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1. 12. 21. 08:47

 

여름 철새 저어새가 한겨울의 축제에 초대되었다. 남동산업단지의 유수지에서 3년 넘게 찾아오는 저어새를 가까이에서 살펴온 시민단체들이 12월 주말에 연수구청에 모여 축제의 한마당을 연 것이다. 세계적으로 2천 여 마리가 남은 저어새는 그 행동과 모습이 독특해 우리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탐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갯벌이나 논과 같은 낮은 습지의 바닥에 백로처럼 긴 발을 딛고, 주걱처럼 길고 두툼한 부리를 휘저으며 먹이를 걸러 먹기에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은 그 새들은 왜 하필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를 찾은 것일까.

 

잘 알다시피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는 악취가 심해 용무가 없다면 접근하려 하지 않는 곳이다. 갯벌을 매립하면서 파놓은 유수지에 목적대로 빗물만 고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기하수처리장이 가동되기 이전부터 공장 오폐수가 모여들이 바닥에 오니로 깊게 쌓였고, 하는 수 없이 당국에서 오니를 긁어모아 유수지 안에 작은 섬을 만들었던 건데, 그 자리에 저어새가 날아올 줄이야. 웬만한 오염과 악취도 잘 참아내는 재갈매기가 먼저 둥지를 쳤는데, 3월이면 날아오는 여름철새 저어새가 두툼한 부리를 휘저으며 재갈매기를 몰아냈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인데, 무슨 사연이 있을 게 틀림없다.

 

여름철 우리나라 서해안의 인적 없는 섬에서 번식을 하고, 겨우내 남중국해 일원의 바다로 이동하는 저어새는 큰맘을 먹지 않으면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존재였다. 무인도에 주로 번식하는 저어새를 보려면 낮은 배를 타고 찾아가 엔진을 끄고 조용히 접근해야 했는데, 이상스럽게 송도신도시와 제3경인고속도로의 현장에서 나오는 먼지와 소음이 가득할 뿐 아니라 남동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오폐수와 대기오염물질로 악취가 끊이지 않는 곳을 찾았다. 게다가 바닥의 오니에서 풍기는 악취로 숨쉬기 불편한 유수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그만큼 매립 광풍이 거센 우리 서해안에서 생존이 불안하기 때문이었을 게다.

 

소음과 자동차와 사람의 물결이 일상적인 유수지에 둥지를 치기 시작한 저어새들은 코앞까지 다가와 쌍안경과 성능 좋은 망원경을 놓고 서성이는 인파에 경계심을 거뒀다.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 한, 그저 정물의 하나로 인식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저어새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국내외의 많은 탐조인들이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로 모여들었다. 말로만 듣던 저어새가 둥지를 치고, 알을 낳고 품으며, 부화한 새끼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감탄과 또 감탄은 이어지고, 전국에서 모여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저어새에 생명의 가치를 푸근하게 느끼게 되었다. 덕분에 인천의 인상은 좋아졌다.

 

유수지를 찾아오는 저어새들 덕분에 전문 연구자의 연구만이 성과를 빚는 게 아니었다. 시민까지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를 제 뜻으로 찾아온 진객, 저어새의 행동의 모니터링을 자원하며 보호하려 3년이 넘게 애를 썼고, 3년의 모니터링 결과가 모여 12월 중순에 저어새 축제도 열지 않았던가. 저어새는 그 정성에 보답하려는 듯, 찾아오는 수를 해마다 늘렸다. 그러자 시민들은 늘어나는 둥지에 필요한 나뭇가지들을 보충해주었고 태어난 곳을 다시 찾은 저어새까지 포함된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는 어느새 인천시의 새로운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많은 인천시민들은 저어새가 다가오는 제 고장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저어새뿐이 아니다. 갯벌이 매립되는 만큼 그 수가 줄어들긴 했어도 검은머리갈매기, 마도요를 비롯한 수십의 도요새와 물때새 종류들, 그리고 겨울철의 숱한 오리들이 여전히 모여든다.

