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2. 18. 06:58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스마트 농업을 주목하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10층 높이 이상 유리온실로 지은 농장에서 재배하면 1년에 8번 수확할 수 있고, 도시와 가깝다면 운송 거리가 짧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고 홍보한다.

 

최근 한 텔레비전 뉴스는 스마트 농업과 인공육을 보도했다. 화학농약과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업보다 친환경이고 유기농산물보다 저렴하다는데, 보급이 느린 현실이 안타까웠을까? 그 뉴스는 스마트 농업 관련 전문가의 인터뷰를 두루 내보냈지만, 농촌의 농부와 문제 제기하는 전문가를 철저히 배제했다. “스마트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기업의 자료를 정성껏 보도할 뿐, 문제점을 한사코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콩을 사용하는 대체육에 이어 생명공학 기술로 배양하는 줄기세포 배양육을 소개한 언론은 온실가스인 메탄의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므로 기후위기 극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많은 연구로 맛과 풍미, 그리고 식감이 개선된 인공육의 가격이 저렴해질 2030년이면 기존 육류 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예견한 미디어도 등장했다.

 

사진: 흙과 생태계가 필요 없는 스마트 농업. 농민과 농촌은 제외시키는 농업은 과도한 에너지 투입 없이 기능할 수 없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흙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 농장은 해충은 물론이고 어떤 미생물도 침투하지 못하므로 청정하다고 자부한다. 켜켜이 쌓은 스펀지나 유리섬유 모판에 씨앗을 심어 정시 적량의 영양분을 공급하므로 사시사철 안전한 농작물을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데, 친환경일까? 난방과 LED 조명, 그리고 최첨단 설비를 운영하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주변의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하듯, 피하지 못한 감염 사고는 걷잡지 못할 비용과 에너지를 요구할 것이다.

 

콩으로 제조하는 대체육은 이미 보편적인데, 맛과 식감을 위해 들어가는 화학물질이 과연 친환경일까? 미국에서 막대하게 수입하는 콩은 화학농업으로 생산한다. 콩 칼로리의 10배 가까운 열량의 석유를 소비해야 대체육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갈 수 있는데, 친환경인가? 배양육은 무모하다. 소 태반에서 추출하는 배양액은 공짜가 아니다. 공장식 축산보다 막대한 비용과 화석연료를 정부가 보조해야 가공육의 가격이 내려갈 것이다. 메탄가스가 덜 나오더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은 무시할 수 없는데, 맛과 향을 약품으로 보완하면 안전해질까? 스마트 농업 이상으로 감염에 치명적일 텐데.

 

재난을 거듭 초대하는 요사이 기후위기는 인류의 획기적인 삶의 변화를 긴박하게 촉구한다. 화학농업과 공장식 축산보다 다소 친환경이더라도, 스마트 농업과 인공육은 기후위기 대응으로 지나치게 한가하다. 기후학자는 현 지층을 파국 앞의 인류세로 규정한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류가 던진 부메랑인데, 대응이 더 큰 부메랑이어야 할까? 위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기업을 위해 미래세대마저 희생시킬 셈인가? (갯벌과물떼새, 2022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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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인간

디딤돌 2022. 1. 17. 11:28

 

올해 딸기 가격이 예년 같지 않다는 소식이다. 작년 10월의 이상 고온으로 모종에 병충해가 생겼기 때문이라는데, 뉴스가 보여준 딸기밭은 대형 비닐하우스에 앉았다. 도톰한 고랑에 과육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기괴했다. 어릴 적 마당 구석에서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 꼬맹이들의 아침 인사를 꼬박꼬박 받던 딸기는 열매를 길게 늘어뜨리지 않았다. 참 신묘한 품종개량 기술이 아닐 수 없다.

 

한겨울인데 딸기 제철이라니. 기술 덕분인가, 화석연료 덕분인가? 농부는 가을부터 화석연료를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전기 난방도 다르지 않다. 전기의 절반 이상을 석탄으로 생산하지 않던가. 하우스의 비닐은 석유화학제품이다. 고철이든 철광석이든, 파이프 뼈대는 화석연료 동원 없이 제작했을 리 없다. 비닐하우스에서 땅을 갈고 북돋고 비료를 살포한 농기계는 경유를 태웠고 꿀벌도 화석연료 덕분에 비닐하우스에 넣을 수 있었으리라.

 

요즘 딸기는 흙이 아닌 영양분 녹은 물에 뿌리를 내린다. 첨단 딸기 온실은 뿌리 축축하게 파묻힌 섬유나 스펀지를 담은 화분이 고랑을 대신한다. 한데 화분이 허공에 매달린다. 수많은 화분을 전기로 올리고 내리면서 농부는 잘 익은 딸기를 허리 높이에서 수확한다. 한술 더 뜬다. 체험학습을 위해 방문한 어린이도 손쉽게 딸기를 따는데, 그런 딸기 농사에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가 필요할까? 딸기? 딸기로 보이는 화석연료가 아닐까?

