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4. 3. 00:08

 

1

 

이른 3월 눈 덮인 산하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복수초는 봄을 기약하고 늦은 3월 산기슭을 노랗게 수채화처럼 물들이는 산수유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알린다면 4월 중순 흐드러진 하얀 벚꽃은 봄이 무르익었다는 걸 선언한다. 추위를 무릅쓰고 복수초와 산수유를 기웃거리던 꿀벌들이 분봉을 앞두고 열심히 꿀을 모을 즈음인데, 웬걸! 길게 이어지는 벚나무 주위에서 꿀벌 한 마리 알현하기 어렵다. 떠들썩한 상춘객 때문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나타났다는데, 우리의 꿀벌에도 무슨 변고가 생긴 게 분명하다.

 

원고를 쓰는 야심한 밤에 출출하다고 아내를 깨울 수 없으니 얼마 남지 않은 땅콩을 한 움큼 집어든다. 시중에서 파는 중국산 땅콩이 꺼림칙해 유기농 국산을 찾는데 생활협동조합에 가도 없을 때가 많으니 이따금 가까운 양판점에서 아몬드를 구입하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책임진다니 이 밤중, 인천의 한 방구석에서 깨물어먹는 아몬드 역시 캘리포니아 산임에 틀림없을 텐데, 바로 이 아몬드는 미국의 꿀벌집단붕괴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어떤 과학평론가는 주장했다.

 

과육을 먹는 살구와 비슷한 종류인 아몬드는 씨를 먹는다. 따라서 실한 열매를 위해 가는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피는 꽃을 상당히 떼어내는 살구와 달리 아몬드는 그 꽃들이 모두 꽃가루에 수정되어야 하는데, 꿀벌이 그 역할을 맡는다. 거듭된 품종개량으로 많은 꽃이 같은 계절에 한꺼번에 피는 아몬드나무들이 한 지역에 집중돼 있지만 그때 그 지역의 양봉업자가 모든 꽃의 수정을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전 미국에서 벌통이 모여든다. 미국 벌통으로 모자라 캐나다와 멕시코의 벌통이 모이고 중남미는 물론 유럽의 벌통도 대환영이다. 그렇게 한 보름동안 집중적으로 꽃가루 수정을 받는데, 그 아몬드나무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폭이 아주 좁다. 열매를 많이 맺는 품종끼리 거듭 근친교배하자 조상의 다양성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벌꿀을 남보다 많이 빨리 채취하고 싶은 양봉업자도 꿀벌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크게 좁혔다.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협애하면 어느 생물이나 환경변화에 이겨낼 능력이 떨어진다. 그런 개체들이 밀집돼 있을 경우, 천적에게 쉽게 희생될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질병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 꿀벌이 그랬다. 손실을 막아보고 싶은 양봉업자는 천적을 막을 살충제와 병균을 차단하는 항생제를 남발했고 꿀벌의 면역력은 그만큼 약화됐는데, 천지사방의 꿀벌이 모여드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농장은 짧은 기간에 꿀벌의 질병을 유럽과 북중미로 퍼뜨리는 진앙이 되고 말았다.

 

벌과 나비가 없는 꽃에서 향기를 느낄 수 없다고 허난설헌이 말했다던가. 4월 중순 여의도 윤중로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향기가 없는 건 아닐 텐데, 벚나무 아래 어깨를 부딪치는 인파는 꿀벌 한 마리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생물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집단붕괴현상이 꿀벌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태학자들의 경고가 신문과 방송에 무게 있게 보도되지 않는 실상에서 경각심을 가질 리 없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4년을 견딜 수 없다고 아인슈타인이 경고했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을까.

 

 

2

 

심각에서 경계로 한 단계 낮춰서 그런지 전국의 구제역 방역 초소들이 일제히 철수했고, 텅 비었던 축사들이 다시 활발해졌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창궐할 때마다 주춤하긴 해도 고기를 즐기는 소비자층이 두터운 만큼 수익을 보장되므로 축산업은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문을 닫지 않은 식당들도 그리 믿을 텐데, “가족 같은 가축들을 매몰하는 농부의 안타까움을 강조한 언론들은 생매장되는 현장을 고발하는 동영상에 왜 어린 돼지가 없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진정 가족 같이 여겼다면 태어나는 돼지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붙이고 애지중지 키웠을 텐데, 눈물짓는 농부가 왜 살처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가족 같다면 어미와 새끼가 어울려야 맞는데, 굴삭기 삽날에 밀려 10미터 아래 구덩이에 떨어진 돼지들은 왜 덩치가 한결같았을까. 이상하지 않은가.

