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5. 12. 02:30

 

올봄은 구제역이 축산농가들을 고통에 빠뜨렸지만 근년에는 조류독감이 봄철의 연례행사였다. 정작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건 가축이지만 해당 농부도 살맛을 잃었을 것이다. 가축에 대한 극단의 품종개량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위축되면서 발생한 일인데, 조류독감이든 구제역이든, 전염성이 강한 질병 때문에 멀쩡한 생명을 살처분하는 일은 결코 흔쾌할 리 없다. 그 중 조류독감이 우리나라에서 최근 만연된 원인은 갯벌 매립과 무관하지 않다. 겨울철새가 조류독감을 옮기는 게 확실하다면 그럴 것이다.

 

죽은 철새나 그 가검물을 수거해 조사하니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방역당국은 발표하던데, 왜 철새는 닭이나 오리와 달리 떼로 죽지 않았는지, 예서 논하지 말자. 분명한 건 우리나라로 날아왔다 내릴 곳을 찾지 못하자 먼저 온 철새들이 바글거리는 갯벌이나 인근의 호수로 별 수 없이 내려가 더욱 복작거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철새들로 빼곡하니 질병에 쉽게 감염될 테고, 하필 조류독감에 감염된 철새가 하늘을 날다 배설물을 흘린다면 스프레이처럼 흩어진 바이러스가 양계장의 문틈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 운 나쁘면 주위 300미터 안전반경 이내의 닭과 오리는 모조리 살처분될 테고, H5N1과 같은 고병원성이라면 안전반경은 3킬로미터로 확대되겠지.

 

최근 국토해양부는 2003년부터 5년 동안 여의도의 21배인 60.8㎢의 갯벌이 매립되었다고 밝혔다. 그중 절반이 넘는 33.2㎢의 갯벌은 인천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2006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1964년 3900여 ㎢에 달했던 갯벌이 32년 만에 2천여 ㎢로 줄었고 2015년이면 1500㎢ 이하로 급감할 거로 예상하면서 분별없는 매립을 자제해야 한다고 걱정한 적 있는데, 당시의 자료는 이번 국토해양부의 것과 달랐다. 2008년 말에 2489㎢던 갯벌이 5년 만에 60.8㎢로 줄었다고 수정한 건데, 어느 자료가 맞는지는 인천에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알량하게 남은 인천의 갯벌마저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새만금을 비롯해 평택항과 여기저기 산업단지로 갯벌 매립을 주도한 국토해양부는 KEI와 달리 매립 자체를 우려한 게 아니라는 점은 기억하자.

 

송도신도시를 국제도시의 면모로 구색 맞추려는 노력이 승했는지, 2008년 말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 사무국을 유치하는데 성공한 인천시는 이제야 철새보전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나섰다. 그를 위해 KEI와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용역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는데, 정작 시는 엉뚱한 다리를 긁고 있다. 수도권매립지, 인천공항, 청라지구, 송도신도시, 백령도의 진촌지구 들을 열거하면서 갯벌 매립을 후회하는 모양새를 연출했지만 인천을 찾는 상당한 철새들이 내려앉는 송도11공구 갯벌의 보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담당자는 지역을 대표하는 철새를 선정해 복원대책까지 세우겠다고 호언했지만, 철새들이 그 사실을 알면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할까.

 

그뿐이 아니다. 항만의 수심확보를 명분으로 퍼낸 준설토를 왜 하필 갯벌에 투기하는 걸까. 그런 식으로 사라졌거나 사라질 갯벌이 거의 12㎢에 달한다. 더욱 치명적인 곳이 있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강화조력발전은 7.65㎢의 갯벌을 손상시킬 예정이라 하고 국토해양부가 추진하는 인천만조력발전은 22.3㎢의 갯벌을 요절낼 계획이라지 않던가. 송도11공구의 6.19㎢ 갯벌마저 매립된다면 해안이 리아스식으로 복잡했던 인천은 누천년 이어진 갯벌을 당대에 모두 없애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철새를 쫓아내는 인천시는 EAAF 사무국을 반납해야 옳은 것이다.

