련하지 못한 우리의 대기업을 앞장서서 변호했다. 멜라민은 식품첨가물에 비해 그리 해로운 물질이 아니라고 홍보에 나선 고위관료도 있다. 호들갑을 떤 소비자가 또 평지풍파를 일으킨 꼴이 되었다. 앞으로 대기업은 멜라민을 마음 놓고 넣을 자격이 생겼다. 정부가 대놓고 보증하지 않았던가.

 

 

땅을 떠난 먹을거리

 

중국인은 언제부터 분유를 본격적으로 보급했을까. 그 방면에 과문해 짐작할 수 없으니 우리와 견주어보자. 1970년대 전후, 우리나라는 언론이 주최하고 분유회사에서 후원하는 ‘우량아 선발대회’를 성황리에 해마다 개최했다. 체구가 작은 우리 어린이의 영양 상태를 개선할 목적이라고 한결같이 홍보했지만 행사를 후원한 분유회사는 자사 분유제품의 판매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을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사를 맞아 분유광고가 요란했기 때문이다.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군사정권이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던 당시, 당면 과제 중의 하나는 값싼 노동력이었다. 정부는 향도이촌(向都移村)을 부추기며 신체 건강한 남성들을 도시 노동자로 몰려들게 하는데 성공했지만 여성은 농촌에 남아있었다. 그때 ‘우량아 선발대회’가 효과를 발했다. 언론과 분유회사가 우량아 선발대회를 앞장서 개최하자 여성들은 분유를 먹이면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것 같은 환상을 갖게 되었고, 이후 90퍼센트가 넘던 우리나라의 모유 수유 비율은 10퍼센트 이하로 곤두박질쳤으며, 농촌에 젊은 여성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분노하던 전태일이 노동해방을 외치며 분신한 시절이다.

 

비슷한 사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70년대, 세계 최대의 식품 가공회사인 네슬레는 제국주의의 강압적 개발로 터전이 황폐해진 아프리카 주민에게 분유를 판매했다. 제 아이를 승리자인 백인처럼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아프리카 주민은 오염된 물에 분유를 타주었고, 수인성전염병으로 죽어가던 아이들은 급기야 영양실조로 생명을 속절없이 잃어야 했다. 연료나 물이 부족해 우유병을 소독하거나 물을 끓일 수 없었던 아프리카인에게 분유 가격은 지나치게 높았고, 하는 수 없이 수유 양을 줄이자 영양실조가 발생했건만 모유는 이미 말랐던 거다. 아이를 잃고 돈마저 없어진 아프리카의 여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국적기업 플랜트 농업지대의 노예 노동자로 팔려나갔다. 자급자족하던 마을이 화폐 경제권으로 반강제 편입되자 발생한 그와 같은 현상, 우리 농촌 여성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산업사회를 추동하는 중국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강력한 산아제한으로 일손이 부족해진 중국의 농촌도 도시에 비해 피폐해졌고, 남정네들은 농민공(農民工)이 되어 휘황찬란한 도시로 돈 벌러 떠났다. 농민공의 노고가 없다면 중국 도시의 겉보기 흥청거리는 성장은 애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번듯한 경기장을 과시했던 북경올림픽도 순조롭지 못했을 것이다. 분유는 그런 와중에 각광받게 된 게 아닐까. 농민공 이상으로 값싼 여성 노동력이 절실한 중국에서 분유는 요긴했을 테지만, 대부분의 분유는 판매용이다. 기업은 매출을 늘리려 광고를 활용할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기업의 은근한 광고에 현혹돼 분유가 세련된 엄마의 고상한 선택인 양 세뇌되었을지 모른다. 기준치에 대한 개념이 있을 리 없는 소규모 목장에서 멜라민을 넣기 전까지는.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화폐 경제권에는 인정사정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웃과 나누던 식량에 가격표가 붙으니 사먹어야 되지만 일손까지 돈으로 구해야 한다. 자급자족하는 농촌에서 몇 푼의 돈은 연장을 새롭게 바꾸거나 가축을 더 들일 수 있어 쓸모 있지만, 세금을 내야하고 학자금이 들어가야 하는 화폐 경제권에서 하찮을 뿐이다. 멕시코 농민이 그랬다. 직접 재배한 옥수수를 맷돌에 갈아 토티아를 구워 먹었던 농민에게 몇 푼의 달러는 빛났다. 낡은 그물침대와 웃을 바꾸거나 건강한 노새를 새로 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이후 사정이 돌변했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훨씬 저렴해진 미국의 옥수수가 물밀듯 밀려오자 멕시코의 농가는 줄지어 파산하고 말았고, 제 땅에서 쫓겨난 농부들은 미국의 공장들이 들어선 국경도시에 노동자로 고용되면서 몇 푼의 달러를 손에 쥐게 되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세금과 학자금만이 알량한 달러를 축내지 않았다. 옥수수가 아니라 아예 토틸라를 사먹게 되면서 생활은 더욱 고단해졌다.