 

내다 팔 목적만으로 가축 서너 마리를 키우는 농가도 가축 한 마리 한 마리에 함부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름이 붙은 녀석을 도축장에 넘길 때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가축을 키우는 산업축산은 이름을 붙일 리 없다. 가족? 어림없다. 이름 대신 쇠귀에 인식표를 달거나 돼지는 아예 귀를 톱니처럼 잘라 표시할 따름이다. 그런 가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정 규모를 가진 개별 축사에 가축을 공급하는 종축장에서 죽어라고 새끼만 낳는 암컷 일부와 죽을 때까지 정액만 쏟아내야 하는 수컷 극소수, 그리고 분양된 축사에서 부지런히 살을 키워 성숙하기 전에 일제히 도살될 운명을 지닌 나머지 대부분의 개체들이다. 예외도 있다. 아주 어려 거세되는 살코기용 돼지나 소와 달리 산란용 병아리의 수컷은 부화되자마자 쓰레기가 되고 젖소 수컷은 고기용으로 냉큼 전환된다. 가축의 본성은커녕 최소한의 복지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느 경우나 같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볼 수 있는 목장은 대개 일정 규모 이상을 차지하고 종축장에서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어린 가축을 한꺼번에 가져와 획일적으로 사육한다. 발정기를 맞은 암컷을 마을의 든든한 수컷과 만나게 해 임신시키는 일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구제역에 감염된 종축장이 아니라면 살처분 현장에 어린 돼지와 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린 가축들을 공장처럼 쉼 없이 생산하는 종축장에서 사육하는 다수의 암컷은 유전자가 거의 유사하다. 수컷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태어나는 가축의 유전자가 일정할 것이고, 그런 가축을 예정된 기간 동안 획일적인 조건으로 사육하면 예측 가능한 살코기를 갖는 비슷한 크기의 가축을 집단으로 도살장에 넘길 수 있다. 가축들이 도살장 기계의 오차범위 내에 들어가야 기계가 고장 나지 않으니 많은 수익을 노리는 축산업자는 들쭉날쭉 자라는 가축을 기피한다.

 

어떤 사료를 어떻게 먹여야 살코기가 가장 빨리 불어나는지 축산과학은 진작 밝혀냈다. 같은 사료를 똑같이 먹여도 빨리 자라는 개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개체도 있었지만 축산과학은 천천히 자라도 온순한 개체들은 도태시켰다. 빨리 자라는 개체들끼리 거듭 교배시켜 유전적 다양성을 잃는 개체들만을 종축장에 공급했다. 한데 그런 가축들은 환경변화에 취약하고 그만큼 사육조건이 까다롭다. 그래서 살코기 생산 공장처럼 많은 가축을 예측 가능하게 사육하려는 업자는 큰돈을 투자해야 하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

 

비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동시에 밀어넣은 공장식 축산은 가축 한 마리 한 마리에 신경을 쓸 시간도 마음도 없다. 어서 몸집이 불어나기만 바랄 따름이므로 성장호르몬을 주입하고, 질병이 돌지 않도록 항생제를 미리 투여할 따름이다. 덕분에 감당할 수 없게 불어나는 몸집은 생존에 부담을 줄 정도지만 도살장에 넘길 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뿐이다. 고기 생산기계인 가축은 정붙일 생명체가 아니다. 한없이 키울 이유가 없다. 사료 먹는 양에 비해 살코기가 불어나는 속도가 쳐지는 순간, 넓은 축사에 움직일 틈이 없는 축사에서 시간이 갈수록 부대끼던 가축들은 일제히 도살장으로 향할 것이다. 사람 나이로 뼈가 아직 약한 7살 전후에 불과하지만 덩치는 청소년기에 육박한다.