 

국토해양부와 인천시는 조력발전이 친환경에너지인 양 선전하지만, 개발에 눈이 어두워 그런지, 그들은 갯벌 손상으로 잃는 지구온난화 방지 효과에 대해 극구 말을 아낀다. 갯벌이 제거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무릇 얼마인가. 지구에서 산소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조간대의 갯벌이라는 건 상식이다. 바다보다 막대하게 분포하는 식물성플랑크톤이 갯벌의 면적만큼 피어오르며 생산하는 산소의 양은 그로 인해 제거되는 대표적 온실가스, 다시 말해 이산화탄소의 양을 반영한다. 그뿐인가. 갯벌에서 증식하는 규조류의 외골격과 갯벌을 터 삼은 어패류의 탄산칼슘 껍질은 이산화탄소를 고정한 결과물이다.

 

어패류의 산란장이므로 인체의 자궁, 육지에서 쏟아지는 유기물을 정화하므로 인체의 콩팥이라는 주장은 생략하자.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이때, 갯벌의 가치는 경제적으로든 생태적으로든 온실가스를 내뿜는 여느 개발과 비교할 수 없다. 기상이변과 황사를 심화시키는 지구온난화는 경제성장이나 개발로 극복할 수 없는데, 갯벌의 가치를 어찌 매립으로 얻는 한시적 탐욕과 비교할 수 있나. 전기와 석유의 과소비 없이 한순간도 마음 편히 운영할 수 없는 인천신공항이나 최첨단 초고층빌딩이 즐비한 송도신도시도 당연히 비교 대상일 수 없다. “미래의 성장동력”이라고 대통령이 상찬한 새만금도 갯벌을 매립한 이상, 친환경 개발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비교를 불허한다.

 

저어새 무리는 올해도 남동산업단지의 유수지를 찾았다. 송도신도시 개발을 위해 밤낮 없이 질주하는 공사차량의 소음과 유수지를 맴도는 악취를 참으며 세계에서 2천 여 마리만 남은 저어새의 일부가 굳이 찾은 건, 인근 송도11공구 갯벌이 아직 온전하기 때문이다. 환경단체에서 둥지 재료를 슬쩍 제공했어도 사람을 지독하게 혐오하는 저어새에게 거기 말고 대안이 없었을 게다. 한데, 저어새 무리가 깃들어 새끼를 낳기에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곳은 사실 유수지가 아니라 인천에 유일하게 남은 송도11공구의 건강한 갯벌이었다. EAAF 사무국을 둔 대내외적인 명분이 서는 일이기도 했다.

 

지구가 온난화되면 해수면이 오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그에 비례해 태풍은 드세질 테고 파고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먼 바다에서 뜨거운 에너지를 받고 들어오는 너울은 해안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넓고 완만한 갯벌이 해안에 펼쳐진다면 파고는 물론 완충될 테지만 매립해 개발한 건물이 바닷가 경관을 독점한다면? 피해는 감당할 수 없이 증폭될 게 틀림없다. 영화 <해운대>처럼. 갯벌은 검은 흙도, 개발 유보지도 아니다. 내일의 생명을 담보하는 생태적 기반이다. (리뷰인천, 2010년 여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4. 22. 01:10

 

한 경제학자는 재개발로 멀쩡한 건물이 사방에서 무너지는 서울을 벗어나야겠다고 푸념했다. 아이와 함께 살 수 없다고 여긴 거였다. 사방에서 먼지가 날리는 곳은 서울만이 아니다. 주택경기가 좋던 나쁘던 인천도 재개발이 벌어지지 않는 동네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건물이 무너지며 미세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이 집 주위 2킬로미터 이내에 있다면 당장 떠나라고 그 경제학자는 외쳤건만, 대체 어디로 갈까나. 미세먼지가 허파꽈리에 박혀 수명이 단축되는 거야 바라지 않지만, 그 학자의 말대로 먼지가 일지 않는 동네를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걸.

 