 

기업의 자본 축적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려면 낮은 임금으로 도시 노동자를 연명하게 조여야 하고, 그러자면 농작물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저곡가 정책’이다. 젊은 일손이 부족해지는 농촌에 결정타를 던진 정부의 ‘저곡가 정책’은 남은 젊은이마저 도시로 떠나게 만들었지만, 농촌을 버림받게 만드는 요인 중 큰 것은 강요된 ‘물심’이다. ‘녹색혁명’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자급자족하던 농촌을 돈벌이를 위해 몇 가지의 다수확 품종으로 전환하게 만든 이후의 사건이다. 종자를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자본 집약적 농업은 정부와 종자회사가 장담한 만큼의 수익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생산된 농산물을 정부가 정한 낮은 가격으로 모두 팔아야 하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전통적으로 이웃의 품앗이로 해결해왔던 의식주마저 구입해야 했으니 생활은 더욱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많은 이웃이 도시로 떠난 농촌은 품이 적게 드는 다수확 품종을 심고, 빚으로 구입한 기계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저곡가 정책은 발목을 잡는다. 빚을 청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어렵사리 농촌에 남은 농부는 땅을 세 얻어 농사 규모를 늘리지만 단일품종으로 다수확을 만족시키려니 까다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점점 강력해지는 제초제와 살충제를 수시로 뿌려야 하는데, 모두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갚기 버거워지는 빚을 더 끌어안아야 하는 농부는 ‘쌀 수입 보전 직불금’마저 부재지주와 공무원에 빼앗기며 농사를 짓지만, 자본집약적인 현대 농업은 석유 없이 아예 불가능하다. 농기계와 트럭은 물론, 나락 건조기 가동과 지하수 양수도 석유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해충과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강력한 살충제와 제초제, 그리고 화학비료도 석유로 가공하는 까닭이다. 이는 다수확 품종을 지향하는 녹색혁명의 필연적 결과로, 농작물로 얻은 칼로리의 10배 이상의 석유가 낭비된다. 정점이 예견되면서 원유의 가격이 오르자 국제 곡물의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단일품종 작물인 까닭에 쉽게 번지는 해충과 잡초는 세대가 거듭되면서 기존 살충제와 제초제에 내성을 갖고, 새로 출시되는 살충제와 제초제는 더욱 강력해지면서 가격도 오르지만 문제는 농작물의 안전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농부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독성이 강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적시에 살포해야 예측 가능한 수확을 보장하는 다수확 종자는 환경변화에 취약한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안정성이 불안해진 것인데, 이미 농작물은 세계적으로 단순해졌다. 지역의 오랜 기후와 문화에 따라 다양했던 종자는 종자회사에서 판매하는 다수확 품종으로 광범위하게 획일화되었다.

 

다수확 품종 종자의 유전적 다양성은 폭이 매우 좁다. 그래야 예측 가능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지만 경작 환경을 종자에 맞게 유지해야 기대에 충족된다. 한데 석유 과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운송, 그리고 대량폐기로 점철되는 산업화가 야기해온 온난화는 내일의 농업 환경을 걷잡지 못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녹색혁명이 이제까지 추천해온 농작물마저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농촌의 경작지는 무도한 개발로 인해 축소될 만큼 축소되었는데, 우리는 어떤 대안을 준비해야 할까. 생명공학이 현혹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일까. 다국적 종자회사에서 독점 공급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종자는 유전적 다양성이 거의 없다. 지역적 단작을 몰고온 녹색혁명의 종자와 달리 세계적 단작을 피할 수 없다. 농작물 속의 조작된 유전자가 다른 농작물이나 잡초로 수평이동하거나 먹이사슬을 통해 생태계를 오염시킬 경우,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세계는 식량 위기와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 파국을 자초할지 모른다.

 

 

자본에 종속된 먹을거리

 

자본이 주도하는 단작은 농산물에서 머물지 않는다. 가공식품으로 확장된다. 기업의 이윤은 소비자의 부담과 비례하는데, 벼보다 쌀이, 쌀보다 밥이 비싸듯, 옥수수보다 옥수수 전분이, 옥수수 전분보다 토틸라가 더 비싸다. 농산물의 종자에서 운송, 저장, 가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두루 독점하는 다국적 자본은 넉넉한 창고에 가득 채운 농산물을 그냥 팔려 하지 않는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공해 판매하는 쪽을 선호한다. 멕시코에 옥수수보다 토틸라를 팔아 돈을 더 버는 다국적 자본은 수익이 더 크다면 옥수수를 바이오디젤로 변환시키려고 토틸라 판매를 서슴없이 중단할 것이다. 그 여파는 멕시코 주민에게 직격탄이 되었다. 오랜 자급기반을 미국계 다국적 곡물회사에 내주고 국경 도시의 공장 노동자로 전락한 주민들은 치솟는 토틸라 비용을 견딜 수 없자 폭동을 일으켰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 정부는 주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는 식량 주권을 잃은 것이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는 느슨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리의 잔류 농약 기준치를 무려 130배 이상 초과된 밀을 미국에서 수입한 적 있다. 당시 되돌려 보내라는 여론의 질타 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한 정부는 농약 잔류량이 저절로 발산하기를 6개월 동안 기다리며 검사를 몇 차례 실시, 기준치 이하를 드디어 만족하자 사료로 전용해 판매했던 사건이었다. 빗발치는 여론의 지탄에 대해, 되돌려 보내면 독점 지위를 가진 다국적기업에서 수출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 정부는 요즘 어떤 밀을 수입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밀의 기반을 잃은 우리는 식량 주권을 외국의 수출업자에 내주고 말았다는 점이다. 내 돈으로 구입하면서도 굶주릴 수 없어 오염된 밀이라도 군말 없이 수입할 수밖에 없게 구조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밀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요즘도 잔류 농약이 어느 정도인지 언론들이 파악하지 않아도 유기농업을 위해 인분을 모으는 농가는 여름철 구더기를 제거하는데 수입 밀가루를 요긴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맘때 택배로 배달된 제주감귤에도 며칠 지나면 곰팡이가 피는데, 수입 밀가루는 장마철 내내 방치해도 변질되지 않는다. 구더기도 외면하는 밀가루로 가공하는 시중의 빵과 과자는 믿을 만할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국일미디어, 2005)에서 규모가 큰 제과회사의 연구직 간부였던 안병수는 첨가물을 비교하니 차라리 담배가 더 나을 정도라고 탄식한다.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국일미디어, 2006)에서 과자에 들어가는 첨가물의 정체를 고발하는 아베 스카사는 일본 식품첨가물 회사의 세일즈맨이었다. 하지만 수입 밀가루로 가공한 식품 속의 첨가물은 기준치 이하를 엄연히 만족한다. 과자 또한 표시제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기준치의 과학적 합리성에 문제가 있든 없든, 분명히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판매되건만 먹은 이의 피부는 괴롭다. 면역이 약한 어린이일수록 그 고통은 심각하다.