 

발굽이 달린 가축은 들판을 뛰어 돌아다녀야 건강하지만 성장호르몬을 처리한 가축에게 체질에 맞지 않는 유전자조작 곡물 사료만 집중적으로 먹이는 공장식 축산은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과학축산이 권장하는 사육조건에 뛰어다닐 공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종축장에서 사온 어린 가축은 넓은 공간을 잠시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허락된 시간은 짧다. 무럭무럭 자라 앞뒤와 좌우에 다른 개체들로 꽉 차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 되면, 만원버스에 이리저리 밀리는 러시아워의 승객들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 답답한 돼지는 앞 돼지의 꼬리를 물고 닭은 쫀다. 그래서 입는 상처가 깊으면 진작 처방한 항생제도 소용없이 감염될 수 있고, 질병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공장식 축산은 돼지의 꼬리를 미리 자르고 닭의 부리를 뭉툭하게 자르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런다고 감염이나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어린 가축의 일부가 죽지만 약간의 손실은 어쩔 수 없다. 그뿐인가. 제때 치워지지 않는 배설물로 인한 암모니아 가스가 폐를 파괴하지만 도살장에 넘길 때까지 대부분 살아남을 것이다. 영악한 과학축산은 일찌감치 그리 계산했다.

 

 

3

 

조류독감을 철새가 전파한다고? 그런데 철새는 왜 떼로 죽어 자빠지지 않는 걸까. 지극히 일부의 철새가 죽는 것으로 보아 유전적 다양성을 집단 내에 확보하고 있는 철새와 우리 강산의 텃새들은 사람이 그렇듯, 독감 따위에 쉽게 제 생명을 놓는 건 아닌 모양인데, 삼계탕용으로, 통닭용으로 도살장에 일제히 넘겨야 하는 닭, 아니 병아리에게 대개의 독감은 치명적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결여한 개체들로 빼곡하니 양계장에 바이러스가 스며드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퍼질 테니까. 한번 스며든 조류독감이 양계장의 닭을 모조리 죽이는 건 아니다. 더러 끄떡없이 살아 널브러진 사체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를 피하는 대견한 녀석의 모습이 뉴스 화면이 이따금 방영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의 신뢰를 먼저 생각하는 공장식 축산은 안전반경을 정해 그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를 남김없이 살처분한다. 그렇게 면역력을 가질 기회를 차단당한 가금류들은 이듬해 창궐하는 같은 바이러스에 여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조류독감이 이따금 사람을 공격하지만 양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몸을 감염시킨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못한다. 종 특이성이 있기 때문인데, 만일 돼지가 그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매개할 경우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돼지의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사람과 닭의 독감 바이러스까지 수용할 수 있는 돼지의 몸에 들어간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돼지에서 사람으로 옮겨간 뒤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 퍼져나갈 수 있는 까닭이다. 조상의 유전적 다양성을 충실하게 간직한 멧돼지에게 구제역이 쉽게 전파되지 않듯, 돼지독감도 멧돼지를 위협하지 못하는데, 축사 안의 돼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가금류와 달리 감염되어도 증세가 금방 드러나지 않고 독감의 종류에 따라 증세가 미약할 수 있지만 주변의 사람과 가금류를 쉽게 감염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조류독감이 돌면 안전반경 이내의 돼지들도 불문곡직 죽인다. 재작년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의 한 농장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진 신종플루가 그랬을 것이다. 미국계 다국적 축산기업, ‘스미스필드푸드에서 공장식으로 돼지 수백만 마리를 사육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바이러스 외부의 항원이 다양하고 내부 8개 가닥의 RNA 유전자가 환경변화에 따라 현란하게 서열구조를 바꾸는 독감 바이러스는 사람의 첨단의학을 비웃는다. 거듭 개발하는 항생제나 치료제를 차례로 무력화시킨다. DNA 유전자로 구성된 일반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나 빨리 변화하는 까닭에 많은 연구자의 노력으로 어렵사리 개발한 백신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다. 그 사이 유전자가 변했기 때문이다. 다만 가축의 면역이 강하다면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처럼 웬만한 독감을 견디거나 끄떡없을 수 있다. 과거 농촌에 조류독감으로 가금류와 돼지가 떼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없었던 이유의 설명이기도 한데, 공장식 축산을 개발해서 확산시킨 자본은 문제의 근본을 헤아리길 거부한다.