 

한데, 이상하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 사무국까지 유치한 인천시답지 않게, 구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저어새의 대부분이 주로 먹이활동을 하는 송도11공구 갯벌을 기필코 매립하고 말겠다는 자세를 바꾸지 않는 게 아닌가. 어미를 보채는 어린 저어새들을 먹이고, 다 자란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며 혼자 먹이를 사냥하고 멀리 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바로 그 현장을 매립한다면 올해 찾은 저어새의 상당 부분은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를 찾지 못할 게 틀림없다. 지금도 지나치게 많은 새들이 내려앉아 먹이를 놓고 경쟁하는 마당인데, 그 중 핵심인 갯골을 매립된다면 새끼들을 건사할 수 없는 저어새는 떠나거나 죽고 말 것이다. 세계 2000여 마리 중 인천의 새로운 상징으로 등극했던, 적어도 150마리는 인천에서 종말을 고할 수 있다.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서 송도11공구 갯벌로 이어지는 좁은 수로는 아직 저어새의 이동을 방해하는 높은 건물이 없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모른다. 최근 송도신도시에 올라가는 아파트는 대부분 초고층이다. 한창 자라는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물고 송도11공구 갯벌에서 유수지의 작은 섬을 향해 낮게 날아갈 적에 눈앞을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덩어리들이 가로막는다면? 저어새는 불안해할 게 틀림없다. 밤에 쉬려 할 때 높은 건물마다 훤히 빛을 밝히면 성장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상당한 저어새들은 몇 년 안심하게 새끼들을 키워냈던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의 둥지를 포기할 게 뻔하다. 인천시는 어렵게 생긴 자신의 상징을 내쫓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저어새와 함께 지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꺾을 것이다.

 

아직 방치된 면적이 많은 송도신도시에서 개발할 땅이 진정 모자라는 걸까. 11공구의 갯벌을 마저 매립하지 않으면 안 될 납득할만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현재 송도신도시에 투자한 많은 자본들이 계획을 철회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분양하려던 아파트도 열기를 잃었다.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인천시의 재정이 열악하다던데, 거품 시대에 계획했던 매립을 재고할 필요가 충분하지 않을까. 인천시의 건전한 살림에 맞게 사업 내용을 재조정하여 저어새를 비롯하여 수많은 철새들과 나그네새들의 마지막 낙원이 되어주는 송도11공구의 갯벌을 보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내일도 인천에 남을 다음세대의 시민에게 죄를 면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도 인천시는 매립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매립 이후의 개발을 계획하는 인력이 주도권을 놓지 않기 때문일지 모르는데, 뜻밖에 인천시는 저어새를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저어새를 인천의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려면 인천시는 거품 시대에 확립한 개발 계획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인천시를 찾아오는 진객, 저어새는 인천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산이요, 국제적인 자부심이다. 지구온난화와 석유위기 시대에 에너지 과소비를 전제하는 초고층빌딩이나 화려한 네온사인이 아니다. 일본 동경의 야조공원처럼 보존된 자연공간에 많은 관광객이 모여 경탄한다. 송도11공구의 갯벌은 동경의 야조공원 이상으로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갯벌과 그 곳을 찾는 저어새에서 인천의 내일이 건강하게 이어질 것이다. 저어새를 앵벌이로 여기기보다 훨씬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천in, 2011.12.20)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9. 6. 16:37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1985년 노래로 아직 인기를 잃지 않은 가수 정광태는 1983년 박인호 작사 작곡의 《도요새의 비밀》로 히트를 쳤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정치 시절, 열정을 실현하기 어려웠던 젊은이들은 그 가사를 흥얼거리며 밤거리를 흐느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 물으며 시작하는 가사는 뜨거운 태양보다, 무궁한 창공보다, 말없는 솔개보다 높이 날고, 밑 없는 절벽을 건너, 목 타는 사막을 지나, 길 없는 광야를 날아, 검푸른 바다를 건너, 춤추는 숲을 지나, 성난 비구름을 뚫고 멀리 날아간다고 노래했다. 비록 몸은 작아도 가장 높고 멀게 날고, 가장 높은 꿈을 꾸는 새라고 노래했으니 날개 꺾인 청년들은 그 노래라도 불러야 울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황새목 도요과에 속하는 13속 80여 무리 종에서 우리나라를 찾는 40여 종의 도요새 대표는 아무래도 마도요가 맡아야 하지 싶다. 덩치가 가장 클 뿐 아니라 활처럼 구부러진 부리가 길고 날카롭지 않은가. 국민가수 조용필이 하필 《마도요》를 노래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터. 큰 인기를 끌지 못했어도 1987년 박건호 작사로 작곡한 《마도요》는 네온사인이 화려해도 청춘을 만끽할 수 없는 젊은 도시인의 허전한 마음을 대변했다. 저마다 옳다고 우겨대도 들어주는 이 없는 도시를 마도요처럼 아쉬움을 남긴 채, 꿈을 찾아 떠나간다고 했다. 아, 1980년대! 그때 우리나라가 그랬다.