 

어떤 유명 연예인은 대마초를 허가해야 한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집행유예 중인 그는 “대마초를 허하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마라톤 경주에 참여하기도 했다. 담배와 달리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걸 몸으로 증명하려는 의도였을까. 마라톤 행사에 참여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대마초는 담배와 달리 습관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연예인은 중요한 차이를 착각했다. 숨어서 피우는 지금의 대마초를 대기업에서 합법적으로 생산하는 담배와 비교한 거다. 굳이 비교하려면 곰방대 속에 대충 잘라 넣던 잎담배여야 했다. 담배가 건강에 특히 해로운 건 온갖 첨가물 때문이다. 각 첨가물은 물론 기준치 이하를 만족했을 테지만, 첨가물들이 몸속에서 만나 상승효과를 빚을 수 있다. 첨가물들은 폐 속에 들어가기 전에 고온으로 화학 반응하며 수많은 화학물질을 생성해낼 텐데, 담배에 포함된 개개의 첨가물이 인체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 객관적인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질병 발생의 확률이 높다는 점인데, 그런 담배가 과자보다 났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합법화된다면 대마초 시장에 뛰어들 기업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광고를 동원하며 첨가물을 넣을 텐데, 허가된 대마초는 시중의 담배보다 여전히 나을까. 아토피를 유발하는 과자보다 나을까.

 

첨가물만이 아니다. 곰팡이가 두려워 미리 농작물이나 식품에 쪼이는 방사선의 해악도 분명하지 않다. 당국은 식품에 방사능 물질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관계없다고 주장하지만, 고에너지 방사선이 투과하면서 영양분이 파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파괴된 물질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독성물질로 변해 체내에 이상을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곰팡이는 먹기 전에 제거할 수 있지만 방사선이 통과된 식품은 전혀 그럴 수 없다. 겉보기 멀쩡하니 아무 생각 없이 먹는다면 문제는 나중에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복합오염 시대에 인과관계는 밝혀내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오염 사건도 책임소재를 규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 아닌가.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을 보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원진레이온의 아황화탄소 중독과 연탄 분진으로 인한 진폐증 역시 책임 소재를 밝히는데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렸다. 책임자가 책임을 회피한 다음이었다. 시골의 작은 목장에서 넣은 멜라민과 달리, 대기업이 주도하는 농약, 식품 첨가물, 방사선은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다.

 

단일 재배를 위한 농작물 가운데 현재 가장 막강한 권한은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있고 우리는 그 가공식품을 먹는다. 녹색혁명이 주도한 농산물은 지역적 단작을 초래하게 했지만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세계적 단작을 유발하게 했다. 세계는 한두 군데 종자회사의 지배 아래 들어간 셈인데 그로 인한 인체 유해성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초제에 내성을 갖도록 조작된 유전자가 다른 식물의 유전자로 수평이동돼 예상 수익을 밑도는 현상이 농부에게 발생하거나 종자회사의 홍보와 달리 제초제와 살충제 살포의 회수와 양이 오히려 늘어나는 사례가 심각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 농작물과 그 가공식품이 소비자의 건강을 해쳤다는 보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므로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 있는 유전자가 먹이 사슬이나 꽃가루 수정을 통해 엉뚱한 생물로 수평이동한 뒤 언제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증식돼 사람이나 생태계에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현재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종과 종 사이를 넘나드는 조작된 유전자가 농산물과 그 가공식품과 가축과 미생물에 남아 있는 한, 자식을 키우는 소비자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전자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고 환경은 온난화로 더욱 예측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유전자와 환경의 상관관계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오늘의 생명공학은 문제가 발생한 뒤에 어떤 대책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뒤일 테니.

