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5. 15. 15:32

    영리병원이 달갑지 않은 이유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책은 병원에 누워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워낙 위중해 의사마저 거들떠보지 않는 상태라서 죽음을 의식하고 기진맥진해 있을 때였다. 병실 청소부로 보이는 아시아계의 작고 나이 든 여인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다가오더니 동정심 가득한 얼굴로 얼굴과 몸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게 아닌가. 치료를 포기한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가족까지 찾지 않는 상황인데, 낯모르는 이에게 동정어린 마음으로 다가와 정성을 다해 씻겨주는 모습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그 경험을 계기로 회복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고 썼다.


목포의 해운항만청에 근무하던 한 사내는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자주 마시는 술 때문인지 속이 늘 불편했다. 찾아간 병원마다 주사와 약을 처방해도 차도가 없었는데, 선배의 권유로 들어간 허름한 의원은 달랐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증세와 관련 없는 질문을 이것저것 던지더니 단식을 처방하는 게 아닌가. 진료비도 사양하며 진지하게 권해서 마음먹고 처방대로 단식과 복식을 마쳤는데, 희한하게 천형처럼 여겼던 속병이 이후 깨끗하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근했어도 자주 문안을 가던 그는 존경하는 의사의 주례를 받고자 굳이 목포로 가서 결혼식을 가졌다고 했다.


최근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청에 외국인 투자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이 가능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외국의 투자를 희망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필요성을 제기했고, 뚜렷한 사회적 결론 없이 설립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 제정되었지만, 10년 전 일이었다. 이후 시행령이 없어 실효성이 없었는데, 지난 4월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전격 통과해 오는 6월 말이면 본격적인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그러자 한동안 잠자코 있던 시민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무상의료와 같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는 세계의 추세에 역행해 시민의 부담을 늘리는 의료 민영화의 신호탄이라면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영리병원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없더니 이제와 논란이 되는데 대해 다소 당황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환경 조성 차원에서 설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시민단체는 정권 말 특정 재벌을 위한 노골적 특혜라고 반박한다. 한 여당 국회의원의 목소리를 빌리며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영리병원이 우리 건강보험 체계를 허물 수 있다고 염려한다. 의료수가가 낮은 우리 공중의료보험을 거부해 미국처럼 맹장수술 같이 간단한 치료에도 수 백 만 원을 요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우리 의료보험 체제가 확고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당국자는 어이없어한다.


거대 보험회사를 소유하는 대기업에서 국제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현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민단체는 영리병원이 생기면서 사설 보험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지면 공공의료보험이 병원에서 외면될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다. 미국에서 보듯, 결국 의료비 상승으로 보통 이하의 수입을 가진 시민들 고통이 심화될 것을 염려하며, 4월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을 비판한다. 외국 자본 비율 100퍼센트를 50퍼센트로 낮추었다는 건, 국내 기업의 투자를 보장하는 속셈이 아닌가? 병원장을 외국인으로 두도록 규정한 시행령은 회의 결정 기구의 과반수를 해외 병원 소속 의사로 채우고 전체 의사의 10퍼센트 이상, 그리고 진료 과목 당 1인 이상을 반드시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로 배치하도록 정했다지만, 국내 의사면허 가진 자가 90퍼센트 가깝다면 사실상 내국인을 받겠다는 게 아닌가 묻는다.