 

사진: 거대한 온실에서 수졍재배를 하는 스마트 농업으로 농민과 농촌을 배제하면서 대규모 에너지를 요구하는 자본집약 산업이다. 겉보기 깨끗해지만 약간의 오염도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투기 농업에 불과하다. 설비의 관리 운영, 경작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막대할 뿐 아니라 만일 미생물의 침입이 확인되는 순간 전량을 폐기해야 하는 극단적 단작일 따름이다. 영양분 섞인 물, 또는 그런 영양분이 한방울 씩 뿌리 내린 스펀지나 유리섬유에 떨어뜨리는 방식의 농업은 기후위기 시대에 오히려 위험을 키운다. 소비처와 가까운 곳에서 생산해 운송거리를 줄여도 환경에 피해를 준다. 폐기물로 인한 오염 문제가 커질 것이며 그 이익은 자본이 독점할 것이 틀림없다. (사진 출서는 인터넷)

 

딸기만이 아니다. 참외도 수박도 화석연료 덕분에 제철보다 빠르게 수확하는데, 비닐하우스 농작물은 과채소만이 아니다. 깻잎이나 상추 같은 엽채소는 물론이고 어린 나무에 열매가 다닥다닥 열리도록 육종한 과일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수확하는 과육의 칼로리보다 훨씬 많은 열량의 화석연료를 동원해야 소기의 소득을 올리는 상품이다.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뉴스는 수경재배와 대체육, 그리고 배양육을 연속 소개하며 기후위기 대응이라고 거들었다. 그럴까? 해충은 물론 어떤 미생물도 침투할 수 없는 첨단 시설에 흙을 배제한 농업은 흙에서 장화 신고 농사짓는 농부를 배제한다. 철저히 계산해 적량 적기 공급하는 물과 영양분으로 재배하거나 배양하는 최첨단 농업이므로 자격 있는 종업원을 고용할 텐데, 도시 인근 시설에서 재배한다면 농작물의 이동거리를 줄일 수 있으니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일까?

 

유기농산물보다 저렴하면서 기후위기 대안으로 주장하는 전문가도 뉴스 화면에 등장해 소비자를 유혹한다. 누가 소개한 전문가일까? 농부는 애초 취재 대상이 아니었다. 취재기자는 화석연료가 필수인 시설재배에 문제를 제기하는 농민단체는 물론이고 소비자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땅과 기후가 좌우하는 농사의 생태와 문화적 가치를 무시했다. 아예 몰랐을까? 의도적일지 모르지만. 최첨단 시설을 판매하는 기업의 보도자료를 요약한 기자는 화석연료 신기루에 취했다.

 

다채로운 생물이 안정적인 생태계에 가장 늦게 출현한 사람은 온화한 기온이 이어진 까닭에 생명을 연명할 수 있었다. 1만 년 전부터 농사를 배운 사람은 생태계를 파헤치기 시작했고, 경쟁으로 욕심을 키웠다. 농촌에서 농부가 수확한 농작물을 조리하며 이웃과 어울리던 삶은 탐욕으로 무너졌다. 화석연료 동원하는 개발로 생태계와 땅을 황폐하게 만들더니 변화하는 기후가 급기야 위기를 맞았다. 땅에서 멀어지며 재난을 자초했는데, 과오 돌이키길 거부하며 자기 꾀에 깊게 빠졌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며 땅마저 배제하려 든다.

 

미국의 거대한 산업농은 막대한 석유로 경작하는 화학농업이다.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인데, 수경재배와 대체육과 배양육이 대안인가?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를 넘어 수직으로 높이 세운 건물에 태양광과 LED 조명을 비추는 농업은 땅과 농민을 베제한다.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는 기업에 충성할 따름이다. 인공지능의 딥러닝으로 재배하는 최첨단 시설농업은 화석연료가 필수다. 땅과 흙이 필요 없으므로 생태계와 다채로운 생물을 배제한다. 자본을 위한 농사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거라 믿는 걸까?

 

흙은 생명이고 땅은 현실이다.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는 1만 년 동안 화석연료를 몰랐다. 시설농업이나 화학농업과 달랐는데, 화석연료에 길든 미디어마저 흙에서 멀지면서 신기루에 취했다. 기후위기는 현실이고 기후재난은 머지않은 미래다. 정부는 탄소중립 시기를 2050년으로 잡았지만,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그 시한을 2040년보다 앞당길 것을 권했다. 20년도 남지 않았는데, 신기루에 취한 언론은 참 느긋하다.

 

땅에서 멀어진 농업에 농민도 농촌도 없다. 소비자도 미래세대의 생명도 없다. 신기루에 취한 언론은 어떤 내일을 안내하려는 걸까? 땅에서 쫓겨날 미래세대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선거를 앞둔 오늘, 파멸을 부채질하는 우리 미디어의 무의식에서 마음 착잡해진다. (지금여기, 20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