저녁 무렵 종로를 지날 일이 있으면 피맛골에 가야 했다. 허기진 채 인천행 지하철을 타기보다 피맛골의 생선구이집에서 삼치 반 토막으로 저녁을 해결하거나 일행과 열차집으로 몰려가 한잔 술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들먹거리는 양반이 탄 말을 피하고 싶은 백성들이 다녔다는 피맛골. 그 피맛골에 문을 연 식당에 가면 맛보다 편안함이 있다. 나와 친구의 땀 냄새가 배어 있는 듯, 반가움이 인다. 그런데 지금 피맛골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수가 없다. 종로의 오랜 문화와 역사와 전설이 서린 피맛골마저 최첨단을 지향하는 재개발로 먼지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데 어라! 어울리지 않는 곳에 피맛골이 새로 생겼다. 피맛골 일부를 헐어내고 휘황찬란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건물의 1층 로비에 피맛골이란 간판이 버젓이 달려있는 게 아닌가. 대리석 바닥의 식당가 이름이 피맛골이라. 예전의 피맛골을 앵벌이 삼는 그 건물에 전혀 들어가고 싶지 않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전한 열차집의 간판이 인사동 어귀의 건물 위에 빛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도 그다지 찾고 싶지 않다. 주방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맛이야 예전과 비슷할 테지만, 분위기가 영 아닐 것이다. 비 내리면 질척대는 길바닥에서 주당들이 흐느적거리던 그 골목이 아니지 않은가.

 

자유로에서 보이던 은평구의 언덕에 올라섰던 한양주택은 지금 그 자리에 없다. 은평뉴타운의 높은 아파트 숲에 가린 탓이 아니다. 고층아파트들이 아예 깔고 앉았다. 한양주택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74남북성명 이후 남측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보여주려고 급히 만들어 날림이었지만 한마음으로 집을 수선하면서 함께 화단을 가꾸고 밭도 일구던 이웃들은 한양주택에서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공동체였기에 서울시장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며 상도 주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다소 불편해도 이웃 사이에 돈독했던 한양주택 주민들은 재개발을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오순도순 살던 주민들은 뿌리가 뽑혔는데, 가끔 시내에서 만나 회포라도 풀까. 피맛골은 사라졌는데.

 

용산 재개발 현장, 푸른 망루와 그 주변에서 강제 철거를 반대하던 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재개발 업자들이 장담한 대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서 더 잘 꾸민 가게를 열어 시방 큰돈을 벌고 있을까. 하지만 그들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한때 뜨거웠던 언론도 주목하지 않자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통 보이지 않는다. 100층 넘는 초고층빌딩을 포함하여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빌딩숲으로 용산 일대가 개과천선하면 사람들은 용산이 원래 그렇게 생겼을 거로 믿게 될지 모르지만 생각해보자. 희생자를 밟고 올라간 건물군은 화려하고 거대할수록 다른 희생자를 요구한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도, 멕시코의 칸쿤도 그렇다. 희생자가 없는 탐욕이 어디 존재한 적 있다던가.

 

한강대교 중간에 한쪽 어깨를 걸친 노들섬에는 맹꽁이가 산다. 하필 오페라하우스와 청소년 야외 음악당이 예정된 노들섬에. 물론 서울시는 노들섬의 맹꽁이와 사전에 설계 방안을 논의하지 않았다. 환경단체가 펼침막을 들고 항의하지 않았다면 맹꽁이는 건설 중장비 바퀴에 짓밟혔거나 콘크리트 아래 매몰되었을 건데, 다행히 대체서식지로 옮겨갈 수 있었다. 시설이 들어선 뒤 다시 데려올 것을 환경단체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서울시는 옮겨간 곳이 “더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더 좋은 환경이라, 맹꽁이에게 동의를 구한 걸까. 4대강의 모래와 자갈을 퍼올리고 강을 파헤치면 물고기들은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환경단체와 생태학자들이 주장하니, 정부는 염려 말란다. “더 좋은 대체서식지를 확보할 거”라며. 하지만 토목공사 이전에 누구도 4대강 본류의 어떤 물고기가 어떤 생태 조건에서 어떤 생물들과 어떻게 어우러져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이동했다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지 조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

 

송도11공구가 결국 메워지려는가.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저어새가 찾아왔는데, 그들은 어이할꼬. 그들이 악취 심할 뿐 아니라 자동차 소음이 진동하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를 거듭 찾은 건 알에서 독립할 때까지 새끼들을 먹일 먹이를 송도11공구의 갯벌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들도 더 좋은 환경으로 내몰리게 되는 건 아닐까. 2000여 마리만 남아 세계적인 관심사로 보호되는 저어새는 인천시가 철새보호지역이라며 확보하려는 ‘더 좋은 습지’로 새끼들을 데리고 갈 것인가. 안정된 갯벌을 기필코 매립하고 철새가 외면하는 고층빌딩 인근의 습지를 내주면 인간을 혐오하는 저어새가 진정 감읍해 할 것인지, 인천시는 물론 사전에 파악한 바 없다.