 

1980년 대 우리 서해안을 들린 마도요는 당시 대한민국의 청년들의 심사를 헤아렸을지 알 수 없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땅의 청년들은 서해안을 찾는 마도요의 두려움을 헤아리는 것 같지 않다. 선조의 기억을 따라 봄가을로 갯벌을 들러야 하는 마도요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한다. 몸길이 60여 센티미터로 닭 못지않은 덩치를 자랑하는 마도요지만 갯벌이 오그라드는 걸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갯벌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조용필의 활동이 전 같지 않아 그런가. 마도요를 기억하고 그들의 삶이 위축된다는 데 가슴 아파하는 이도 매우 드물다.

 

북유럽에서 러시아의 우랄과 몽골의 고비를 거쳐 만주 일원에 퍼져 번식하는 마도요는 둥지를 친 고향에 따라 겨울을 나는 곳이 다를 텐데, 인도와 아프리카 동부, 일본 남부와 타이완에서 동아시아를 찾는다. 일부는 우리나라 해안을 떠나지 않지만 적도를 지나 호주와 뉴질랜드의 해안까지 날아가는 무리도 적지 않다. 그런데 번식지에서 호주나 뉴질랜드를 해마다 왕복하는 마도요는 대부분 우리나라 서해안을 경유해야 한다. 1만 킬로미터 이상 나는 동안 몸무게가 절반 가까이 허해졌으니 보름 정도 머물며 영양분을 다시 축적해야하는 까닭이다. 그때 페르시아의 검처럼 날렵하게 구부러진 부리가 진가를 발휘한다.

 

물갈퀴가 없으니 물이 밀거나 들 때 부지런히 날아오르거나 갯벌에서 긴 발을 적시며 천천히 걸아야 하는 마도요는 고개 내미는 칠게가 눈에 띄면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다. 부리나케 달려들어 머리가 빠질 정도로 20센티미터에 가까운 부리를 푹푹 찌르기를 반복하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다 싶으면 40도 정도 구부러진 부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어김없이 한 마리 끌어내는 거다. 작다면 그대로 꿀꺽! 삼키지만 한 입으로 넘기기 어렵다면 강력한 부리가 다시 빛을 발한다. 다리를 물고 몸통을 전후좌우로 흔들면 다리를 하나 씩 떼어낼 수 있을 터. 움직일 수단을 잃고 허전해진 몸통을 냉큼 삼키면 갯벌에 다리가 남을 것이다. 메인 메뉴를 다 먹고 접시 위에 남은 디저트를 느긋하게 즐기는 미식가처럼 이제 갯벌 위의 다리를 천천히 집어삼킨다.