 

그런 와중에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콩이 우리나라에 식품용으로 버젓이 수입되었다.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반대운동을 외면하며 사료나 식용유 가공용으로 수입하더니 식품으로 가공할 농산물까지 들여온 것인데, 사실 그동안 소비자들이 유전자조작 농산물에서 자유로웠던 건 아니다. 식용유를 가공하고 남은 콩과 옥수수는 사료로 활용해왔고 사료를 먹은 가축과 가축 가공식품은 우리가 먹어왔기 때문인데, 그뿐이 아니다. 그런 사료를 집중적으로 먹인 미국산 소는 광우병 위험이 철저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의 식탁으로 올라왔고, 지금도 올라오고 있다. 1990년 자신의 딸에게 햄버거를 먹이며 명백한 근거도 없이 안전을 확신하던 존 메이저 총리와 존 검머 농업장관 이후 영국은 광우병의 온상이 되었건만, 타산지석의 교훈을 망각한 우리 정부는 축산 농부의 어려움을 보듬지 못하면서도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덮어놓고 홍보한다. 미국 쇠고기의 수입을 촛불을 들고 반대하던 시민들을 구속시켜가면서.

 

 

다양성을 잃은 먹을거리

 

한 연예인이 대마초를 허가하라고 외치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개고기 도축을 합법화하려고 한다. 난폭하고 비위생적으로 죽여 먹는 우리 개고기와 초대형 도축 시설에서 시간 당 400마리를 의 어린 소를 죽여 냉동 포장한 미국산 쇠고기. 어느 것이 더 위생적이며 윤리적일까. 서울시는 미국산 쇠고기의 손을 들어주려 것인가. 우리의 개고기 문화를 혐오하는 프랑스의 여배우가 그야말로 개 패듯 패서 죽여 불에 그슬려 먹는 우리의 식습관을 현장에서 보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 모르겠는데, 개고기마저 단죄할 수 없다. 난폭하게 도살했던 건 분명하지만 거위 간으로 가공하는 푸아그라의 양을 늘리기 위한 프랑스 농민의 사육 방법도 적절하다 수긍할 수 없다. 목덜미를 쥐고 알코올 적신 사료를 입에 억지로 밀어 넣은 다음, 간이 축구공만큼 부풀어오른 거위를 도살하는 행위를 세계인은 비난하지만 푸아그라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돈 많은 미식가를 위해 간이 늘어난 채 죽는 거위와 달리 음식 찌꺼기를 먹고 다 자란 후 맞아 죽는 개. 어느 쪽이 덜 억울해할지 헤아릴 길 없지만, 난폭하게 사육하든 죽이든, 가축에게 자비롭지 않은 건 두 나라가 공통이다. 법이 없기 때문일까. 세상만사는 모두 법적 테두리 내에 두어야 하는 게 아닐 뿐더러 법적 테두리 내에 없으니 불법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다. 광우병이 의심스러운 미국산 쇠고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법으로 통제한다고 윤리나 위생적 문제가 감추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위에게 내어줄 씨암탉도 마찬가지이듯, 크고 작은 동네잔치나 별안간 큰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키우는 외양간의 소나 돼지도 법과 제도로 규율되던 가축이 아니었다. 한두 마리 키워 식구나 이웃과 나누거나 알고 지내는 이에게 팔던 대면사회(對面社會)에서 가축의 사육과 도축은 법적 대상이 아니었다. 익명이 보장되는 경쟁사회에 들어서면서 문제가 배태되었을 따름이다. 모내기 마친 뒤 도와준 이웃의 허해진 몸을 보하기 위해 키우던 개를 잡는 문화에서 비롯된 우리의 개고기만이 아니다. 하루 수십만 마리의 어린 닭을 처리하는 공장보다 시장바닥에서 한 마리 씩 잡아주는 상인이 비위생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 꿩을 사냥하고 김치도 담그는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식당은 김치를 손님상에 올려놓고, 교외의 식당은 꿩고기를 판다. 모내기로 기운이 빠질 일 없는 사람들이 도시의 후미진 곳에 애매한 간단을 단 식당에서 개고기를 사먹는다. 모두 법적 테두리와 관계없지만 비위생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요즘 개고기는 일반적으로 관련법 없이 집단 사육한 개를 도축해 얻는다. 민가와 떨어진 곳에 수십에서 수백 마리를 사육하는 업자들은 자신의 사업이 비위생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위생적인 시설을 갖추고 뒤처리도 깨끗하다고 항변하며, 요구한다면 그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제안한다. 도축 시설을 소비자에게 절대 공개하지 않는 미국의 대형 도축업체와 다르다는 거다. 법적 규정이 없다고 예전처럼 끔찍하게 죽이는 것도 아니라고 억울해한다. 그러므로 합법화해야 할까. 그래야 사육하거나 도축하는 이, 그리고 먹는 사람까지 떳떳해지는 걸까. 프랑스 정부가 푸아그라 용 거위 사육법을 마련했는지 알지 못하는 바와 관계없이, 개고기를 합법화한 국가라는 국제적 비난만이 걱정스러운 일의 전부는 아니다. 개고기를 합법화하는 순간, 자본이 달려들어 개마저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가축의 공장식 사육과 도축의 구렁텅이로 몰고갈 거를 염려해야 한다. 삼복 기간이면 의례적으로 편성하는 언론매체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떤 개고기 관련 산업체 인사는 “합법화가 되면 소나 돼지처럼 집단 사육과 도축할 수 있도록 개를 품종개량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벼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사람 곁에서 고기 이외의 목적으로 키우던 개마저 공장축산에 넘기려는 풍조는 생명의 가치를 참으로 서글프게 만든다. 안 그래도 먹을 고기가 지나친 세상에서.