 

멸종위기종으로 법으로 보호되는 맹꽁이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에 대한 대우가 그런데, 다른 생물종의 처지는 어떨 것인지. 굳이 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까짓 동물들 없다고 인간사 별 문제없을 거라 단정할 테니까. 하지만 당하는 동물의 처지에서 조금만 생각해보자. 그처럼 끔찍한 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어떤가. 물론 용산과 은평구 한양주택의 가난뱅이들 몇 가구를 몰아냈다고 대도시의 면모에 금이 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민들도 세금 잘 내고 버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아무도 쫓겨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럴싸한 더 좋은 대체 서식지를 앞세우는 탐욕 앞에 시민들은 무시해도 되는 부스러기에 불과할 테니. 시민이 무시되는 도시의 장래는 시민의 행복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을 테고.

 

강화 인근의 무인도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던 저어새가 하필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나타난 건 불가사이가 아니다. 오죽하면 게까지 왔을지 우린 고민해야 한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건 노들섬의 맹꽁이도 마찬가지고 4대강의 강바닥에 사는 우리 민물고기도 그렇다. 용산에 가게를 마련했던 이웃도, 은평구의 한양주택 주민도 뿌리내린 바로 그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게가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모든 생물에게 더 좋은 환경이란 없다. 조상의 역사와 문화의 터전인 피맛골을 탐욕을 위해 헐어버리는 우리에게 허용될 대체서식지는 장차 어디일까. 우주복 입고 뒤뚱거리며 외출해야 할 화성인가. (인천in, 2010.5.?)

 
 
 

도시·인천

디딤돌 2010. 1. 15. 15:22

 

기상관측 이래 하루 최대 강설량을 기록한 이번 겨울은 몇 년 만에 최저 수은주 눈금을 기록하더니 이제 한풀 꺾였다. 슈퍼컴퓨터를 돌리는 기상청은 예년 제트기류에 묶여 북극에 멈춰 있던 시베리아의 한랭전선이 남쪽으로 풀려 혹한이 세계 곳곳에 몰아치게 되었다고 현상을 분석하지만 왜 제트기류가 풀렸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다. 혹 지구온난화와 관계없는 걸까. 아무튼 모처럼 눈이 녹은 길을 마음 놓고 걷게 되면서 마음은 벌써 봄을 기다린다.

 

봄은 언제 오나. 어린이에게 물으니, 눈이 녹으면 온다고 했다던데, 반짝 추위가 없지 않겠지만 1월 초순부터 계속되던 한파는 대한이 지나면서 봄기운에 녹아내리겠지. 대한 뒤에 입춘이 기다리지 않던가. 옛 시인은 들판에 노고지리가 울면 봄이 왔다고 노래했다. 그렇게 학교에서 배웠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며, 봄이 왔으니 부지런한 농부는 쟁기 들고 밭에 나간다고 했다. 한데 요즘 노고지리, 다시 말해 종달새는 통 보이지 않는다. 종달새가 알을 낳는 초원이나 봄보리 밭이 동네에서 사라지기도 했지만 겨울이 지나치게 더워 언제 왔는지 모르게 봄이 후다닥 지나가는 일이 그만큼 잦았기 때문일까.

 