 

마도요가 알을 낳는 고비와 만주의 풀밭도, 겨울을 나는 호주나 뉴질랜드 해변도, 주로 모래땅이다. 모래땅에 숨은 곤충과 도마뱀들을 잡는데 구부러진 부리가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부리는 아무래도 서해안의 갯벌에 적응한 결과로 보이는데, 도요새가 굳이 칠게만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동죽이나 백합도 마다하지 않고 갯지렁이도 대환영이다. 패각을 단단하게 여미는 꼬막도 마도요의 날카로운 부리 앞에 소용이 없다. 숨이 가빠 껍질을 살그머니 열고 입수공과 출수공을 내미는 순간, 날카로운 부리는 여지없이 몸을 파고든다.

 

갯벌 위를 칠갑한 듯 널렸던 칠게마저 시방 남획된다. 갯벌이 거듭 매립되면서 생계를 잃은 어민들이 간장에 졸여 저장하거나 낙지의 미끼로 사용하는 칠게를 마구 잡아들이자 마도요와 그 사촌인 알락꼬리마도요가 굶주리게 것이다. 가슴은 더 엷지만 머리에서 등까지 엷은 갈색에 검은 줄무늬가 산재하는 마도요는 꼬리가 흰 반면, 알락꼬리마도요는 등과 구별하기 어려운 꼬리를 가졌다는 게 두드러진 차인데, 사람이 만든 칠게 덫에 먹이를 잃고 만 것이다. 굴뚝으로 쓸 크기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세로로 길게 잘라 갯벌에 묻자 지나가다 미끄러진 칠게들이 하룻밤에 8킬로그램 자루로 가득 잡혀나가기 시작했고,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알락꼬리마도요처럼 마도요도 줄어들게 생긴 게 아닌가.

 

광활했던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에 이어 새만금의 갯벌마저 사라지자 서천군 유부도의 갯벌에 마도요를 비롯한 도요새 무리가 빼곡하게 모여드는 모양이다. 유부도만이 아니다.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보호하는 순천만, 조력발전으로 위기에 몰린 강화도 인근, 그리고 공터가 널린 신도시를 더 확보하기 위해 추가 매립하겠다고 벼르는 송도11공구의 갯벌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세계적으로 2만 마리 남은 알락꼬리마도요의 4분의1이 여전히 내려오니 고마울 따름인데, 오죽하면 찾을까. 그들에게 대안은 이미 없어졌다.

 

생태계의 오랜 보고이자 도요새 무리의 생명 기반인 갯벌이 산업단지와 최첨단 도시의 부지로 거듭 매립되자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하소연한다. 마도요가 와야 농사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시를 쓸 수 있는데, 아산시마저 ‘에코’라 접두어를 붙인 산업단지를 위해 130여만 평의 갯벌을 매립하려 혈안이다. 그래도 마도요와 알락꼬리마도요는 올 가을에 우리의 갯벌을 찾았다.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전원생활, 2010년 11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7. 3. 01:55

 

 

장맛비가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맹꽁이가 운다. 대도시의 아파트단지의 녹지 어느 구석에서 우는 맹꽁이는 개발 이전의 농촌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일 텐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장마철마다 울었다. 10차선 건너 대형 양판점이 문을 열기 전에 떼 지어 울었지만 이제 서너 마리에 불과하다. 잠시 물이 고이는 도랑에 알을 낳을 건데, 내년 이맘때에도 만날 수 있을지.