 

공장축산으로 경쟁적 이윤을 노리는 개 사육업체는 무엇을 먹이려 들까. 애완용 사료? 음식 쓰레기? 손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 쓰레기는 자동으로 가동될 공장식 축산에 적용할 수 없다. 가정에 입양되는 개에게 주는 사료는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테니 경쟁 체제의 공장식 축산은 값싼 사료를 찾아 나설 것인데, 아무래도 미국산 소 도축 부산물이 제격이겠다. 광우병으로 판로가 막힌 자국 소 육골분 시장의 대안을 찾고 싶은 미국은 한국의 개 사육업자와 교감을 나누고 싶을 것인데, 한국의 업자는 공장식 돼지와 닭 사육장에서 나오는 도축 부산물도 덤으로 얻을 수 있겠다. 광우병 교차오염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판로가 저절로 열리니 미국 도축업자는 얼마나 반갑겠는가. 소에 먹이던 소 도축 부산물을 돼지나 닭에 먹이고, 돼지와 닭 도축 부산물을 다시 소에게 먹였더니 광우병 발생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영국의 연구결과는 미국에도 적용되지만 미국의 육골분 업자들은 부산물을 버리기 아까워 관행을 멈추지 않았는데, 사가겠다고 한국이 먼저 제안한다니! 미국은 우리를 얼마나 기특하게 여기겠는가.

 

개는 잡식동물이므로 소 도축 부산물 자체가 해로울 리 없지만 만일 광우병에 걸린 소의 내장이 공장식 개 목장의 사료로 막대하게 수입된다면 광우병이 개로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개고기를 먹는다면? 소비자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다만, 이제까지 경험을 미루어볼 때, 미국과 우리 정부는 안전을 확신할 것이고 개고기 먹는 이들이 촛불을 들고 나설 것 같지 않다. 흔히 개고기가 맛있는 이유를 사람이 남긴 음식을 먹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지금 대부분의 개는 사람의 음식 찌꺼기를 먹지 않는다. 전용 통조림이나 사료를 축낸다. 제레미 리프킨이 《육식의 종말》(시공사, 2008)에서 “발굽 달린 메뚜기 떼”로 표현한, 미국 중남부의 대평원에 가득한 소는 목초를 먹지 못한다. 해마다 3000만 마리 이상 도축하는 미국 소는 몸집을 거의 옥수수로 찌웠다. 그만한 옥수수가 미국 땅에서 재배되어 가축의 사료로 전용되는 까닭인데, 우리나라의 공장식 개 사육장에 미국산 육골분을 공급한다면 개고기는 미국산 옥수수가 변화된 셈이고, 그 옥수수는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 소비자의 몸에 모이게 될 것이다. 그 옥수수는 유전자를 조작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2008)에서 마이클 폴란은 미국인을 걸어다니는 콘칩이라고 귀띔한다. 옥수수를 직접 요리해 먹는 경우는 드물어도 옥수수를 원료로 가공한 식품이나 고기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미국은 명실공이 세계 최대의 비만국가다.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이의 3분의1이 과체중이거나 고도비만으로, 성인으로 갈수록 그 비율은 늘어난다. 많은 이는 운동 부족을 비만의 원인으로 들지만 1970년대보다 7배가 급증한 비만을 단순히 운동부족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건 부당하다. 텔레비전이나 개인용 컴퓨터에 빠져 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많고, 총기나 자동차 사고가 두려워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사회 병리 현상을 무시할 수 없겠으나 근본 원인은 고칼로리 식품에 있다. 바로 옥수수가 주범이다. 고칼로리 옥수수 시럽이 설탕을 광범위하게 대체한 이후 발생했다는 것이다. 옥수수 관련 산업체의 이윤 추구는 옥수수로 사육한 고기와 낙농제품에서 머물지 않았다. 수많은 음료수를 비롯해 미국 슈퍼마켓에 진열된 식품의 4분의1은 옥수수를 가공했다. 패스트푸드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가공식품들은 저렴할수록 옥수수 함량이 높다. 그 여파로 여유가 없는 계층일수록 비만 비율이 높다. 의료비 상승과 인적 사회적 부담을 견딜 수 없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옥수수 산업 체계의 근본 문제를 풀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건 미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옥수수는 멕시코 지역이 원산지다. 수자원이 부족한 멕시코 고원에서 마야와 아즈텍과 같은 고대 문명이 오랜 세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옥수수로, 그들의 후손인 멕시코 주민들은 지금도 옥수수를 귀하게 여긴다. 가축의 사료로 함부로 전용하지 않는다. 1600년대 초반, 북미대륙 원주민은 굶주리던 유럽 출신의 청교도 이주민들에게 옥수수 재배법을 가르쳐주었는데, 덕분에 살아갈 수단을 얻은 청교도의 후예들은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광대한 땅에 옥수수를 심었다. 비행기로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그 옥수수는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매우 좁다. 다수확을 보장도록 종자회사에서 극단적으로 개량한 품종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구입한 종자의 재배 방법은 선조가 일러준 바와 관계없다. 오로지 종자회사에서 제시하는 방식에 의존해야 손해를 입지 않는다. 막대한 화학비료와 농약을 동원하면 소귀의 수확을 걷을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농부들이 부유해지는 건 아니다. 몸이 축나더라도 돈을 벌어들인다면 부유해진 농부는 더 쉽게 돈을 벌어들이는 도시로 농토를 버리고 빠져나갈지 모른다. 농부를 농토에 구속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뼈 빠지게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이 가능하다는 걸 농부 스스로 인식하도록 농업정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생산비에 밑도는 수입을 건지는 농부들에게 약간의 보조금을 쥐어주며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정부에 고맙게 여기도록 이끄는 행정이 필요하다.