끝 부분이 검고 다리만큼 긴 부리를 가진 알락꼬리마도요는 우리 갯벌을 봄가을이면 어김없이 찾는 나그네새지만 뉴질랜드 마오리족에게는 봄의 전령이다. 마오리족은 알락꼬리마도요를 보아야 비로소 봄이라는 걸 깨닫고 시인을 명상에 잠시고 화가는 화구를, 농부는 쟁기를 챙긴다는 거다. 한데 요즘 마오리족은 춘래불사춘(春來不思春),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갯벌을 본격적으로 광활하게 매립하면서 이동 중간에 충분한 휴식과 먹이를 먹지 못한 알락꼬리마도요가 뉴질랜드 해안을 예년처럼 찾기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오리족은 한국에 매립 자제를 당부한다는데, 우리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살리기’를 빙자하는 4대강 사업이 거대한 예산의 뒷받침 하에 얼음이 단단히 언 낙동강 일원에서 본격적으로 착공되고 있다.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거나 말거나, 일방적으로 “지구온난화 시대의 선택이 아닌 필수” 라면서 ‘녹색성장’의 기치를 함부로 드높인다. 한데, 녹색성장에 대한 개념은 우리 사회나 세계나 정립된 바 없다. 4대강 사업이 과연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바 있을까. 동원되는 중장비가 쏟아내는 온실가스만이 아니다. 막대하게 들어가는 각종 토목건설 자재들도 에너지를 투여해야 가공, 운송, 시공된다. 시멘트는 온실가스 배출 없이 생산된다던가. 한데 더 큰 문제는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 아래에서 썩어들어갈 유기물질이다. 상류에서 홍수 때마다 휩쓸려 들어와 쌓일 낙엽이나 축산폐기물들은 무시할 수 없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세계의 댐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토목과 생태 관련 수천 명의 교수와 연구자들이 4대강 사업은 지구온난화의 대책일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 파괴로 후손에게 영속적인 피해를 안길 것이라 구체적이며 양심적 논거를 가지고 목이 터지게 주장하지만 귀를 틀어막은 정부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주요 언론을 장악한 상태에서 국민을 그저 홍보대상으로 여긴다. 납득할만하게 투명하고 민주적인 토론회는 물론 열리지 않았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처럼, “4대강은 지구온난화의 대안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일류대학교 법학대학을 나와 고시를 척 통과한 국회의원도, 과외공부 지독하게 한 뒤 외국어고등학교 나온 정부고관들과 건설업계와 결탁된 이른바 영재들도 “할렐루야!”를 외친다. 교활하다. 삽자루가 두드리는 돈의 장단에 자칭 똑똑하다던 사람들의 얼이 빠져나갔다. 세종시의 경우는 아니 그런가.

 

마오리족은 알락꼬리마도요를 보고, 우리 조상은 노고지리의 울음소리를 듣고 봄을 느끼는데, 한 시인은 이제 강가에 나와 시를 쓰거나 읊지 못하게 될 내일을 생각하며 시름에 잠긴다. 아폴로11호가 달에 내려간 날, 1969년 7월, 미국에 종속된 우리도 덩달아 급작스런 공휴일을 맞았지만, 어떤 이의 얼굴은 달나라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더는 살지 않을 거라며 어두워졌다. 4대강 곳곳을 15개의 철근콘크리트 보가 가로막고 주변 강가에 물깊이보다 훨씬 깊고 높은 콘크리트 제방이 지천과 사람의 접근을 차단한다면 우리는 오랜 정서를 잃을 것이다.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며는 임도 오겠지. 임이 안 타면 편지야 타겠지” 하며 강가에서 노래하던 가곡도 용도 폐기될 것이다.

 

인천시가 갯벌을 보존하려 나섰나? ‘습지보호지역’을 지정고시하겠다고 나서기에 이르는 말이다. 단순히 그 내용만 듣자면 시민들이 드디어 인천시의 처사를 전향적으로 평가하게 될 것으로 상삼이사들은 생각할지 모르지만, 환경단체들은 기망행위라며 발끈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시가 지정한 6.11제곱킬로미터의 갯벌은 요란스런 개발 행위로 철새들이 외면하는 송도매립지 6과 8공구의 일부를 굳이 포함했지만 정작 보호가 요청되는 11공구의 대부분을 매립하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지금까지 53.4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송도갯벌을 거의 매립한 결과, 작년부터 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를 품던 10.3제곱킬로미터만이 가녀리게 남았건만 그 11공구의 60퍼센트 가까이 추가로 매립하겠다는 의지를 인천시는 습지보호지역 지정고시로 위장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2천 여 마리만 남은 저어새는 습지 생태계의 위기를 알리는 탄광의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다.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습지에 넣어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습성이 이채로워 세계 생태학자와 탐조객의 주목을 받는 저어새는 사람의 방해를 피해 인천 주변 서해안의 작은 무인도에서 번식을 해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작년에 공사차량이 밤낮없이 질주하고 온갖 소음과 자동차 전조등이 난무하는 송도신도시 개발현장의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무턱대고 접근하는 사람들의 등쌀 때문에 무인도를 피하려한 건지, 거듭된 매립과 오염으로 멀쩡했던 갯벌이 급속히 사라지자 그 무인도를 찾는 새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 성가셨기 때문인지, 악취가 진동하는 남동산업단지의 유수지의 작은 인공 섬을 찾은 것이다.