전국 7개의 대도시와 20개 넘는 도시가 포함되는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올 수 있는 국제 영리병원은 아마 미국계 자본이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미FTA가 체결된 이상 우리는 그 병원을 우리 제도로 통제하기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 우리의 의료 수준이 낮지 않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지금도 거액을 마다하지 않으며 미국으로 떠나는 환자가 적지 않은 마당이 아닌가.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광고를 앞세우는 사설 의료보험회사와 영리병원이 위화감을 일으키며 문을 활짝 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투자자가 국가를 직접 소송할 수 있는 제도를 미국과 FTA를 맺으며 도입한 이상, 우리 정부는 미국계 자본의 사업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영리병원이 의료 관광객을 늘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데, 국제 영리병원의 수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국내 병원보다 유리하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도 병원을 찾아 입국하는 외국인은 다른 국가에 비해 비용이 적고 의료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한데 고액의 의료비를 지불해야 할 국제 영리병원에 해외의 의료 관광객이 국내병원보다 더 몰려들 것으로 짐작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국내인보다 적지 않겠지만, 그들도 국제 영리병원의 의료 수준이 국내 병원보다 획기적으로 높지 않다면 거액을 요구하는 병원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절반 가까운 국내 자본이 참여하고 의사의 90퍼센트를 국내 의사면허를 가진 이로 채울 국제 영리병원이라면, 머지않아 내국인을 받으려 할 테고, 우리 당국은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단체는 1인 시위와 대규모 집해, 그리고 각종 토론회를 개최해 경제자유구역의 국제 영리병원의 허용을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이 지연되거나 제지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데,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을 느닷없다고 보는 추진세력은 제 밥그릇을 놓치지 않으려는 극히 일부의 선동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국제 영리병원의 반대를 넘어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그 시민단체의 논리에서 밥그릇 싸움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하기에 논리보다 감성적 접근에 나서지만, 선동과 거리가 멀다. 제시하는 논거가 부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는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국제 영리병원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송도 신도시에 처음으로 문을 열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국제 영리병원에 대해 약간이라도 상식을 가진 시민은 인천에도 거의 없다. 대부부의 시민들은 영리병원이 현재의 병원과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10년 전부터 논의되었지만, 국제 영리병원이 문을 열 경우 우리 의료 체제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 그 문제가 시민의 건강권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내용을 거의 모른다. 그런 마당에 국제 영리병원의 타당성을 늘어나는 의료보험료에 부담을 느끼는 일반 시민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반 시민은 물론, 전문가들도 쉽게 토론해 합의를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을 서두를 이유가 없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매몰돼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는 극소수의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민주적이지 않다. 일부 자본의 이익을 은근히 배려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국제 영리병원은 당장 밀어붙여야 할 사안이 아니다. 국제 영리병원이 무엇이고 왜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타당할 것이다.


     어려서 배가 아프면 할머니나 어머니의 약손이 해결해주었다. 지금은 아니다. 환경이 오염되고 사고의 원인이 많고 무서운 세상이다 보니, 엄마의 약손보다 병원의 장비나 약이 훨씬 급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나 이웃이 병을 않으면 누구나 마음이 편치 않다. 남의 고통 덕분에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반가워하는 이는 드물다. 장비나 약을 개발하고 구입하는데 비용이 들어가므로, 병원에 관계하는 이도 수입이 필요하므로, 병원을 이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병원이 전문화되면서 전에 없이 늘어난 비용에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세금을 받는 국가는 의료보험으로 보호하거나 아예 국가 재정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전혀 아니다. 국제든 국내든, 환자의 고통을 대가로 돈을 벌어들이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선 병원이다. 그런 병원이 왜 인천에 먼저 들어와야 하는가. 영 달갑지 않다. (인천in, 2012,5,15)

지금의 대형병원도 거의 영리병원 수준이지요.

 
 
 

도시·인천

디딤돌 2011. 1. 21. 00:39

 

미국은 주간고속도로가 국토를 바둑판같이 종횡으로 가르는 자동차의 나라다. 그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일반도로가 나란히 이어지고 대도시와 가까운 일반도로 옆에 상자 같은 거대한 건물이 무리지어 늘어서 있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축구장 서너 개도 너끈히 품어낼 수 있는 규모의 쇼핑몰들로, 그런 도로를 타고 집과 직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쇼핑몰에 수시로 들려 자동차 트렁크 가득 온갖 물건을 채운다. 덕분에 미국의 주택은 점점 도시에서 떨어져나가 정원을 잠식한다. ‘스프롤 현상이다.

 

따뜻하면서 건조해 나이든 이가 살기 좋다는 미국의 애리조나 주는 넉넉한 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유난히 많다. 주간고속도로에서 사막지대까지 멀리 이어지는 아스팔트의 끝에는 고급주택들이 즐비하지만 거기엔 상가도 학교도 없다. 오로지 주택들이다. 상하수도와 전기와 가스와 통신시설이 없다면 존재가 아예 불가능한 사막의 고급주택 단지는 어처구니없는 명분으로 중동을 선제공격한 역대 미국 정권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이른바 미국식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데, 석유위기 시대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외부 지원과 자동차와 낭비를 전제하는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대략 3.8리터인 1갤런의 휘발유 가격이 4달러 정도이므로 우리보다 미국이 조금 저렴한 편인데, 앞으로 갤런 당 6달러로 오른다면? 미국인들은 휘발유를 벌컥벌컥 마셔대는 SUV를 버리고 세단 형 승용차를 몰 것이라고 포브스 지의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기자는 석유 종말 시계에서 말했다. 인구 1000명 당 750대의 자동차를 소유하는 미국은 어이없게도 인구 1000명 당 4대에 불과한 중국의 마이카 시대를 걱정한다. 가구 당 한 대 꼴로 중국인들이 자동차를 굴린다면 적어도 4억 대가 늘어날 테고, 지금도 내릴 기미가 없는 국제 석유 가격은 더욱 치솟을 게 아닌가.