 

공장식 축산이 소비하는 사료의 양은 실로 막대하다. 내장이나 뼈와 같은 도축 부산물도 엄청나다. 공업용으로 값싸게 팔리는 내장과 뼈를 갈아 사료로 준다면 목장주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초식동물인 소는 건강이 악화될 수 있지만 도살할 때까지 살아 있으면 그만이다. 그 결과 광우병이 발생했다. 때늦은 후회로 소 도축 부산물을 소에 주는 행위는 제한되었지만 미국은 잡식동물인 돼지와 닭에게 소 도축 부산물을 준다. 문제는 돼지와 닭 도축 부산물을 초식동물인 소에 준다는 거다.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남는다. 수백 명의 사람과 수백만 마리의 소가 희생된 이후 어떤 도축 부산물도 소에 먹이지 않은 유럽은 소 광우병 발생을 성공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미국의 축사와 도축장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쇠고기는 어떨까. 우린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다.

 

아무리 숨긴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를 먹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법으로 차단하자니 음성화될 터. 이참에 도축을 합법화하자는 목소리가 집요하다. 개 사육은 불법이 아니다. 어떤 법적 규제나 지침이 없으니 도축은 분명히 불법이 아니다. 만일 제도로 합법화한다면 개도 당장 품종개량해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도축할 게 틀림없다. 그리 벼르는 이가 있다. 돼지는 꼬리를, 닭은 부리를 미리 자르는데, 늑대의 후손답게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개는 어떻게 사육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을까. 스트레스 받으면 주위의 약한 개를 다짜고짜 물어 죽이는 개는 요즘 도시 변두리의 사육장에서 자행하듯 고막만 뚫는다고 얌전해지지 않을 텐데. 공장식 축산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는 개에 만연하게 될 질병의 목록 중에 사람도 끔찍하게 감염시키는 광견병이 추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텐데, 도축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는 국제적 망신 따위에 주눅들지 말자고 소비자와 권력자들을 설득하느라 여념이 없다.

 

구제역은 정부의 주장처럼 진정 사람을 감염시키지 못할까. 그 방면 전문가는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감염되지 않겠지만 드물게 감염돼 가벼운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공장식 축산으로 전에 없이 늘어나는 인수공통전염병을 주목한다. 조류독감이나 신종플루, 그리고 광우병이나 광견병만이 아니다. 페스트와 에이즈도 동물에서 왔다. 환경변화에 적응해 다시 나타나는 질병이 전에 없이 강력해지는 현상도 걱정한다. 공장식 축산이 몰고올 인수공통전염병의 병원균을 사람의 의료과학이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지 않은가. 만일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공학으로 인수공통질병을 막겠다고 호언한다면? 우리는 가축을 매개로 사람에게 퍼져나갈 조작된 유전자까지 걱정해야 하는 비극을 추가해야 할지 모른다.

 

 

4

 

구제역 발생이 소강상태로 들어가면서 방역체계의 획기적 개편과 체계적인 예방접종 계획을 밝힌 정부는 허가제를 주축으로 하는 축산업 선진화 기반 구축을 천명했다. 2012년부터 실시할 예정의 허가제는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교육을 마친 대규모 농가에 우선 허가를 내주겠다는 것, 그리고 소규모 농가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축산업 등록제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원칙을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지칭한 대규모 농가는 농가라기보다 사실상 축산자본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결국 지금보다 규모가 큰 축산자본에게 축산업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제까지 검토한 공장식 축산의 문제는 어찌될 것인가. 근본문제를 방치하기보다 부추기는 만큼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킬 수밖에 없을 텐데.

 