 

보조금 덕분에 가격이 떨어진 옥수수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곳은 거대한 창고와 운송수단을 가진 다국적 곡물회사다. 다국적기업의 임원에서 행정부의 고위 관료로 변신해 기업을 위한 정책을 입안한 후, 기업으로 되돌아간 뒤 자신이 입안한 정책의 과실을 독점하는 이른바 ‘회전문’ 현상은 미국에서 일반적이다. 다국적 곡물회사는 농부에 비해 현저히 많은 보조금을 받고, 그 때문에 헐값이 된 옥수수를 돈이 되는 국가나 기업에 대량으로 판다. 옥수수와 그 가공식품에 점령당한 멕시코가 오랜 옥수수 기반을 잃었듯, 값싼 사료에 초기에 열광했던 많은 국가는 축산기반이 무너졌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 기반을 잃었다. 옥수수의 경우, 99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한다. 물론, 대부분 유전자를 조작한 걸로.

 

 

먹는 자를 위협하는 먹을거리

 

축산업의 경쟁은 과학축산을 동원했다. 한겨울에 계란만한 딸기를 먼저 선보이려 애쓰듯 품종개량을 선도하는 과학축산이 용도에 따라 가축을 획일화시키며 본성을 최대한 억압한 것이다. 요즘 대규모로 사육되는 고기용 소는 되새김질을 하지 못한다. 빨리 살찌우는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여기는 과학축산이 되새김질을 첨가물이 배합된 옥수수를 먹여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극단의 근친교배로 신속하게 몸집이 불어나는 품종을 개발했지만 과학축산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생명공학이 만든 소성장호르몬을 투여해 영구치가 나오기 이전에 다 자란 소처럼 덩치가 금세 불어나게 유도했다. 아직 뼈가 충분히 여물지 않았어도 몸집이 거대해진 송아지는 운동이 금지된다. 쓸데없이 움직이면 살이 빠져 경쟁회사에 비해 수익이 뒤질 테고, 그 결과는 주주총회에 상정돼 배당금 손실을 초래한 최고경영인은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고기용 소는 살이 연할수록 가격이 높다. 그러자면 송아지의 근육에 단백질보다 지방이 많아야 한다. 움직이지 못하게 울타리 안에 몰아 둔 채 옥수수 위주의 배합사료를 도축할 때까지 먹이면 근육 사이에 지방이 물결친다. 다리를 오래 사용하지 않고 먹기만 하다 그만 불구가 된 것이다. 다양한 풀을 먹어 되새김질해야 건강해지는 소는 어린 나이에 몸이 엉망이 되지만 항생제가 미리 처방되었기에 목숨은 이어진다. 되새김질을 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멍한 상태로 살아 숨쉴 따름이다. 본성에 어긋난 사료 때문에 생명을 오래 부지할 수 없을지라도 어린 소는 그 이전에 도살될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때가 20개월 전후로 영구치가 막 돋아날 시기에 해당한다. 사람으로 따지면 7살 정도의 나이에 해당될 것이다.

 

30개월 이상의 소는 고기용이 아니다. 효율이 떨어져 도살될 때까지 고기용 송아지를 부지런히 낳거나 우유를 내놓아야 하는 종우와 젖소다. 그들의 근육은 질기므로 지방을 충분히 섞어 부드럽게 가공해야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다. 젖소와 종우도 목초를 거의 구경하지 못한 채 본성이 억압되는 건 마찬가지다. 광우병은 대부분 30개월 이상인 소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20개월 이전에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30개월 훨씬 넘도록 사육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기용 송아지에게 광우병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건 축산자본의 장담과 달리 감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 사람이나 소나, 변형 프리온이 매개하는 광우병은 뇌를 부검해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20개월 전후에 도축한 송아지의 뇌를 모두 부검하거나 변형 프리온이 많이 분포하는 부위로 알려진 특정위험물질(SRM)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광우병은 극미량으로 감염되는 까닭인데, 도축하는 소를 모두 조사하는 일본과 달리 미국은 도축하는 소의 0.1퍼센트 이하를 검사하고, 우리는 그런 미국산 쇠고기를 막무가내로 수입한다. 광우병으로 크게 혼이 난 유럽에서 위험하다고 분류하는 부위지만 미국 축산업자가 내세우는 기준에 굴종한 우리는 뼈에 붙은 살코기와 소장 끝부분을 제외한 내장마저 수입한다. 자국 소비자들이 외면해 헐값으로 처분해야 했는데 한국에서 수입한다니 미국 축산 자본은 이래저래 신이 난다.