 

새롭게 발견돼 시추하는 석유 양의 10배를 뽑아대는 요즘, 석유 생산에 정점이 멀지 않았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아니 이미 지났을지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석유를 뽑아 올리는 양이 최고인 석유 정점이 지났다 해도 석유가 당장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늘어나기만 하는 소비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기 시작할 테고, 그러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요즘 국제 석유 가격은 심상치 않다. 만일 석유 가격이 갤런 당 12달러가 된다면? 미국인들은 교외의 집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을 거로 석유 종말 시계의 저자는 예상한다. 그렇다고 독일의 역사가가 꼬집은 억겁의 세월 동안 쌓인 석유 자원을 200년 동안 다 써버리는 단발성의 짧은 중독성 발작까지 즉시 종료되는 건 아니다.

 

석유 종말 시계는 치솟으며 줄어들 석유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도시의 모형인 이른바 컴팩시티의 좋은 예로 송도신도시를 들었다. 그래서 작년 인천시장 후보였던 어떤 이는 2월에 번역 출간된 그 책이 송도신도시를 찬양하고 있다고 은근히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는데, 그는 석유 종말 시계를 처음부터 정독한 것 같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경제 전문지의 기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는 홍보자료에 의존했을 테지만 송도신도시의 역사는 물론이고 참모습도 볼 기회가 없었을 게 틀림없다. 송도신도시가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갯벌을 파괴했다는 사실, 호화판으로 지은 지하철을 외면하고 고급 승용차를 고집하는 주민들은 엄청난 전기료 부담을 외부인이 알면 집값이 떨어질까 두려워한다는 사실, 투기에 힘입어 주택 가격은 높지만 전세 값이 싼 건 편의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들을 알 턱이 없을 것이다.

 

도넛 현상이라 했던가. 주말이 되면 도심이 도넛처럼 텅 비는 현상은 도심 외곽에 사는 시민들의 출퇴근 시 이동을 전제로 한다. 주말에 건물 현관의 셔터를 내리는 서울이 그렇다. 일본 동경도, 뉴욕 맨해튼도 그럴 것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에 위치한 주거시설은 아주 고급이거나 엉망일 텐데, 충분한 돈으로 외부에서 물자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내부의 쓰레기를 외부로 치워내지 못한다면 도심은 사람이 머물만한 공간일 수 없다. 면적이 확장되고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 정도는 더할 것인데, 석유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석유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주거 방식, 다시 말해 컴팩시티를 구상할 것이다.

 

컴팩시티는 어떤 인천시장 후보가 오해하듯, 단순히 거주하는 시민들을 집적시키는데 의미를 두는 도시의 형태가 아니다. 거주하는 시민들의 이동을 최대한 줄여 지역 안에서 기초적인 교육과 상거래가 이루어지도록 구조를 개선하고 가능한 한 직장도 지역 안에서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승용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한 송도신도시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초고층으로 숲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번듯한 외관보다 이웃 사이의 따뜻한 소통을 중시하는 컴팩시티는 에너지나 농산물의 자급까지 지향하려 최대한 노력한다.

 

활기를 잃지 않는 도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크든 작든 주기적인 재개발이 필요하게 된다. 재개발이라 해서 단독주택을 헐어 다세대주택을 짓고, 아직 멀쩡한 다세대주택과 저층 아파트를 투기 목적을 위해 헐어낸 뒤 고층, 또는 초고층으로 올리는 방식은 우리 이외의 국가에서 매우 보기 어렵다. 주변의 경관을 방해할 뿐 아니라 주민 사이의 왕래를 어렵게 만드는 고층빌딩은 인기가 없어 변두리에서 빈곤 계층에게 낮은 가격으로 임대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자랑스레 생각하는 도시일수록 기존 건물의 외관을 보전하려 무던히 애를 쓴다. 주거시설로 개조할 경우, 컴팩시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한결같다.

 

상가나 공장, 심지어 군부대 터를 주택단지로 재개발할 경우라도 기존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활용하며 내부를 보수하는 독일 컴팩시티의 원칙을 들여다보자. 독일에서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대 3층을 넘기지 않는 주택은 단열이 철저할 뿐 아니라 지붕마다 태양광 패널을 붙였고 작은 텃밭이나 화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당을 두는 것을 당연시한다. 주거단지의 외부에 주차장을 두어 노선버스와 공사용 차량을 제외한 일체의 승용차를 단지 내에 사용하지 못하게 배제하는 대신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도로를 완비하여 학교와 상가를 오고가는 주부와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하며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곳곳에 조성해 주민들의 소통공간을 확보한다.