적정한 축사 면적을 위해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고 청결 유지를 위해 소독시설과 축산폐수 배출시설을 두어야 하는 우리 축산업 등록제는 위반하면 징역과 상응하는 벌금을 여지없이 부과한다. 따라서 우리 축산업 등록제는 사실상 허가제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수의학 관련 전문가는 허울뿐인 허가제 전환이 아니라, 축산업의 대규모화 및 집중화를 완화하고 지역의 다양한 농장들을 지원함으로써 동물의 건강과 식량안보 및 식품안전을 증진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편 옳은 지적인데, 공장식 축산으로 그 전문가의 조언이 실현될 리 없다. 분명한 것은 허가제든 등록제든, 제도가 불필요했던 시절에는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살처분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위가 왔을 때 씨암탉 잡고 모내기 마치고 돼지 잡으며 마을 잔치 때 소 잡던 시절, 다시 말해 공장식 축산이 없었던 시절에는 요즘과 같은 가축의 질병 창궐과 그에 이은 살처분 같은 불경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근본대책을 세우기 전에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벌어진 구제역 사태는 매뉴얼이나 농민의 탓이 아니라 무능한 정부에 있었다는 한 전문가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지금과 같은 공장식 축산이 아무 반성 없이 이어진다면, 숱한 경험을 미루어볼 때,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뿐 아니라 광우병 이상 긴장하게 만들 인수공통전염병이 거듭 창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대안은 더욱 큰 자본을 끌어들이는 공장식 축산일 수 없다. 다시 숱한 경험을 상기해보자. 공장식 축산과 도살이 빚는 추악한 탐욕과 불결한 위생은 가축의 본성을 보장하는 유기축산으로 크게 완화할 수 있다는 거,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모색하는 허가제는 문제를 오히려 증폭시킬 게 틀림없다. 예전처럼 농촌에 살면서 외양간에서 한두 마리 키우는 농가를 적극 지원하지 않는 한,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반복되는 우리 축산업의 문제의 해결에 접근조차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구제역과 광우병 따위로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채식에 자신이 없는 이가 많은 이상,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가축으로 인한 대부분의 질병이 사육하는 이와 고기를 먹는 이가 분리되면서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대안으로 소비자가 직접 가축을 사육하자고 제안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가축을 건강하게 키우는 농가를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지만 2012년부터 추진하려는 정부의 허가제나 강화된 등록제일 수 없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신뢰로 거래하는 협동조합이 현실적 대안일 수 있겠다.

 

한층 더 근본적인 대안은 송곳니가 어금니보다 작은 만큼 고기를 자제하는 식습관이다. 가축의 복지와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는 유기농 계란과 우유, 지나치게 어린 개체를 제외한 물고기, 남획과 거리가 먼 조개와 오징어 같은 해산 무척추동물까지 포함하는 육식이 채식의 4분의1이 넘지 않는다면 가축과 사람, 그리고 생태계까지 지금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사료로 전용하는 미국산 유전자 조작 옥수수와 감자의 수입도 크게 줄어들어 우리 농촌과 도시의 경제도 그만큼 건강해질 것이다. (, 3, 20126)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2. 18. 15:37

 

우리나라 바둑의 기반을 닦은 당대의 최고수 고 조남철 국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겼다. 정계의 실력자를 포함해 만나는 이마다 어떻게 해야 바둑 실력을 높일 수 있는가묻는다면서 자신도 그 게 가장 궁금한데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모름지기 전문가라면 자신의 일에 천착할수록 어려워지나 본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이어지는 이른바 ‘MB화법은 그 원리를 부정한다.

 

MB화법은 측근에 쉽게 전염되는 모양이다. 1월의 유래 없던 엄동설한이 위력을 잃자 구제역 전파가 주춤해진 2월 중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인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위 위원장 정운천 최고위원은 농사를 20년 지어봐서 아는데, 침출수는 화학적 폐기물이 아니라 유기물이므로 잘 활용하면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게 아닌가. 정치 입문 전에 키위 재배로 재미를 본 그가 죽은 가축의 침출수로 농사를 지었다는 소문은 없었다.

 

구제역에 감염된 농장은 물론이고 거기와 가깝다는 이유로 멀쩡한 상태에서 살처분된 돼지와 소들이 전국 4000군데에 매립되었다. 소는 알락사가 아니라 근육이완제로 죽인 뒤 매립했고 대부분의 돼지는 생매장했다. 그러자 썩어가는 사체가 침출수를 내놓는데 그치지 않았다. 혹한이 불리자 생매장된 돼지의 사체 내부에서 가스가 차오르며 부풀었고, 급기야 표층을 뚫으며 튀어나와 인간이 저지른 만행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50년 이래 최악의 전파속도를 보인 한국의 구제역에 대한 경계령을 세계 각국에 전했다. 50년 전에도 발굽이 두개인 가축 사이에 발생하는 구제역이 있어도 그리 무섭지 않았으니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이번 한국의 구제역을 사상 최악으로 판단한 것인데, 그도 그럴 게, 허둥대다 전국에 전파한 초동대처의 실패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침출수가 식수원을 오염시킬 정도로 엉망인 매립과 그 관리, 썩어 노출된 가축을 먹자고 덤벼드는 독수리가 전파할 바이러스와 세균은 얼마나 들끓었겠는가.