 

서울 신정동 아파트단지 신축 공사장에서 작년 맹꽁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환경단체가 보호를 요청했고 공사 담당 기업은 대체서식지를 마련해야 했다. 시멘트 가루가 날리고 공사장비들이 지축을 흔드는 와중에서 잘 견디고 있을지. 은평구 뉴타운 공사 이전부터 살던 맹꽁이들도 대체서식지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터전을 지키려 애쓴 환경단체의 노력이 경제논리를 앞세우는 기업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약속한 대체서식지의 면적이나마 기업이 지켜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한강의 랜드마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오페라하우스가 계획된 노들섬에서 맹꽁이가 발견되었다. 서울시는 별 생각 없이 더 좋은 곳으로 옮겨주겠다고 선언했지만 환경단체는 발끈했다. 노들섬의 맹꽁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바로 노들섬의 좁은 녹지라고 믿기 때문인데, 현재 노들섬 맹꽁이는 서울숲으로 옮겨졌다. 오페라하우스가 완성된 후 원래의 녹지로 돌려보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노들섬에서 타향살이하는 맹꽁이는 시방 오페라하우스 완공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까.

 

맹꽁이는 환경부가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이다. 법정 보호대상종이 아니라면 아무리 희귀해도 공사업체는 괘념치 않을 테지만, 보호대상종이라는 걸 환경단체가 주목하고 있으니 울며 겨자를 먹는다. 공사 주체는 모종의 수단을 써서라도 맹꽁이를 보호대상종에서 제외시키고 싶을 것이다. 환경단체는 힘을 가진 그들의 의지 때문에 불안하다. 실제로 골프장 계획부지마다 나타났던 꼬리치레도롱뇽과 산허리 주택단지에서 자주 발견되던 두꺼비가 뚜렷한 이유 없이 멸종위기종의 목록에서 제외되지 않았나.

 

대체서식지로 옮겨진 생물은 안녕한가. 생태적 습성과 조건을 성실히 파악해도 사람이 그 조건을 정확히 재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 공사 진행이 급한 시행자들은 어설프게 조성한 공간에 섣불리 풀어놓는 일이 다반사다. 특산종인 단양쑥부쟁이가 옮겨 심겨진 남한강 ‘4대강 사업’ 현장 인근 대체서식지의 단양쑥부쟁이는 공사당국의 장담과 달리 대부분 말라죽고 말았다. 소홀한 환경영향평가 탓에 서식 여부를 미처 파악할 수 없었던 공사 주체가 무리하게 이식을 서둘러 초래한 일이다.

 

‘4대강 사업’ 현장에서 계속 출현하는 층층둥굴레도 법정 멸종위기종이고 담수어류인 꾸구리도 마찬가지다. 삵과 수리부엉이와 같은 보호대상종이 발견되자 담당자는 훼손이 불가피한 곳에 서식하는 보호종은 대체서식지에 이식해 보호하면 된다고 앵무새처럼 반응했지만 환경단체는 안심하지 못한다. 4대강 사업 현장만이 아니다. 인천 송도11공구 매립 갯벌의 수많은 생물들은 보호대상종이 아니므로 당연히 매몰시키겠지만 그 갯벌에서 먹이를 취해 새끼들을 키우는 저어새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보호대상종이다. 저어새는 어느 공간에 대체서식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다고 생존이 가능할 텐가. 하지만 매립 담당자는 여전히 대체서식지 타령이다. 가히 대체서식지 결정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용산에 터 잡고 사는 이에게 더 좋은 곳으로 나가라고 하자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 우리는 뚜렷이 기억한다. 몇 푼 쥐어주는 돈의 액수가 이전의 우선 조건일 수 없었다. 마찬가지다. 삶이 뿌리내린 공간은 사람이든, 맹꽁이든, 단양쑥부쟁이든, 대체할 수 없다. 대체서식지는 죽든 살든, 터전에서 내쫓으려는 기득권자의 폭력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을 백안시하는 독선이다. 그러니 밤늦은 이 시간, 아파트단지의 작은 녹지에 장마철마다 맹꽁 맹꽁 울어주는 자연의 이웃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 없다. 내년에 다시 만날 그들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요즘세상, 2010.7.?)

잘 읽었습니다. 답답한 현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