 

폐기된 비행장 부지에 지열과 태양광 발전을 도입한 독일 뮌헨의 생태주택단지는 빗물을 재활용하거나 지하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었으며 사무공간을 확보해 가까운 곳에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군부대를 주택으로 재개발한 프라이부르크의 경우, 기존 도심과 연결하는 철도가 입주 이전에 완공되는 것은 물론이고 도심에서 누릴 수 없는 초원과 경작지를 가까이 두어 먹을거리의 자급을 지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보장해주었다. 독일은 유럽에서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보행자와 자전거에 도로를 배려하고 대중교통이 편리한 교통정책을 펼치는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원을 도시 곳곳에 만든다. 재개발은 관공서와 사무공간과 시장과 학교를 가까운 지역으로 모아 주민들이 이동하느라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유도하고 외곽에 텃밭을 조성해 저렴하게 임대해주기도 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도시는 빗물을 전혀 완충하지 못하고 호수를 조성하지 않은 공원은 빗물을 저장하지 못해 지하수를 보전하지 못한다. 외곽의 농경지를 잠식하며 확장되는 도시는 먹을거리를 외부에서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천이 그렇다. 근대화 이후 확장되기만 하다 그 한계를 절감한 일본도 2000년 들어 에너지 낭비구조의 도시를 컴팩시티로 변화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어떤가. 청량산과 문학산 일원의 전원지대를 잠식하는 것도 모자라 천혜의 갯벌을 막대하게 매립한 인천 연수구, 김포평야를 잠식한 계양구와 부천의 중동과 상동, 그리고 넓은 갯벌과 경작지를 맹렬하게 매립하는 인천의 서구, 심지어 절대농지까지 기웃거리는 강화군은 컴팩시티와 거리가 멀다. 인천만의 사정은 아닐 것인데, 직장과 상가를 찾아 시도 때도 없이 도로를 메우는 자동차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질식된다. 에너지는 물론, 약간의 농작물의 자급도 꿈꾸지 못한다.

 

인천을 컴팩시티로 개발하겠다는 목소리가 한때 들렸는데, 요즘 잠잠하다. 고급 초고층빌딩을 밀집시켜 투기에 관심이 높은 시민들을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으로 들려 내심 불편했는데, 일단 조용해져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구도심의 오래된 주거지역은 컴팩시티로 재개발이 오히려 절실하지 않을까. 망국적 투기바람으로 외지인 현혹하는 초고층 아파트단지의 신기루에서 벗어나 다정한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주거단지에서 지역에 뿌리내린 문화와 역사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불필요한 이동을 줄일 수 있는 생태도시를 구상할 기회가 아닐까.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 때문에 출퇴근이나 등하교 길에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주거단지의 곳곳에 나무가 울창한 공원이나 텃밭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걷거나 자전가를 타고 모인 주민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도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보다 녹색이 완연한 공간은 빗물이 완충되어 지하수로 이어지는 도시, 태양이나 바람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도시, 그리고 그런 주거단지에서 이웃들과 삶을 뿌리내릴 수 있는 정주공간으로 거듭나지 않겠나. 낯모르는 직원이 기계적으로 인사하는 대형 양판점보다 손님의 얼굴을 기억하며 반갑게 맞는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텃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컴팩시티는 쌀쌀맞은 초고층아파트 단지에서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구도심만의 기회가 된다. 그 실천을 위한 논의와 연구의 필요성이 인천에서 제기돼 시민사회로 널리 번져나갔으면 좋겠다.

 

도시의 아들이 기름보일러를 설치해준 시골 양옥집의 노인들은 겨울이면 한 집으로 모여 난방비를 아낀다는데, 지구온난화의 역설적 여파로 올 겨울은 예전에 없이 춥다. 국제 석유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요즘은 석유 위기를 염두에 둔 마음가짐과 행동을 요구한다. 흥청거리는 도시도 머지않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전기나 석유와 같은 에너지 과소비 없이 유지가 불가능한 초고층빌딩일수록 그 정도가 더할 것이고, 석유 없이 생산이 아예 불가능한 산업축산이나 산업농업도 곧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석유 위기를 앞둔 농촌은 물론 도시도 최대한 에너지와 먹을거리의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기농업으로 노력한다면 석유 과소비 없어도 농촌은 버틸 수 있겠지만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도시는 발상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컴팩시티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야 할 필요가 없는 환경 친화적인 재개발로 가능하다. 다정한 이웃과 지역에 뿌리 내리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in 2011.1.27)