 

커다란 부리를 휘두르며 새끼들을 거의 다 키운 재갈매기들을 내쫒은 저어새들은 송도11공구의 갯벌에서 새끼들을 먹일 먹이를 챙길 수 있기에 지독한 악취를 참았을 것이다. 주변 송도신도시에 솟아오른 타워크레인을 요리조리 피하며 유수지의 인공 섬과 갯벌을 연실 왕복했을 것이다. 한데, 인천시는 그 갯벌의 대부분을 기필코 매립하고야 말겠단다. 여전히 최첨단 타령을 배경음악으로 깔면서. 하지만 최첨단은 곧 구닥다리가 된다는 의미와 통한다. 숱한 경험을 미루어볼 때 제아무리 최첨단이라 해도 그것은 지역에 정착된 문화와 역사에 어떤 행복도 얹어주지 못한다. 돈 잔치에서 이권을 챙길 세력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김없이 과학기술을 앞세우지만, 멀지 않은 역사가 증명하듯 사회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 과학기술은 쉽게 재앙을 불러오곤 했다. 핵이 그랬고 앞으로 생명공학이 그럴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칸트의 명제를 빌어 “과학적 성찰이 없는 사회는 맹목이지만 사회적 성찰이 없는 과학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갯벌은 지구온난화를 예방한다. 갯벌 1그램에 수억 마리로 분포하는 플랑크톤이 생산하는 산소와 갯벌에서 탄산칼슘 껍질을 키우는 조개와 게들은 이산화탄소를 잡아주지만 그뿐이 아니다. 완만하게 드넓은 갯벌은 뜨거워지는 바다에서 몰려오는 파고를 완충해준다. 이미 우리나라의 바다는 세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뜨거워졌다. 서해안도 마찬가지다. 그 갯벌을 매립한 자리에 솟아 올린 초고층빌딩 숲은 막대한 에너지 사용 없이 단 한시도 온전하게 가동되지 않는다. 냉난방만이 아니다. 창문을 열 수 없으므로 환기장치를 온종일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첨단을 내세우는 그런 건물들이 갯벌을 깔고 앉아도 우리는 내일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까. 거대한 쓰나미가 해안을 덮치는 영화 해운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 겨울의 추위만이 아니다. 해마다 경신되는 더위, 종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걸 웅변한다. 해안이 몇 십 센티미터만 상승해도 파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미 동해안은 너울성파고로 고통을 받기 시작하지 않았나. 갯벌을 매립한 송도신도시. 마냥 안심해도 될까.

 

철새는 고향을 찾아온다. 찾아오지 않으면 삶을 영속할 수 없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향의 정서를 잃은 사람,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은 싫든 좋든 혜택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사회에 내몰리게 되고, 그럴수록 남을 배려하기 어렵다. 거주하는 익명의 공간에서 정주의식은 깃들지 못한다. 그런 사회는 강호순 사건과 같은 ‘묻지마 범죄’가 빈발할 수 있다. 인천의 오랜 정서는 바다, 그 중에도 갯벌에 있다. 갯벌과 얽힌 숱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전설이 곳곳에 깃들어 있지 않은가. 10여 년 전, 인천의 문인들은 《인천에 바다가 없다》라는 무크지를 발간했다. 갯벌을 잃은 고향에서 살가운 이웃을 만날 수 없느니 더는 시나 소설을 쓰기 어렵고 그림도 그릴 수 없다는 걸 호소한 책이었다.

 

가녀리게 남은 송도11공구는 인천의 마지막 갯벌이다. 저어새가 찾기 시작했고 알락꼬리마도요가 봄가을이면 반드시 찾는 고향이다. 마오리족에게 어쩌면 수 만년 봄을 선사해준 갯벌이기도 하다. 삼라만상이 그물코처럼 엮여 있는 세상에서 우린 알락꼬리마도요나 저어새, 그리고 마오리족 없이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건강하고 행복한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남들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투기보다 다정한 이웃을 배려하는 인천을 생각한다면 최첨단이나 초고층빌딩을 짓기보다 갯벌을 보존하는 것이 정당하다. 돈 벌면 뜨려는 거주민보다 주민등록을 옮기고 싶은 시민이 늘어나는 인천으로 거듭나려면 자연과 정주의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다. 알락꼬리마도요가 날아오고 저어새가 날아 올 테지. (인천IN, 2010.1.?)