 

미국 내에서 소와 사람에게 광우병이 발생된 이후 출판한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에서 의사인 콤 켈러허는 소에 소 육골분을 먹인 최근 24년 동안 미국인에게 치매가 8900퍼센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자국 축산물을 근거 없이 비방하면 고발할 수 있는 축산업자 편의의 제도를 마련한 미국에서 축산자본은 아직 콤 켈러허에게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미국 소가 소 육골분을 먹고 덩치가 커진다는 사실을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문예출판사, 2004)의 저자 하워드 F. 리먼에게 들은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자 기세등등하게 고발했던 미국의 도축업자는 5년에 걸친 법리 공방 후에 결국 패소했지만, 콤 켈러허의 주장을 논박하지 못한 것이다. 예일대학교 연구진이 치매로 사망하는 환자의 적어도 10퍼센트 이상은 광우병이라고 밝혔다고 증언하는 하워드 F. 리먼은 채식주의자가 되기 이전에는 거대한 목장에서 송아지에게 옥수수를 먹이던 목축업자였다.

 

젖소와 종우의 질긴 육질은 소시지나 햄버거에 넣는 고기로 가공되기 위해 갈아야 한다. 그래야 부드러워진다. 평균 6천 마일을 이동한, 400마리의 소에서 모은 고기를 섞으며 한꺼번에 갈아 가공하기 때문에 그 가공식품을 먹고 생긴 질병의 원인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대규모로 가공한 다국적 기업의 햄버거는 전 세계의 메뉴가 같은 까닭에 고기의 맛과 크기가 똑같다. 조리방법과 서비스 방식이 동일하며 심지어 광고의 개념까지 공통이다. 그를 위해 기업이 비밀리에 개발한 갖은 첨가물이 들어가고, 그 맛에 일단 길들여지면 계속 먹고 싶게 된다. 상업주의는 어려서부터 쉽게 길들여지도록 장난감 세트를 끼워준다. 세트의 모델은 계속 바뀔 테니 부모는 그 햄버거 식당 앞에서 보채는 아이를 달래기 어려울 것이다. 조지 리처가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시유시, 2004)에서 주장한 이른바 ‘맥도날드화’다. 햄버거나 소시지에 들어간 첨가물은 원료의 상태를 눈치챌 수 없게 만든다. 치명적인 O157:H7 대장균이 감염돼 햄버거를 먹은 이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리는 소시지는 상온에 진열돼 있다. 어떤 제품은 버젓이 ‘무방부제’라고 써놓았다. 그런 소시지가 말초적인 맛을 얼마나 보장하는지, 아기에게 먹이는 엄마도 드물지 않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은 35일 사육한 병아리에 불과한데, 전국에서 파는 삼계탕은 같은 크기의 뚝배기를 사용한다. 삼계탕 용 병아리는 유전적 다양성이 단순한 수탉과 암탉에서 비롯된다. 그래야 35일 사육하면 뚝배기에 쏙 들어간다. 예측이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축사에 최대한 밀집해서 사육하는 그 병아리의 사육조건은 전국이 공통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상실된 채 엄격한 조건에서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병아리는 환경변화와 질병에 매우 취약하다. 조류독감이 쉽게 창궐하는 조건이 되기도 하다. 고기용 송아지처럼 빨리 살찌워야 하는 돼지의 유전자도 단순하다. 소나 닭처럼 최대한 밀집해 사육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발생되는 구제역이 쉽게 전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지역의 위험 반경 안에 사육하는 닭과 오리는 조류독감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일제히 살처분되는데, 뜻밖에 돼지마저 모조리 죽인다. 닭이나 오리에서 돼지로 전이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다시 사람에게 옮겨질 가능성이 높고, 그때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사람 사이에서 창궐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최근 불거지는 개 도축 합법화는 장차 우리 사회에 어떤 질병을 만연하게 할까.

 

멕시코 정부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불법 이민하려다 희생되는 자국민의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행렬을 길어지기만 한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이후 국경도시 노동자의 삶이 더욱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불법 이민자는 미국의 쇠고기 포장회사에서 착취되기 일쑤다. 노동조건이 열악해 미국인들이 꺼리는 작업라인에 배치되는데, 하루 400마리의 소를 도축해 포장하는 미국의 쇠고기 포장 공장은 속도가 빠른 만큼 안전관리가 허술하고, 그 만큼 많은 사고가 발생하지만 불법 이민자 신분인 멕시코 인들은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에릭 슐로서는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코리브르, 2001)에서 고발한다.

 

중국의 저명한 작가인 저우칭은 《중국 식품이 우리 몸을 망친다》에서 암 발생이 두려우면 중국 음식을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 탐욕 때문에 먹을거리가 오염된 현상은 중국이 원조가 아니라는 점을 몰랐을 리 없는 저우칭은 누구보다 자국과 자국인을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리라. 중국 식품이 오염되는 원인 중에 산업화로 인한 수질오염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화 처리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배출한 폐수가 농업용수와 지하수를 오염시켜 농산물과 가공식품의 오염까지 초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산 물건 없이 한 달을 버틸 수 없게 구조화된 세상은 중국 식품의 오염과 무관할 수 없는데, 멜라민 우유를 포함해, 중국식품을 비난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담배꽁초를 물에 시커멓게 불려 커피에 섞은 1970년대의 엽기적 사건은 남의 나라의 탐욕이 원인이 아니다.