 

한 국회의원은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침출수의 양을 500밀리리터 생수병 12천만 개라고 계산했다. 그 매립지의 절반 이상이 하천과 가까운데, 해빙기 이후 흉흉하게 발생할 일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안일하기만 했다. 엄동설한에 허둥대며 매립한 돼지 300만 마리, 15만 마리, 그리고 조류독감으로 40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까지 생매장한 매립지를 해빙기에 한꺼번에 안전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1997년 대만과 2001년 영국에서 살처분된 가축이 우리보다 많았는데, 우리나라 구제역의 감염속도가 더 빨랐던 이유는 뭘까. 바이러스의 특징일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우리 농정당국의 어설픈 대처가 크게 작용했을 터. 하지만 다른 데에서 더 큰 원인을 찾아야 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가축들을 좁은 축사에 밀집시켜 사육하는 농장들이 근접해 있지 않았나. 일단 한 농장에 감염되면 순식간에 주변으로 전파될 조건이므로 끔찍한 결과를 빚었을 것이다. ‘공장식 축산의 필연적인 부작용이었다.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고 많은 가축을 난폭하게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은 가축의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한 뒤 새끼를 낳고 키우는 일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그저 종축장에서 자돈을 사와 특수 배합사료로 살을 찌울 따름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돼지는 3가지로 구별한다. 죽어라고 정액만 쏟아내는 종돈과 하염없이 임신만 거듭하는 모돈, 그리고 사육장에서 금세 몸이 불어나면 도살장으로 직행하는 자돈이 그것인데, 소와 닭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과학축산이 그리 빚었다.

 

우리는 시방 어느 지역의 역대 황제보다 잘 먹는다. 한겨울에 계란만큼 큰 딸기를 먹고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쇠고기를 언제든 즐길 수 있다. 그를 위해 화학비료를 막대하게 뿌리는 광활한 농토에 끝 간 데 없이 옥수수를 심었고, 잡초와 해충을 죽이려고 농약을 듬뿍 뿌려야 했다. 그 뿐인가. 옥수수의 유전자까지 조작했다. 그런 옥수수는 석유를 마구 들이키는 농기계를 사용해야 하고 거대한 트럭과 선박에 실려 오대양 육대주를 달려야 한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전문가는 옥수수에서 1칼로리를 얻기 위해 석유 10칼로리를 부어야 한다고 분석한다. 그런 옥수수 16킬로그램을 먹이면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는다. 돼지고기는 9킬로그램, 닭은 4킬로그램의 옥수수를 먹어야 1킬로그램의 살코기를 내준다.

 

기상이변을 연출하는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식량위기를 예고하는 요즘, 전문가들은 석유위기가 멀지 않았다고 걱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기를 지나치게 먹는다. 어린이 성인병과 젊은이의 퇴행성질환이 증가하는 원인이기도 한데, 10억 인구는 여전히 굶주린다. 가축은 넘치지만 자연의 동식물은 연실 절종된다. 지독한 역설이다. 이번 구제역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강력한 경고다. 늦기 전에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철 제고장 농산물을 유기적으로 재배해 이웃과 나누고 고기를 특별할 날에만 먹던 시절로. (야곱의우물, 2011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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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 3. 14:07

 

올해는 토끼띠의 해. 돼지나 소띠 해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한 해를 상징하는 십이지까지 소독약 세례 받다 살처분돼 매몰될 뻔했다. 토끼는 지혜와 풍요의 상징이라는데, 지혜는 모르겠고, 토끼는 다산을 하니 풍요는 가능하겠는데, 지금 우리 산하에 토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겨울철이면 조릿대와 칡넝쿨을 뜯던 토끼가 드물어지면서 양지바른 산비탈을 조릿대가 차지하고 칡넝쿨이 크고 작은 나무들을 마구 휘감아 생태계가 단순해지고 있다. 대신 사람과 가축, 탐욕과 질병이 전에 없이 늘었는데, 그게 탈을 만들 줄이야.