 
 
 

도시·인천

디딤돌 2009. 12. 19. 01:07

 

저어새들 날아간 송도 11공구 갯벌은 썰렁하다. 작년 가을 겨울철새들이 떼로 죽은 뒤라 그런지 오리도 그리 많지 않다. 악취가 진동하고 공사 중장비들이 밤낮 없이 질주하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의 작은 인공섬에 둥지를 친 저어새는 한줄기 희망 같았는데, 덕분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의 철새와 습지단체들이 굳이 찾아와 보존을 요구하는 성지가 되었는데, 둥지에서 다음세대를 잘 키워낸 저어새가 따뜻한 나라의 습지로 날아간 뒤 송도 11공구 갯벌은 다시 불안해진 거다. 그래도 내년에 다시 찾겠지. 거기가 고향이므로. 한데, 송도 11공구 갯벌은 저어새가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보전될 수 있을까.

 

인천의 오랜 역사이자 문화였던 갯벌은 다 매립돼 시방 송도 11공구에 유일하게 남았다. 갯벌을 보려면 강화나 장봉도 일대로 가야 하는데, 거기도 안전하지 않다. 조력발전으로 휩쓸려 사라지거나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될 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은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 평균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는 데 그치게 해보자고 마음을 졸였는데, 온실가스를 자연스레 제거해주는 갯벌을 파괴하며 친환경에너지라 칭하니 어처구니없다. 2도 오르면 해수면이 어느 정도 상승하겠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파고가 높아져 송도신도시나 인천공항이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최고 정책 담당자는 갯벌은 개발이 아니라 보존대상이란 걸 이해하려나. 내년을 기대해본다.

 

초고층빌딩이 늘어나는 만큼 녹지가 잠식되는 인천의 대기가 다른 지역보다 더 뜨거운 건 상식일 텐데, 대기질도 그리 좋을 리 없다. 인천에 특히 많은 화물자동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인천의 앞바다를 거의 두르며 굴뚝을 솟아올린 화력발전소마다 온배수를 토해내지 않은가. 게다가 남동발전(주)은 영흥도에 발전설비를 당장 2기 추가하겠다고 나섰고 중부발전도 뒤질세라 보령시의 발전설비를 서구 경서동으로 옮기겠단다. 일단 발끈했다지만, 숱한 개발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에 목말라하는 인천시의 처지에서 실제로 막아낼 수 있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이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텐데, 인천의 하늘과 바다의 운명이 걱정이다.

 

결국 경인운하는 ‘아라뱃길’이라는 야릇한 이름을 달고 올해 착공되었다. 내년에도 공사는 계속될 테지만 일자리는 정부의 장담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살리기’로 위장된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일 텐데, 경인운하를 이동할 선박에 장차 무엇을 실을 수 있을까. 해양생태계를 바닥에서 훑을 바닷모래? 수도권 생활쓰레기? 물론 호화유람선은 아닐 것이다. 도무지 볼 게 없지 않은가. 그럼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인천시에서 추진하는 ‘검단 장수 간 민자도로’는 어떤가. 착공된다면 장차 책임소재를 따져야 할 사태가 발생할 게 뻔하다. 녹지의 가치를 인식하는 일단의 시의원이 해당 예산을 막아 올해는 위기를 면했지만 내년은 어떨지. 마지막 남은 S자 녹지마저 허무는 범죄행위로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설마 자행하지 않겠지. 지방선거가 내년인데.

 

인천의 진산, 계양산은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백두대간에서 한남정맥으로 이어져 황해를 굽어보던 계양산이 인구 28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의 마지막 위안으로 남았건만 껌과 초콜릿을 팔아 큰돈을 번 대기업 롯데가 시민 대다수의 요구에 눈을 감은 태도를 아직 버리지 못한다. 합법적 절차를 내세우는 모양이지만 우리나라의 소비자들도 곧 ‘사회적 기업’, 다시 말해 이윤을 능동적으로 사회에 돌려주는 기업을 주목할 거라고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핵폐기장으로 버림받기 직전에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킨 굴업도에 CJ 산하 C&I는 ‘오션파크’라는 리조트를 조성하려고 한다. 한데 C&I는 롯데와 달리 현재 주민과 환경단체와 미리 논의하는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에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진지하게 지켜볼 일이다.

 

내년은 2010년 호랑이띠의 해, 경인년이다. 고단하게 물러난 기축년 소꼴이 되지 않길 호랑이에게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호일보, 200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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