 

 

자연스런 먹을거리를 위해

 

미국의 거대한 도축 시설은 소비자의 감시를 피해 폐쇄돼 있다.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송아지를 전기 막대로 학대하며 일으켜 세우려는 동영상은 도살장에 위장 취업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몰래 촬영해 공개한 것이다. 폐쇄될수록 위생 상태는 엉망일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소비자의 시선이 차단된 공간에서 가공하는 음식은 내가 만든 음식에 비해 안전을 확신하기 어렵다.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조상이 물려준 씨앗을 선조가 알려주는 방식으로 내가 내 땅에서 재배해 먹는 농작물이 가장 안전하고 몸에 건강하다. 오랜 경험이 빚은 문화가 그런 농작물과 그 농작물을 가공한 음식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집에서 키운 닭을 찾아온 사위에 내주고, 내 논 모내기 마친 뒤 도와준 이웃과 돼지 잡아 나누며, 자식 시집 장가보내면서 소 잡아 동네잔치 벌일 때, 상에 마주앉은 이들은 먹는 고기의 출처와 사육 과정을 훤히 안다. 가장 안전한 음식이다.

 

내 집에서 나온 인분이 부어진 동네의 채마밭에서 식구가 먹을 배추와 무를 구할 때, 음식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기생충 이외에 거의 없었다. 기생충은 감염된 이에게 고통을 줄 뿐, 후손과 이웃과 환경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다. 냉장고가 없어도 먹을 만큼 차리기에 남는 음식이 적었지만 남아도 개와 돼지가 먹어치워 쓰레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시절, 하늘은 언제나 파랬고 동네 우물은 맑았으며 인심은 누구에게나 후했다. 누가 어디에서 재배했는지 모르는 농작물로 가공해 여러 단계를 거쳐 소비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량으로 수송돼 식탁으로 올라가는 음식은 맛이나 칼로리에 관계없이 신뢰하기 어렵다. 전자태그라는 첨단 기술을 적용해 농산물의 이력을 추적할 수 있다지만 신뢰가 무너지면 그럴싸한 법과 제도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음식문화는 물론, 음식에 대한 체질과 습관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지역과 역사에 따라 즐겨 먹는 음식은 다채롭다. 오랜 환경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 심는 농작물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품은 많이 들어가더라도 내 땅에 심는 농작물이 다양하면 기후 변덕과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비슷한 수확을 걷을 테니, 그런대로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조상 덕분에 우리도 건강하게 이 땅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남보다 많은 돈을 빨리 벌어들이려고 다양성을 파괴한 농작물과 배타적 이윤을 노리는 다국적기업이 획일적으로 가공한 식품에 의존하면서 우리는 먹을거리 주권을 잃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재배하고 사육한, 유전적 다양성 없는 농작물과 가축을 대량으로 수송하거나 그런 농작물과 가축을 대량으로 가공해 대량으로 운반한 식품에 의존하면서 나와 식구와 이웃의 건강을 책임질 수 없게 소외되고 말았다.

 

얼굴을 알고 지내는 이웃이 재배한 제철 제고장 농산물을 버리고 낯모르는 이에게 먹을거리의 주권을 내맡긴 이후 안전은 기업의 이윤 앞에 저당되었다. 과학적으로 안전을 확인하는 이른바 ‘사전예방원칙’을 제안하려는 시민사회 일각의 움직임이 있으나 사전예방원칙만으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유전자를 조작했거나 방사선을 쪼인 농산물의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지만, 그 과학은 현재 수준을 반영할 따름이다. 오랜 문화와 경험을 백안시하는 과학은 오만할 뿐 아니라 허술하다. 어제의 과학은 오늘 들어다보면 허술하듯, 오늘 찬란하다 믿는 과학도 내일 살펴본다면 허점이 많을 것이다. 어떤 씨앗을 누가 언제 어떻게 심고 어디에서 재배했는지 명확히 알 때 그 농작물을 신뢰할 수 있다. 가축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땅에서 나오는 음식은 자연스러워야 가장 건강하다.

 

이웃과 나누던 음식을 탐욕을 위해 사고팔기 시작하면서 먹을거리의 역습은 비롯되었다. 돌이킬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삶을 기대고 있는 땅에 오랫동안 어우러진 음식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본성에 맞게 유기적으로 재배한 농작물과 같은 방식으로 사육한 가축으로 자급자족하는 일이다. 처해진 상황이 농사를 허락하지 못한다면, 믿을 만한 농부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재배하거나 사육한 농작물과 가축을 정당한 가격으로 구입해 직접 요리해 먹어야 옳다. 뿌리내린 먹을거리,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환경과 생명, 2008년 겨울호)

안녕하세요. 카페회원들과 같이 읽으려고 선생님글 퍼가는 중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불펌금이시라면 당장 지우겠습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고,
같이 공부하려고 보는 것이니 가능하면 양해부탁... 드립니다.
(*_*)
그럴 리가 있나요. 저는 copyright가 아닌 copyleft를 지지합니다. 필요한 글이 있다면 얼마든지 활용하세요. 의견을 나누는 게 제 운동이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Muchas Gracias!! 감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