 

새해는 구제역에 대한 긴장감으로 열렸다. 작년 말 50만 마리의 돼지와 소를 살처분했다더니 어느새 60만 마리를 훨씬 넘어섰다. 새해백두부터 청정지역의 안전망이 뚫렸다는 소식만 들리는 듯하다. 그 뿐인가. 진작 걱정했던 흉측한 사고, 다시 말해 매몰된 가축 사체의 침출수가 흘러든 지하수와 그 악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고병원성 조류독감까지 가세하니, 소독약이 얼어붙는 엄동설한에서 현장 공무원들은 과로사에 사고사까지 감내하며 살처분의 아비규환 속에서 환청과 악몽에 시달린다.

 

다짜고짜 죽이겠다는 살처분은 잔혹한 수단이다. 아무리 도축을 전제로 사육하는 가축이라고 해도 분명한 생명이다. 살려두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영악한 계산으로 죽어 파묻는 처사는 당하는 동물의 처지에서 감당할 수 없이 억울할 게 분명하다. 처지를 바꿔보라. 전파력이 매우 높은 가축 1급 전염병이지만 인체에 거의 무해한 구제역은 잘 보살피기만 하면 감염된 가축의 대부분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면역이 약한 송아지나 새끼 돼지는 절반 가까이 죽을 수 있다지만 다자란 가축은 95퍼센트 이상 살아남고, 회복되면 면역이 생겨 더는 감염되지 않는다는데, 저토록 무참하게 죽여 하는 걸까.

 

살처분은 안락사로 규정돼 있다. 신체 뿐 아니라 심리까지 고려해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소는 다른 소들 앞에서 독극물을 주사해 죽였다. 우리가 표정을 읽지 못해 그렇지, 기다리는 소들은 얼마나 공포에 떨어야 했겠는가. 돼지는 더욱 끔찍했다. 얇은 비닐이 깔린 구덩이에 몽둥이로 우르르 몰아넣고 굴삭기 삽날로 찍어 죽인 뒤 매몰하지 않았던가. 닭은 다짜고짜 자루에 넣은 뒤 생매장했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려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살처분되는 가축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

 

살처분이 남용되는 국가가 우리 말고 더 있는지 모른다. 구제역의 경우 특히. 농경사회에서 없었거나 위험하지 않던 질병이 요즘 무서워진 건 가축을 생명으로 여기려 하지 않은 자본이 산업축산을 지배한 결과다. 오래 같이 살던 가축을 오로지 고기나 유제품이나 계란을 남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생산해야 하는 도구로 취급해, 좁은 공간에 밀집시킨 뒤, 공장처럼 사육하자 질병의 전파가 쉬워졌다. 또한 돈벌이에 적합한 품종으로 극단적으로 육종하는 과정에서 조상이 가진 유전자의 대부분을 잃자, 환경변화와 질병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구제역은 결국 인간의 탐욕이 던진 부메랑인 셈이다.

 

구제역의 대책 또한 탐욕과 무관하지 않다. 백신투여를 망설인 것도 청정지역 취소로 수출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이고 수출과 거리가 먼 소를 죽이느라 들어가는 돈이 많아 소에 한정해 백신을 주사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무엇을 뜻하는가. 탐욕스런 경제논리가 아닌가. 가축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길 때 구제역은 통제되지 않는다. 구제역을 몰랐던 시절의 조상처럼 가축을 사육하지 않는다면 고생스레 이번 구제역을 퇴치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더 무서운 구제역, 더 큰 부메랑이 날아올 것이다.

 

산업축산이 힘을 잃게 하려면 외양간에 가축을 맡기고, 우리들은 암이나 순환계질환을 유발하는 기름진 살코기와 유가공식품을 멀리해야 한다. 발 딛고 사는 땅과 생태계, 나와 이웃과 후손의 건강, 그리고 에너지 위기와 지구온난화도 개선할 수 있는 유기적인 밥상을 회복해야 한다. 바로 조상이 차리던 자연스런 밥상이다. 토끼처럼 채식 위주라면 더욱 좋다. (요즘세상, 2011.1.16)

 

정말 그러네요. 지금까지 구제역으로 인해 소나 돼지가 죽었다는 말을 못들은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구마구 살처분을 해야 할지... 각 도로마다 방역소를 설치하고 무차별 소독약을 뿌려대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